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아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 지혜롭게 준비하며 하나님께 기도
(찬송 161장)
2024-2-6, 화
맥락과 의미
야곱이 20년 전에 형을 피해서 외갓집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간 이야기를 이미 들었습니다. 이제 그가 돌아옵니다. 재산이 많고 양들이 수 천마리 염소도 수 천마리 되는 엄청나게 큰 무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아들이 열한 명, 딸이 최소한 한 명, 아내가 네 명이나 되는 큰 무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큰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 그를 떠나게 만든 이유였던 형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서로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야곱은 형을 위한 엄청난 예물들과 다른 식구들과 재산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뒤에 홀로 남아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기도 가운데 믿음을 더해주시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우리 죄 가운데서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담대히 일어서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군대와 야곱의 계획과 기도(1-12절)
2. 에서에게 줄 선물과 가족과 양떼를 보내고 하나님께 기도(13-32절)
1. 하나님의 군대와 야곱의 계획과 기도(1-12절)
1) 하나님의 군대와 야곱의 계획(1-8절)
1절에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났다.” 야곱이 본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입니다. “그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다.” “사자들을 보냈다”와 “군대”, 이 두 단어가 뒤에도 나옵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야곱에게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천사는 군대입니다. 이 군대는 진(마하나)입니다. 복수가 되어 마하나임입니다.
그런데 야곱도 형을 만나기 전에 사자를 보냈습니다. 형 에서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야곱이 형에게 보낸 사자보다 앞서 하나님의 사자가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영적 현실을 그림처럼 보여주었습니다.
야곱의 사자들은 형 에서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야곱이 우리들을 보냈습니다. 야곱이 돌아옵니다. 야곱은 형에게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에서에게 갔던 사자가 야곱에게 돌아와서 보고합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먼저 사자를 보내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습니까? 자기 가족도 두 무리로 나누고 에서에게 선물로 바칠 가축 떼(총 550마리)도 적어도 네 떼 이상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맨 뒤에 남았습니다. 여차하면 도망을 가려는 생각이었습니다(8, 24절).
7절을 보면 “자기와 함께 한 종들과 소와 양들을 두 떼로 나누었다.” 야곱은 두 떼로 나누어서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가 피하리라” 이렇게 계산을 했습니다. 이 두 떼가 군대(마하나임)입니다.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 양들은 약한 군대입니다. 야곱은 목자요, 이 약한 군대의 사령관입니다. 이 군대는 전쟁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을 둘러싸서 군대처럼 됩니다.
2) 야곱의 지혜로운 계획과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한 기도(9-12절)
그의 지혜를 다하여 자기를 보호할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거기서 기도합니다.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전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돌아가라 돌아가면 네게 은혜를 베푼다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재산도 많게 하고 자손도 많게 하셨습니다. 두 떼나 되는 이 큰 재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겁이 납니다. 형이 와서 치면 어떡합니까? 내가 두렵습니다. 하나님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는 자신의 어떤 선행을 내어 놓으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11절).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의지해서 그 약속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 자기의 보혈과 순종을 우리의 것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2. 에서에게 줄 선물과 가족과 양떼를 보내고 하나님께 기도(13-32절)
1) 에서에게 줄 선물과 함께 가족을 먼저 보냄(13-23절)
13절부터 야곱은 굉장히 많은 양들과 염소 떼를 선물로 몇 떼로 나누어서 형에게 보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라 합니다. 형 에서를 만나거든 “이 선물이 모두 형님의 것으로 야곱이 보내는 것”이라고.
왜 그랬습니까? 20절에 보면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써 형의 감정을 품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주리라.” 형을 대면한다는 것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지은 죄에 대한 보상으로 550마리의 가축을 선물로 바쳤습니다.
