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4장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고 언약을 새롭게 하심
(찬송 428장)
2024-5-9, 목
맥락과 의미
33장에서 하나님과 모세가 만나는 회막을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 바깥에 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백성은 진영 바깥에 있는 하나님을 멀리서 경배했습니다.
모세가 간구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셔 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올라가 주십시오.” 여호와께서는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가신다는 증거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4장은 그 약속대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며 언약을 새롭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34장은 19장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의 요약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기 위해 시내산 꼭대기에 나타나셨는데, 이제 다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 하나님이 이름을 선포하며 죄를 용서하고 언약을 갱신하심(1-9절)
2.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언약의 의무들(10-17절)
3. 언약의 의무: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침(18-26절)
4. 여호와와 주 예수의 영광으로 돌아가기(27-35절)
1. 하나님이 이름을 선포하며 죄를 용서하고 언약을 갱신하심(1-9절)
1) 언약의 준비 (1-5절)
모세가 깨뜨렸던 첫 번째 십계명 돌판은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쓰셨습니다(31:18). 이번에는 모세에게 돌판을 만들어 준비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그들이 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시내산에 사람이나 짐승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모세도 산에 섰고(2절) 하나님도 하늘에서 내려와 구름 가운데 서셨습니다(5절).
2)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오심(5-7절)
모세가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출 33:18), 성경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지를 말씀을 통해 선포합니다.
언약을 새롭게 하시면서 핵심이 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기본적으로 “그의 백성과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아래와 같은 구조를 지닙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분이시다. |
“자비와 은혜”, “인자와 진실”은 모두 ‘중언법’입니다. 같은 대상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해서 설명하면서 그 의미를 풍요롭게 밝히는 기법입니다. 자비로운 은혜, 진실된 인자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노하기를 더디하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진노하시지만 노하기를 더디하고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오늘도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더 좋아하고 현실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우리들을 다시 용서하십니다. 다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오래 참으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억하고 만나러 나온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겸손히 경배하는 게 이 정도밖에 안 되니까 하나님이 더 낮추신 것입니다. 더 낮아지신 하나님의 모습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셔서 십자가에서 낮아지시고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6절)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악과 과실에 대한 죄를 다 담당하시면서 낮아지신 분입니다. 그렇지만 죄는 결코 용서하지 않고 보응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채찍을 드셔서 여호와의 은혜를 알고 경배하도록 하십니다. 이 은혜의 하나님께 우리가 나왔습니다.
3) 모세가 백성을 대신하여 경배하고 회개하고 간구함(8-9절)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 속에 있는 복음을 선포하고 오실 때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8절). 모세는 백성을 대표해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목이 뻣뻣한 백성”(9절), 곧 배반하는 백성이라고 죄를 고백하면서 소개합니다. 은혜로운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9절) 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시내산에 내려와 언약을 맺을 때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19:5) 하고 약속한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용서받고 언약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용서하시고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 오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우리 죄를 고백하며 엎드려 경배하여 언약의 축복을 받습니다.
은혜로운 하나님으로서 계속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급히 절해야 됩니다. 우리를 채찍질하시고 우리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우리 죄를 몸소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우리도 급히 경배해야 됩니다.
은혜로운 우리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삶에서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이 땅의 현실적인 것만 더 추구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며 급히 경배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하고 경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도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확정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9절입니다.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바로 가장들이 해야 될 기도입니다. “하나님, 내가 예배 때 경험한 이것을 우리 가족들도 경험하게 해 주세요. 우리들은 죄인이니 용서해주시고, 나에게 오신 하나님이 우리 중에 행하시옵소서.”
