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30장
죄와 문제 가운데서도 가족이 번성하고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찬송 516장)
2024-2-3, 토
맥락과 의미
30장에서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후손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약속대로 야곱에게 여러 아들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던 ‘레아’에게 이미 네 아들을 주셨습니다. 야곱의 두 아내가 그 당시 풍습을 이용하여 여종을 통해서 경쟁적으로 출산을 합니다. 결국 야곱은 이곳 외삼촌 집에서 열한 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이렇게 이곳에서 아내 둘을 얻는 대가로 보낸 시간이 14년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은 여전히 빈털터리인 반면에 외삼촌은 더 부유하게 되었음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의 부탁으로 6년을 더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제부터는 품삯을 받으며 일하여 자신의 재산을 모으게 됩니다.
이처럼 외삼촌이 야곱을 머물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하여 자신에게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야곱 자신도 잘 알았습니다.
오늘은 야곱이 아주 고생스럽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손이 번성하고 물질의 축복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배경은 사람의 죄와 비참입니다. 죄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1. 두 아내의 질투와 가정불화,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를 많이 출산(1-24절)
2.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물질적 복을 주심(25-43절)
1. 두 아내의 질투와 가정불화,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를 많이 출산(1-24절)
1) 라헬의 여종 빌하가 야곱에게 두 명의 아들을 낳음(1-8절)
야곱은 자매 두 사람을 아내로 데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두 명이나 되니까 행복했을까요? 두 아내가 서로 질투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원래 결혼하고 싶어했던 얼굴이 예쁜 동생 라헬을 편애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녀를 통해 네 명의 아들을 낳게 해 주셨습니다.
여동생 라헬은 자기는 아기를 낳지 못하고 언니가 자녀를 많이 둔 것을 보고서 질투하여 야곱에게 따졌습니다. “나로 자녀를 낳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습니다. 죽어버리겠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믿음의 중심을 잡으면서 말합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이란 말이오?”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의 가문에 풍파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두 명 아내끼리 싸우고 또 남편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한 남편, 한 아내가 결혼해서 살지 않고 타락한 것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도 혼인의 신성함을 지키지 못하고 악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가정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주님 뜻대로 산다고 하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주님 뜻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들은 죄의 본성이 있고 죄인들로서 하나님의 복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매일 주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변화될 때 주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라헬은 자기가 출산하지 못하자 마침내 자기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출생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바로 고백하면서도 또 다른 죄를 짓습니다. 이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종 빌하를 통해 야곱에게 두 자녀를 주셨습니다.
라헬은 여종이 낳은 첫 아들(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을 단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아들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단은 “정의롭게 재판하여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뜻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그녀지만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아들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을 납달리라 불렀습니다. “내가 언니와 경쟁하여 이겼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는 “내가 하나님과 경쟁하였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경쟁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언약의 가정에서 자매인 아내들이 경쟁과 질투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죄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나갑니다.
2)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야곱에게 두 명의 아들을 낳음(9-13절)
언니 레아는 자신의 출산능력이 끝난 것을 알았습니다. 동생에게 질세라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여종이 첫째 아들(야곱의 일곱째 아들)을 낳자 “복되도다”하면서 갓(복이라는 뜻)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둘째 아들(야곱의 여덟째 아들)을 낳자 “기쁘도다” 하면서 아셀(“하나님께서 기쁨을 채우신다”는 뜻)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언니 레아도 질투심의 죄에 빠져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레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죄가 계속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레아는 우리들의 자화상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우리 죄를 덮어주셨고 구원해 주셨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 자신들입니다.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자기 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죄인으로 무릎 꿇고 그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3) 레아가 다시 아들들을 안음(14-21절)
레아의 육체는 이미 출산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났습니다(9절). 레아의 큰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채취했습니다. 합환채는 가나안에서는 사람의 성적인 욕구를 일으키고 특히 불임인 여성의 태를 열 수 있는 식물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미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생 라헬은 언니에게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대신에 자기의 남편의 침실을 언니에게 내어 주겠다고 합니다. 이때 이미 야곱은 레아와는 침실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날 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임신하게 해 주셨습니다. 레아는 다섯째 아들(야곱의 아홉째 아들)을 낳고 “잇사갈”이라 지었습니다.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내게 그 값을 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잇사갈은 “품삯의 남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레아가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야곱의 열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후한 선물을 주셨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와 함께 살리라.”고 하면서 스불론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스불론은 “하나님의 사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의 애절한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4) 라헬이 첫번째 아들을 낳음(22-24절)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기억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소원들 들으시고 돌아보셨습니다. 남편 야곱의 편애를 받지만 언니로부터 질투당하고 고통받고 있는 라헬을 돌아 보셨습니다.
그녀에게 첫 번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아들을 요셉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여호와는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소원을 담았습니다. 요셉은 “더한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요셉도 앞으로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지만 그 때문에 형들로부터 질투를 받고 큰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은 이렇게 결혼의 신성함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질투가 있었고 불화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면서 살았습니다. 망가지고 엉성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도 문제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있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자녀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이 주님 은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물질적 복을 주심(25-43절)
1) 품삯의 결정(25-36절)
이렇게 야곱은 많은 자녀를 낳는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25절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십니다.