야곱은 역시 꾀돌이입니다. 자기의 인간적 꾀를 씁니다. 한편으로는 칭찬해야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칭찬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서 나가지만 인간적인 꾀도 의지해서 나갑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지만 또 우리 지혜도 써야 합니다. 야곱의 심정을 다 알 수 없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사람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서 선물이나 이런 것도 하지만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 앞에 먼저 용서를 구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에게 지은 죄에 대한 보상을 하고, 그들의 용서를 구할 방법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평화, 마음의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2) 홀로 남아 하나님과 씨름하며 기도(24-32절)
이제 밤입니다. 선물과 가족을 먼저 보내고 야곱은 홀로 남아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남편들, 가장들도 어려움이 있을 때 홀로 남아서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며 기도합시다.
야곱은 밤새 씨름하듯이 기도했습니다(24절). 야곱이 붙잡고 기도한 이 분은 나중에 나타나실 성자 예수그리스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로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칼빈 목사님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잘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앞으로 일생 동안 씨름이 있을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야곱의 시험은 사탄이 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에서로부터 위험을 당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하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위험 가운데 싸우도록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연단을 주십니다. 환란을 주십니다. 이 투쟁이 있도록 하십니다. 평생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야곱에게 있을 환난을 이 기도가운데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환난이 있지만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25절- 겸손해진 야곱: 그런데 그 사람은 씨름하다가 야곱을 쳤습니다. 환도뼈를 쳐버렸습니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씨름할 때 하나님은 한 손으로 우리를 치십니다. 고통스럽게 힘들게 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실 때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져서 발을 절뚝절뚝거립니다. 야곱은 평생 절뚝거리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 한편 하나님 앞에 겸손하도록 하십니다.
28-29절- 새로운 힘과 복: 하나님은 야곱 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줍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겼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말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연단, 시험에서 이겼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앞으로도 위험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길 것입니다.
야곱은 그 사람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축복하지 않으면 떠나 보내지 않겠다고 고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누구입니까?” 그분은 대답했습니다.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 이 분은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의 이름은 비밀 가운데 감추었던 것 같습니다.
30절- 생명보존의 약속: 야곱은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불렀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얼굴과 얼굴을 보았는데도 내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보존해 주실 것입니다.
“얼굴과 얼굴” 이 표현은 앞쪽에도 나왔습니다. 20절에서 “내가 예물(선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얼굴과 얼굴을 맞대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이 말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은 형의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였습니다. 형의 얼굴이 큰 것 보다 하나님의 얼굴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보다 건장한 형 에서의 얼굴보다 하나님의 얼굴이 더 큽니다.
사람의 얼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두려워하지 맙시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먼저 만납시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그 힘을 가지고 나아가도록 합시다.
31-32절- 새로운 출발: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습니다. 절망의 밤은 지나고 희망의 새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뚝거립니다. 야곱이 건강한 다리로 가더라도 에서를 막아설 수 없습니다. 다리까지 그냥 절뚝거리는 단계까지 하나님께서 낮추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더 낮아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외부 환경이 어려워 마음이 낮아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 내면이 더 낮아지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고백했듯이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납니다.”
결코 외부 환경의 어려운 것을 보지 마시고 내가 약한 것을 오히려 자랑하고 주님만을 의지합시다. 오히려 아직도 남아있는 자아,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남아 있으면 주께서는 넘어뜨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이 주신 연단이니까 그것을 헤쳐 나갑시다. 기도 가운데 땀 흘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우리도 이깁시다.
기도에서 하나님과 이기는 것은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자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깨어집니다. “환경이 너무 어려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할 때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기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자신은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야곱은 자기가 사자를 형에게 보냈고 자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형에게 선물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자를 야곱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야곱이 자기 양 떼를 군대처럼 나누었지만 그 군대보다 더 먼저 하나님의 군대가 나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진이 우리를 둘러싸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부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 앞에 낮아집시다.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 기도 가운데서 봅시다.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야곱에게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복도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합시다. 우리 자녀들도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의 상태나 사람의 환경을 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 가운데서 사람의 얼굴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사람의 얼굴을 변화시키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 능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군대(2절), 두 떼(7절)
하나님의 “군대”(마하나임, 2절)와 소와 양의 “두 떼”(마하노트, 7절)는 같은 말에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