2.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언약의 의무들(10-17절)
10절에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합니다.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 행할 것입니다. 장차 가나안 땅에서는 이스라엘 진 바깥에 계신 분이 아니라 진 안에서 백성과 함께 계시면서 그 땅 거민들을 쫓아 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2절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하십니다. 가나안 땅 거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있으면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바알 금송아지로 우상숭배하였던 백성들에게 다시 가나안 땅 거민과 언약을 맺지 말라 하십니다. 그들이 이방 민족들과 언약을 세워 그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 중에 들어와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이방 민족들과 오가면서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제단과 석상과 목상을 깨뜨리라고 하십니다. 석상은 남자 신이고 목상은 여자 신입니다. 남자의 강한 것을 숭상하였는데 그것을 깨뜨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주민을 쫓아내고 우상을 뿌리부터 자르라고 하십니다. 이방의 우상을 잘라내지 않으면 그들에게 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에게 절을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14절은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을 “질투”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이방인들의 제사와 축제에 초청받았을 때 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과 혼인하는 일이 생기고 여자를 따라 우상을 섬기는 데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방 종교는 음란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신전에서 음란한 행위를 함으로 자기 신들을 깨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일에는 처음부터 참여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의 세상은 우상 숭배하는 가나안 땅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신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같이 일도 합니다. 그들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이방인’들을 들어오게 해서 그들과 언약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릴 기회를 주지만, 교회의 ‘교인’으로 받거나 일을 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떠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우리 교회나 가정에 어떤 우상이 들어오려고 합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나 우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공부, 일, 건강, 다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면 우상이 됩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안에 계시고 우리 가족 안에,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문화를 만들고, 기업을 운영하고, 공부를 하고, 주님 나라를 이루어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와 문화를 이루어 나갑니다. 이 땅에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예배하며 그들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우리 마음이 이 땅의 어떤 것들, 물질이나 안정을 우상처럼 받들면서 그들과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언약의 의무: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침(18-26절)
1) 절기들 (18-24절)
18절부터 구체적으로 절기들을 지키도록 이야기하십니다. 사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안식일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대신 21절에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라고 합니다. 또한 칠칠절(7주일에 7일이 곱해진 절기),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22절)라고 하면서 절기를 안식일과 연결시킵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구속사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참여하는 일입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언약 백성의 가장 분명한 표시는 안식일에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이방인과 같이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통해 나타냅니다.
앞쪽 출애굽기20장에서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십계명을 주시고 그와 관련된 말씀이 23장까지 이어집니다. 23장 마지막 부분도 안식일 율법으로 끝납니다. 언약 백성의 가장 분명한 표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표시는 바로 주일 예배입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무교절에 대한 이 구절은 출애굽기 12, 13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출 4:22, 22:29) 장자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였습니다. 맏아들을 드리는 것을 레위 사람이 대신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세 절기에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아야 했습니다(신 16:17).
다음은 칠칠절과 수장절에 대한 규례입니다(참조. 출 23:14-17). 칠칠절과 수장절은 농사의 절기와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세 번의 절기가 모두 농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 절기를 지킬 때에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애굽기 34:24).
이 세 명절은 여호와께 얼굴을 보이는 날입니다(23, 24절).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오게 합니다.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23절).
이어서 24절이 말합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불안하지 않았겠습니까? 일년에 세 번씩 절기를 지키러 올라올 때 하나님께서 아무도 침략하지 못하도록, 너희들이 지키지 않아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일에 우리가 온전히 예배 드리기 위해서 쉴 때에 하나님께서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맙시다. 저와 여러분은 언약 백성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도 언약 백성입니다. 놀랍고 큰 일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하셨고 지금도 계속하십니다.
주일에 여러분이 쉬더라도 적들이 여러분의 가정을, 여러분의 기업과 직장과 미래를 혼란시키지 못하도록 하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주일에 편히 쉬면서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 경배하도록 합시다. 그럴 때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들어와 있던 우상숭배적인 것에서 벗어나 새롭게 됩니다. 주일에 쉬고 예배 때 다시 은혜로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경배하면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좋은 것을 바침(25-26절)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고 그 제물은 아침까지 남겨두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제물을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죄가 없이 새 것으로 드리도록 절기 희생의 기름은 매번 다 드렸습니다. 남겨 두었다가 그 다음에 다시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할 때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일년 농사의 목적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계명입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먹고 자라야 할 젖으로 죽임을 당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여호와와 주 예수의 영광으로 돌아가기(27-35절)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백성들에게 갈 때 그의 얼굴 피부가 빛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가까이 하기를 무서워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이 눈에 보이는 영광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오는 힘이고 은혜이고 빛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자기에게 오라”고 부드럽게 말하니까 백성들이 모세에게 왔습니다. 33절은 모세가 말을 마친 다음 자기 얼굴을 천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4, 35절은 모세가 여호와의 얼굴 앞에 나아갈 때만 덮개를 벗었고 이스라엘 백성과 만날 때는 덮개를 다시 덮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자기들과 말할 때 그 덮개 아래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모세의 몸은 성막이나 성전과 비슷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덮은 덮개와 성막 출입구의 커튼인 문 덮개는 서로 비슷한 말입니다. 뜰 안으로 들어가는 문(출 40:33) 덮개가 있고, 성막 안으로 들어가는 문 덮개(출 40:28)가 있고, 또 그 안에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덮개(출 40:21)가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뜰 안으로 가는 문 덮개로는 들어갈 수 있지만 성막 덮개와 지성소의 덮개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막과 지성소에는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신하여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영광을 봅니다. 모세 한 사람의 몸이 성막, 성전이고, 그의 얼굴 덮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덮여져 백성들이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나타냈습니다.
