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장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는 의를 행하는 열매를 맺는다
(찬송 6장)
2023-11-24, 금
맥락과 의미
요한일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신비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가르칩니다. 요한 일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나신 바 된지라”(1:1,2).
1장은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사도들에게 친교-사귐-공동체 (코이노니아)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사도의 공동체 안에 “너희” 즉 교회도 참여합니다. 신과 인간의 공동체인 교회를 이룬다고 말했습니다. 이 진리를 알고 친교를 누리는 자들은 빛 가운데서 의로운 삶을 삽니다.
1장에서 진리를 아는 것과 의를 행하는 것이 삼위 일체 하나님 안에서 교회에 주신 축복이라고 가르친 것을 2장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승천하여 계시면서, 오늘도 말씀을 듣고 읽는 우리에게 계속 빛이 되시고(8절), 생명이 되십니다(25절).
1. 빛 가운데 행하라. 그러나 죄를 범하면 속죄제물-예수(1-2절)
2. 그리스도를 믿고 죄용서 받는 자는 진리의 계명을 알고 행함 (3-17절)
3. 성령님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아는 자는 의를 행함 (18-29절)
1. 빛 가운데 행하라, 그러나 죄를 범하면 속죄제물-예수(1-2절)
2장은 1장에 이어서 말합니다. 2:1은 이 편지로 가르치는 이유는 “너희가 죄를 범치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절). 그러나 우리는 자주 죄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계속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언자가 되셨습니다. 즉 변호사가 되셨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화목제물은 보통 화목제물이 아니라 “속죄제물”을 말합니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 들어가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뵙습니다. 백성의 대표자로 만납니다. 구약 대제사장은 오실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보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의 참 성전에서 우리를 대표하십니다. 우리를 대신하십니다. 자신의 피를 통해 하늘의 지성소, 하늘 보좌로 올라가고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는 죄용서 받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계셔서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 죄를 용서함을 얻어 주십니다. 계속 하여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십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중보자로서 나타나십니다.
2. 그리스도를 믿고 죄용서 받는 자는 진리의 계명을 알고 행함(3-17절)
1) 옛 계명을 지켜 행함(3-6절)
죄용서 받은 자는 그 계명을 알고 지키는 것으로 온전케 됩니다. “온전케 됨”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다(마 5:48)는 뜻입니다. 또다른 의미는 구약의 제사장을 “위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제사장 된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교회가 바로 새로운 성전입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왕으로 다스리는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사역지는 세상입니다.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립니다”(롬 12:1).
2)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새 계명: 형제 사랑, 빛 가운데 행함 (7-17절)
7-11절: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7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옛 계명”입니다(7절). 이미 구약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다시 새 계명을 쓴다”고 말합니다(8절). 서로 사랑하라는 옛 계명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서로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의 계명을 이렇게 요약하여 가르쳤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서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가르치고 이루신 그 옛 계명=새 계명을 요한은 다시 “새 계명”으로 씁니다. “참 빛이 벌써 비췬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한다”(8,10절). 성령님의 감동으로, 교회의 상황에 맞게 더 풍요롭게 가르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12-17절: 계명을 지키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다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17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죄 사함을 알았고”(12절) “악한 자를 이긴 사람들”(13절)입니다. 우리는 계속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 받으면서 악한 자, 마귀를 이깁니다. 죄를 이깁니다. 거룩한 삶을 삽니다.
이를 위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16절)을 사랑하지 않고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탐욕)이 문제입니다.
성취욕, 자기 실현욕구, 물질 성취의 욕구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것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악한 탐욕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생각하지 않고 욕심만 채우면 결국은 우상 숭배가 됩니다.
모든 사람은 들풀과 같습니다. 사람의 영광스런 성취는 들풀의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이 땅에서 성취가 적어 보여도 영원히 거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로다”(이사야 40:7).
이 세상이 풀과 같이 지나간다는 이 고백은 세상을 대충 그냥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정욕을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힘껏 행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영원한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 힘껏 수고합시다.
3. 성령님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아는 자는 의를 행함 (18-29절)
18-25절: “말세에 적 그리스도”가 일어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마 24:5, 24) 요한의 때에 말세의 현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세는 한 순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신 이후 재림하여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말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18절).
초대교회 안에 있다가 떨어져 나간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22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자들입니다(4:2). 예수라는 사람은 하나님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 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22,23절) 우리들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합니다(24절). 삼위 일체 하나님 안의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합니다(25절).
