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6장
모세를 격려하여 다시 보내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찬송 488장)
2024-4-6, 토
맥락과 의미
오늘 말씀 6장은 5장 마지막 부분과 연결됩니다. 5장에서 소명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처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제사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5:23,8,17절).
파라오는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했습니다(5:9) 백성을 게으르다고 비난했습니다(5:17). 그리고 백성을 더 괴롭혔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6장은 이것에 대한 여호와의 답이십니다. 그리고 다시 모세를 격려하여 파송합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함(1-13절)
2. 모세의 족보(14-25절)
1.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함(1-13절)
1) 여호와의 강한 손(1절)
모세는 부르짖었습니다. 6장1절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합니다. “이제 내가 파라오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다가 장벽에 부딪힐 때 하나님이 주시는 대답은 똑같습니다. “내가 한다. 내가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물론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합니다. 자기가 하지만 하나님의 도구로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한다고요? “강한 손을 더하리라. 파라오가 그들을 쫓아 내리라”(1절).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강한” 손에서 “강한”은 여호수아에게 하신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8)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실력으로, 능력으로 이 땅을 복음으로 정복해 가십니다. 난관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난관보다 더 큰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강하고 담대함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될 줄 압니다. 한번 좌절하면 그냥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기 바랍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반응(2-9절)
파라오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5:2) 누가 참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입니까? 여호와께서는 “나는 여호와로라” 하고 네 번이나 선언하셨습니다(6:2, 6, 7, 8).
“내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너희 조상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지만 여호와로는 나를 알리지 않았다”(3절). 창세기 17장1절에서 아브라함이 자녀를 둘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타나 “나는 전능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그에게 이삭을 기적적으로 주셨습니다. 야곱에게도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이미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나옵니다. 언약의 복을 주시는 그 여호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이루시는 여호와에 대한 경험은 모세의 시대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약속했지요? 450년 후에 너희들이 다른 민족에게 노예 생활하는 데서 벗어나 가나안 땅을 얻게 할 것이라고. 이제 그 약속한 것을 이루는 것을 두고 그 조상들에게는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약속을 했고 이제는 그 약속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4절에서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는 하나님: 5절에 “언약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언약은 헌신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이 사랑의 헌신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호 헌신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6-8절에 동사가 일곱 개가 나오는데 주어는 모두 여호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친히 이루심을 나타냅니다. 그 내용은 네 가지 약속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① 애굽의 무거운 짐에서 빼내고 고역에서 건져낸다. ②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한다. ③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④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이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7절)입니다. 이 상호 헌신관계에 있는 백성들에게 뭐가 필요하죠? 언약백성에게는 자손의 번성을 주고 그 다음에 땅의 번성을 주고, 그 다음에 구원하고 구속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나는 여호와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자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여호와, 너와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죽으시기 전에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와 맺는 나의 언약의 피다. 내 피로 맺는 언약이다.” 하시며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출애굽기 백성에게 주신 언약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전능의 하나님, 스스로 있는 분, 구원주 하나님,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반응: 이스라엘 백성은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가 파라오를 찾아가서 한번 이야기해도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제 마음을 닫아 버렸습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을 붙들고 나아가지 말고 들은 말씀을 떠올리면서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나누는 영적인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약 교제 안에 들어가셔서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을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이 사실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딸로 삼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이야기하듯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지 않겠습니까?(로마서 8:32). 땅을 줄 것입니다. 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요즘으로 치면 직장입니다. 필요한 직장을 줄 것이고 가족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이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예측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습니다. 예측해서 잘 될 것 같으면 기분이 좋다가 불확실해지면 우울해지는 그런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의 신뢰 속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될 때에도 신뢰 속에서 감사 찬양합니다. 굉장히 불확실하고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가운데 기뻐합니다. 언약 백성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3) 여호와의 명령과 모세 거절과 순종 (10-13절)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격려하며 다시 파라오에게 보내십니다. 모세는 두 가지 이유를 대면서 거절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도 듣지 않는데 파라오가 어떻게 듣겠습니까?(12절)
둘째, 모세는 자신의 혀가 둔하다고 하였습니다. 입술이 둔하다는 말은 ‘입술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할례를 받아야 쓰임을 받을 수 있는데(참조. 4:24-26) 자기의 입술은 그렇지 않아서 맡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처음에 여호와의 부름을 거절할 때에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같은 내용의 말을 하였습니다다(4:10). 여호와께서는 아론을 세워서 모세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셨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합니다.
28, 30절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파라오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모세의 겸손이기도 합니다. 40년 전에는 나는 이집트의 왕자로서 할 수 있다고 패기만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겸손하고 낮아져서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모세가 믿음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정직합니다. 자신이 입이 둔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13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모세와 아론을 사용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파라오에게 명령을 전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로라’고 선언하신 분은 그 분의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입이 둔한 자이고 연약한 자입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언약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지도적인 일을 맡기셨고 일반 백성들은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앞으로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영향력 있는 위치에 두실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직분을 주십니다. 또 크고 작건 간에 직장의 일을 주십니다. 그러한 직분을 맡을 때 우리가 취할 자세가 이것입니다. 나로서는 이 직분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아뢸 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십니다.
