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개론
이사야와 선지서를 열왕기하 다음에 읽는 이유
오늘부터 가정기도회에서는 이사야와 선지서를 읽습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사야가 열왕기하 다음에 나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순서를 지금과 같이 열왕기상.하 다음에 역대상.하가 나오도록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하에 등장하는 왕들의 이야기 중심에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열왕기상.하에 이어서 선지서를 읽는 것이 유익합니다. 선지자들은 왕들의 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참고하면서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이해가 잘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열왕기상.하를 생각하면서 선지서를 읽을 때 이해가 잘 됩니다.
선지서 안에서 이사야서의 위치
이사야는 선지서에 속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나뉩니다. 전선지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로 모두 6권이고, 후선지서는 이사야에서 시작해 말라기까지 총 17권입니다. ‘전’(前)과 ‘후’(後)의 분류 기준은 기록 시기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전선지서를 ‘역사서’(역대상.하 포함)로 묶고, 후선지서를 ‘선지서’로 분류합니다.
또 후선지서를 ‘대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과 ‘소선지서’(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말라기)로 나누기도 하는데 ‘대’(大와) ‘소’(小)의 구분은 책의 분량으로 합니다. 내용의 ‘대’와 ‘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후선지서와 대선지서의 첫 번째 책으로 여러 면에서 으뜸입니다.
제목과 저자
저자 이사야의 이름의 뜻은 ‘주께서 구원하신다’로 이사야서의 내용을 대표합니다. 이사야는 북왕국 선지자인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유다 선지자인 미가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이사야서는 1-39장, 40-66장(성경의 구약과 신약 구분과 비슷함: 39(구)+27(신)=66권), 총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얼른 보면 앞부분과 뒷부분의 시대적 배경이 달리 보입니다. 1-39장은 주전 740-700년에 있었던 앗수르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40-55장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에 대한 위로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56-66장은 그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주전 538년 이후의 상황에서 주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일부 학자는 이것을 두고 “이사야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쓴 책”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선지자 이사야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맞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사야를 수없이 인용하고 있는데(마 3:3, 4:14-16, 8:17, 12:17-21, 13:14-15; 막 7:6-7; 눅 3:4-6; 요 1:23, 12:37-41; 행 8:27-35; 롬 9:27-29, 10:16 등) 그것을 다 이사야의 기록으로 인정합니다.
내용으로도 내적 통일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칭호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표현하는 데 이사야서에 무려 26번이나 나옵니다(구약 나머지 책에 겨우 여섯 번 등장). 이 명칭이 이사야서 전체에 고르게 나오는 것을 보면 한 저자가 기록한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불”로 비유하는데 이것도 전반부와 후반부에 모두(1:31, 10:17, 26:11, 33:11-14, 34:9-10, 66:24) 나옵니다.
역사적 상황
이사야의 예언 활동은 주전 740-681년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웃시야(783-742)와 요담(742-735), 아하스(735-715), 히스기야(715-687)의 치세 때까지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의 사역은 웃시야가 죽던 해에 시작되었고(742년경), 거의 반세기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므낫세(687–642)의 치세 때까지 살았으리라 추정합니다.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이렇습니다. 앗수르(앗시리아)는 유다 북쪽의 아람(732년)과 북 이스라엘(721)을 멸망시켰습니다. 유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펴기도 하고 반 앗수르 정책을 펴면서 전쟁에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701년 앗수르는 유다의 성읍을 정복했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은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믿음을 보시고 앗수르 군대가 떠나가게 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가 계속 종교적 불신앙의 태도를 갖고 사회적 불의를 행하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597년에 (앗수르를 정복한 새로운 나라)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구조
이사야 1-39장은 대부분 이사야가 살던 역사적 상황에서 기록한 것이고, 40-66장은 그의 노년기(681년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측)에 기록했을 것으로 봅니다. 바벨론 포로와 귀환에 관한 메시지로서, 에스겔 선지자가 에스겔 40-48장을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기록한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중심주제
이사야의 중심 주제는 이스라엘의 죄와 벌,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1)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이사야서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는 천사들의 찬송을 듣고서 자기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또한 용서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는데,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복음의 내용도 ‘심판과 구원’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사야서에서 심판과 구원이 교차적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교만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십니다. 또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이사야 41:14)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새로 지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분만을 왕으로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이사야 43:3, 15; 47:5).
2)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과 남은 자
거룩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거룩한 나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비슷할 정도로 타락하였고(1:10), 심지어 임자와 주인을 아는 소나 나귀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1:3).
그들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께 귀찮은 것이 되었습니다(1:14).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의가 나타나지 못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압박하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소수의 사람만이 상층부를 형성하고 자기들의 부를 자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백성을 심판하시되, 그중에 소수의 남은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은 잘린 나무의 밑둥과 같고(6:13) 감람나무에 남은 몇 개의 열매와 같을 것입니다(17:4-6).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딸 시온의 더러움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정결케 하신 후에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모든 길이 시온으로 향하여 나고 만민이 그곳으로 몰려올 것입니다(2:1-4).
3) 기름 부음 받은 종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이 일의 중심에 있는 존재가 바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종’입니다.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면서 장차 있을 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20:3). 그러나 이사야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을 가리키는 인물일 뿐이었고 ‘그 종’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종이 우리 대신 고난을 받음으로써,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영이 이루어집니다. 이사야서 40-55장에는 ‘종의 노래’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53장입니다. 출애굽과 출바벨론의 배경에서 여호와의 종의 사역을 노래함으로써, 앞으로 오실 여호와의 종의 사역이 출애굽과 출바벨론의 완성임을 보여 줍니다.
4) 열방들의 위치
열방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아하스가 하나님 대신 앗수르을 계속 의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을 사용하여서 그 “백성의 머리털과 발 털을 미실”(사 7:20)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동시에, 열방이 교만할 때에는 열방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한 교만은 도끼가 자기를 들어 사용하는 자를 향해 스스로 자랑하는 것과 같고,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조종하려 하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나라를 심판하시는 것이 이스라엘에게는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멀리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민족들도 시온으로 몰려올 것입니다. 민족들이 전쟁을 그치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만족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2:1-4). 교만이 꺾인 세상 나라들도 여호와의 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온 세상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임경근, 김헌수 목사 자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