야곱은 그 집에서 아내를 위해서 14년 동안 일을 했습니다. 그 때까지 월급은 하나도 받지 않고 재산도 하나 없었습니다. 14년이 지난 다음에 자기 외삼촌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가문을 이뤄야 하지 않습니까? 이제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서야 라반은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품삯을 주겠다. 어떻게 하면 너에게 보상이 되겠느냐?” 야곱은 거기서 6년 동안 더 일했습니다. 가축이 크게 늘었습니다.
27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하는 말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을 주신 것을 내가 깨달았노니” 인정합니다. 또 30절에 야곱도 아주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었습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부당하게 대우받았지만 야곱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했습니다. 야곱으로 인하여 그 외삼촌이 복을 받은 것을 외삼촌도 알고 야곱도 떳떳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 사는 날 동안에 우리 수고에 대해 충분히 보상되지 않은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고대의 노예들에게 “너희들은 사람을 보고 일하지 말고 주께 하듯이 하라.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로 받을 줄을 앎이라”(엡 6:7-8).
직장에서 또는 사업체에서 힘껏 일하지만 내가 기대한 만큼 보상이 오지 않을 때, 정당한 항의는 해야 되겠지만 고용한 사람을 미워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할 때 말할 기회가 옵니다. 때가 왔을 때 분명히 우리의 삶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내 주어진 환경에서 땀흘려 일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에게는 이제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너의 품삯을 뭘로 하겠느냐?” 야곱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그냥 얼룩진 양과 염소를 내 것으로 주십시오” 양과 염소는 원래 털이 하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염소도 얼룩진 것, 양도 얼룩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야곱에게 돌아갈 몫이 적을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반은 “그렇게 해라” 했습니다.
라반은 얼룩지고 점있는 가축들을 골라내어서 자기 아들들에게 맡겼습니다. 얼룩지고 점있는 가축은 야곱의 것으로 준다는 약속을 어겼습니다. 야곱은 자기 소유의 가축이 없이 출발했습니다. 남은 양들은 야곱이 목축했습니다.
2) 속이는 야곱, 그럼에도 복주시는 하나님(37-43절)
야곱은 자기 재산을 불리기 위해 꾀를 냅니다. 그는 버들가지에 껍질을 벗겨 흠집들을 내었습니다. 양이나 염소는 물가에 와서 물을 먹은 후 교미합니다. 건강한 양이나 염소가 교미할 때 물가에 껍질이 벗겨진 버들가지를 두었습니다. 색깔이 있는 양이나 염소 새끼가 출생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실제로는 이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의 생각대로 얼룩이 없는 라반의 양과 염소로부터 얼룩진 건강한 양과 염소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31장 10절 이후에 야곱도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색깔있는 것들을 자기 아들이 치고 있는 자신의 짐승 떼에 가게 했습니다. 성실히 일하지만 아직도 교활한 야곱입니다. 야곱의 속임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야곱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43절에 결론적으로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하나님께서 풍요롭게 복 내려 주셨습니다. 외삼촌으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시 야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6년동안 아주 많은 재산이 늘어나도록 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할 때 물질적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가정을 부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항상 우리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만을 보지 마십시오. 그 가운데 계셔서 우리들에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의 공동체, 기업체, 여러분의 회사에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완벽하고 우리 가정이 완벽해야 그 가운데 번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고 부족함이 있어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이루어 가시고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복을 우리에게도 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됩니다. 복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요롭게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하나님께서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주겠다.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겠다. 그리고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그 약속이 마침내 야곱 때에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죄 가운데서 갈등이 있고, 죄도 다 회개하지 못하고 있던 죄인인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녀와 가정의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경건한 자녀들을 주십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계속 나가십시오.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의 가족의 죄가 보이죠? 그 죄를 다 뿌리뽑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덮으십니다. 죄 용서의 은혜를 바라보고 정말 주어진 일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일할 때 공부할 때, 또는 일이 잘 되어가든 힘들든, 어느 순간에든지 주께서 주신 직분을 꾸준히 행합시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번성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감정을 따라 움직이면 흔들립니다. 행복한 감정을 찾으면서 이리 저리 흔들립니다. 말씀도 내팽개치고 또 직장에서도 내 느낌으로 편한 것을 추구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느낌으로 살아가면 번성하는 것 같지만 결국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십니다.
말씀을 따라서 한결같이 순종하며 나아갈 때 결국 가정의 번성을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직업활동을 할 때, 직장에서도 우리가 복의 근원임을 인정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일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가정이나 우리의 직장이나 우리의 연구활동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은 아닙니다. 주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수고를 끝내고 그 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고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면서 참고 인내하며 나가길 바랍니다.
이 가운데 복중에 가장 큰 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아침에 기도할 때도 찾아오셔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을 보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감사찬양하면서 새로운 결단이 있는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4절, 합환채(돗딤)
합환채(돗딤)는 사랑(도딤, 아가서 1:2, 4:10, 5:1)과 쓰는 법은 다르지만 소리는 같습니다.
<참고> 18절, 잇사갈
잇사갈은 ‘이셔(남자)’와 ‘샤카르’(품삯)‘이 합쳐져 된 단어입니다. 고용됨의 남자’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자기 아들이 하나의 대가로서 주어진 남자라고 고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