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8장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시고 홍수를 끝내심,
노아의 감사제사
(찬송 79장)
2024-1-9, 화
맥락과 의미
6-7장에서 홍수가 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8-9장은 홍수가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홍수는 노아 나이 600세 둘째 달 17일에 시작되어(7:11) 601년 2월 27일에 최종적으로 끝이 났습니다(8:14). 1년 10일 동안 노아는 배 안에 있었습니다.
1. 홍수가 끝남(1-12절)
2. 동물의 번성 축복, 노아의 감사제사, 하나님의 결심(13-20절)
1. 홍수가 끝남(1-12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하신 약속을 기억하셔서 바람을 불게 하시고 물이 줄어들게 하셨습니다(1절). 이것이 홍수 기사의 정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탄 모든 짐승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잊고 있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언약과 약속에 대해 신실하심을 나타낼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사사기 8:34; 하박국 3:2).
출애굽기 6:4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창세기 8:1의 “기억”은 하나님께서 6:18-20에 “생명을 보존하게 해주신다는 언약”을 신실하게 실천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홍수가 시작된 지 150일 만에 방주는 아라랏 산 위에 머물렀습니다(4절). 물이 점점 없어져 10월 1일에 산 봉우리들이 보였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슬픔과 위험이 가득 차고 우리가 그 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홍수 한가운데 있는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노아와 아브람 그리고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언약을 맺으실 때 우리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1절에 “바람”은 “영, 성령”이라는 말도 됩니다. 성령님께서 홍수같이 우리를 삼키는 듯한 세상 가운데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에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일하실 것입니다.
2. 동물의 번성 축복, 노아의 감사제사, 하나님의 결심(13-20절)
노아는 마침내 1년 10일 동안 방주 안의 생활을 끝냈습니다. 방주의 문을 열었습니다. 15절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1년 10일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계시지만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듯이 다가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어려운 가운데 내버려두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강하게 하나님 임재를 느끼며 말씀을 들을 때뿐만 아니라 보통 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16-17절: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모든 짐승들을 다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와 짐승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1:22에서 물고기와 새들에게 하신 복을 반복해 말씀하십니다.
이제 땅의 물은 다 빠졌지만 전과 같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노아는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써 노아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20절: 노아는 정결한 짐승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는 짐승의 모든 부분을 다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감사를 표시합니다. 또 피흘림이 있기 때문에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죄용서도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연기를 향기처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노아를 받으셨습니다. 그와 그의 가정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감사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고 어려움에서 구해주셨을 때도 감사하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결심하셨습니다(21절). 사람 때문에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시지 않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6:5에서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에는 사람들의 악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들의 악을 항상 관용하시면서 자연은 계속 번성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계절과 밤과 낮의 질서가 계속되게 해 주시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 농부들이 가축을 키우면 가축이 잘 자라는 것, 이게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 때문임을 압시다.
그리고 자연 만물이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죄인들에게도 생명을 주시는 은혜, 즉 일종의 자연언약, 생명언약, 보존언약을 하나님께서 맺으셨기 때문임을 이해합시다.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항상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죄로 인해 계속 상처를 받으시겠지만 최종적인 심판 전까지는 어떻게 하든지 그 죄악을 감수하시고 참으십니다. 이는 죄악으로 인해 인간이 당하는 고통 이전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고통을 받으심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아무리 인간이 악할지라도 그들의 악함이 주는 고통을 당신께서 다 당하시면서도, 선택하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까지 교만한 자는 심판하시며 창조하신 이 세상을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죄는 다른 해결을 기다립니다. 여인의 후손을 통해 죄가 용서되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용서함을 받고 물로 세례를 받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벧전3:18-22).
하나님께서는 물로 하시는 심판 가운데서 노아라는 한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홍수는 심판과 동시에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모든 인류를 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불로 심판하실 날을 준비하시고 있습니다(벧후 3:7).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자연적인 언약, 보존의 언약뿐만이 아니라 구원의 언약까지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항상 기억하십니다. 홍수같이 힘든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단련하시면서, 우리가 그 시련을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피할 길을 주십니다(고전10:13).
홍수같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어떤 고난이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하나님)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지금도 성령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덮으시고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 이 평화와 기쁨이 없습니까? 다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 갑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바람=성령(루하)
1절의 “바람”은 “영, 성령”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8:1은 창세기 1:2의 지구 상태를 연상시킵니다. 창세기 1:2에서는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음이 그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였습니다.
창세기 8:1의 지구는 대홍수로 인하여 혼돈한 상태이며 방주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였습니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물이 지구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위에 하나님께서 “영”을 보내셨습니다.
창세기 1장 셋째 날 창조에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있던 물이 한 곳에 모여 땅이 나타났습니다. 마찬가지로8:1에서는 하나님께서 “영”을 보내시자 물이 감소하여 산봉우리들이 드러나게 만드셨습니다.
1절의 “바람”이 이적을 일으키는 특별한 바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 이신 성령님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2의 하나님의 영처럼 새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 표출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참고> 20절, 정결한 짐승
구약 레위기 11장, 20:25, 신명기 14:4-20에서 하나님은 음식과 제물에 대한 규칙을 정해 주셨습니다. 어떤 짐승(돼지 등)은 부정하다고 정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정결한 짐승 중에서 노루는 먹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양, 염소, 소 등만 “거룩한” 제물로 드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짐승은 부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짐승을 “부정하다”고 정하신 이유는 사람에게 죄악이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정결한 짐승 중에서 거룩한 제물을 따로 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다른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임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규칙을 다 없애셨습니다(막 7:19, 행 10:9-15).
우리 주 예수께서 참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고, 무슨 음식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음식을 먹을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할 때 우리가 먹는 것도 거룩합니다(딤전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