왜 모세의 얼굴과 성막은 덮개로 덮여 있었을까요?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 특히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대한 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무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어야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 무서움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죄 용서를 바라봅니다.
전에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수건/덮개를 썼습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모세가 얼굴을 가린 것처럼 희미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다 전합니다. 복음을 들을 때 예수님의 빛이 우리에게 찬란히 비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우고 믿지 않으면 우리 눈에 덮개가 덮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고후 3:14).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갈 때 덮개를 벗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34절에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수건을 벗고 있다가” 와 똑같은 말이 고린도후서 3장 16절에도 나옵니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 예수님께 돌아가는 우리들은 구약 시대의 성전이나 제사장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몸으로 우리의 덮개가 되어 우리 마음에 덮인 것을 없앱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와 목사와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마음에 덮인 덮개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갈 3:27)을 입읍시다. “새 사람”(골 3:10)을입읍시다.
복음의 말씀을 계속 듣고 믿을 때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비추어서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점점 더 변화되어 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누는 영광스런 친교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모세와 성막(성전) 대신에 지금은 말씀을 전파하는 목사와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말씀을 전파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비추어 주십니다. 계속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갑시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시려고 성막을 준비하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때에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 자기들이 원하는 식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셔서 백성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모세의 중보 안에서 다시 백성들에게 내려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분으로 다가가셨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 가운데서 백성들에게 영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모세가 경험한 것이 백성들 앞에 광채로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 못할 처지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새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모세가 경험한 것보다 더 찬란한 여호와의 광채를 잘 경험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주일에 우리 자신과 가족이 쉬면서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온전히 예배 드리고 나서 평일에도 주일에 경험하고 예배 드렸던 것들을 가정에서 계속 해 나갑시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잘 말씀 읽고 예배 드렸던 것을 계속 해 나갑시다.
여호와의 영광을 지금 우리 가운데서 경험하고 우리 가운데 들어와 있는 우상숭배적 요소를 벗어버립시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뤄가는 복된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구약 백성의 3대 절기
출 34:18-26은 23:10-19에 나온 것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1년에 3번 남자들은 성막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했습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게 했습니다.
1) 유월절: 1월 14일, 요즘으로 3, 4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을 해방된 날로 즐거워합니다. 누룩이 없는 빵을 먹고 고기를 먹음 à 신약에는 성찬 (마 26:17)
2)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 3월 6일, 요즘으로 5, 6월. 주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 à 신약에는 성령강림절 (행 2:1-4)
3) 수장절, 장막절, 초막절: 7월 15-21일, 요즘으로 9, 10월. 한 해의 추수가 다 끝나는 것을 즐거워함. 풀로 된 초막에 살면서 제사 지냄.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함.
<참고> 모세의 얼굴에 덮은 덮개가 비슷함
모세의 얼굴에 덮은 덮개와 성막의 출입구의 커튼인 문 덮개가 비슷한 말입니다. ‘얼굴 덮개-문 덮개’는 히브리어로 ‘마사바-마사카’이고, 헬라어 성경으로 ‘칼림마- 카타칼림마’입니다.
뜰 안으로 들어가는 문 덮개(출 40:33)가 있고, 성막 안으로 들어가는 문 덮개(출 40:28)가 있고, 그 안에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덮개(출 40:21)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