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
직분자를 준비하시는 하나님: 모세의 출생과 도망
(찬송 20장)
2024-4-2, 화
맥락과 의미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고역을 시키고 남자 아이를 죽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번성이 방해를 받았습니다. 파라오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족시키려는 마지막 방법을 씁니다.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2장은 그의 악한 계획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시작이 되었음을 이야기해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인 모세가 바로의 공주 아들로 입양되어서 궁전에서 안전하게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행7:22).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원수의 궁전도 그분의 일꾼을 훈련시키는 장소로 사용하셨습니다.
2:11-22에서는 두 장면이 대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거부한 것(2:11-15)과 미디안 사람이 모세를 받아들인 것(2:16-22)입니다. 두 가지 반응을 기록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의 어려운 형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기록되었습니다(2:23-2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아보셨습니다.
모세는 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는 일을 위해 준비된 사람입니다. 모세의 삶은 한 개인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아보시는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서 자리를 차지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세상적으로 영향력이 있든 없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아보는 일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합니다.
1. 모세의 출생과 건짐을 받음(1-10절)
2. 모세의 반역과 도망(11-15절)
3. 미디안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음(16-22절)
4.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23-25절)
1. 모세의 출생과 건짐을 받음(1-10절)
레위 자손 중 한 사람이 레위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남자 아이입니다. 파라오가 남자 아이는 죽이라고 했지만 그 준수함을 보고 아이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세 달 동안 숨겼습니다. 단순히 자기 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녀에게 특별한 소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은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하고 말했습니다(행7:20).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히11:23).
히브리서 기자는 부모가 그 아이를 아름답게 본 것은 “믿음으로” 된 것이라고 밝힙니다.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아이를 단순히 자기의 자녀로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보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였습니다.
첫3개월 동안은 그 아이를 숨겨 키웠지만 더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었습니다. 상자 바깥은 역청(아스팔트)을 발라 물에 잠기지 않도록 했습니다. 갈대 상자를 강가에 띄어 보냈습니다.
칼빈 목사님은 부모가 아주 비겁하게 자기 직무를 다 하지 못했다고 평했습니다. 물론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핑계로 직분을 게으르게 행하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부모로써 자녀를 지켜야 할 직분이 있습니다. 죽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바라고 순종하는 태도가 오히려 옳았다고 칼빈은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정말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직분을 그대로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타협한 부모의 모습은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파라오의 공주가 그 아이를 건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일으키셨습니다. 공주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으로 모세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모세를 그의 어머니와 연결시켰습니다. 공주는 모세를 그 엄마 집에서 키우게 했습니다. 커서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묘한 섭리 가운데 그 백성을 보호해 주십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다스리시지만 믿는 사람은 특별한 은혜로 대우하면서 보호하십니다. 특별한 섭리 가운데 있는 우리들입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은 다 하나님께 맡기고 일상에서 자기 직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모세의 반역과 도망(11-15절)
이제 모세가 다 컸습니다. 자기 백성을 돌아보러 나갔습니다. 스데반이 말한 대로, 모세는 나이 사십이 되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서 나간 것입니다(행7:23). 바로의 영광보다는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히11:24-26).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가 부름 받은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준 것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그냥 그 이집트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의 행동과 하나님의 행동이 같은 동사 “친다”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바로를 치셔서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어 보낼 것입니다(3:20; 7:17, 25; 9:15; 12:12, 13, 29).
모세는 하나님에게서 일을 맡은 직분자로서 행했습니다. 신약성경은 모세가 애굽의 영광을 버리고 동족의 해방을 위해서 나선 것은 믿음의 일이라고 말합니다(행7:25, 27, 35; 히11:24-26). 모세가 애굽 사람을 친 것은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과 같은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호와의 직분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2절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이것에 대해 칼빈 목사님은 모세의 비겁함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이 백성을 구원하게 하셨으면 정말 제대로 해야지, 이렇게 눈치를 보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째로, 모세는 아직 자기 사명에 온전히 헌신 되지 않았고 성장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의 의도는 좋았지만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일에서 부족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찾지 않고 성급하게 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죽인 다음날 나가 보니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고 있었습니다. 말렸습니다. 나쁜 쪽 사람이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같이 우리도 죽이겠느냐” 합니다. 이 일이 파라오에게 알려지자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거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 모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를 세우신 하나님도 거부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모세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5)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행7:35). 하나님의 백성의 거부는 궁극적으로는 “그 의인”(행7:52), 곧 그리스도를 죽이는 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3. 미디안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음(16-22절)
모세는 미디안에서 제사장 르우엘을 만납니다. 만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이 그의 양 무리들을 몰고 왔습니다. 그들이 양에게 물을 먹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의 남자 목자들이 방해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17절).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은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19절). 여기 “도와”와 “건져내고”는 히브리 원문에 단어는 다르지만 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쓰는 말입니다.
이 단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모세가 단순히 정의감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억압받는 여성들을 남자 목자들로부터 구원하는 일에서 훈련을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일을 통해 백성을 구원해내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세계 제국의 왕자였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구석에서 작은 일에 몰두하는 모세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규모나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이 두신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훈련받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파라오의 존재와 같은 난관이 우리에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시려 준비하는 때입니다. 우리가 직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는 때입니다. 어려움과 외로움과 인정받지 못함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상의 작은 일을 신실하게 합시다.
4.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23-25절)
모세가 미디안에서 지내는 동안에 이집트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모세의 목숨을 찾던 왕이 죽었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이 더 심해졌습니다. 셋째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역사에 개입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는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계시한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시고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언약의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 400년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고 아셨다는 겁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일하고 계십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기억하신 것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선함이나 악함을 보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은혜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그 후손들과 언약을 맺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언약을 하나님은 항상 기억하시고 우리를 보고 또 우리를 알아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성찬의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너를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 돌보시고 구원하신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자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의 헌신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살아갈 때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의해서 현실의 어떤 법칙에 의해서 우리 자신이 눌리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고난의 순간들을 은혜 가운데 참고 나갑시다.
믿고 복종할 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을 구원할 사람 모세를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하셨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남자 아이들은 다 죽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기적적으로 그의 생명을 살려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십니다. 모세는 자신의 직분을 알고서 수행하려 했지만 여전히 비겁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을 모세의 훈련 기간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낮은 자리에서 훈련받게 하신 기간을 감사함으로 지냅시다.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삶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알아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언약 때문에 우리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우리가 양자 됨의 신분 안에 머물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신실한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알고 비겁한 자가 되지 맙시다. 여호와께서 섭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직분을 잘 감당합시다. 가정에서의 직분, 직장에서의 직분, 특별히 예배자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하도록 은혜 주시기를 구합시다. 관악교회가 관악구와 서울경기 지역에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은혜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조> 2절, 갈대상자=노아의 방주(창세기 6:14)
모세의 부모는 삼 개월 동안 그를 키우다가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두었습니다. 여기에서 “갈대 상자”라고 번역된 말은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입니다(창 6:14). 즉, 노아가 방주를 통해 구원을 얻은 것처럼 모세도 “갈대 방주”를 통해 구원을 얻습니다.
모세가 갈대 방주에 담겨 갈대 숲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말과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갈대의 바다, 13:18)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방주’와 ‘갈대’라는 단어가 이러한 연관 가운데서 사용된 것에서 모세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암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세가 방주를 통해서 구원을 얻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갈대의 바다)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것의 전조가 됩니다(김헌수 목사 인용).
<참조> 돕는다(야사아, 17절), 건진다(나차르, 19절)=구원하다.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17절).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19절). ‘도와’와 ‘건져내고’는 히브리 원문에 단어는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에 쓰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