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십자가의 저주받아 우리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유대인의 왕,
믿음으로 고백하자
(찬송가 159장)
2022-4-14, 목
맥락과 의미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내용이 18장에서 19장까지 계속됩니다. 19장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그 후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1.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 당하심 (18:28-19:16)
1) 빌라도에게 끌려 가심 (18:28-32)
2) 빌라도의 심문 :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18:33-40)
3) 빌라도가 채찍질 : 군인들의 조롱 (19:1-5)
빌라도는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세 번이나 말합니다.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18:38)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19:4) “죄를 찾지 못하노라.”(19:6). 예수님이 죄인으로 간주되어 십자가에 죽으시지만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이 이방인도 증거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공직자로서 용기있게 무죄판결을 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의 주장에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동시에 그의 양심 때문에, 유대인에게 예수님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여 석방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총독부 마당으로 다시 끌고 가 채찍질한 후 다시 유대인에게 끌고 나옵니다(1, 5절)
1-3절에 군인들은 채찍질합니다. 채찍질은 너무나 가혹해서 살점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쓴 저자 요한과 성령님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묘사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적 의미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요 십자가의 본질입니다.
군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합니다. 가시 면류관, 보라색 옷,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는 말.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왕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조롱하는 행동입니다.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영광을 비우신 하나님이요 왕이신 그분을 몰라 보고 조롱합니다.
이것이 불신자들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되지 맙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가 없다고 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이 전해질 때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때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양심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죄 때문에 양심의 고통을 당할 때 회개는 하지 않고 상담 받고 치유해 봐도 소용 없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굴복해서 죄인됨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만 이 두려움이 없어지고 참된 치유가 있습니다. 빌라도처럼 비겁한 자가 되지 맙시다.
우리는 군인들처럼 되지도 맙시다. 고난받는 그리스도와 함께 서야 됩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받을 때 그 성도의 옆에 서서 그들을 변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도들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조롱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있지 말기를 바랍니다.
4)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반응, 빌라도의 마지막 결정 (6-16절)
6-7절: 대제사장과 성전 호위병들(아래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자 소리칩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빌라도는 “로마법에 따라 죽일 증거가 없다. 너희가 죽이라.” 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그는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우리 율법에 따라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8-11절: 빌라도는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더 두려워합니다. 다시 예수님을 총독부 안으로 끌고 갑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처음에 대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에 무관심한 그에게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빌라도가 자신에게 석방할 권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당신에게 권세를 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습니다.”
12-16절: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더욱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총독부 바깥에서 다시 소리 질렀습니다. “이 사람을 석방하면 당신은 로마 황제의 충신(친구)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총독부 바깥에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끌고 나옵니다. “보라, 너희 왕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우리에게는 로마 황제 외에는 왕이 없다.” 자신을 비난하는 군중의 말에 못 이겨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을 선고합니다. 우리는 빌라도와 같이 자신의 지위를 위해 진리를 부정하지 맙시다. 양심을 속이지 맙시다.
유대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라 말해야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안다 하지만 정말 신비한 것을 알지 못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정한다 하지만 한 순간만 인정하고 부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도자들이 종교감정을 조장하는 데 휘둘려서 “죽이라, 죽이라, 예수를 죽이라!” 소리쳤던 군중들처럼 무지한 자가 되지 맙시다. 성경을 잘 배워서 예수님을 잘 배우도록 합시다
성도를 가볍게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순간에도 세상이 보기에 초라한 교회 안에, 초라한 여러분의 가족들과 초라한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못박듯이 성도들을 가볍게 대하지 맙시다. 모든 성도들을 나보다 낫게 여깁시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교회와 가정을 섬기는 직분자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2. 십자가에서 죽으심: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심(17-4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힘이 없으셔서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능력있게 이루셨습니다.
