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장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나 의의 열매를 맺는다
(찬송 407장)
2023-2-11, 토
맥락과 의미
1-3장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3장 후반-4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준다고 말했습니다.
5-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생명에 대해서 말합니다. 순종함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5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화목하게 된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구원, 생명)가 왕 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6장은 왕 노릇의 주제를 이어가면서, 거룩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합니다.
1. 의롭다 인정받은 성도에게 의와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왕 노릇함(1-11절)
2. 은혜 아래서 감사함으로 거룩의 열매를 맺으라(12-23절)
1. 의롭다 인정받은 성도에게 의와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왕 노릇함(1-11절)
5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죄 용서받은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왕 노릇 한다는 말로 끝났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다.”(6:1) 바울이 대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5절도 같은 것을 묻고 답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죄 용서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3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4절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능력과 영광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4절). 이것이 목적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세운 목표를 이룰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우신 목적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즉, 되었기 때문에)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절에서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것은 우리가 이루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목적입니다.
9절에서,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주님’을 동사로 만들면 ‘주장하다’입니다. 주인 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십니다. 죄가 예수님께 주인 노릇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제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죄를 이기시고 생명 가운데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났고 살고 있습니다. 10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서 죽고 사심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번 죽었으니까 이제는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11절의 “여길지어다”입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는 ‘믿음’과 뜻이 같습니다. 이 단어는 3장과 4장에서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4:5 “그(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생각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우리를 그런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만들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그렇게 여기시고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여기는 것,’ 곧 지식의 순종입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의지와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2. 은혜 아래서 감사함으로 거룩의 열매를 맺으라(12-23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9절에서 주인 노릇 한다는 것을 왕 노릇 한다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의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악한 욕망을 왕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13절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드린다’는 ’레위인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도록 세운다’(민 16:9, 23:3)에서 쓴 말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직분자로 자신을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는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을 하시는 그릇으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14절에 다시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더이상 율법의 저주는 없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셨습니다. 은혜로 의롭다 하시고 새로운 존재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의 세계 안에 있습니다.
이제는 법 조문 하나하나를 지키는 그런 형식적인 의를 이루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에 의를 행합니다.
율법적으로 선행을 하지 않습니다. 벌을 받을까 봐 눈치 보고 두려워하면서 의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벌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16절에도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합니다. 만약 죄에게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노예로 살 수 없습니다. 17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외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의로운 삶을 삽니다.
전에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의로운 일을 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교훈을 순종했습니다. 그러니까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용서하셔서 “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의롭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는 더러운 것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사람이 다시 나쁜 바이러스를 몸에 집어넣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불법에 자신을 종으로 드려서 불법의 열매를 맺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서 악한 행동의 열매를 맺는 과거로 돌아가지 맙시다.
19절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22절). 이미 시작된 것을 계속하기 바랍니다.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죄를 지으면 죽음입니다. 죽어서도 영원한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참된 영생입니다(23절).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산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으로서 우리를 주관하십니다. 더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왕으로 받들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주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의의 열매를 맺는 기쁨 넘치기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십니까? 비록 나의 실제 모습을 보면 여전히 죄와 부족이 있더라도 말씀대로 그렇게 믿으십니까? 오늘도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싸움을 계속해 나갑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질문을 가정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설명
비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다(6:1).
바울의 대답: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
비판하는 사람의 가상적 질문: “그럼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안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15절).
바울의 대답: “그럴 수 없느니라”(15절).
비판하는 사람의 가상적 질문: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은 이렇게 하여 우리를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3:8).
바울의 대답: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3:8).
유대인들이 복음에 대해서 비난했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면, 죄를 더 짓자. 더 많은 죄를 용서받으니까, 은혜를 더 받게 되지 않겠느냐?’ 하고 말합니다. 마치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담배 꽁초를 버리고 발각되지 않으면, 벌금 5만원을 번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판하는 사람의 가상적 질문: “그런즉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무슨 말하리요?”(8:31).
바울의 대답: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참고> 9절,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주님’(큐리오스)을 동사로 만들면 ’주장하다’(큐리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