26-29절: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고 그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주(예수 그리스도)께 기름 부음 받음”이 우리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27절). “거룩하신 자(아버지 하나님)로부터 기름 부음” 때문에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20절).
성령으로 기름 부음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께서 우리를 가르치므로 우리는 아들을 알고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실제로 계신 삼위 일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27,28절). 그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줄을 알고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난 자인 줄을 압니다(29절).
믿고 복종할 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 예수가 되었음을 압니다. 우리를 구원할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 진리를 압니다. 하나님과 친교를 누립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는 의로운 일을 행합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고 하셨습니다. 먼저 희생적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모범을 따라 서로 사랑하라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영원까지 이르는 생명”과 “빛”이 있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 12:25,35).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요한복음에 기록했고 요한일서 편지 성경에서 반복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서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삽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요일 2:8, 25).
“말로 복음을 전하는 시대가 끝났다, 우리 시대에는 윤리적 실천과 사랑만이 먹힌다” 요즘 이런 말을 하는 교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잘못된 말입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더욱더 계시된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고 즐거워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 기초 위에서, 더욱더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형제를 사랑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 갑시다.
성령님이 맺으시는 열매가 우리 안에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을 의지합시다. 오직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 진리를 풍성히 앎으로써 의의 열매가 풍성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바로 우리의 고백과 행함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밝게 살아갑니다. 그 빛을 세상에 다시 비춥니다. 교회와, 우리 가정과, 우리 직장, 이 시민 사회 안에 비춥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빛입니다. 행동하는 빛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의 소금입니다. 생기 잃은 세상 가운데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고 생명을 전해줍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대언자(파라-칼레토스)
대언자(파라-칼레토스)는 변호사라는 뜻입니다. “위로하는 (파라칼레오) 자”라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 5번 나오는데 요한 복음에는 4번, 요한일서 2:1에 한 번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보혜사”라고 합니다(14:16,26, 15:26, 16:7,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
성령님에 대해 보혜사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대언자, 14:16)이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첫 번째 보혜사(대언자) 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고, 이 땅에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십니다.
<참고> 2절, 죄를 위한 화목제물
“죄를 위한”(페리 하마르티아)이라는 표현은 “속죄제”를 말합니다(레 4:3, 롬 8:2).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은 보통 화목제물(평화의 제물)이 아니라 지성소 안의 “속죄소”(법궤 뚜껑, 출 25:17-23, 롬 3:25은 화목 제물로 번역, 히 9:5)를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속죄소에서 들어가 속죄제의 피를 뿌립니다.
<참고> 2절, 아버지 앞에
아버지 앞에서(프로스: ~을 향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0:17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셨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을 향하여(프로스) 올라간다”는 “나의 형제들을 향하여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사도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해 들은 사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마리아가 전수하고, 사도들이 전해준 말씀을 교회는 계속 배웁니다.
이 땅에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인 교회를 향하여 가서 그 말씀을 배웁니다. 바로 이 순간 하늘에서 몸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나타나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이 땅에서 말씀을 배우는 성도는 이 땅에서 계속 하나님과 아버지께 나가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함께 배우는 형제 자매를 향해서도 사랑으로 나갑니다.
<참고> 5절, 온전케 됨
죄용서 받은 자는 그 계명을 알고 지키는 것으로 온전케 됩니다. “온전케 됨”(텔레이오오)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다(마 5:48)는 뜻입니다. 또다른 의미는 구약의 제사장을 “위임”하는 것을 말합니다(출 29:9,29,33,39, 히브리어로는 “말라아 야드”. 손/능력을 충만하게 한다는 뜻).
<참고>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의 바른 의미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27절)는 말이 종종 악용됩니다. 이단들과 종교 사기꾼들은 자기들이 만든 생각을 성령님의 것으로 주장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를 가르치는 참 선생님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사도가 전한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교회를 가르치십니다. 요 16:13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내실 성령님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그(성령님)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내(예수 그리스도)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겸손의 영입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은 사도를 통해서 받은 말씀과 성령님 외에는 아무도, 무엇도 교회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도가 가르친 요한일서와 같은 계시된 말씀을 잘 읽고 정통 교회의 전통에서 잘 배우는 가운데, 성령님으로부터 우리는 배웁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진리를 보존해 왔습니다. 성령님을 받았다 주장하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자들은, 성경 말씀을 과거와 우리 시대의 선생들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완고한 자들에게 배우지 말라고 오늘 말씀은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 겸손히 말씀을 전하는 말씀의 직분자들로부터 잘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