1) 십자가에 달리신 유대인의 왕 (17-22절)
예수님은 다른 두 범죄자 사이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달리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히브리어, 로마어, 그리스어로 팻말을 달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다).”(19절) 21절에 유대인들이 그 말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바꾸어 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22절에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라는 사실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2)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눔 (23-24절)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말씀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약의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24절에 군인들이 옷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시편 22:18에 예언된 내용입니다.”저희들이 내 옷을 제비 뽑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자기들의 옷이 빼앗기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의로운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 주셔서 예수님께서 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3) 새로운 가족 : 예수님의 어머니와 제자 요한 (25-27절)
예수님께 배울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십계명의 첫 돌판(1-4계명: 하나님에 대한 의무)을 지키시면서 둘째 돌판(5-10계명)을 지키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라(5계명)는 말씀을 지키시려고 합니다. 자신의 친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요한은 그때부터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한 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공덕으로 하나가 된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연합해서 하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 자매들입니다. 한 가족이 된 성도를 영적으로 섬길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섬기는 일을 계속합시다.
4) 예수님이 죽으심 (28-30절)
28절에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신 포도주를 스펀지와 같은 것에 적셔서 막대기에 달아서 예수님의 입에 댔습니다. 그것은 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취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시편 69:21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목마를 때에 그들이 신 포도주를 나에게 주었다.” 이 예언은 구약의 의로운 자가 고난 가운데 부르짖던 기도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을 시편 22편(“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통해서 미리 나타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성도들이 당한 고통에 비교할 수 없기 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십자가에서 이루십니다. 고난을 받으시면서 구약의 성도들을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그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고난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비난해도 그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공덕이 될 뿐 아니라, 이렇게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는 공덕이 됩니다.
5) 죽으신 예수님의 뻐가 꺾이지 않음과 요한의 복음 증거 (31-37절)
33절에 군병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군인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분의 몸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34절).
36절에 그것은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 12:46에 유월절 어린 양을 먹을 때는 뼈를 꺾지 말라고 했습니다(민수기 9:12도 참조). 출애굽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다 심판 받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뼈도 꺾이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 것을 기억하게 하는 명령입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세상과 같이 심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드려지신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찬양합시다.
37절에 로마 군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찔렀습니다. “저희가 찌른 자들을 보리라”(스가랴 12:10)는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성취하셨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찌른 것을 회개할 날을 예언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슬퍼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증거합니다.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것입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썼을 때,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과 또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찌른 자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보면서 심판받을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7, 다니엘서 8:1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약의 출애굽기와 예언서와 시편에서 예언된 것들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심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예언을 이루시는 것을 말하는 그 중간에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은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자기가 직접 보았다고 말합니다. 35절입니다. “이를 본 자(요한 자신)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그로 자기의 말한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의 죽음은 증인들이 목격한 역사적,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우리 안에 주관적인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죄용서의 은혜를 믿음으로 붙잡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우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갈라디아서 3:1)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끝나지 맙시다”(갈 3:3).
3. 장례 : 믿음의 행동 (31-42절)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그 동안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것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유대의 국회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 두 사람이 예수님의 장례를 치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지금까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숨겨 왔습니다. 이제는 용기있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받아옵니다. 전에 밤에 예수님께 나아 와서 하나님 나라를 배우던 니고데모(3장)도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져왔습니다. 34kg이나 되는 많은 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품위있게 장례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지위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회개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 십자가의 이야기를 동화책처럼 읽지 맙시다. 십자가는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일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으실 때 하늘의 법정에서 저주를 받으심 : “그리스도는 죄가 없지만 세상의 재판장에게 정죄를 받으셨으며, 이로써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8 문답)
유대인들과 빌라도는 자신들의 인간적 생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가 당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담당시키셨습니다.
십자가가 우리 눈 앞에 밝히 보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죄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합시다. 천국에 갈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 의지합시다.