2. 모세의 족보(14-25절)
족보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족보가 위치한 부분이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모세가 불순종하였지만(1-12절, 28-30절),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이끌어 내셨습니다(13절, 26-27절). 그 가운데에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있습니다. 출애굽이 여호와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족보는 이집트에 내려온 야곱(이스라엘)의 12아들에서 시작합니다. 큰 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의 세 아들만 말합니다. 그리고 레위에 집중하여 레위의 후손인 모세와 아론까지 이어 갑니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의 이름은 생략합니다. 모세와 아론에 집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파라오의 반대가 있고 모세의 불신앙이 있지만,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것은 족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언약에 의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의식하지 않던 시기에도 족보가 계속되었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은 모세가 믿지 않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족보는 아론의 아들인 제사장 엘르아살과 손자인 비느하스까지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루신 일은 앞으로 제사장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 16,19절의 “족보” (톨레돗)는 창세기의 번성의 이야기로 역사를 이어 갑니다. 창세기는 12개의 “족보”(톨레돗)로 이루어집니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아담(5:1), 노아(6:8), 노아의 아들들(10:1), 아브라함(25:12), 야곱(37:2)입니다.
여기 “족보”는 “낳은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이 자녀를 낳고 번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조상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모세와 아론을 쓰셨음을 나타냅니다.
3. 모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사명을 줌(6:8-7:7)
1) 모세의 변명 (28-30절)
28-30절은 10-12절을 반복합니다. 실제로는 한 번 말한 것을 반복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반복하면서 “나는 여호와라” 하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28절). “애굽 사람이 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7:5) 하는 기록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모세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실 것을 확정적으로 선언합니다.
2) 하나님이 모세를 다시 파라오에게 파송(7:1-7절)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파라오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의 능력 때문에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보낼 것이라고 확신을 줍니다. 7:7에서 그 때가 모세의 나이 80세, 아론의 나이 83세라고 하면서 모세와 아론에 대한 소개를 다시 합니다. 이렇게5:23-7:6에서 모세를 다시 파송하는 장면이 끝납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의 백성이 모세를 원망할 때, 그는 좌절된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 내가 강한 손으로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겠다.”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다시 입이 둔한 자라고 거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명령을 전하라.”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를 다듬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그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이 아침에도 우리의 연약함을 보지 말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시기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 빛을 아는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의 죄와 연약을 보는 겸손함을 주시기를 구합시다. 내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의지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죄용서 받은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삼아 주신 것을 즐거워하도록 해주시기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450년 전에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에게 눌린 것, 죄로부터 눌린 것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거룩한 사람을 삼아 주신 것입니다. 기도하며 우리가 더욱 더 거룩한 존재로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도록 변화시켜 주시기를 구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족보의 위치
A. 모세: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술이 둔한 자, (10-12절)
B. 모세와 아론: 여호와의 명령을 전해 이스라엘을 해방(13절)
C. 모세와 아론의 족보: 르우벤, 시므온, 레위(14-25절)
B’. 모세와 아론: 여호와의 명을 전하여 이스라엘 해방(26,27절)
A’. 모세: “나는 입술이 둔한 자,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28-30절)
족보의 위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뒤로 물러서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조상에게 약속하신 번성의 복을 이어가는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참고> 부르짖는 자를 통해 구원의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
모세는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키울 때 자녀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치면 오히려 자녀들이 원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공직에 나가 정직하게 말씀대로 행동하면 오히려 그것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어떻게 응답하는지 오늘 6장1절에서 봅니다. “이제 내가 파라오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다가 장벽에 부딪힐 때 하나님이 주시는 대답은 똑같습니다. “내가 한다. 내가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것은 나중에 나오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나갈 때 일입니다. 앞에는 홍해고 뒤에서는 이집트 군대가 따라올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할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면 반드시 고난을 받음: 우리 인생에서 주님 뜻대로 나갈 때 반드시 장애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공식과 같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면 모든 것이 잘 되겠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세처럼 부르짖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좌절하고 불평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고난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르짖으면 공식처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을 네가 볼 것이다” 입니다.
환난에 부딪쳐서 하나님께 간구할 때 새로운 응답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도록 합니다. 환난이 있기 전에는 내가 가진 실력으로 내가 뭔가 할 수 있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환난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때 하나님이 새로운 답을 주십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네가 볼 것이다!
여호와의 강한 손: 물론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차원입니다. 자기가 하지만 하나님의 도구로서 일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한다고요? “강한 손을 더하리라. 파라오가 그들을 쫓아 내리라”(1절).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강한” 손에서 “강한”은 여호수아에게 하신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8)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실력으로, 능력으로 이 땅을 복음으로 정복해 가십니다. 난관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난관보다 더 큰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강하고 담대함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될 줄 압니다. 한번 좌절하면 그냥 넘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나의 강한 손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의 강함과 담대함은 우리 안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바라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강함과 담대함이 옵니다. 나에게 맡겨진 직분을 다할 때는 항상 고난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부모로서의 직분, 또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일, 사회인으로서 직장 준비하는 일,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는 믿음의 경지까지 나아가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께 그렇게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부인함: 그렇습니다. 자기 부인입니다. 나는 본성적으로 죄인이고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회개하는 것이고 내 자신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십니다. 큰 일에서 길을 열어 주시고 작은 것에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일이 그냥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