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0장
⑧ 메뚜기, ⑨ 흑암 재앙
(찬송 시편 68편 1-3절 – 악보는 맨 뒷장에)
2024-4-11, 목
맥락과 의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말씀
10장은 메뚜기(8번째), 흑암(9번째) 재앙입니다.
10장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여호와가 누구이신지에 대해서입니다. 1절에도 “여호와께서”, 2절에도 “여호와인줄”, 3절에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7, 8절에도 “하나님 여호와”, 10절에도 “여호와가”, 11절에도 “여호와를”, 12, 13절에도 “여호와께서”, 16, 17절에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18절에도 “여호와께”, 19, 20, 21절에도 “여호와께서”, 24절에도 “여호와를 섬기되”,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25절에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 예배입니다. 26절에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이며”, 예배입니다. 또 다시 26절에 “여호와를 섬길는지”, 이어서 27절에도 “여호와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호 6:3).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우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배웁시다.
1. ⑧ 메뚜기 재앙(1-20절)
2. ⑨ 흑암 재앙(21-29절)
1. ⑧ 메뚜기 재앙(1-20절)
1) 메뚜기 재앙 예고 (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파라오에게 들어가라. 그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을 완강하게 한 것은 표적을 보이기 위함이다.”
모세를 보내시면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파라오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4:21). 이렇게 시작해서 오늘 마지막으로 끝나가는 지점에서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의 표적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덟 번째 재앙, 메뚜기 재앙이 들과 집에 임하고 어둠이 내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전하도록 기적을 행하심: 하나님께서 이런 특별한 기적을 행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 표적을 행한 이유는 네 아들과 네 자손에게 전하게 하려 함이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다.”(2절). 오늘 우리가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한다”는 이 단어는 “책”이라는 단어와도 연결되고, “이야기한다”는 뜻도 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 우리 자녀들이 알게 하려고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비상한(extraordinary) 기적을 구약시대,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행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신 기적 이야기를 전하고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알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책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부모로서 자녀에게 잘 전해주고, 목사는 교회에 전해줄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대가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교회는 성경을 잘 읽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 성경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최소한 하루에 스마트폰을 갖고 보내는 시간만큼은 성경을 읽도록 노력합시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3절) “만약에 내 백성을 보내서 예배 드리지 않게 하면 이제 메뚜기를 보내서 심판할 것이다.” 일곱 번째 재앙으로 우박이 내린 후에 남은 식물들이 있었습니다. 채소와 나무 열매인데 그것을 다 먹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연속적인 재앙을 내리겠다고 경고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파라오에게 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마음을 완악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따르지 않으니까 파라오의 신하들이 파라오에게 와서 모세가 한 말을 똑같이 합니다.
“어느 때까지 (3절에서 말한 것을 7절에서도)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겠습니까? 보내어 그 사람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나이까?” 함정은 “새 그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치신 새 그물에 빠지듯이 어려움에 빠집니다.
교회가 예배 드리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고통을 줍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원래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아, 바울아! 어찌하여 네가 가시를 발로 차고 있느냐?”(행 26:14)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입니다.
파라오의 신하들은 7절에서 파라오에게 말합니다. “그들을 보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소서. 이집트가 망한 줄을 알지 못하나이까?” 섬긴다는 말을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입을 통해서 예배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2) 바로의 제안과 협상 (7-11절)
신하들의 말을 듣고 파라오가 모세를 부릅니다. “누가 갈 것인지 이야기하라”(8절). 앞서 파리 재앙이 있을 때에는 애굽 땅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라고 제안했었는데(8:2, 28), 지금은 광야로 나가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허용합니다.
문제는 누가 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합니다. “여호와 앞에 지키는 절기를 드리려 합니다. 이것은 모든 백성이 함께 하는 축제입니다. 남녀노소 다 가야 합니다. 우리 양들도 다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파라오가 “남자들만 데리고 가서 섬기라”(11절) 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못하겠다” 하니 파라오가 모세를 쫓아내 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당하는 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쫓겨날 각오하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앞서간 성도들, 사역자들, 사도들도 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다가 쫓겨난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쫓겨나는 것이 낫습니다. 모세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말씀하신 대로 메뚜기를 보내서 다 먹어 치우게 하셨습니다.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는 일곱 번째 재앙과 연결됩니다. 우박이 남긴 것을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올 흑암 재앙을 미리 예고해 줍니다. 15절에 땅이 어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이 세상을 점점 더 심판하십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셨고 계시록에서도 하나님께서 점점 더 심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렇게 되니 파라오가 모세를 쫓아내 놓고 급히 불러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까 용서해달라”(16, 17절), “그리고 여호와께 고하여 이 죽음만 면하게 해달라” 간청합니다. 이에 모세가 간구하니까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다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됐습니까? 여호와께서 다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강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파라오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외적인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그 마음에 먼저 심판을 내리십니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심판입니다. 마음이 굳어 버리게 만드십니다.
