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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요한복음 20장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예수님: 부활하셔서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과 능력으로...2022-4-15, 금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4.14|조회수171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20장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예수님: 부활하셔서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과 능력으로 땅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으라

(찬송가 161장)

2022-4-15,

맥락과 의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0장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았습니다. 눈으로 본 사람들이 증언해도 그들은 믿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전에,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분이 죽으실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실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장은 그들이 온전한 부활의 믿음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도 역사적 사실을 다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믿고 부활 생명 누리기 바랍니다.

 

1. 빈무덤을 본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와 요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심 (1-18절)

1) 예수님의 무덤을 막달라 마리아베드로와 요한 (1-10)

1절에 안식일(토요일) 후 첫 날(주일)입니다. 이른 아침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1절)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요한복음을 쓴 요한)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두 제자는 무덤으로 달려왔습니다. 새벽부터 달리기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5,6절) 몸을 쌌던 수의는 예수님을 눕혀 두었던 그 곳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몸만 빠져 나가셨습니다. 머리를 감쌌던 천은 곱게 개어져 머리맡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누군가 훔쳐 갔다면 수의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혹은 어지럽게 널려 있었을 것입니다. 8절에 요한은 그때야 믿었습니다. 베드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요한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것을 믿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전해준 소식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9절에 그들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것처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참된 의미를 아직은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육체로 부활한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에”(그러므로) 두 제자는 자기 집으로 각각 돌아 갔습니다(10절). 믿었지만, 믿음이 부족해서 허무하게 돌아갑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구약 성경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눅 24:44-47). 예를 들면 시편 16:10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니이다”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나중에 사도들은 이 말씀을 깨닫고 구약 성경 말씀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사도행전 2:27인용). 승천하신 후, 성령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주(여호와)와 그리스도”(행 2:36)이심을 깨닫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첫 날, 제자들은 아직은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제자는 각각 자기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2)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그녀는 제자들에게 증거 (11-18)

두 남자는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1절에 마리아는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실 것을 믿었다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 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녀는 동산지기로 착각했습니다. 그분께 “당신이 여기 있던 시체를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말해 주세요”(15절)라고 합니다.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죽어 있는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야.” 익숙한 음성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선생님!”

주님은 마리아의 믿음에 부족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의 깊이를 아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그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17절에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내가 올라간다.” 그리고 마리아를 부활의 복음의 첫 번째 증인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신실하게 증인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주님을 본 것과 주님께 들은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요한은 마리아가 전해준 복음을 기록했습니다(요한복음). 증거의 말씀이 우리에게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습니다. 인생을 참 비참하게 살았던 여자입니다. 귀신때문에 정신없이, 품위없이 살았습니다. 주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성도들과 함께, 주님과 제자들을 따라 다니면서 식사를 섬겼습니다(눅 8:1-4).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남자들은 빈무덤을 보고도 돌아갔지만 이 여인은 믿음이 비록 부족해도 예수님을 바라고 사랑하는 심정으로 그 무덤에 남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사랑을 받으시고 그녀를 들어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무시당하던 한 여자가 남자들(제자들)에게 부활의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교회의 공식 사도와 증인으로 세우셨지만 그들이 교만해질까봐 그들을 낮추셨습니다. 사도들은 비천한 여인을 통해서 첫 부활의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전해야 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이 시대 주님께서는 자기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쓰지 않습니다.

17절에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내가 올라간다.” 마리아가 “선생님”으로 불렀던 예수님은 하늘로 가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을 형제로 부르십니다. 우리를 형제 자매로 부르시는 예수님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사랑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가지만 아버지께서 이제 너희 아버지다.” 이 말씀 속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다 들어주겠다는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연약한 우리들, 인간적인 것을 보지 마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내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주심 (19-31절)

1) 10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19-23)

