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제자들을 먹여 힘주시고, 베드로를 용서하여 고난의 직분을 준비시킴,
남의 일 간섭 말고 자기 직분 집중하라
(찬송가 165장)
2022-4-16, 토
맥락과 의미
20-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20장에서는 성령님을 주시고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21장에서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앞으로 주님의 양을 먹이는 사명을 주십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믿음으로 그 사명을 다하도록 확신을 주십니다. 그래서 21장은 요한복음 전체의 결론으로서 잘 어울립니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생선과 떡을 먹여서 힘 주심 (1-14절)
1절에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호수를 말합니다. 2절에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제자들이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고기 잡으러 간 것을 두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 길을 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앞쪽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역을 명했지만 오순절 성령님 오신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자기 생업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일상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3절에 그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의 장면과 비슷합니다. 일반 생업을 하던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듯이, 성령께서 오셔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생업을 하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
4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그냥 나타나셨습니다. 6절에 그냥 “오른쪽으로 던져보십시오. 그러면 고기를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정말로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7절에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 바로 이 복음서를 쓴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다 하고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소리쳤습니다. 열정의 사람 베드로는 그대로 물로 뛰어내렸습니다. 겉옷을 입은 채 헤엄쳐서 예수님께 갔습니다. 한 90m 정도(50칸)되는 거리였습니다(8절).
9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생선과 떡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제자들이 잡은 생선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준비한 생선과 떡입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떡과 생선으로 먹이셨듯이(6장), 제자들을 위해 생선을 구워 먹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피우신 이글거리는 아침 숯불을 보면서 베드로는 그분이 심문당하시던 그날 그가 불을 쬐면서 그분을 부인했던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12절에 “아침을 먹으라.” 제자들은 주님인 줄 알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 때에도 그렇게 떡을 가지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유월절 성찬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일종의 성찬을 집행하시면서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준비한 생선에 제자들이 잡아온 생선을 합쳐서 식사를 준비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사역에 제자들도 참여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지시한 대로 할 때 얻은 그 생선을 예수님의 생선에 합쳤듯이, 제자들을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과 성찬의 집행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성령님을 보내시고 그리스도의 선물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그리스도깨서 주신 것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먹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죽음의 바다로부터 육지(땅, 11절)로 올라왔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땅(앱 4:9)으로 내려왔다가 하늘로 다시 올라가시는 것과 연결됩니다. 20:17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늘로 올라가셔서 성령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성령님과 능력으로 일하실 때, 베드로는 그 천상 사역의 대리자로서 땅에서 지상 사역을 할 것입니다.
바다 위 배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먼저 들은 사람은 요한이지만, 베드로가 먼저 바다에(7절) 들어갔습니다. 무덤 안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20:6). 바다에 뛰어들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덤 속을 연상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며 배신한 자신의 죄와, 그 죄로 인한 죽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바다에 뛰어 든 그는 육지에 먼저 와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다시 달려 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선을 “가져오라”(10절) 하십니다. 사람들이 베드로를 ‘데려갈’(18절) 것입니다. 두 단어는 같은 단어 입니다. 이 말은 구약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에 쓴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몸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의 삶을 감사의 제물로 드립니다. 헌신의 제물로 바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인 교회를 세워 갑니다.
예수님이 준비한 숯불 위의 생선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추가하는 숯불위의 생선은 제자들의 고난의 불꽃이요, 영광의 불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더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분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을 때 우리와 친교를 나누십니다. 영적으로 허기진 우리 영혼을 먹이시고 새로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하나님께 받아야 할 우리의 저주의 무덤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의 멸망의 바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봅니다. 베드로보다 더 예수님을 부인한 우리들에게 주님 나라를 위해서 희생의 수고와 헌신을 하도록 불러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봅니다.
