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로마서 강해

로마서 14장 참 믿음의 자유와 사랑 2017-9-12, 화

작성자축제|작성시간17.09.12|조회수145 목록 댓글 0

로마서 14

참 믿음의 자유와 사랑 (찬송 32, 새찬송가 68)

2017-9-12,

 

맥락과 의미

오늘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에 있어서 보배와 같이 소중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런 것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하고 회의 가운데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1절에도 믿음, 2절에도 믿음, 또 마지막 22절에도 믿음, 23절에도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5절에서는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확정이란 것은 믿음이 모든 것에서 확실히 가득 찬 것을 이야기합니다.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나아가 성도는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일에 믿음으로 가득 차서 확신 가운데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1. 각자가 모든 삶에서 자신의 믿음의 확정대로 기뻐하며 살아가고,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함 (1-12)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들은 성도가 우상 신전에 가서 우상의 고기를 먹는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했습니다( 15:29, 16:4). 그런데, 신전에서 바쳐졌다가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를 사서 먹어도 될까요? 이것은 교회에서 논란거리였습니다. 사도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는 출처를 묻지 말고 사서 먹어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고전10:25-27). 우상에게 바쳐졌다고 해서 고기 그 자체가 영적으로 감염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고기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고기를 사서 먹으려고 하면서 이것이 혹시 영적으로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계속 들었습니다. 교회는 계속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런 데서 의심하지 말라. 여러분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확신 있게 기쁨으로 그것을 사먹고 살아가라.’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도 어떤 사람은 그게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구약의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성전 제사제도에 익숙해 왔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졌다가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를 성도가 먹어도 된다는 것이 머리로 알기는 압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고기를 먹는 성도는 고기를 못 먹는 성도를 업신여겼습니다. ‘믿음이 저렇게 밖에 안 되느냐?’ 한편, 믿음의 분량이 그 고기를 사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는 성도는 고기를 먹는 성도를 보고 죄를 짓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각각 자기 믿음의 확정대로 하라고 합니다. 객관적인 기준은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믿음의 정도가 그 정도로 크지 않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믿음의 분량에서 확신 있게 살아가면 됩니다. 객관적인 기준이 있지만, 개인적 기준도 허용됩니다.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든 간에 확신 가운데 살아갑니다. 믿음이 아주 성장한 사람은 성장한대로 믿음이 아직 적게 성장한 사람은 적게 성장한대로 하나님 앞에 확신이 있습니다. 그 단계에 맞게 하나님은 그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 놀라운 은혜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네 믿음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 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의 분량에 맞게 주님께 충성되게 일상생활을 살면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차이가 있는 성도 각자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연약한대로 평화와 기쁨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강한 사람대로 하나님 주신 것을 더 즐기면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교회 안의 논란거리는 예배를 언제 드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성령님은 대답하십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각자 믿음대로 확실히 합니다(5). 그렇지만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존중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구원에서 넘어지는 일이 생길 때는 자기가 가진 자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다 확정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한 날에 예배드리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주일에 예배로 모입니다. ,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므로 주님의 날로 모이는 것이 주님을 높이는 귀한 일입니다.

4절에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이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판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집안에서 가족끼리도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4절에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이 확신이 분명해야 합니다. 함께 믿음을 고백하고 있는 다른 성도의 영혼에는 나와는 다른 확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각자 양심을 따라 주님의 인도를 받읍시다. 다양성을 인정합시다. 다른 성도가 나와 다른 그 다름을 존중합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것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과감하게 따라 나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가정의 경제활동, 내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이냐, 언제 은퇴할 것이냐, 내가 어떤 종류의 차를 살 것이냐, 휴가를 어디로 갈 것이냐 등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눌려서는 안됩니다. 5절에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일상적인 일에도 확신 있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린 것이 아닌가?’ 계속 의심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고 짓눌려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확정하라는 이 말은 로마서 4 21절에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쓴 말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도 자녀가 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약속하신 그 분께서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 가운데서 나아갔습니다. 성도는 일상적인 일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확신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집단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양심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 확신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6절에 우리는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일상의 작은 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세우신다는 확신 가운데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업을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신다는 확신으로 일합니다. 공부를 할 때 이 연구에서 주께서 나를 세우신다는 확신 가운데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할 때만 확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연구하고 집을 수리하는 이 모든 일에서 주께서 나를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확신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 일상 가운데에 우리의 기쁨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도 주께 감사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께 감사합시다.