사람들의 비겁함을 본받지 맙시다 :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빌라도처럼 세속적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신앙에 들어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바리새인, 대제사장들과 같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군중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해서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면서 비진리로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오히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한때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며 믿었지만, 이제 공개적으로 믿으면서 자기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용기있는 자가 됩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그는 십자가에서 용기있게 침묵하시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도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시면서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요한처럼,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십자가 때문에 모든 성도들을 한 가족으로서 받아들입시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굳게 믿읍시다. 그리스도를 위해 형제 자매를 향하여 고난받고 낮아지고 조건없이 희생합시다. 남을 항상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를 쏟아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기뻐하고 즐길 수 있기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빌라도처럼 자신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신앙을 가볍게 여기는 일은 없습니까? 나를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시고 죄용서 하시고 부활하여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나는 오늘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
오늘 고신교회 위한 기도제목
-충청서부노회 47개 교호(조직12,미조직30,기도소5)가 말씀과 기도로 성장하도록 -새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나 자신과 우리 교회,그리고 고신교회가 예배와 교회를 개혁해가는 주체가 되도록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3장과 19장이 비슷함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 죄를 지시고 용서하신다는 것을 미리 말했습니다. 그것들이 19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3장 19장에는 같은 단어, 비슷한 장면들을 통해 이 점을 보여 줍니다.
1) “보라, 어린 양”(1:29) ”보라, 너희 왕”(19:14):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3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는 것이 1:29에 나옵니다. 오늘 19:5에도 빌라도가 섭리 가운데 “보라, 이 사람이로다”, 19:14에 “보라, 너희 왕이로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증거하셨습니다. 이제 빌라도의 입을 통해서도 신비롭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2)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2장)-옆구리에서 흘러 나온 물과 피의 표적
a)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제자가 다 나옵니다. 오늘 25-26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자매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2:4에서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목이 마르다”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여자여” 하고 부르시는데 오늘 26절에서도 “여자여” 하고 부르십니다. 2장에서는 어머니에게 “나와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며 그대라고 부르는데 오늘 27절에 제자에게도 “그대”라는 말을 씁니다.
b) 이미지도 아주 비슷하게 연결됩니다. 그때 사람들이 포도주가 없어서 난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혼인잔치에 기쁨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그리스도 자신이 목마르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갈증이 있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목마르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장 좋은 단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는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아서 입에 적시셨습니다(19:29). 신 포도주를 입에 대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셔서 우리를 위해 천국의 어린양 혼인잔치 포도주를 주십니다.
c)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에 창에 찔린 허리에서 포도주 보다 더 붉은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19:3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드리시면서 쏟으신 피와 물을 통해 우리를 위한 참된 기쁨의 잔치,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선물로 주십니다.
3) 니고데모,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3장)-옆구리 물과 피, 니고데모(19장)
3장에는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십자가에서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39절에 니고데모를 소개할 때에도 ”일찍 밤에 나왔던 니고데모” 하며 3장 이야기를 연결합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물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3:5)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물과 피가 나옵니다. 전에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거듭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전에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공개적으로 나옵니다. 왕에게 드리는 몰약과 침향을 섞어서 예수님께 드립니다. 또 제사장이 입는 세마포로 예수님의 몸을 쌉니다. 대제사장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4) 예수님의 몸-예수님의 시체, 성전(2장)-시체(19장): 또 2장 후반부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성전을 깨끗케 하실 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만에 짓겠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킴이라.”(2:21) 육체(쏘마)라는 말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시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1:31, 38, 38, 40)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몸을 참된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참 성전이자 참 제사장이고 참 제물이신 예수의 몸에 향유를 부어서 예수님을 참 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요한복음 1,2,3장에 미리 예견된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5) 세상 죄를 지고 가심(1:29), 십자가에 달리심(19:15), 시체를 가져감(19:40)
세상 죄를 지고 가심(1:29): 요한복음 1:29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세례 요한이 증거했습니다. 지고 간다(아이로)는 없앤다는 뜻도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냥 육체적 고통을 당한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세상 죄를 지시는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장면, 고통스러워 하시는 모습 등은 아예 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집중하여 말합니다.
“없이 하소서”(19:15, 아이로):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향해 소리 쳤습니다. “예수를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유대인들은 예수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없애려고 십자가에서 예수를 못박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탐욕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우리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없이 함으로써 우리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시체를 치운다(19:31, 아이로). 가져 간다(38절 두 번 사용):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31절).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말하여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 갔습니다”(38절 두 번).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아이로”라는 말이 예수님에 대해 5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인격,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없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며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참 신비한 일입니다. 참 인간이고 참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저주와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복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발가벗겨지심으로써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이 말하는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1-3장에서 그림처럼 보여 주었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