고린도전서2장
성부 하나님이 성령님과 사도를 통해 주시는 그리스도, 그 비밀의 은혜
(찬송 179장)
2023-2-28, 화
맥락과 의미
고린도 전서 1-4장은 복음이란 무엇이며 복음사역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5-10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11-16장은 예배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1:18-25에서는 십자가의 메시지(18-25절), 십자가의 낮음이 나타나는 맴버(교인들, 26-31절), 십자가의 약함이 있는 메신저(사도, 2장 1-5절)를 말합니다. 2-4장은 전체적으로 메신저, 즉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사역자는 어떻게 직분을 감당하는지 가르칩니다.
2장에서 복음 말씀을 직분자 바울 자신도 십자가만 전하며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나타냈습니다(1-5절).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복음은 하나님의 참된 지혜로 우리의 영광을 위해 세상 창조 전에 예정하신 것입니다(6-9절).
하나님께서 이 영광스런 지혜를, 오직 성령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성령님의 계시의 복음은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조사하여 검증되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10-16절).
1. 메신저: 십자가의 연약과 지혜 없음 가운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1-5절)
2. 참 지혜: 하나님은 십자가 그리스도 안의 모든 보물을 주심(6-16절)
1. 메신저: 십자가의 연약과 지혜 없음 가운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1-5절)
1절의 “나아가,” 처음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아갔을 때를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AD 51~52년에 1년 반 동안 사역을 했습니다. 그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탁월함, 권세”를 말합니다. 교만하게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2절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결정)했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지혜를 알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철학자들과 논쟁을 했습니다. 철학이 필요할 때는 사용했지만 자기 자랑하듯이 지식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그 지식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인간의 지혜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3절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 “약한 것”은 육체의 질병을 말합니다. “두려워 떨림”은 심리적 압박이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다 유대인의 반대로 “유스도”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고 격려하셨습니다(행 18:9).
예수님께서 나서 위로해야 할 만큼 바울에게는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오는 두렵고 떨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주는 두렵고 떨림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두렵고 떨림으로 계속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말함과 복음 전파는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위 일체 하나님을 의지하고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4절). 그가 전한 말을 사용하여 성령님이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나타남”은 “증명하심”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복음 만을 전할 때 성령님이 설득하셨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 즉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미련해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이 듣기에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수치와 연약함입니다. 하지만 그 미련해 보이는 복음 말씀을 사용하여 성령님이 능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이 시대의 복음 전도자도 사도들과 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사람을 설득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게 할 때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5절).
십자가만 순수하게 전해서 오히려 전도자 자신의 무능함과 어눌함이 나타날 정도로 단순하게 복음만 전합시다. 성도들은 단순하고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 듣기를 기뻐합시다. 그 복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체험 있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과 그리스도의 임재와 거룩한 삶에서 성장이 있기 바랍니다.
2. 참 지혜: 하나님은 십자가 그리스도 안의 모든 보물을 주심(6-16절)
1) 십자가: 사람의 힘으로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6-9절)
십자가의 복음은 오직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입니다(6절). 그러나, 온전한 자들(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면 불완전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지혜를 넘어선 하나님의 지혜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지혜는 세대의 관원, 즉 지도자들이 모르는 것이었습니다(8절). 제사장과 바리새인 등 유대인들도, 빌라도 등 이방인 지도자 등 ”이 세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앞세우기 때문에 십자가의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알았다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준비한 것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것입니다(9절). 하나님께서 준비한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2절)입니다. 그 안에 감추인 지혜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을 주는 것입니다(1:30).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언한 선지자들도 이미 한 말입니다. 9절은 이사야 64:3, 65:16을 종합하여 하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온전한 자들이라고 합니다(6절). 1장에서 본 것처럼 이들은 파벌을 나누어서 분쟁을 하는 부족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이들에게 복음을 깨닫게 해 주시니 온전한 자들입니다. 지금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의와 거룩과 구속을 주셔서 온전하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과 주위 교인들의 겉모습만 보고 부족한 사람들로 쉽게 생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는 것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를 온전한 자로 만들어 가실 것을 바라보며 서로 격려합시다.
