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할례의 언약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자손, 땅을 복으로 약속
(찬송 35장)
2024-1-19, 금
맥락과 의미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3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려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15장)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려주시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답게 살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껏 사용하던 이름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모든 자들에게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한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도록 그 표시를 사람의 육체에 새겨 넣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산능력이 전혀 없는 노인 부부에게 “내년에 약속한 아들을 태어나게 하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 집의 모든 식구들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1. 언약의 복: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8절)
2. 아브라함이 해야 할 언약의 의무와 표시(9-27절)
1. 언약의 복: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8절)
아브람이 99세, 사래가 90세 때에 하나님께서 13년 만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에 뉘앙스가 있습니다. “지금 너를 보니까 내 앞에 행하여서 완전하지 않다” 라는 하나님의 책망이 들어있습니다.
13년 전에 15장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언약을 맺으신 후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여 자기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명(7계명, 간음하지 말라)을 어겼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번성하게 할 약속의 자녀가 이스마엘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나이가 각각 99세와 90세에는 결코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아브라함에게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 어떤 분이신지 바라 보아야 합니다. “언약을 지금 다시 세우겠다.” 이미 언약 관계에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시 언약을 세우셔서 어떻게 한다고요? “너를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
그 때 3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참 믿음의 자세입니다. 경배하는 자세입니다. 그는 자기의 부족을 회개하면서 들었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17장에서 13년 전에 맺으신15장의 언약을 새롭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언약의 내용은.
a) 자손: “네 상속자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될 것이고 그를 통해 후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b) 땅: “가나안 땅을 너의 소유로 줄 것이다.” 그 언약의 복을 17장에서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언약하십니다.
c) 영원한 언약: 17장의 언약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과도 맺으시는 영원한 언약이라는 점도 알려 주십니다(7절).
d) 하나님이 함께 하심: 17장의 언약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8절). 많은 자손보다, 많은 땅보다 더 큰 복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후손을 지키시는 분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복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시는 복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9). 어느 가문 어느 학교 어느 기업체나 어느 국가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영원한 신분과 혜택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앞으로는 전혀 오해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고 그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너는 여러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이다.” “여러 아버지”(무리의 아버지)는 “아브 하몬”입니다. 부르기 쉽도록 ‘아브라함’입니다. 이름을 새롭게 해 주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도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여자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칙이 다 뒤집어지고, 사물의 본성이 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실현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전히 그 분의 은혜로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의 후손인 우리와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정과 교회라는 영적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백성이 성장하게 하십니다. 또 우리에게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는 직업과 물질생활에서 땅의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낮은 우리를 위해 낮아 지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아드님을 속죄제물로 주셔서 죄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7).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을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생명을 우리에게 채워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이 해야 할 언약의 의무와 표시(9-27절)
1) 아브라함의 가문의 할례(9-14절, 23-27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로 맹세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도 언약관계에 헌신의 맹세를 하라고 하십니다.
15장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낮추시고 맹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17장 언약에서는 아브라함 쪽에서 해야 할 의무를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이 관계에 신실하겠다는 헌신을 표시하는 의식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남자의 생식기의 끝의 껍질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99세가 된 아브라함, 13세가 된 이스마엘뿐만 아니라, 난지 8일이 지난 어린이 등 모든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돈을 주고 사온 노예까지도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바로 당일에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할례를 시행했습니다. 주변 이웃 나라 사람들이 할례를 하는 것을 봤지만, 그들이 자기 손으로 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밤 모든 장막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2) 1년 후에 아들을 낳는다고 약속하시며 이삭이라 이름을 지으라고 명령하심(15-22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9-14절), 그리고 그 명령대로 할례를 행한 것(23-27절) 사이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대화합니다.
15절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그녀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엎드렸습니다. “99세 된 남편, 90세 된 아내가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는가?” 엎드려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고 복받아 잘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지 않고 계속 부드럽게 설득하십니다. “네 아내 사라가 분명히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으라. 나는 그 아들과 언약을 세운다. 이스마엘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만들겠다. 그러나 내 언약은 이삭과 세운다.”
