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장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심
(찬송 430장)
2024-4-4, 목
맥락과 의미
4장은 3장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모세는 백성이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염려를 없애 주십니다. 모세에게 표적을 보이시고 말씀으로 설득하십니다. 마침내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직분에 순종합니다.
1. 모세의 세 번째 거절(백성이 믿지 않을 것)과 하나님 주신 표적(1-9절)
2. 모세의 네 번째, 다섯 번째 거절: “나는 입이 둔한 자”(10-17절)
3.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 감(18-31절)
1. 모세의 세 번째 거절(백성이 믿지 않을 것)과 하나님 주신 표적(1-9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세 번째로 거절합니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이 여호와가 너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모세의 걱정이 뭐냐 하면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위해 세 가지 표적을 주십니다.
a) 뱀: 모세의 손의 지팡이를 사용하십니다. 이 지팡이는 특별한 지팡이가 아닙니다. 모세가 평소에 양을 치던 아주 오래된 그냥 보통 지팡이입니다. 평범한 것이 여호와의 손에 들려 질 때 표적을 일으킵니다. 그 지팡이를 던지라 하셔서 던지니까 뱀이 돼 버렸습니다. 모세가 무서워했는데 다시 잡으니까 지팡이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할 뱀, 다른 사람에게 무서움을 일으키는 뱀이 모세에게는 부드럽게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집트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되시고 모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뱀은 애굽에서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였습니다. 왕은 코브라의 머리를 형상화한 관(冠)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왕을 대적하는 원수는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왕도 모세가 꼬리를 잡으면 막대기처럼 되어 보잘 것 없을 것입니다. 애굽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이러한 이적을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모세는 순종하였습니다. 5절에서도 “믿게 하려 함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b) 문둥병: 두 번째 표적은 가슴에다 손을 넣었더니 문둥병이 걸렸다가 다시 손을 넣으니 깨끗해진 것입니다. 이 표적은 세 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 모세가 백성 가운데로 돌아갈 것을 상징합니다. 문둥병 걸린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추방됩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이 사는 이집트 땅으로부터40년 동안 추방되어 있었습니다. 외롭게 목자 생활을 했습니다. 문둥병이 걸려서 추방된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시키실 것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권위 있는 사람으로 복귀시키실 것입니다.
둘째,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문둥병에 걸릴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바르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손이 문둥병에 걸리는 벌이 임할 것입니다.
셋째, 부정한 이스라엘을 정결케 한다는 예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믿게 하시고, 그들의 부족을 고쳐 주실 것임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처음 표적의 표징은 믿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8절). 두 번의 표적을 믿지 않으면 다음 세 번째의 표적을 행하라고 하십니다(9절)
c) 피로 변한 강물: 셋째 표적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모세에게 나일 강의 물이 피가 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파라오에게 행할 열 개 재앙의 첫 번째입니다(7:14-24). 애굽의 생명줄인 나일 강이 피로 변한다는 것은 큰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8절은 “표적의 표징”이라 합니다. 말 그대로의 뜻은 “표적의 소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적은 목소리처럼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백성들이 너를 믿을 것이다”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표적은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표적이 없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풍요로운 계시를 담은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가 있어서, 목사를 통해 말씀을 배우면서 믿음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특별한 표적은 없지만 사실 우리 모든 삶이 표적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권위를 느끼면서 하나님께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명한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모세처럼 외롭게 지내셨습니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습니까? 믿음 없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교회 공동체 속에서 또 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2. 모세의 네 번째, 다섯 번째 거절: “나는 입이 둔한 자”(10-17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세에게 이적을 통해 확신과 경고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또다시 뒤로 물러섭니다. 자기의 말주변이 없다면서 두 번이나 거절합니다.
1) 네 번째 거절: 나는 입이 둔한 자(10-12절)
10절 이후에 “나는 말이 능치 못한 사람입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자꾸 물러섭니다. 말의 무능함을 말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말로 설득하십니다. “사람의 혀를 누가 창조했느냐? 벙어리나 귀머거리도 누가 창조했느냐? 나 여호와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네가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실 때, 우리의 자연적인 재능이 부족하면, 그 직분을 감당할 능력을 새롭게 주십니다.