2. 베드로의 회복: 용서하심, 고난의 직분을 위해 준비시키심 (15-19절)
식사 후에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15절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16절에 두 번째로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렇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태도는 전에 자신만만한 태도와 다릅니다. “주님이 죽는 데로 가더라도 저는 싸워서 막겠습니다” 하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 상태를 아시고 나의 능력도 아십니다”라 합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복종하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주님께만 의지합니다.
17절에 세번째 또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아시오매 내가 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새 번이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베드로는 그날 밤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주님은 세 번이나 물으시고 사랑의 고백을 받으십니다. 그렇게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있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사도의 직무를 다하도록 힘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배반한 모든 제자들에 대한 용서이며 사명 주심입니다. 우리도 죄를 회개할 때 주님은 과거를 덮어주십니다. 오히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사명을 주십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앞으로 당할 고난을 준비시킵니다 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런 뜻입니다. “젊을 때는 너 자유대로 많이 했지만 이제 복음의 부름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복음이 부른 대로 해야 할 것이다.” 19절에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가르키심이라.’ 주님 위해서 고난받고 일하다가 마지막으로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미리 예고하시고 준비시켰습니다.
우리는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나이가 들면 은퇴해서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은퇴 자금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저축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베드로의 예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일합니다. 일하다가 죽습니다. 주님 나라의 군인들은 천국에 갈 날까지 이 땅에서는 계속 주님의 군대에서 싸웁니다. 직장에서 은퇴하더라도 계속해서 가정을 세울 사명이 있습니다. 손자 손녀를 세웁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우리에게 은퇴는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게 힘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모욕당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베드로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신 사명의 길에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죽음과 고난을 이기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 능력 가진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소명 앞에서 두려워하지 맙시다. 뒷걸음치지 맙시다. 두려운 마음 있더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베드로처럼 망가지고 흠이 있는 사람을 주님은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다른 순교자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믿음으로 소명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우리도 두려움 때문에 물러서지 맙시다. 오히려 주님 의지하여서 우리 길을 걸어갑시다.
3. 베드로: 남을 보지 말고 자기 직분에 충실하여 열매 맺으라 (20-23절)
20절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제자가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21절에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묻습니다. 22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칼빈 목사님도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길게 감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지로 해설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될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에 대해서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칼빈 목사님 시대도 그랬고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줄 세우기에 경쟁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면,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직분에 대해선 집중하지 못하고. 사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베드로처럼 특별한 고난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고난의 길에서 충성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힘이 빠집니다. 주님의 일로부터 생각이 분산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총사령관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전쟁에서는 지휘관이 지정해 준 위치에서 열심히 싸우면 됩니다. 다른 사람 일에 지나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죄로 나갑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잘 할까, 상을 받을까?’ 하는 관심 이상으로 호기심을 가지지 맙시다. 불필요한 호기심을 잠재우고 오직 나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길 바랍니다.
23절에 의하면 이 말에 대한 오해가 나중에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올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잘못된 소문이 났습니다. 원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할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과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오해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주께서 주신 말씀만을 딱 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4. 요한복음의 저자에 대한 인정 (24-25절)
24-25절은 요한 복음을 쓴 사도 요한에 대해 제3자가 공인하는 말입니다.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즉 ‘예수의 품에 안겼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20절, 요 13:25), 사도 요한이 이 책의 저자라고 말해 줍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은데 다 기록하면 세상이라도 다 두지 못할 것이라.’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주신 것만큼으로 만족합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만큼 주셨습니다.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너희로 믿고 그분의 이름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과도하게 많이 알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머리가 아프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구원에 필요한 것만 여기에 적어 놓으셨습니다. 예언이나 신기한 일을 쫓아가지 맙시다. 신실하게 성경 말씀에 기록된 말씀을 잘 따를 때 오류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먹여주시고 힘주신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시다.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다할 때 우리는 크고 작은 순교자로서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제자들 보다 더 죄인이요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도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베드로는 일생 동안 자기를 부인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 (19절). 우리에게도 고난 가운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은혜 주신 것을 기뻐하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말고 나에게 맡겨주신 직분, 개인과 가정과 직장의 일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로 모든 것을 하며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체 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다시 나에게 찾아 오셔서 용서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새롭게 하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 기도하고 순종합시다. |
오늘 고신교회 위한 기도제목
-은퇴목사님들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평안케 하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퇴목사님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도록 -한 아기로 임마누엘 하신 예수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땅 끝까지 전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 사역 전체의 요약
9절 생선 (옵사리온, 9, 10, 13)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나오는 생선이라는 단어와 똑같습니다(6:9,11). 들판에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위해 생선을 굽기까지 하셨습니다.
