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 모세를 부르심
(찬송 453장)
2024-4-3, 수
맥락과 의미
이제 모세의 나이 이제 80이 되었습니다. 120살까지 살았으니까 요즘 우리 나이로 치면 60입니다. 젊을 때의 혈기도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40년전 이집트 왕자로 있을 때부터 모세의 마음 속에 성령님께서 심어준 소명입니다. 그때는 성급하게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시작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이곳 미디안 광야로 도망와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혈기도 약해졌고 체력도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모세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어졌을 리가 없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께서 450년이 지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가 찼다는 것을 모세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 일에 자기가 부름 받았다는 생각도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세는 40년 동안 양들을 치고 있었습니다. 양 한 마리가 병들면 그것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왕자로서의 기풍은 없습니다. 조그마한 양 한 마리 가지고 기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그런 평범하고 연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1.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심(1-12절)
2. 여호와라는 이름: 스스로 계시면서 신실하게 백성을 구원(13-22절)
1.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심(1-12절)
1)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1-6절)
모세는 양을 치다가 미디안의 서쪽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산으로 불린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산이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셔서 이 산에서 율법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렙산은 바로 시내산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꽃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불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죄를 삼켜버리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합니다. 그 불꽃이 떨기나무에 붙었습니다.
떨기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입니다. 시내산 곳곳에 널려있는 나무입니다. 특별한 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시내산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산이 되었습니다. 그 산의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 주었습니다.
떨기나무는 인간적 혈기가 약해진 모세의 모습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그냥 밟으면 밟히고 부러뜨리면 부러지는 이 떨기나무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런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고 “하면 된다” 할 때도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그때는 교만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떨기나무처럼 낮아지고 연약한 마음을 가질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성령의 불꽃을 태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특별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임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합니다. 가시나무는 타지 않고 그 안에 불꽃이 타고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불꽃처럼 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불꽃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 자신의 열정의 힘으로 우리가 불타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우리 안에 태우시는 불꽃으로 계십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셨던 불의 혀같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속 임재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불타고 있는 가시떨기같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지금도 계속 전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께서 일하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에 생명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다”(5절). 모세가 서 있는 장소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모세를 만나시기 때문에 그 곳은 거룩합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6절).
부모님이 섬긴 하나님을 나도 섬긴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2장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 했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돌보셨다는 것은 오셨다는 것입니다. 조상보다 하나님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 이삭, 야곱과도 새롭게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생의 위기 때마다 찾아오셔서 언약의 신실한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은 언약에 따라 신실하게 행동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과거에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지금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2) 모세를 구원자로 부르심과 모세의 거절(7-12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8절, 노예로서 고통가운데 있던 그분의 백성을 건져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내가 건져내는 일에 너를 선택했다. 가서 건져내라”(10절)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11절에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 복음의 심부름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즐겁게 뛰어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만, 모세는 한 번이나 두 번이 아니라 무려 다섯 번이나 거절하였습니다(3:11, 13; 4:1, 10, 13). 처음 두 번은 자신의 무자격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3:11; 4:10). 이어 두 번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3:13; 4:1).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네 번이나 충분히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여전히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4:13) 하면서 가기 싫어하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진노하셨습니다(4:14). 40년 전에는 구원자로 자처하고 나섰던 모세가 이제는 뒤로 물러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이전 실패의 경험이 있는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who am I)” 하면서 주저하였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에 첫 번째로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합니다(12절). 너무 모호한 답이 아닙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물질적인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가시적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이 순간도 다시 말씀해 주시기 원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함께 계시던 하나님, 모세를 직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분으로 오십니다.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는 목적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우리 인생의 목적으로 살아갑시다.
2. 여호와라는 이름: 스스로 계시면서 신실하게 백성을 구원(13-22절)
1) 스스로 있는 분이신 하나님(13-18절)
모세는 여쭈었습니다. “내가 백성들에게 가서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말할 때, 백성들이 ‘그 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 대답할까요?”(13절). 모세의 두 번째 거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I am who I am)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우리는 육체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밥을 먹어야 존재하고 호흡을 해야 존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분 바깥의 어떤 것이 없어도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시는 분입니다. 위에서 모든 존재를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있다”(하야)라는 말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니까 그 안에 모든 힘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능력이 있는 분이 모세에게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15절). 여호와 그 분 자신이 영원하십니다. “스스로 있고 영원한 하나님이 너 모세와 함께 있겠다.” 이렇게 백성에게 대답하라 고 하셨습니다.
계시록에서는 “나는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올 자라”(계시록 1:8)고 하십니다. 여호와를 다르게 표현한 말입니다. 그 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스스로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로 가서 백성의 장로들을 모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돌아 보셨고, 약속의 땅을 주겠다 말씀하셨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들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장로들과 함께 이집트 왕에게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제사를 드리려 합니다. 3일 길을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어 시내 산에서 무엇을 하게 하셨습니까? 12절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섬긴다는 것은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억압과 고통에서 불러낸 목적은 섬기는 것, 예배하도록 함입니다. 뒤쪽 18절에서는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합니다.
오늘도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죄와 고통 중에 있던 그분의 백성을 불러내셔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광에 참여하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약속대로 불러내시어 시내 산에서 언약을 다시 맺으실 것입니다. 또한 성막을 주시고 예배 제도를 주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구약 백성을 번성하게 하시면서 예배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분,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분,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시고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바치셨습니다. 또 하나님으로서 제자들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그 앞에 와서 경배했다고 합니다(28:17).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언약의 피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출애굽기3장 15절에 나오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는, “성찬은 표” 라 할 때 “표”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당신의 이름을 새롭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당신이 오실 때까지 성찬을 계속하라고 하셨고 임재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복음으로 불러주셔서 우리를 새로운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 우리를 계속 있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천국을 향해 나아갑니다.
2) 예배를 받으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18-22절)
그러나 19절에는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계시는 분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고 백성과 함께 계셔서, 그 분 안에 있는 능력으로 “바로를 부숴, 실력으로 해방시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시어 바로를 부수시고 그리고 마지막 절에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22절) 합니다. 이 취하리라는 단어와 8절에 “건져낸다”는 단어는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실 때 물품도 건져 내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그 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옵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그분께서 그분의 인격과 존재를 새롭게 계시해 주시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속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까지 다 주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수고가 다 끝난 다음에 천국에서 영원히 쉴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나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 계시는 분께서 같이 하십니다. 영원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같이 초라하고 약한 모세를 백성을 구원해 낼 직분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떨기 나무같이 비참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떨기 나무 속에서 영광의 불로 타오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스스로 있는 분”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신을 예배하도록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우리도 떨기나무같이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불꽃으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같이 계시면서 우리를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셨고 이 땅의 고통과 싸울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면서 우리를 그분에게 연합시키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의 삶 전체를 다시 드립시다. 그리고 다시 예배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주일에 우리가 모여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면서 이 예배를 위해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감사합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가득 채워주셔서 주님을 섬길 새로운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4절, 여호와
“있다(하야)”가 명사로 되면 “여호와”입니다.
<참고> 섬기다(12절), 제사를 드린다(18절)
“섬기다”(아바드, 12절)와 “제사를 드린다” (자바아, 18절)는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을 이집트의 억압과 고통에서 불러내신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예배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참고> “건지다”(8절), “취하다”(22절)
8절에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낸다’는 것은 물품을 취하는 것과 같은 단어(나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