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장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야곱의 귀향,
라반과 언약을 맺음
(찬송 1장)
2024-2-5, 월
맥락과 의미
야곱과 에서의 다툼에 이어서 31장에는 야곱과 라반의 다툼이 나옵니다. 결국 야곱이 외갓집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시간에 자신보다 더 부자가 된 야곱을 외삼촌과 그 아들들이 곱지 않은 눈으로 봅니다. 야곱은 신변의 위협을 느낍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아내들의 동의를 얻어 외삼촌 모르게 도주합니다. 도망한 후에 야곱은 외삼촌의 추격을 받아 잡힙니다. 그러나 라반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야곱을 해치지 못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지난날을 회고하며, 20년을 외삼촌 밑에 있을 수 있었으며 또한 부자가 된 것은 외삼촌의 공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자신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라반은 거꾸로 야곱에게 평화의 언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평화의 언약을 맺은 후 라반은 자기 집으로 돌아 갑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1. 야곱이 밧단아람의 라반의 집을 떠남(1-21절)
2. 라반이 야곱을 추격, 하나님께서 보호하심(22-42절)
3. 야곱과 라반이 평화의 언약을 맺음(43-54절)
1. 야곱이 밧단아람의 라반의 집을 떠남(1-21절)
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떠나라고 하심(1-3절)
라반은 자기 할아버지 나홀과 브두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24:15, 50; 28:2; 31:53). 그러나 그는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믿고 의지하지는 않았습니다(31:30).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을 시기합니다(1-2절). 야곱이 자기 사촌들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가족과 재산을 가지고 돌아가는 일에 방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3절). 야곱에게 명령하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야곱이 볼 때 그 일이 인간적으로는 잘 해결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야곱은 라반이 가장 바쁜 때를 골라서 몰래 도망을 쳤습니다.
2) 야곱이 아내들에게 떠나자고 설득하고 아내들은 동의(4-16절)
4-9절: 야곱은 가나안으로 도망하기 위해 그의 아내들을 설득합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5절), 라반이 자기가 유리한대로 계약을 마음대로 바꾸며, 자신을 열 번이나 속이는 중에도 자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고 라반에게서 가축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9절).
10-13절: 또한 야곱은 자기가 꾼 꿈을 통해 아내들을 설득합니다. 그는 꿈에 색깔있는 수컷들이 암컷 위에 올라가 교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색깔있는 새끼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라반에게 받기로 약속한 것이 바로 색깔있는 양과 염소였습니다. 이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야곱의 재산을 불려 주신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내게 서원하였다.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야곱의 꿈에서 결론은 “벧엘에 가라”입니다. 거기서 기름을 붓고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꿈을 아내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로 나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과연 내가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가? 돌아봅시다. 예배를 회복합시다.
14-16절: 야곱의 이야기를 들은 아내들은 다 동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입니다”(16절). 앞에서 야곱이 한 말과 같은 말입니다(9절). “취한다”는 말은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양과 염소를 주신 것은 야곱의 가족이, 라반이 준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신 일을 다 준행하십시오”(16절). 아내들은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격려합니다.
3)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남(17-21절)
그들은 밤에 떠났습니다. 라반이 양털을 깎기 위해서 멀리 3일을 간 다음에 야곱은 떠났습니다.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들과 깊은 갈등이 있을 때 토론하려 하기 보다도 조용히 도망가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상황을 피하고 또 갈등을 피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그 외갓집이 그가 계속 살아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땅이 우리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안식의 때와 본향이 따로 있습니다.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9, 11).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진 것들은 안식의 때와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 땅의 것들을 목적처럼 즐기기 보다 하나님 나라를 갈망합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요한복음 15:18~19). 그런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천국을 향해 나가는 자로서 이 땅을 살아갑시다.
2. 라반이 야곱을 추격, 하나님께서 보호하심(22-42절)
22-24절: 라반은 야곱의 가족이 가축떼와 함께 떠났음을 알았습니다. 가족들을 거느리고 7일 동안 달려왔습니다. 길르앗 산까지 왔습니다. 요단강 동쪽 지역입니다. 원래 야곱을 죽일 생각으로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에게 손대지 마라.” 라반은 욕심쟁이요 포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이 야곱의 믿음과 영혼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런 사나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야곱은 라반과 20년 동안이나 같이 살면서 일했듯이 우리도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과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일한 야곱을 본받읍시다.
야곱에게 복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한 사람들로부터 재산의 피해를 입더라도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우리 생각과 계획과 능력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돌보심을 신뢰합시다. 나쁜 사람과 함께 일할 때도 성실하게 행동하고 말하며 정의로 행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갑시다.
25-30절: 라반은 야곱에게 분노가 가득하여 달려왔지만 하나님 때문에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잔치를 베풀고 너희를 보냈을 터인데 왜 도망가듯이 떠났느냐? 내 딸들에게 입맞추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손에 있으나 너의 아버지 하나님이 어제 밤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나의 우상을 도둑질해 갔느냐?”
하나님께서는 무서우신 분이십니다. 바깥으로 무기를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시기도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마음속에 큰 두려움을 주셔서 라반의 손을 묶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외적 환경만 보지 마십시오. 아무리 무기가 많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묶어버리시면 쓸 데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기가 적더라도, 가진 것이 자원이 적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를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31-32절: 야곱은 대답합니다. “외삼촌의 딸들을 나로부터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몰래 떠났습니다. 삼촌의 우상을 훔친 사람은 죽어도 좋습니다.”