<참고>9절 숯불 (안트라키아)
주님은 숯불(안트라키아)에 생선을 구웠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 대제사장의 뜰에서 피워져 있던 그 숯불과 같은 단어입니다(18:18). 이글거리는 아침 숯불을 보면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날 저녁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참고>13절, 떡을 가져서(람바노) 주다(디도미)
13절에 예수님께서 떡을 가져서(람바노) 주셨습니다(디도미).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때에도 ‘떡을 가지사(람바노) 나뉘 주셨습니다(디아-디도미).’(요 6:11) 또 예수님께서 유월절 성찬을 행하실 때도 ‘떡을 가지고(람바노) 떼어 주셨습니다(디도미)(눅 22:17).’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일종의 성찬을 집행하시면서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제자들과 한 식사는 광야에서 무리들을 먹이심과 십자가 달리시기 전날 성찬 예식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것들을 제자들의 책임으로 넘겨주고 계십니다.
<참고>7절, 베드로가 바다에 안으로(에이스) 뛰어내린 것
바다 위 배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먼저 들은 사람은 요한이지만, 바다에 (에이스, 7절) 먼저 들어간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요한복음 21:6절에서 요한이 무덤에 먼저 왔지만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에이스) 먼저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배신한 자신의 죄와, 그 죄로 인한 죽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와 죽음의 무덤으로부터 베드로를 나오게 했습니다. 이번에도 죄와 죽음의 바다에 뛰어 든 그는 육지에 먼저 와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다시 달려 갑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시면서, 하늘에서 성령님과 능력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천상 사역의 대리자로서 땅에서 지상 사역을 할 것입니다.
<참고>11절 베드로가 올라온 것 (아나-바이노)
고대에 바다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베드로는 죽음의 바다로부터 육지 (게, 11절)로 올라옵니다(아나-바이노). 20:17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아나-바이노)’ 하실 때 쓴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땅(게, 엡 4:9)으로 내려 왔다가(카타-바이노)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아나-바이노, 엡 4:8,9).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보내시고 그리스도의 선물을 내려 주실 때(엡 4:7-9) 제자들은 그리스도깨서 주신 것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먹일 것입니다.
<참고> 생선을 가져오라 (페로, 10절) , 베드로를 데려가(18절)
18절에서 베드로를 사람들이 ‘데려가’(페로) 핍박하고 순교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준비한 숯불 위의 생선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제자들이 추가하는 숯불 위의 생선은 제자들의 고난과 영광의 불꽃을 상징합니다.
‘가져온다’(페로)는 구약 성전에서 제물을 ‘가져오는’(히브리어-보, 헬라어-페로, 레위기 2:2, 4:28등) 것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삶을 감사의 제물로, 헌신의 제물로 바쳐드립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인 교회를 세워 갑니다.
<참고>8절 배를 끌고 ‘와서’ (에르코마이)
요 21:8 제자들이 배를 끌고 ‘왔습니다.’ 구약에서 제물을 가져온다는 것을 표현하는 또다른 단어가 이 단어입니다(같은 히브리어가 ‘페로’와 ‘에르코마이’로 번역됨). 제자들이 바다로부터 예수님께서 계신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의지하여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해 나오는 이미지입니다.
베드로가 죽음의 바다로부터 육지(11절)로 올라왔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땅(게, 앱 4:9)으로 내려왔다가 하늘로 다시 올라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