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6번째 표적 :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 육체를 치유와 함께 죄에서 벗어나는... 2022-4-2,토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4.01조회수359 목록 댓글 0요한복음 9장
6번째 표적 :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
육체를 치유와 함께 죄에서 벗어나는 영적 치유를 주심
(찬송 246장)
2022-4-2,토
맥락과 의미
9장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6번째 표적입니다.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소경과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타락한 구약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나타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치유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의 치유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때 소경 되었던 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에 빠졌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구원 안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만 선언되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면서 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매일매일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1. 소경을 치유하심: 소경은 그분을 “예수”로 앎(1-17절)
2. 바리새인의 추궁과 소경의 고백: “예수는 선지자”
3.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소경의 고백: “인자”, “주님”
바리새인은 정죄 받음(35-41절)
1. 소경을 치유하심: 소경은 그분을 “예수”로 앎 (1-17절)
1)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소경을 치유하심 (1-7절)
1절, 날 때부터 시작장애인이 된 자를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났습니다.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8절). 제자들의 첫 반응은 이것입니다. “이 장애는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소용없는 질문입니다. 그 장애가 부모의 죄 때문인지 그 사람의 죄 때문인지 밝히는 것이 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답은 분명합니다. 3절에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물론 그 부모나 자녀가 죄인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질병이 그 사람의 구체적인 죄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입니다. 병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모든 병이나 장애가 다 그 사람의 죄에 대한 벌도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바른 관점을 줍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 속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육체적, 정서적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당신의 탓이다.” 이렇게 우리는 책임을 추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가지고 오십니다. 오늘도 문제 앞에서 해결책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일하실까?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침으로 진흙을 이겼습니다. 그 시작장애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실로암이라는 연못에 가서 눈을 씻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명령에 복종했고, 나았습니다. “바른다”는 구약에서 직분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임직하는 데 쓰인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침으로 이겨진 진흙을 그 장애인의 눈에 기름을 붓듯이 바르셨습니다. 질병을 치유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2) 사람들의 반응 (8-12절)
사람들은 그 소경이 눈을 뜬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눈이 낫게 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치유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모릅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나은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2. 바리새인의 추궁과 소경의 고백 : “예수는 선지자”
1) 바리새인이 소경에게 심문과 소명의 고백, “그분은 선지자” (13-17절)
13절에 이웃 사람들은 이 사람을 바리새인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다니! 율법 전문가 바리새인들의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토론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긴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16절에 어떤 사람은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다.” “죄인이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그들은 치유받은 사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오?” 치유받은 사람은 말합니다. “나는 그분을 선지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약의 선지자들이 병고치는 기적을 행한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처럼 성경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바르게 생각할 수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자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지식은 많았지만 성경의 참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자기들이 만든 규칙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동기로 세부 규칙들을 만들었습니다. 율법과 안식일을 완성하는 분 그리스도가 왔는데도 알아 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장애인을 치유하며 참된 안식을 주신 것을 축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해방을 기뻐하지 못합니다. 율법의 정신에 집중하지 않고 세부 규칙을 만들어서 그 규칙 하나 하나를 지키려고 자기도 피곤하고 다른 사람도 괴롭게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율법주의가 없기를 바랍니다. 세부적인 것들은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핵심을 잡아야 됩니다. 복음은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정죄하는 이런 일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복음으로 인해서 해방과 행복이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기를 바랍니다.
2) 소경이었던 사람의 부모의 심문과 고백: “나는 모른다” (18-23절)
바리새인들은 그 부모를 불러서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부모는 자기 아들이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사실만 확인해 줍니다.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하신 사실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왜냐하면 22절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자가 있으면 출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21,22절). 진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비겁한 자들이 되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우리 가족에게 주신 복을 감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독받고 아주 낮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3) 소경이었던 자의 재심문과 고백(“그분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분”)
출교당함 (24-34절)
26절에 다시 바리새인들은 전에 소경되었던 자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낫게 한 사람이 죄인이라 생각하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낫게 되었소?” 27절에 그가 말합니다. “제가 낫게 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싶습니까? 그럼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또 30-33절: “나를 낫게 한 사람이 죄인인지는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행한 것을 보니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정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가르치려 하시오?” 그를 ”쫓아내어 보내니라.”(34절) 출교했습니다.
