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2장
구원받은 성도가 드려야 할 거룩한 삶
(찬송 186장)
2023-2-18, 토
맥락과 의미
12장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1-11장에서 가르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순종할 것을 가르칩니다. 1장에서 11장까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성령님 안에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도는 배운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친 다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가르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먼저 2부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구속에 대해 가르치고, 3부에서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행동의 감사와 기도의 말로 감사)의 순서로 가르칩니다.
1.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자(1-2절)
1절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이미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은 성도에게, 역시 자비하심을 받아 사도가 된 바울이 권합니다. 권함은 행해야 할 바를 가르치고 동시에 격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지시하고 그렇게 살도록 격려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드린다는 것은 제사장이 제물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은 ‘말씀’에서 나온 말입니다. 문자적인 제사가 아니라 비유로, 혹은 합리적인 말씀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성도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우리 몸과 삶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구약 성도는 성전에서 짐승을 제물로 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우리는 참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몸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물처럼 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서 ‘본받는다’와 ‘변화’라는 단어는 삶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전에는 우리 삶의 스타일이 세상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스타일이 세상을 닮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내려주신 그리스도적인 삶의 스타일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갑시다. 이제는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신 정체성을 향해서 점점 맞추어 갑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분별합시다. 분별은 연단, 단련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계속 순종하여 우리 삶이 정금 같이 순결하게 되기 바랍니다.
2. 거룩한 산 제사(1): 교회 안에서 공적인 직분을 잘 감당함(3-8절)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삶의 제사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3절에서 8절까지는 교회 안에서 직분자로서 실천할 것을 말합니다. 9절부터 끝까지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실천할 일을 말합니다.
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의 ‘은혜’는 1절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의 ‘자비하심’과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 생각이 아니라 ‘내게 주신 은혜,’ 성령의 은사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생각’은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마땅한 것만 추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분량’은 길이를 재는 자, 척도라는 뜻입니다. 6절의 “믿음의 분수”도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로 재어서 나누어 준 그 정도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구약 성도에게 각자의 땅을 나누어 주었듯이 신약 성도에게는 각자의 은사와 직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남의 땅을 엿보지 말고 자기 땅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4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몸에는 손, 발 등 여러 지체가 있고, 하는 일도 다 다릅니다.
교회의 지체인 우리도 각각 다른 “기능”(4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능은 실천, 역할과 같은 뜻입니다. 기능을 다하도록 “은사”(6절)를 주셨습니다. 재능, 영적 실력을 주셨습니다. 기능과 은사는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기능/은사대로 충성해야 합니다.
6절,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의 기능/은사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7절,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일”을 주셨습니다. 섬김은 성도가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을 돕는 집사의 일을 말합니다. 집사는 성도를 물질로 지원하고 정서적으로 위로하는 일을 합니다.
7절의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8절,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을 합니다. 1절에서 사도 바울이 “‘권하노니” 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성도가 신앙대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고 격려하는 은사/기능을 말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해야 할 일입니다.
8절에서 “다스리는 자”는 장로를 말합니다. 장로는 성도가 목사에게 받은 말씀을 구체적으로 순종하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는 ‘나누어 주는 자는 후함으로’라는 뜻입니다. 집사의 직무를 말합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는 구제의 일을 할 때 물질이 아까워서 슬퍼하지 말고 기쁨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위의 기능들은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서가 쓰여 질 당시에 교회의 직분이 세 부분으로 엄격히 나누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현재의 직분 개념으로 정리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목사의 가르치는 일과 장로의 다스리는 일, 또 집사의 구제하는 일은 구분되어 있습니다. 목사가 재정적인 문제를 주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집사들이 가르치는 일까지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직분이 제도화한 시점에서는 한편으로 주어진 직분의 테두리에서 사역하면서, 동시에 모든 성도도 직분자로 사역합니다. 모든 성도는 개인적으로는 목사, 장로, 집사의 일을 서로에게 해야 합니다. 각 성도는 자신이 깨달은 말씀을 서로에게 나눕시다(목사의 일).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합시다(장로의 일).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로를 돕고 격려합시다 (집사의 일).
모든 성도가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자유롭게 섬겨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고 교회 전체의 공동체가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갑니다.
3. 거룩한 산 제사(2): 개인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9-21절)
9-21장은 모든 성도가 3-8절에 나온 은사들을 사용하여 사랑으로 섬겨야 함을 가르칩니다.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를 말합니다.
