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장 말씀의 종의 자기 직분에 대한 확신: 신실하게 복음 증거,마지막 날 주님의 판단,고난 가운데 섬김 2023-3-2, 목
작성자축제작성시간23.03.01조회수102 목록 댓글 0고린도전서4장
말씀의 종의 자기 직분에 대한 확신:
신실하게 복음 증거, 마지막 날 주님의 판단, 고난 가운데 섬김
(찬송 179장)
2023-3-2, 목
맥락과 의미
1-4장은 복음의 말씀과 직분자에 대해 말합니다. 3장에서는 말씀 직분자와 교회의 관계를 가르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직분자는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 사역자를 중심으로 분파를 나누면 안 됩니다. 자신이 사람의 파벌에 속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도는 교회의 것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3:22-23). 온 교회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4장에서는 사도의 말씀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잘 배우라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 사역자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터 위에서 말씀 사역자를 존경하고 순종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교역자를 대하는 자세를 아주 균형 있게 가르칩니다. 사도의 증거를 세 가지로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의 권면을 따라 회개할 것을 권합니다.
1. 사도의 자격 증거: 신실하게 복음 증거, 주님의 판단(1-5절)
2. 사도의 자격 증거: 고난 가운데 나타나는 능력(6-14절)
3. 사도의 자격 증거: 영적 아버지로서 성도를 사랑으로 책망(14-21절)
1. 사도의 자격 증거: 신실하게 복음 증거, 주님의 판단(1-5절)
1절, “마땅히 …. 여길지어다”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사도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교회 위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를 평가하십니다. 성도는 사도를 그저 교회의 일꾼으로 여기면 됩니다.
“일꾼”(1절)은 하수인을 의미합니다(참고 요한복음 18:3, 12). 하나님의 하수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집을 관리하는 종입니다.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2절). 말씀 사역자의 사명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판단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심문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를 심문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성도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책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4절). “자책한다”는 양심에 거리끼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바른 복음을 전하고 있어서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이 없습니다.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종으로서 맡은 일을 충실히 하고 있으니 사람에게 판단 받을 것이 없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말씀을 가감없이 전할 때 거리낌이 없습니다. 또 말씀에 순종할 때 거리낌이 없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양심의 거리낌이 없도록 살아갑시다. 말씀의 원리에 근거해서 살면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우며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갑시다.
그러나 사도는 최종적인 판단은 주님이 오셔서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절대시하지 않고 주님의 최종 판단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의 최종 심판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5절) 양심적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살아간 모든 성도에게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재림의 날은 두려움으로 심판 받는 날이 아닙니다. 주님의 칭찬을 받는 날입니다. 이 밝은 미래가 있으니 감사와 기대로 매일 살아갑시다. 사람의 평가 때문에 울고 웃는 초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2. 사도의 자격 증거: 고난 가운데 나타나는 능력(6-14절)
참 사도의 두 번째 증거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 교회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통해 “이 일에” 본을 보였다(6절)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바울은 아볼로를 가르쳐서 고린도 교회의 후임 목회자로 삼았습니다. “본을 보인다”는 ‘실상을 구현한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은 청지기로서 신실하게 사역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신실하게 일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과 아볼로의 모범에서 배워야 했습니다. 말씀의 기준을 넘지 않고, 서로에 대해서도 교만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야 합니다(6절). 고린도 성도들이 가진 지식의 은사, 방언과 예언의 은사 등은 모두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갖게 된 것처럼 자랑하면 안 됩니다(7절).
8-11절: 하나님께서 사도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당하게 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사도는 구체적으로 간증합니다. 그에 비해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배부르며... 왕이 되었습니다.” (8절) 고난과 관계없이 영광만 누리려 합니다. 바울은 약하지만 그들은 강하고, 바울은 비천하지만 그들은 존귀하여 영광을 취하고 있습니다(10절).
고린도 교인들은 성도의 삶에서 영광만을 생각합니다. 마치 이미 예수님 재림 이후의 천국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영광을 취하려 합니다. 교만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미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그 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압니다. 지금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 나라를 향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완전한 천국을 향해 가는 이 시대는 아직은 고난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도 주신 자리에서 직분을 다하며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워합시다. 직분을 다하는 일에는 수고가 있습니다. 비난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면, 고난을 피합니다. 그러면 주신 직분을 잘 이룰 수 없습니다.