이 완악하다는 것은 “강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데 강하면 “담대하다”합니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이 세상의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는 데 강하고 담대하면 “완악하다”고 합니다. 파라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완악한 자에 대한 심판입니다.
3) 메뚜기 재앙 (12-15절)
파라오에게서 쫓겨난 모세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손을 들어 메뚜기가 애굽 땅에 올라와서 밭의 채소를 먹게 하라.”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그날 낮과 밤 동안에 동풍이 불었습니다.
동풍은 온도가 높고 건조한 바람입니다. 동풍이 불면 생활이 불편하였습니다. 동풍은 심판을 표시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시 48:7; 렘 18:17; 호 13:15; 욘 4:8).
동풍이 이번에는 불청객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아침이 되자 메뚜기가 온 지면을 덮을 정도로 날아왔습니다.
4) 바로의 고백과 완고함 (16-20절)
메뚜기 재앙은 우박이 남긴 것, 들판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버렸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자신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습니다(16절). 파라오가 두 번째로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9:27).
그는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하고 말하였습니다(17절). 직접적으로 용서를 구한 것은 지금이 처음입니다. 다시는 약속을 어기거나 죄를 짓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번만” 용서해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메뚜기 재앙이 곧 죽음을 가져오는 재앙임을 바르게 알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는 재앙을 통해 여호와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메뚜기가 모두 홍해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10:20). 여호와께서는 파라오를 위해 더 큰 재앙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다음에는 메뚜기가 아니라 애굽의 군인들이 홍해에 모두 빠질 것입니다.
파라오는 위선자의 전형입니다.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내렸을 때(27절) 죄를 지었다고 회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회개하는 것 같더니 마음이 또 굳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연약해서 위선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경우는 아예 마음의 생각과 바깥의 말이 다른, 진짜 위선입니다. 구원받지 않았는데 구원받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그를 치십니다.
2. ⑨ 흑암 재앙(21-29절)
1) 흑암 재앙 (21-23절)
셋째 시리즈의 셋째 재앙인 흑암 재앙도 파라오에게 예고하지 않고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시지 않고 그냥 하늘을 향해 손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아홉째 재앙인 흑암은 앞서 있었던 재앙들보다 더 심각합니다. 파라오가 메뚜기의 재앙을 당할 때에는 어린아이를 놔두고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지만(11절), 흑암의 재앙이 임한 다음에는 짐승만 놔두고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양보한 데서도 이 재앙의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더듬을 만한 흑암”이고 “캄캄한 흑암”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어둠이 아니라 여호와의 진노를 느낄 수 있는 흑암임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애굽 사람들은 태양신(Re)을 섬겼기 때문에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애굽에 여러 종류의 신들이 있었지만 태양신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둠과 혼란을 정복한 태양신에게 매일 아침 제사를 드렸습니다. 파라오는 태양신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태양신은 영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양신이 힘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광명이 있습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구름이 덮인 것도 아니고 그냥 햇빛이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에만 비치고 이집트 사람 쪽에는 비치지 않습니다. 고센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이하게 생각되었을 것이고, 여호와를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면 더듬을 만한 흑암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신 28:29). 어둠과 빛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파라오가 악을 행해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는 주셨습니다. 이집트에도 햇빛이 비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완악하니 하나님이 햇빛을 거두어 가시고 어둠이 내려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참 빛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빛을 비쳐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6절에서도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얼굴 빛을 비추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이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영적인 빛이 계속 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발전되고 기초 과학이 발전하며 인문학이 유행해도 사람들에게 참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오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무지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죄가 인간의 근본 문제라고 합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둠이 있고, 구원받는 백성들에게는 광명이 있습니다.
2) 파라오의 제안 (24-29절)
파라오가 모세를 불러 이야기합니다. “가라. 여호와를 섬기되 이제 어린애도 데리고 가라. 그렇지만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24절)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주 절묘한 말을 합니다. “왕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너희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사람만 가서 섬기고 재물과 물질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 하니까, 거꾸로 “당신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믿지 않는 당신도 이 일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양과 소는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느 양을 잡으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 가져가야 한다.” 고 말합니다. 꼭 억지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제사 지내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 가져가야 한다” 고 합니다.
예배를 꼭 드려야 할 이유: 핵심이 무엇입니까? 24절 “여호와를 섬긴다”, 25절 “여호와께 희생을 드린다”, 26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 “섬긴다”는 “예배 드린다”는 뜻입니다.