1) 형제 자매에게 사랑을 실천(9-16절)
“거짓”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9절). 위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사랑할 때 하나의 아버지를 모신 형제로서 사랑합시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빌립보서 2:3)을 말합니다. 성도 모두가 서로를 나보다 높은 사람을 대하듯이 존경합시다.
11절의 “열심”은 ‘성령으로 불타고’라는 뜻입니다. “주를 섬기라”는 주 예수님을 종으로 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이 주신 불 같은 열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시다.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주님의 지체들인 형제 자매를 불타는 열정으로 섬깁니다. 섬기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충성되게 섬깁니다.
12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사명자로 살아갈 때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 때문에 즐거워하고 참고 나갑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룹니다.”(롬 5:3-5) 우리에게 영광의 천국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서 환난을 참고 나갑시다.
13절,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15절, 다른 성도들과 한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웁시다.
16절, 겸손하게 행합시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3절) 하나님이 주신 분량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직분을 다합시다.
‘낮은 데 처하는 것’은 ‘함께 끌려 다닌다’(아포-아고)는 뜻입니다. ‘끌려 다니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일입니다(마 27:2,31).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 고향을 떠나 직장을 잃고 이리저리 떠도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들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고 도와야 합니다. 우리도 복음 때문에 고난받고 있는 성도들과 친구가 됩시다.
2) 핍박하는 자도 사랑하며 하나님의 심판에 맡김(17-21절)
원수와 우리에게 고난을 주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그들을 축복합시다. 그들에게 원수 갚으려 하지 맙시다. 주님께 맡깁시다. 가능하다면 분쟁하지 말고 모든 사람과 평화를 누립시다.
21절에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보복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맙시다. 우리가 직접 보복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선함의 힘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법입니다.
스스로 보복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깁시다.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19절). 우리는 선으로 사랑하는 일에서 성장합시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의 행진에 한 부분이 됩시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선한 일을(2절)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 우리의 삶을 바칩시다. 교회에서 사랑으로 섬기며 선한 일을 하며(9절) 교회를 세웁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직분을 넘어서서 교만하게 행동하지 맙시다. 겸손히 자기의 직분을 다합시다.
성도들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합시다. 성도가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공급합시다. 믿지 않는 세속 사회 가운데서도 선을 행하여(21절)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이를 위해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님 안에서 계속 능력과 은사를 주십니다. 이 능력과 은사를 기도로 계속 받아서 섬깁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성도와 가족을 섬기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영적”(로기코스)은 ‘말씀’(로고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참고> “믿음의 분량”(3절), “믿음의 분수”(6절)=측량 자
‘분량’과 ‘분수’는 측량하는 줄 혹은 자를 말합니다. 구약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하나의 땅을 줄로 재어서 기업으로 나누어주셨습니다. 신약 성도에게는 보이는 땅이 아니라 교회를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교회를 이루기 위해 각 성도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직분이 각자의 기업입니다. 우리 각자의 기업에 충성함으로써 하나의 기업, 교회가 온전해집니다.
<참고> “기능”(프락시스, 4절), “은사”(카리스마, 6절). 직분(7절, 디아코니아)
‘기능’(4절, 프락시스)은 실천, 역할이라는 뜻입니다. ‘은사’(카리스마, 6절)는 재능, 영적 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절에 섬기는 일(디아코니아)은 좁은 의미로는 구제하는 집사직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섬김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분을 주시고 그것을 감당하도록 영적 실력을 주셨습니다. 직분과 영적 실력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참고> 3절, “마땅히 생각할(프로네오)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휘페르-프로네오) 말고”=빌립보서 2:2
3절, “마땅히 생각할(프로네오)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휘페르-프로네오) 말고”는 빌립보서 2:2의 “한 마음을 품어”(프로네오)와 비슷합니다.
<참고> 10절,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알렐루스 프로-헤게오마이) = 빌립보서 2:3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알렐루스 프로-헤게오마이) 것은 빌립보서 2:3절에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알렐루스 헤게오마이 )와 같은 뜻입니다.
<참고> 16절, “낮은 데 처하며”(순-아포-아고)
16절, “낮은 데 처하며”(순-아포-아고)는 ‘함께 끌려 다닌다’는 뜻입니다. ‘끌려 다니는 것’(아포-아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끌려 가신 것(마 27:2,31)을 말할 때 쓰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