시각장애가 낫게 된 이 사람의 정직성을 보십시오. 자기가 아는 진실대로 고백하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낫게 한 그분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정당하게 결론을 내리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독하고 있더라도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분명히 증거합시다.
시작장애에서 해방된 이 사람은 새로운 위기에 부딪혔습니다. 몸은 나았지만 출교되었습니다. 그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전에는 구걸을 했지만, 먹고 살기는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될지도 막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손해를 보고 위기가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손해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것을 두려워하면 그의 부모처럼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합니다.
3.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인자, 주님”으로 고백, 바리새인은 정죄당함 (35-41절)
1) 예수님이 다시 오심: 치료받은 자, ”인자와 주님”으로 고백, 믿음 (35-38절)
35절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치유된 사람에게 오셔서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절에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기 원합니다.” 여기서 ”주여”는 사람들에게 높임말로 썼습니다. 같은 단어가 “여호와”라는 뜻도 있습니다. 3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가 그를 보았다. 지금 네가 말하는 자가 그다.” 예수께서 당신이 인자,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38절에 그가 말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절했습니다. 여기서 ”주여”는 ”여호와”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 절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고백하는 표시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죄용서의 은혜를 받았습니다(41절)
예수님에 대한 그의 고백은 점점 더 올바르게 성숙했습니다. “선지자”à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à ”인자와 주님”으로 고백이 발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손해를 보면서도 이런 고백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순박한 자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환히 비춰 주셨습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물질적인 것이나 다른 것들을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추구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와 만나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아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비유로서의 치유, 교만한 바리새인을 정죄하심 (39-41절)
39절에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하신 것의 의도를 말하십니다. 그러자, 40절에 바리새인들이 옆에 있다가 묻습니다. “우리가 소경인가?”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절).
자기는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적 소경됨 가운데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약함을 알던 소경은 그리스도를 믿었고, 육체의 어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라는 영적 어두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매일매일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멀고 있음을 깨닫는 복이 있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됩니다. 매일매일 우리를 덮고 있는 죄를 깨닫고 고백하며 그리스도께 나아갑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과정에 위기가 있고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우리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시각장애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질병을 치유하셨습니다. 환경을 통해 일하십니다. 이 소경은 처음에 예수님을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환경과 예수님이 그에게 오심으로써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가 바른 고백을 하기 전에 우리 주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삶에 같이 계십니다. 환경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의 좁은 생각에 갇혀 있지 맙시다. 그때 바리새인들처럼 자기가 만든 관습으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비난했습니다. 자기들은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죄용서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서 계시하는 대로 믿읍시다.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대로 순종합시다. 신비한 하나님과의 영적 친교 가운데 풍요를 누리는 우리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그 시각장애인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병을 고쳐 주셨을 때,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어떻게 바뀌고 죄용서를 받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며 죄용서와 순종이 길을 갈 수 있습니까? |
오늘 고신교회 위한 기도제목
| -부산중부노회 81개 교회(조직34,미조직30,기도소6)가 말씀과 기도로 성장하도록 -교회를 향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온전하고 풍성하게 깨달으며 누리도록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6절,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눈을 바름
6절에서 예수님은 침을 진흙에 뱉어서 소경의 눈에 발랐습니다. 상당히 상징적인 일입니다. 발랐다(크리오)는 기름붓다(크리오)에서 왔습니다.
그리스도는(크리스토스) 기름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구약에는 기름붓는 의식이 있었습니다(출애굽기 30:22-33, 40장). 시내산에서 처음 성막을 만들었을 때 성막과 성막의 모든 기구들에 “거룩한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했습니다. 제사장도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했습니다. “거룩한 기름”은 향품과 계피 등을 올리브 기름에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이 기름을 개인적으로 만들거나 사용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침으로 진흙을 이긴 것은 구약의 거룩한 기름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장애인에게 거룩한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만드시는 듯합니다. 그 보다 전에 예수님께서는 세례받으실 때 성령님으로 기름부어 졌습니다. 그리스도로 임명받았습니다. 구약에서 거룩한 기름을 만든 모세보다 더 높으신 분으로 참된 거룩한 기름을 만드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장애있는 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치유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영적으로 눈먼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 용서하십니다. 그분이 가진 성령님의 기름을 우리에게 발라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름을 발라 주신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의 침으로 만든 거룩한 기름을 눈에 바른 그 장애인은 실로암(보냄을 받았다)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순종하여 씻었을 때 치유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님으로 기름부음 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파송을 받은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