3. 사도의 자격 증거: 영적 아버지로서 성도를 사랑으로 책망(14-21절)
바울이 사도 된 것의 세 번째 증거는 영적 아버지로서 그들을 낳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책망하는 어투로 말합니다.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14절) .
그는 “선생(15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생은 주인의 아들을 맡은 자입니다.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돈을 받고 복음 지식을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같습니다.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처럼 사랑이 깊습니다. 그들을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강하게 책망도 합니다. 영적인 아들 딸들에게 권면합니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16절).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자신의 복음의 아들이자, 또 신실한 사역자인 디모데를 보냅니다(17절). 디모데가 이 고린도전서 편지를 가지고 갑니다. 디모데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읽어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와 디모데는 사도 된 바울을 대신하여 가르칠 것입니다. 사도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17절), 즉 보편 교회를 위해 가르치는 내용을 다시 가르쳐서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나 목사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사도들이 보편 교회를 위해 가르친 신약 성경을 신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개인 취향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로서 건강하게 자랍니다.
“나아가다”(18,19,21절)는 사도가 방문한다는 뜻입니다. AD 55년 봄에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51년경 처음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6-13절에서 그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사역한 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관점에서 간증했습니다. 그는 얼마 후에 다시 방문할 것입니다.
매를 가지고 나아가지 않도록, 곧 방문해서 책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합니다(21절).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온유한 마음”은 ‘사랑과 온유한 영’입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성령님의 사랑과 온유함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장차 사도의 방문은 한 성령 안에서 사랑과 온유함의 친교를 누리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회개할 내용 중 하나가 바울의 사도 자격에 의문을 품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의 자격 기준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수사학자들이 사용했던 말의 기술이 아닙니다.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고난 가운데 묵묵히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목사를 대해야 할지 배워야 합니다. 말재주가 좋은 것을 사역자의 자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20절).
고린도 교인들처럼 지식을 자랑하고, 말 자랑하듯이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복음 말씀이 있고, 삶에서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복음을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능력도, 사랑과 온유함도 나타납니다.
믿고 복종할 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조심합시다. 특히 직분자에 대해 비판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에 대해 들은 것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보편 교회의 관점에서 교회를 이해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적 관점으로 잠깐 교회를 들여다보고 일반 상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는 교회 안에서 복음 말씀과 보편 교회의 전통과 긴 시간의 목회 활동을 통해 교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 된 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섬길 자격이 없습니다. 7절,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부모의 권위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겸손한 생각을 가지고 자녀를 섬기도록 힘씁시다.
남을 판단하지 말고, 고난 가운데 자신의 직분을 신실하게 행합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칭찬받을 것을 기다립시다. 자신의 일에 힘쓰는 자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알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도우려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님이 충만하게 해주시기를 구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목사나 성도들을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마치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먼저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기도해 줍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일꾼(휘페레테)=아랫사람,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오코노모스)
“일꾼”(휘페레테, 요한복음 18:3,12)은 하수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하수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오이코노모스, 청지기)를 말합니다.
<참고> 3절, 판단한다(아나크리죠)=심문하다
3절, “판단한다”(아나크리죠)는 ‘심문한다’는 뜻입니다.
<참고) 4절, 자책한다(순오이다)= 양심에 거리끼는 잘못을 뉘우치다
“자책한다”(순오이다)는 ‘양심에 거리끼는 잘못을 행한 것을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 6절. 본을 보인다(메타-스케마티조)= 실상을 구현한다
“본을 보인다”(메타-스케마티조)는 ‘실상을 구현한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은 청지기로서 신실하게 사역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참고> 15절, 선생(파이다고고스, 15절)=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종,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자
“선생”(파이다고고스, 15절)은 갈라디아서에서는 초등교사(갈 3:24, 25)라고 합니다. 주인의 아들이 어릴 동안에 따라다니는 남자 종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나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대개 아이들에게 강하고 엄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자라는 뜻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를 남의 자녀처럼 대하지 않고 친자녀로서 사랑하며 책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