파라오는 처음에는 “어른들만 예배하러 가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안 된다, 어린이도 예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아이들도 언약 백성입니다. 몸도 가누지 못하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도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세례를 주지 않습니까? 그 아이들은 잘 모르더라도 예배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지루해서 좀 떠들더라도 그들도 예배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만 앉아서 예배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도 예배시간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래서 의도하지 않지만 남에게 방해가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말하십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짐승들도 가축들도 예배하러 가는 일에 끌고 가야 하겠습니다.” 아주 상징적입니다. 우리도 우리에 속한 모든 것을 예배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주일에 함께 예배 드릴 때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6일 동안 우리의 가정도, 직장생활도 모두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듯이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치 활동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는 교회에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물질 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겠습니다. “내 백성을 내어 놓아라.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기업 전체를 예배에 바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당당해야 할 이유: “여호와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27절). 하나님을 향해 회개할 마음이 없이 우선 벌만 면하려는 파라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의 악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도록 하심으로써 파라오를 심판하셨습니다. 더 악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파라오가 어떻게 말합니까? 28절에 모세에게 “한 번 더 나타나면 죽여버리겠다.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너를 죽이겠다.” 합니다. 그러니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무서워서 움츠러듭니까? 아닙니다. 29절 “당신 말이 맞습니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않겠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당당함이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담대히 걸어갑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납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데 뭘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세상은 비난합니다. “앞으로 너 그렇게 하면 나하고 얼굴 볼 생각하지 마라”, 예배 드리지 못하게 하면서 협박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알겠습니다. 당신 얼굴은 보지 않더라도 나는 예배의 축복으로 나아 갑니다” 하고 당당하게 나가면 됩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모세처럼 당당하기를 바랍니다. 나도 당신 얼굴을 보지 않겠다 하고 당당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 시대의 경향과 친구들의 문화에 대해서 당당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그래, 나는 너 같은 애들과 놀지 않는다” 따돌린다고 기죽지 맙시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른만 예배 드리는 것입니까? 어린 아이도 예배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만 예배 드립니까? 우리의 집과 활동과 모든 것들,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순종하지 않는 파라오에게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한 메뚜기와 우박과 흑암 재앙이 연속해서 주어집니다. 특별히 메뚜기 재앙은 결론 부분으로 가면서 중요합니다. 메뚜기 재앙이 우박 재앙에 연결되고 흑암 재앙으로 연결되어 갑니다. 이 시대도 이런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담력을 가지라고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함으로써, 말씀 때문에 강하고 담대한 자로써 성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이 겁을 내면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수록 과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가시는지 기대합시다. 자녀들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 표적을 봐야 합니다.
과거의 표적이 있다는 것은 지금 이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동일한 방식으로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게 행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매일매일 이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을 행하시고 있습니다. 이 기적의 이야기를 읽고서 믿음으로 나갈 때 일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나가십니다. 기적을 만들어 가는 말씀을 따라 기적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는 죄인들을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서 죄를 용서받은 기쁨으로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나갑시다. 오직 십자가 안에서만 우리 죄를 용서받고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담대하게 됩니다.
모세는 비록 아무 것도 없는 노예와 같은 신분이지만 그 세계적인 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날 죽여도 괜찮다”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소리치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해 봅시다. 심지어 우리가 죽더라도 다시 살려주시는 이 큰 능력을 의지하면서 세상이 감당 못할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과거의 표적은 지금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완성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리시기 위한 표적(표시)로써 구약시대에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셨을 때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도들도 같은 목적으로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후반부에 가서 기적은 많이 행하시지 않고 기적의 의미를 십자가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그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충분히 나타내셨습니다. 기적들은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일을 충분히 했습니다.
이제는 그 기적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수단입니다. 그 기적을 완성한 십자가의 복음이 은혜의 수단입니다.
지금은 ① 복음 말씀의 선포, ② 기도와 찬양, ③ 성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이 세 가지의 은혜의 수단을 “보통의 은혜의 수단”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은혜의 수단”은 기적입니다.
기적이라는 은혜의 수단보다 보통의 은혜의 수단이 더 완전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세례와 성찬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합시다. 이 은혜의 수단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적적으로”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참고> 불순종한 자에게 임하는 언약의 저주
오늘 21절에는 “더듬을 만한” 흑암이, 22절에는 “캄캄한” 흑암이 있었습니다. 이 두 단어, “더듬을 만하다”와 “캄캄하다”는 신명기 28:29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벗어나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방황한 다음에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집트에 내렸던 재앙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신28:27에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애굽에 종기로써 질병을 내렸던 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말은 경고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도 경고가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재앙으로 우리를 치시고 영원한 멸망으로 치십니다. 언약 백성들에게 언약적 저주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계시록도 비슷한 것을 말합니다.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을 계속 보내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계 8:12-9:11, 넷째 나팔- 어두움 재앙, 다섯째 나팔- 메뚜기 재앙). 하나님께서는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고 마지막 영원한 멸망 속으로 떨어지게 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와 계시록, 그 사이에 있는 마태복음 24, 25장에서도 예수께서 종말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마 24:29).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도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우리를 빛의 나라로 들여보내 주심을 감사합시다. 더 이상 어둠으로 나아가지 맙시다. 빛 가운데 머물고 그 사실을 즐거워합시다.
거대한 문명을 이룬 파라오처럼 예배를 포기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아무리 많이 돈을 벌더라도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직업을 얻는 것은 영적인 불행입니다. 파라오의 심판, 이집트의 심판이 있었던 길로 가지 맙시다.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68편”을 검색하여 들으며 연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