8절에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우리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작은 일에서도 주님의 뜻으로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다른 성도의 삶도 받아들여주셨습니다.  저 성도는 왜 이렇게 안 좋은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고생하며 살까?’ 그들을 답답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성도도 주님께서 받아주셨습니다.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12절도 같은 말을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 각자가 자기의 행한 것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판단을 받게 됩니다.

우리 각자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십니다. 각자 이 세상을 살 때 감사함으로 모든 일을 합니다. 마지막 날에 각자 하나님의 판단을 받습니다. 그러니 현재 주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행하지 마십시오.

 

2. 다른 성도들의 평화와 건덕을 위해서 믿음의 자유를 절제하는 사랑의 태도를 보여야 함 (13-23)

모든 음식은 그 자체로서 속된 것이 아닙니다(14). 속되다는 것은 하나님께 거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모든 음식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3절에서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사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그 고기를 사서 먹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의 양심의 법에는 먹으면 안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판단을 어기면 죄입니다. 작은 일에서 양심이 망가지게 되면 큰 일까지도 망가뜨립니다. 믿음을 부패시킵니다.

믿음으로(엑크 피스테오스)’믿음으로부터입니다. 성도는 자기 행위의 선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3:30, 믿음으로 말미암아, 엑크 피스테오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용서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계속 믿음으로(부터) 믿음을 향해나갑니다(1:17). 처음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이 시작될 때도, 그 뒤에 살아갈 때도 계속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죄용서와 의롭다 함의 확신은 먹고 마시는 작은 일에서도 계속됩니다. 얼마나 복됩니까?

그러나 내가 양심의 가책이 없이 자유롭게 하는 행동들이 다른 성도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성도들끼리 서로를 배려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칼빈 목사님은 이것을 자유의 절제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 있지만, 다른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조금 절제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 확신을 굽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나는 편하게 한다. 그러나, 내 행동 때문에 다른 성도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 성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나의 자유를 절제한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 때, 나는 나의 자유대로 살아간다.’ 자기 확신은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외부적 행동을 굽히더라도 마음의 확신은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해서 자기 행동을 굽히라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확신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나 교회는 분위기 좋은 것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각 사람이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성도 각자가 확신을 향해서 나아가는 일에 큰 방해를 줍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평화를 위해서 필요할 때는 절제합시다. 그러나 우리 가정과 나의 중심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열매를 위해서 달려가는 일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믿음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술 문제가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성장이 그 정도 수준인 성도 앞에서 우리 부부는 집에서 술 한잔씩 한다고 말하면 믿음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그런 성도가 있는지는 잘 분별해야 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우리를 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두 가지 원리를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먹고 마시는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확신 가운데 하시기를 바랍니다. 잘 되면 잘 되는대로 못되면 못 되는대로 부자면 부자인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다 주님이 내려 주신 것입니다. 자기 상황에서 주께서 주신 지혜를 따라서 경건의 열매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른 성도들과 평화 가운데 함께 살아갑시다. 내가 가진 소신은 분명하지만, 다른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나의 자유를 조금 절제합시다. 성도의 믿음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줍시다. 평화를 이루는 그런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죄 용서 받았다는 이 믿음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가족과 함께 나가서 식사하는 이 일도 믿음으로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께서 받으셨으니 믿음으로 하십시오. 또 믿음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예배와 구원의 기쁨 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확신으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확신으로 기쁨으로 설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뻐합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방해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떨쳐버립시다. 우리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받으셨다는 확신 가운데 살아갑시다. 혹시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 가족이나 다른 성도에게 불필요한 불편함을 주어서 평화를 해친 것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성도가 구원에서 복음 안에서 성장하는 데 눌리게 한 것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우리 교회 전체가 복음으로 더 풍요롭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모든 성도들이 삶의 모든 순간 기쁨과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