사실은 라헬이 그 우상 드라빔을 훔쳐갔습니다. 드라빔은 라반 가족이 수호신으로 섬겼던 우상입니다. 드라빔은 상속권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재물이나 가문의 복을 가져다 주는 능력이 그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도망갈 때 그것을 훔쳐왔던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우상을 벗어나지 못한 연약한 라헬의 믿음을 봅니다.
33-35절: 라반은 야곱 가족들의 장막들을 뒤졌지만 드라빔을 찾아 내지 못했습니다. 드라빔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을 보호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드라빔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라반이 그것을 발견했더라면 오히려 야곱의 가족을 큰 위험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우상은 죽은 것처럼 아무 일도 못합니다. 우리 시대의 우상은 자본과 과학 기술이나 정치권력입니다. 우리 마음 속이 이런 우상으로 수북히 덮여 있나 생각해 봅시다. 심지어 하나님도 우리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믿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이 땅의 어떤 것을 하나님처럼 우상으로 섬기지 맙시다. 야곱에게는 자식과 재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을 구성할 자손을 통해서 세상에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의와 공도를 시행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님이 되고 그 자손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멸망합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우상)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세상의 목적은 자기 육체적 욕구를 채우는 것입니다. 마침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낮은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는 것입니다(빌 3:21).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언약입니다. 우리가 붙잡을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의 어떤 것을 우상으로 잡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이를 위해 과학이나 재능이나 돈까지도 다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얽매이지는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6-42절: 야곱은 라반에게 담대히 증거합니다. 앞서 자신의 아내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말한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입니다(5-13절)
자신이 20년 동안 외삼촌을 봉사하는 동안 그로부터 당한 고통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고 재산을 불려 주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습니다”(42절). 야곱은 자기를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높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논쟁이 있을 때, 그 사람과 자신의 관계만을 생각하지 맙시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서 복을 주신 하나님을 높입시다.
3. 야곱과 라반이 평화의 언약을 맺음(43-54절)
이제 마지막으로 라반이 야곱에게 부탁합니다. 앞서 야곱의 말을 들은 아내들이 야곱에게 동의한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너와 나 사이의 언약을 세우자.” 라반은 두려웠겠죠. 자기가 강자인줄 알았는데 야곱이 강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언약에는 언약의 내용, 언약의 표시, 맹세가 있습니다.
① 라반은 평화의 언약을 맺고 증거 즉 표시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거기 있는 돌무더기를 모아 쌓았습니다.
라반은 자기 나라 말 아람말로 “여갈사하두다”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히브리말로 “갈르엣”이라 말했습니다.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미스바”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살피시옵소서”라는 약속을 담았습니다. 미스바는 “감시하며 보초를 선다”(차파)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라반은 큰 소리 치지만 사실은 부탁합니다. “이 돌무더기와 이 기둥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② 라반은 서로가 지켜야 할 언약의 약속을 더 분명히 말합니다.
첫째, 내 딸 말고 다른 아내를 취하지 말라. 취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너와 나 사이에서 사람은 없지만 심판하실 것이다. 둘째, “너는 이 돌을 넘어서 나에게 오지 않고 나도 이 돌무더기를 넘어서 너에게 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야곱을 두려워합니다.
③ 두 가지 언약을 맺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서 맹세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야곱의 할아버지이고 나홀은 라반의 할아버지입니다. 각각 자기 조상들을 인도하신 같은 하나님으로 맹세했습니다.
④ 마지막으로 언약의 제사와 친교의 식사를 하며 축하했습니다. 제사에는 서로가 약속을 어길 때는 그 희생된 짐승처럼 저주를 받아도 된다는 맹세가 들어 있습니다. 야곱이 자기 있는 것을 가지고 형제들을 먹여주었습니다.
우리도 도움을 받기 보다 우리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을 기뻐합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줍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리놓는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고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사람들에게도 보여질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언약을 맺자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약자가 아닙니다. 약자처럼 행동하지 맙시다. 약자처럼 두려워하지 맙시다. 약자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원칙을 어기지 맙시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소망과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합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과 언약적으로 튼튼히 묶여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희와 언약을 맺자” 하면서 우리에게 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축복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3절에 “여호와”. 5절에 “내 아버지의 하나님”. 7, 9, 11, 13, 16, 24절에 “하나님”. 29절에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 42절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 50절에 “ 하나님”. 53절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며 야곱이 그 아비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야곱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녀들을 많이 두었고 땅은 하나도 없었지만 양떼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라반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라반은 사실 야곱을 죽일 무기도 있었고 따르는 무리의 수도 많았습니다. 야곱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와 아이들 밖에 없었습니다. 무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54절에 보면 “제사를 드리고” 라고 되어 있는데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습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복잡한 인간관계가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누가 주인공입니까? 내가 실력이 있다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나와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주인공이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도록 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44절,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세상은 우리와 친구가 되자고 제안한다.
아브라함도 언약을 맺었었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언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는 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의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삭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26장 28절에 보면 역시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심을 보았으므로 맹세를 세워 “우리가 서로를 해하지 말자.” 라고 했습니다. 이제 야곱에게서도 라반이 언약을 맺자 하면서 “우리 서로 해하지 말자”고 합니다.
오늘 라반도 야곱에게 살기가 등등하여 왔지만, 결국은 언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탄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고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