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2장
언약 백성 이삭 자신을 제물로 드림,
하나님의 축복을 새롭게 하심
(찬송 96장)
2024-1-25, 목
맥락과 의미
21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언약의 백성으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자손의 축복을 이야기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블레셋 왕이 아브라함의 번성을 보고 평화조약을 맺자고 말해서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서로 맹세하여 언약을 맺었습니다. 빼앗겼던 우물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이라 불렀습니다.
22장은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살 때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기적으로 태어나게 하신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언약의 복을 더 확실하게 선언하셨습니다.
2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불러 내셨을 때와 비슷합니다. 23-25장은, 사라가 죽고, 이삭이 결혼하고, 아브라함이 죽는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1.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19절)
2.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후손들(20-24장)
1.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19절)
“그 일 후에”(1절).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여러 해를 지난 때였습니다. 이삭은 이제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믿음의 시련을 주셨습니다. “모리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장면은 12장하고도 같습니다.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출발은 하라 하셨지만 12장에서는 어느 땅으로 가는지를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모리아라는 지명은 말씀해 주셨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산인지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갈 곳도 정확히 모르고 믿음으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의 말씀의 순서는 “네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자,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귀한 아들인지 하나님께서도 잘 아십니다. 번제는 제물을 완전히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 제사는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살아 있으면서 헌신된 삶을 살아가야 할 그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3절).
그날 밤 아브라함은 고민과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곤히 잠든 아들의 천막에 들어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사랑스런 마음에 가슴이 뛰었을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내면의 감정은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성령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내면의 감정에 대해 전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도 내면적으로 고민합니다. 느낌이 있든 아니든, 기분이 좋든 아니든 그대로 단순히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했습니다. 3일 길을 걸어 갔습니다. 목적지까지는 약 77 킬로미터입니다. 당장 제물로 바치지 않고 3일 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에게 더 고통이었을 수 있습니다. 2명의 종들도 데리고 갔습니다.
제사에 드릴 나무는 제물이 될 이삭이 지고 갑니다. 이제 거꾸로 뒤집으면 그 나무 위에 이삭은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자신은 칼과 불을 들고 갑니다. 아브라함은 칼과 불을 든 제사장입니다. 제사장과 제물이 지금 걸어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아들이 묻습니다(7절). “아버지!” “그래 여기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다정하게 이야기합니다. “여기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들아,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준비하신다는 것은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행동하십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내 아들을 바치라 하셨으니 나는 순종한다. 어쩌면 양은 제물로 따로 준비하실 것이다. 아니면 죽은 내 아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 하나님께 대책이 있을 테니까 믿음으로 그냥 걸어 갑니다.
산이 바라 보이는 곳에서 두 명의 종들은 기다리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만 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단을 쌓았습니다. “이삭을 결박하여.” 이미 아브라함은 110살은 넘었고 이삭은 아주 힘있는 청소년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순히 묶였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그 양과 같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신 우리 주 예수님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기 아들을 나무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손에 칼을 잡고 거침없이 아들의 목을 찌르려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다급하게 외쳤습니다(11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여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급히 멈추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느니,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두려워하는) 줄을 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줄을 모르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높여 주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뒤에 보니까 숫양이 수풀에 걸려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했습니다. 아들을 대신하여 그 양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의 이레”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심” 이라는 뜻입니다.
번제를 드린 다음 여호와의 천사가 하늘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증인으로 삼으셔서 언약을 다시 확증하십니다.
“네가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순종을 인정해 주십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후손들의 인구가 많아지게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후손은 적들과 싸움에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하신 약속을 반복합니다(12:1-3).
“왜냐하면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기 때문이다.” “준행”은 “지킨다”는 뜻입니다. 18절에서는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킨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언약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맹세하셔서 언약을 새롭게 하십니다. 행함(16절)과 준행(18절)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이삭이 죽다가 살아난 것에 대해서도 아브라함과 이삭의 감정적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말도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침묵하며 순종합니다. 죽음을 향해 나갈 때도, 이 큰 복을 받을 때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타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브엘세바로 돌아왔습니다.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그 복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새로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단순하게 순종합시다. 준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 단계 높은 축복을 내려 주시고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2.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후손들(20-24장)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는 이 희망찬 약속에 이어서 그의 동생 나홀의 자손을 소개합니다. 나홀의 아들의 이름을 소개하다 한 명을 소개합니다. “리브가.” 이삭의 아내가 될 처녀입니다(24장). 이삭 부부를 통해 자손이 번성할 미래를 비춰 줍니다.
3. 아브라함과 구약제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우리의 신앙
1) 이삭의 제사와 구약 제사
하나님께서 이삭으로 제사를 드릴 장소로 지시하신 곳이 모리아입니다. 바로 이 곳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집니다(대하 3:1). 나중에 성전에서 제사드리던 구약 성도들은 자기 아들을 바쳤던 아브라함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원래는 사람이 바쳐져야 되는 데 어린 양이 제물로 바쳐집니다.
짐승 제사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 죄인으로서 벌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것에 죄를 옮겨서 피흘리게 합니다. 둘째, 성전에서 드리는 번제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바쳐 드린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전에서 예배한 성도는 앞으로 자기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번제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생자를 죽이라고 하셨다가 다시 죽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삭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죽음에 맡기셨습니다. 도살장에 끌려 가는 양처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갈보리 산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습니다.
우리 대신에, 그리고 이삭과 아브라함 대신에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7).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의 씨로 오셔서 사단을 이기시고 사단에 눌려 있던 아담의 후손을 해방하셨습니다. “여자의 씨로 사단의 머리를 부수셨습니다”(창 3:15).
그렇게 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 우리를 죄와, 마귀와, 죄로 인한 형벌로부터 구해 주셨습니다. 둘째,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도록 힘주셨습니다(롬 12:1).
3)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살아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언약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았습니다 (창 15:6).
그런데 그 언약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그는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바칠 때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1-23). 실천으로 믿음이 완성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부활의 능력을 이 땅에서 경험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처럼 시련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십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헌신을 하나님께서 요구할 때 단순한 마음으로 순종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독생자처럼 우리가 너무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도 하나님보다 높아지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귀한 것을 바치라고 시험하십니다. 그때 내려 놓읍시다.
내려 놓는 것이 죽는 것처럼 힘들더라도 자기를 내려 놓을 때, 더 경건한 삶을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십니다. 오늘도 죄에 대해서 죽읍시다. 자기 집착과 탐욕에 대해 죽읍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희생을 요구하실 때 침울하지 않고 유쾌하게 순종합시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아브라함의 제사” (Abraham's Sacrifice, Rembrandt, 1655)
결단력있게 내려치는 아브라함의 손을 급히 붙잡으며 아브라함을 말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보십시오. 렘브란트가 상상하며 그렸습니다. 특히 렘브란트가 묘사하려 했던 장성한 아들 이삭의 순종적인 태도를 보면서 렘브란트가 떠올렸던 다른 아들이 누구였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