2) 십자가의 지혜를 성부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알려 주심 (10-16절)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함께 우리에게 주실 그 지혜의 내용, 의롭게 됨, 거룩함, 구속함에 대한 복음을, “하나님이 성령으로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10절)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십자가의 일을 하시고,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하늘에서 승천하여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하나님은 그 분이 사랑하는 자들, 즉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계시의 말씀을 계속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와 고린도 교인 모두를 포함합니다.
“사람의 사정” 즉 사람의 생각과 하는 것은 사람 속의 영이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 안의 생각, 하시는 일을 오직 성령님 만이 아십니다(11절).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알 수 없는 “세상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12절).
“사도가 말하는 것” 즉 고린도 교인들에게 만나서, 또 편지로 전하는 이 복음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사도가 사람에게 배워서, 그리고 하나의 사람으로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 배운 것을, 성령님 안에서 교인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13절).
“성령적인 것들로 성령적인 것들을 분별합니다.”(13절) 즉, “성령적인 것들로”(=성부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가르쳐 주신 그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가르침을 통해서), “성령적인 것들을”(=그 복음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축복을) “분별합니다.”(=깨닫습니다.) 깨닫는 것은 단순히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모든 영적인 것들을 교회는 배웁니다.
육에 속한 자, 즉 보통 사람의 자연적인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의 것”(14절)을 받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알게 해 주는 하나님의 것”(11절), 그 복음과 그 복음 속에 예비해 둔 것(9절)을 받지 않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이 복음이 아주 미련하게 보입니다. “이런 일은 영적으로만 분변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님을 통해서만 십자가 복음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받을 수 있습니다.
15절의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함을 받지 않습니다.” 14절의 분변, 15절의 판단, 세 번이나 쓰인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조사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진리라는 것,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온다는 이 사실은 오직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지혜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16절에서, 다시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 40:13을 인용하여, 성령님이 복음을 깨닫게 하신 것은 구약 시대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신 일이 계속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사 40:13) 그런데 ”우리가(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이사야가 말한 ”주의 마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성령”(12절)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3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이 세상의 삶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후에도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계속 풍성하게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도 임하셔서 성경 말씀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는 바로 사도들에게 계시를 주신 성령님이 쓰신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철학이나 고대 수사학 같은 세상 지혜로 사도가 전한 복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을 당장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사도에게 주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모든 축복을 계속 계시하고 가르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자신도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분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2절) 계시를 받은 그 자신도 오직 계시 그것만 알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투박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비밀을 성령을 통해 깨닫았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감추인 지혜가 있습니다. 이 지혜는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도, 상식이나 이성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판단하지 맙시다. 교회는 사도에게 받은 이 복음,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말씀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선포와 전도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교회가 신실하게 이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합시다. 십자가 복음을 계속 듣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은혜를 누립시다.
성령님을 통해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성경 말씀을 읽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 가정에 지금도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말씀의 지식만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실제 내용을 삶 가운데에서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죄 용서와 의롭다 하심, 거룩한 삶을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경험하게 해 주시도록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성경의 가르침 중에 내 생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기독교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맙시다. 어려운 성경 말씀이 이해되도록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길 기도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3절, 분별(신-크리노)=요셉의 꿈의 해몽(창 40:8)
“성령적인 것들로 성령적인 것들을 분별합니다.”(13절) 분별한다는 것은 창세기에서 요셉이 꿈을 해몽하는 것에 쓰인 단어입니다(해석, 창 40:8, 12, 22, 41:12). 하나님이 계시로서 준 꿈을 사람은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해석했습니다(창 41:38). 하나님께서 사도에게는 성령님의 능력을 주셔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진리를 계시하게 하십니다.
<참고> 분별(14절), 판단(15절)(아나-크리노)
무엇이 옳은지를 조사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진리라는 것,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온다는 이 사실은 오직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지혜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참고> 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사 40:13)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사 40:13) 그런데 “우리가(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이고 헬라어로 “누스”입니다. “루아흐”는 “영(프튜마)”으로도 번역됩니다.
이사야가 말한 “주의 마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누스, 16절)”이요, “하나님의 성령(프뉴마)”(12절)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성령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의 의미를 성령님 안에서 계속 가르치며 계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계속 풍성하게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셔서 성경 말씀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는 바로 사도들에게 계시를 주신 성령님께서 쓰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