아브라함이 엎으려 웃으니까 하나님께서 모르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머 감각이 있으신 분입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엎드려 웃었지, 네 아들은 ‘웃음’이라고 이름을 짓자.” 이삭은 “웃는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의심하며 피식 웃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삭이 가져올 그 기쁨을 생각하며 ‘웃음’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인내심이 많으시고 온유하신 하나님께 감탄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유머도 있으신 넉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언약 백성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언약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과는 언약을 맺지 않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만 주셨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지금도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언약, 즉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은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언약 백성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만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님께서 언약 백성에게는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셔서 언약의 표인 세례를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고 재산도 주십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복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영원한 천국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 복을 감사하며 즐기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맙시다. 믿지 않는 사람의 물질적 축복에 대해 시기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이 비록 적다 하더라도 자녀가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영원한 천국을 주신 것을 감사하도록 합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온 가족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면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할머니 할아버지인 그 부부가 자녀를 낳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피식 웃을 정도로 그들은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순종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믿음이 참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롭게 말씀을 주십니다. 매번 흔들리는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읍시다. 하나님을 엎드려 경배하고 그대로 순종합시다.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온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의 제물처럼 온전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음이 흔들릴 때 마다 세례의 표시와 도장을 생각합시다. 우리 자녀들이 유아세례를 받고 우리도 세례를 받고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 땅에 필요한 물질적인 것도 주실 겁니다. 우리 자녀의 미래도 주님 손에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혹시 흔들리듯이 보이더라도 결코 뒤로 물러가거나 도망가지 맙시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경배하면서 하나하나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완전하라
“행한다”는 그냥 걸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산책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의 “걷는다(할라크)”의 히트파엘 형태입니다. 창세기 3:8에 나옵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과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친교를 나누신 에덴동산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성막(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친교를 계속 나누십니다. 레위기 26:12는 말합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한다.” 성막 중에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 안에서 왔다 갔다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 교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너는 내 앞에서”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성막 앞에서”라고도 표현합니다. 에덴동산도 성막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얼굴을 대하며 만나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걸어가는 모든 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7:1에서 “행한다”를 헬라어 구약성경은 “기쁘시게 한다(유아레스토)”로 번역합니다. 창세기 5:25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하나님과 함께 거닐었다)”도 헬라어 성경은 “기쁘시게 했다”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6-7절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히브리어 표현을 헬라어 구약 성경을 따라서 “기쁘시게 했다”고 말합니다.
“너는 내 앞에 행하라” 이 말씀은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하십니까? “완전하라”(탐밈, 헬라어-아멤프토스). “완전함”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물이 온전한 것을 말합니다. 제물로 바치는 동물이 다리가 절뚝거리거나 눈이 상한 것이면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않은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완전할 것을 명하실 때 도적적인 완벽을 요구하신 것은 아닙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 바로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이 믿음은 신자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손을 잡고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그런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참고> 11절,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라.” 14절,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 지리라.”
“할례를 받는다”는 “포피를 벤다, 자른다(물)”와 같은 단어입니다.
“언약을 맺는다”의 말 그대로의 뜻은 “언약을 자른다(카라트)”는 뜻입니다. 언약을 맺을 때에는 그 언약을 어길 때 자기를 저주하는 그 의식 때문에 그렇게 표현합니다. 할례에서 포피를 자르는 것과 언약을 자르는 것은 히브리어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비슷합니다.
14절에서는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 즉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카라트)라고 합니다. 이 끊어지는 것은 언약을 맺는다, 자른다는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언약을 자른 사람 중에서 언약의 표시를 순종하지 않으면 백성으로부터 잘립니다. 언약의 저주를 받습니다.