2) 다섯 번째 거절: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13-17절)
그래도 모세는 말합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자신의 말주변이 없음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계속 자기의 능력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하십니다.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그가 너의 입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다.”(16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내용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적으로 행하라”(17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분 자신의 임재의 상징으로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모세의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의도적 불순종이라기 보다 자신의 약함을 너무나 분명히 알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모세의 태도는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40년 전에 젊었을 때는 자기 백성들을 자기 힘으로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백성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아주 악한 백성이라는 것을 압니다. 자기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솔하게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겸손한 자리에 머물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부르실 때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감(18-31절)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망설였지만, 그 분이 주시는 표적과 말씀이 그에게 믿음을 일으켰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을 정리하고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1) 미디안을 떠남(18-20절)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했는지 보려 합니다.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며 작별하였습니다.
‘형제를 본다’는 말은 2:11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했는데, ‘자기 형제’는 곧 자기 동족을 가리키는 말이고, ‘본다’는 말도 단순히 본다는 말이 아니라 형편을 알고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더 분명히 모세를 지시하십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이 말씀은 모세의 마음에 그의 생명을 찾던 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이집트로 돌아 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20절). 이 평범한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상징합니다. 또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모세의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지팡이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부르신 그 길을 향해 나섰습니다.
2) 파라오의 저항을 예고하심(21-23절)
그런데 21절에 하나님께서 파라오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집트 왕에게 가면 그가 네가 말하는 대로 백성을 바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으면 일이 잘 되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고 악하게 만드셨습니다. 스스로 악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악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죠?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 놓으시고 일을 힘들게 만드시고 있습니다.
성도의 길에 어려움을 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행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 주시면서 어려움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당할 어려움을 미리 말씀해 주시면서 그를 준비시키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라고 해서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는 직장을 갖고 자기 스스로를 부양해야 합니다. 그게 쉽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힘들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힘써, 땀 흘려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파라오를 심판할 것이라 경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면, 네 장자를 죽이리라”고 경고하라 하십니다.
23절에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였습니다. “섬긴다”는 “노예가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섬기다”라는 것은 예배한다는 뜻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호와의 종이 되어 그분께 예배하고 섬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자 삶의 목적: 이집트 파라오의 노예 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벗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의무이고 권리이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땀 흘려 일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의 의무도 주셨고 예배할 수 있도록 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환경을 바꿔 주실 것입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보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의 장자를 죽이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을 심판하십니다 예배가 너무나 소중하기에 예배를 방해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심판까지 하시면서 예배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외부적인 어려움이 없는데도 우리 자신의 게으름이나 다른 문제로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3) 이집트로 가는 길: 모세 가족의 할례(24-26절)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모세는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 했습니다. 할례를 게을리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심판하시려 했습니다. 그때 아내 십보라가 그것을 알고 돌을 가져다 그 아들의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지 않고 그 가문을 온전히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할례라는 언약백성의 표시를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할례도 일종의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지도할 모세의 가정이 예배에 흠을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나아간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와 성례를 게을리한다면 우리를 벌하십니다. 할례는 요즘으로 치면 세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례와 성찬을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바로 받기를 바랍니다.
4) 모세가 아론과 장로들을 미리 만남(27-31절)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일할 아론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를 만나서 하나님의 산에 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내신 말씀과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표적)을 아론에게 알렸습니다”(28절). 모세는 과거의 말씀과 표적보다 앞으로 자기가 말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과 이적에 대해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입이 되어서, 장로들을 모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전하고 표적을 행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듣고 믿었습니다(31절). 모세는 그들이 믿지 않을까 봐 염려했지만 (1, 5, 8-9), 그들은 믿었습니다.
모세가 그토록 두려운 가운데 나아갔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백성들이 모세를 신뢰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용하신 종들을 높인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는 나이 많고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 밖에 없는 초라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모세에게 있었지만 모세는 자기의 연약함과 백성들의 악함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조심스럽게 망설였습니다.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표적을 보여주시고 계속 말씀하시면서 모세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화를 내시면서, 심판하겠다고 경고하시면서 모세에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일에 예배드리고 가정을 준비하고 가정의 책임을 지는 사명이 있습니다. 직장의 사명이 있습니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할수록 연약한 우리를 쓰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 내심을 감사합시다. 우리가 연약할 때 오히려 그리스도의 강함이 드러나는 체험이 있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새롭게 힘을 얻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항상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롭게 강해질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0절,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10절에서 모세는 말했습니다.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능치 못하다”(히카노스)는 것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만족케 된다”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3:5). 사역자의 능력은 구약 때도 신약 때도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