이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여 문을 꼭 잠그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으로 쑥 들어오셔서 말씀하십니다.  19절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21,26절에도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화는 종합적인 복입니다. 우선 마음의 평화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먼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주십니다. 그 결과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서도 평화와 번성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먹고 마시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는 종합적인 평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오신 것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서신은 항상 “은혜와 평화가 여기에 있을지어다”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오시기 때문에 평화가 있고, 은혜로 오셔서 평화를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음속의 평화가 없고 흔들립니까? 다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제자들에게 특별히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22절에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하시고 23절에 제자들을 보내시며 “누구 죄든지 사하면 사해질 것이요 죄를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교회가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믿고 죄 용서를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죄 가운데 그냥 있습니다. 말로써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권위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더 큰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2) 도마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심(26-31)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에 도마는 거기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의 복음 말씀을 전해주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내 손을 그분의 못자국 구멍에 집어넣어 보아야 되겠다, 손가락을 허리에 집어넣어 보아야 하겠다, 그래야 믿겠다”고 우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자 네 손가락을 내 몸에 집어넣어 보아라.” 도마는 28절에 고백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주님께서 믿음이 약한 도마에게 다시 믿음을 일으키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 손의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지도 않고 그냥 “나의 주며 나의 하나님입니다” 하고 믿었습니다.

29절에 예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됩니다. 제자들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우리에게 직접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시지 않으십니다.  환상으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나시지도 않으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말씀만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전하는 자와 받는 자 모두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립니다. 우리에게 지금 교회를 주셔서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3. 요한복음의 목적: 예수 이름을 믿고 생명을 누리도록(30-31절)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둘째, 그것의 목적은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분은 우리 영혼에 나타나시고, 부활 생명을 풍성히 주십니다.

 

믿고 복종할

지금 우리들은 사도들보다 더 복됩니다. 구약 성경,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 사도들이 성령님을 통해 받은 말씀들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우리들은 참으로 복됩니다.

믿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지금도 평화를 주십니다. 성령으로 함께하셔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여서 주신 평화를 마음에 깊이 누립시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육체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지만 말씀으로 믿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약속대로 지금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믿음을 주십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다고 믿음이 흔들리지 맙시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없어도 주께서 주신 은혜는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이나 물질이나 다른 어떤 축복이 없다 할지라도 주께서 주신 영적 복을 붙듭시다. 이것 때문에 즐거워합시다. 이 땅의 고난도 어려움도 주께서 함께하시니 영적인 복 때문에 이기고 나갑시다.

입을 열어서 가정에 이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합시다. 이웃에게도 복음을 나누길 바랍니다.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빛이 이웃 사람들에게 찬란히 드러나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된 평화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고신교회 위한 기도제목

-고신총회가 주최하고 고려신학대학원총동창회가 주관하는 2022년 제13회 전국목사부부수양회(4월 25일(월)~27일(수))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고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붙들고 승리의 삶을 살도록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믿음

믿음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9절에 예수님의 빈 무덤과 남겨진 수의를 보고야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10절은 아직 성경의 증거를 통해서 그 부활의 의미와 축복을 깨닫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27절에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고 29절에 “너는 보고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 하십니다

 

<참고>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것과, 그 결과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할 것이라고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이 온전한 부활의 믿음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9절에 예수님의 빈 무덤과 남겨진 수의를 보고야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10절은 아직 성경의 증거를 통해서 그 부활의 의미와 축복을 깨닫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부할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27절에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29절에 “너는 보고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 하십니다. 도마와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아야만 했습니다. 보고서 증언을 남겨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개인적으로 한 성도로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됐습니다. 구약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믿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보지 못하고 믿어야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체나 외모가 어떠했는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그분은 참된 사람으로서 분명히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보통 유대인의 모습으로 계속 계신다면 키는 160cm정도, 눈은 검었을 것입니다. TV같은 데서 예수님의 뼈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몸을 가지신 분으로 승천하셨는데 어떻게 이 땅에 그분의 몸의 한 부분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이 그분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왔다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참 인간이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육체적 모습을 이 땅에서 눈으로 보는 환상만 추구하는 사람은 엉뚱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17절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십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하는 것도 만지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져서 감각으로 그분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본질은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고 내 하나님이라 부르십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땅에 오셔서 땅에 있는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죄를 없이 하시고 우리들을 안으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셔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기 전의 몸과 다릅니다. 분명히 육체적인 몸이지만, 이전과 같이 힘이 없고 약한 몸이 아닙니다. 영광 가운데 있는 몸입니다. 권세와 능력이 가득한 몸입니다. 그 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은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누리십니다. 그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는 우리들에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기를 원하지 말라. 기록된 성경을 통해 믿으라.” 신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지금도 성령님과 그분의 신성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신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연합하십니다. 더 가까이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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