<참고> 할례의 의미
첫째, 할례는 언약을 체결하는 것과 그것을 어길 때에는 저주를 받겠다는 표시입니다. 할례의 원래 말뜻은 ‘자르는 것’입니다. 또한 언약을 ‘맺는다’의 원래 의미도 ‘잘라내다’ 혹은 ‘칼로 가르다’는 뜻입니다. 언약을 맺을 때는 그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징벌을 받겠다는 자기 저주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동물을 반으로 자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면 동물처럼 몸이 잘리는 벌을 받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창세기 17장에서는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과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언약식을 거행합니다.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겠다는 표징(sign)입니다.
둘째, 할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백성으로 삼으셔서 복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헌신되어 있다는 표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소유된 땅을 맡았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 나가는 복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의 표를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난 칼자국을 보면서, “그 언약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내가 언약 백성에서 잘라지는구나” 라는 것을 계속 확인하고 언약을 기억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의 표시인 무지개를 보시면서 그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셋째, 할례는 언약백성이 죄인됨과 동시에 성령님으로 새롭게 되는 것을 표시합니다. 할례를 하면서 흘리는 피는 사람이 죄인이요 부정함을 상징합니다. 한편, 할례는 마음의 죄악을 잘라내고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신 10:16; 30:6).
특히 렘 4:4에서는 “할례를 시행하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겔 44:9에서는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는 성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롬 2:29에서는 “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다. 할례는 마음에 행하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례는 예수님을 통해서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골로새서 2:11은 “세례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합니다. 할례는 남자들만 했는데 지금은 여자들도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물을 뿌리거나 물 속에 들어 갔다 나오는 방법으로 시행되지만 우리 영혼에 영원한 언약의 표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되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헌신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영적 사실이 세례를 통해 나타납니다.
<참고> 할례와 유아세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할례로 언약하시면서 아브라함을 그의 육적, 영적 후손들의 대표로 세우셨습니다(창 17:7). 예수님께서는 할례를 세례로 완성했습니다. 이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우리와 언약 백성인 우리들의 자녀도 하나님의 언약에 포함되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가 스스로 믿음을 고백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언약 백성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의 표시로서 할례와 세례를 주셨습니다. 우리 자녀의 선행이나 심지어 믿음이 있기도 전에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합시다.
<참고> 할례(세례)의 표시와 믿음의 필요성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사랑과 기도와 할례를 받았지만 믿음을 버리고 들나귀처럼 살았습니다(16:12).
할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언된 이스라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세례와 예배의 예식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참 유대 사람이 아니고, 몸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사람이 유대 사람이라야 참 유대 사람이며, 문자화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롬 2:28-29)
성도님들은 오늘도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기를 결단합니까?
<참고> 이스마엘의 후손과 오늘날의 아랍 사람의 구원
창 25:12~18에 따르면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아브라함 시대에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수르)까지 넓게 퍼져 살았습니다. 지금의 이집트 일부와 요르단과 시리아 레바논 일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지역입니다. 지금의 토착민 중 일부는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이스마엘의 후손, 에서의 후손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중동의 아랍인들은 모두가 이스마엘의 후손은 아닙니다. 또 이삭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만 갇혀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은 원래 정착지에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서로 섞여 살았습니다.
오늘날 다수의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이 속한 셈계 혈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라크인들 다수는 가장 대표적인 셈의 후손들입니다. 오늘날 중동 지역은 AD 50년경에 화려한 기독교 문명의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혈통을 넘어서서 허다한 민족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630년부터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들이 그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존속되었습니다. 지금도 위에서 말한 지역 주민의 10% 정도가 기독교인들입니다.
오늘날 아랍 이슬람 지역의 국민들은 누구의 자손으로 보아야 할까요? 이삭의 자손인가요? 아니면 이스마엘의 자손인가요? 믿음의 역사는 핏줄을 타고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마1장)에도 5명의 이방여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의 여성도, 모압 여인도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갈 3:27-29).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스마엘의 자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이삭의 자손도 심판을 받아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마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