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장
진 밖에 있는 회막과 이스라엘의 회개
(찬송 시편 121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4-5-8, 수
맥락과 의미
오늘 본문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32장과 연결된 내용입니다.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시지 않은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 감정을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땅의 실리적인 종교 감정을 충족시키고 실제적인 물질적 복을 얻기 위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앞서 백성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그들을 인도해 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백성들을 버려두시고 그들끼리만 가나안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모세가 하나님께 자신들을 계속해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의 회막에서 쫓겨난 백성의 회개 (1-11절)
2. 여호와 자신이 함께 가기를 원하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12-23절)
1. 하나님의 회막에서 쫓겨난 백성의 회개 (1-11절)
1)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 백성들은 회개 (1-7절)
1절에 모세에게 말합니다.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 “인도하여 낸 백성”이 바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애굽에서 시내산으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을 올라가게 할 다른 신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40일 동안 모세와 이야기하시면서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런 신이 아니라 항상 자기들과 함께 있는 것을 직접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신을 원했습니다. 눈과 경험으로 확인되는 신을 원했습니다.
사람은 물질적이고 생물학적인 존재이니까 물질적인 신의 모습을 원합니다. 물질과 인격을 만드신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적고 물질 자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주고 물질적 형태로 나타나는 그런 신, 공간적으로 항상 존재하고 눈에 보이는 그런 신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그들에게는 경험되지 않는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배할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을 올라가게 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1절에서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하십니다. 또 2절에서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가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3절에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상한 말입니다. 사자는 보내겠지만 하나님 자신은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사자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던 우상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대로 인격적인 임재로는 함께 하지 않고 사자를 보내기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느낌만 있으면 되었고, 실제 하나님은 없어도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너희들이 그걸 원하니까 너희들이 원하는 식대로 바알처럼 그렇게 해라. 내 사자가 가서 너희들에게 가나안 땅의 풍요를 얻게 해 주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같이는 안 간다. 만일 간다면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된다”(3절) 라고 하십니다.
그 말을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슬퍼하면서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4절) 하였습니다. “준엄한 말씀”은 직역하면 ‘나쁜 말’이라는 뜻입니다. 재앙의 말에 대하여 쓰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몸을 단장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셨습니다. 5절에 그제서야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십니다. “정하겠노라”는 말은 알려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6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내니라.” 장신구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창세기 35장 1-4절에서도 야곱의 가문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세겜에서 고생을 하다가 벧엘로 하나님께 경배하러 갈 때에 장신구들, 곧 귀걸이를 버리고 신들을 다 내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는 면서 몸에도 그런 우상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다 버린 것 같습니다. 시내산에서 다 버렸습니다.
2) 백성 바깥에 있는 회막을 보며 경배(8-11절)
모세는 회막을 세웠습니다. 회막은 바로 증거막이라는 뜻입니다. 회막은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26, 27장에서 지으라고 지시한 그 회막은 아닙니다.
회막을 “진 바깥에, 진으로부터 멀리” 쳤습니다(8절). 우상 숭배 때문에 모든 백성이 더러워져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출교당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깨뜨림으로서 백성들이 언약을 어긴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번에는 회막을 통해서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것을 나타냅니다. 모세는 백성의 진 가운데에서 나가서 회막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한동안 계속했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앞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계속해서 교회에 말씀이 풍성하고 교인들이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기도합시다.
모든 백성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멀리서 회막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갈 때 모든 백성들은 자기 천막 앞에서 서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갈 때 구름기둥이 내려왔고 하나님은 모세와 말했습니다. 구름기둥이 내려오는 것은 하나님이 그 회막 가운데 계신 것을 나타냅니다.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멀리서나마 보고 경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용서할 것이라는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더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얼굴을 감추셔서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하시며 죄책감을 일으켜서 우리를 채찍질할 때, 우리는 기도를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멀리서라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출교합니다. 사단에게 육체를 내어 주어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고전 5:5). 출교한 사람을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해야” 합니다(살후 3:15).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와 있으면 우리는 일어서서 경배합니다. 하나님 영광이 내려와 구름 기둥처럼 서 있기 때문에 우리도 서서 경배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할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다 보여주신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친근하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분명하게 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친밀하게 교제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복보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알고 예배합시다.
2. 여호와 자신이 함께 가기를 원하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12-23절)
1) 모세는 하나님 그분이 백성과 함께 하는 은혜를 달라고 간구(12-17절)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만 받습니다. 그런 복은 다른 민족도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특별한 은혜를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12절) 하는 기도는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소서”(13절)로 변합니다. 땅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의 길(신 5:33)을 알려 주고, 하나님 당신을 계속 알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해 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 얼굴이 가리라” 즉 하나님이 직접 가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내가 너로 쉬게 하리라”(14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은 모세에게만 안식을 주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참 안식이 있습니다.
다시 15절부터 모세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마침내 하나님은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즉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세상의 축복만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은혜를 간구합시다. 12-17절에서 4번이나 “은혜”가 반복됩니다. 건강이나 돈, 공부를 잘하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영원히 우리 영혼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가장 귀하게 생각합시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18-23절)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 분명히 알려 달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완전히 다 알게 해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여호와의 이름”으로도 표현되는데,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죄인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다 보게 되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얼굴을 다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20절). 우리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는 천사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다 보게 된다면 그 영광 안에 녹아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고 합니다(19절).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은 아닙니다.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22, 23절)
하나님이 등이 어디 있고 손이 어디 있습니까? 일종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에 우리가 부분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다 볼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영광스럽고 거룩한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그 또한 죄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분과 같아질 것입니다(요일 3:2). 그때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만큼만 보여 주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제는 모세보다 더 좋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성막보다 더 좋은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몸의 장식품들, 우상 숭배적인 위선을 다 벗어 버립시다. 하나님이 안 계셔도 복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립시다. 우리 모두 장신구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올라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예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6일 동안 우리는 죄와 싸우지만 또 죄를 짓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죄 짓지 않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예배에서 용서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이번주에도 일어서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도록 합시다.
특별히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목사들이 날마다 많은 유혹과 물질과의 싸움에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주께서 모세를 덮으셨듯이 목사의 악을 덮으시고 부정을 덮어 주시길 기도합시다. 말씀 전파자를 통해 이번 주에도 큰 은혜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특별히 성찬의 임재 가운데 주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여호와께서 모세를 만나시는 그곳이 성전의 역할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곳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여호와의 대화 가운데 성전의 특징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을 “내가 내 이름을 그 위에 두는 장소”(신명기 12:21)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 말로 하면 ‘쉠 샴 쑴 마쿰’ (이름-그곳-둔다-장소) 입니다. 그런데 이 네 단어 중에 세 개가 이 본문에서 나옵니다. “이름”(‘쉠’, 18절), “한 장소”(‘마콤’, 21절), “내가 너를 두리니”(‘숨’, 22절).
바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받아들이는 장소, 시온 반석 위에 세워진 성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예배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고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도록 하시고 중보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돌려주십니다.
<참고> 성막을 만들라는 지시와 그것을 실행하는 것 사이에 낀 금송아지 숭배 문제
출애굽기 전체의 구조를 보십시오. 25-31장은 성막을 어떻게 만들지 가르쳐 주십니다. 35-40장은 성막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그 사이에 있는 32-34장은 백성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추고 자기 마음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우상숭배 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용서하십니다. 이 죄용서의 은혜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성막 제작 설계와 그것의 집행 사이에 죄와 용서가 있습니다. 성막이나 성전의 중심은 죄인들의 죄가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다시 용서하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제사장과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계속해서 용서하시며 예배를 받으실 것입니다.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121편”을 검색하여 들으며 연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