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장
구약교회와 사회에서 백성의 죄, 지도자들의 부패,
상류층의 사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3장-4:1)
(찬송 391장)
2022-9-21, 수
맥락과 의미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구약 교회와 사회에서 사람들이 당할 일의 비참함이 얼마나 큰 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그분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합니다.
1. 양식과 지도자들이 없음(1-7절)
2. 남의 재산을 약탈하는 지도자의 죄를 드러냄(8-15절)
3. 학대하여 얻은 사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3:16-4:1)
4. 짓밟히는 자와 함께 상하시고 상처를 싸매시는 그리스도
1. 양식과 지도자들이 없음(1-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신뢰하는 것을 빼앗고 계십니다(1절, “제하여 버리”다. 현재 진행). 첫째, 양식과 물을 빼앗습니다. 둘째, 군대를 빼앗습니다. 셋째, 재판관(정치자), 선지자, 장로 등 훌륭한 지도자를 빼앗으십니다. 오히려 어린아이와 젖먹이 같은 자들이 교회와 나라를 다스리게 하십니다. 좋은 지도자는 사라지고 자기 중심적인 유치한 지도자를 세워서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교인과 국민 전체가 서로를 학대합니다(5절).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억압한 것(출 3:7, 5:6,10,13,14)을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에게 반복합니다. 학대는 서로 고리대를 받는 일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신 15:2,3). 젊은이가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며 효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 국민이나 교인 중 비교적 부유한 사람에게 ‘당신은 옷이 있으니 우리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어 주시요’하고 부탁합니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7절) 맹세하여 말합니다. “나는 고치는 자(상처를 싸매 주는 자)가 되지 아니 하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7절). 경제가 넉넉함에도 그것을 교인과 국민과 나누는 희생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치가들이 유치하게 자기 중심적이 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국민이 서로 돕기보다 이기심으로 서로의 재산을 뺏는 시대에, 기업인이 자기 재산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계속 부를 쌓기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8절 이후에서 답을 줍니다.
2. 남의 재산을 약탈한 지도자의 죄를 드러냄(8-15절)
8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구약 교회와 사회가 비참하게 된 원인은 온 백성이 말과 행동으로 여호와를 거슬러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이미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야는 150년 후인 586년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할 것을 멀리 내다보고 예언합니다.
그들, 특히 지도자가, 자기의 악을 감추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 뒤에 숨은 죄악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불경건과 음란과 폭력으로 멸망한 소돔과 같습니다. 백성과 지도자의 죄가 화를 자초하고 있습니다(9절).
그 악한 사회 가운데에서 의인들을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10-11절). 이 모든 일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닙니다. 의인과 악인이 똑 같이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10절)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의인에게는 복을 내리실 것임을 명심하라고 격려합니다. 오직 악인에게만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12절에서 4절의 “학대”라는 단어를 다시 씁니다. 백성이 다른 백성을 학대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마샬’, 관할하는 자, “인도자”, 12절)이 아이 같고 여자 같습니다(여기서 여성은 사회적 경험이 적고 약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상황 판단이 미숙하고 생각이 자기 중심적이며 유치하여 백성을 학대합니다. 노예처럼 대우합니다.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사람이 성도와 국민을 유혹하여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발라아’, 12절)고 합니다. 즉, 길을 갈라지게 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정의를 세워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불의로 이익을 챙기므로 여호와께서 직접 일어서셔서 죄를 심문하고 판단을 내리십니다(13-15절).
백성의 장로와 방백들을 심판하십니다. ‘너희가 백성의 포도원을 삼켰다. 너희 집에 있는 물건은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것들이다’(14절).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 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15절).
가난한 국민들이 낸 세금과 인플레이션으로 정치가들만 살찌우고 있지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재산이나 직업에 따라 법 적용이 차이가 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이 낸 헌금이 교역자의 안락한 삶으로 낭비하지 않도록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3. 학대하며 얻은 사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3:16-4:1)
여호와께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사치하는 귀부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 지도자들의 사치를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목을 길게 늘이고 세운 교만함을 심판하십니다(16절).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사치품을 걸친 그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날에”(18절) 그런 여자들의 머리에 종기가 나게 하고 옷을 발가 벗겨서 수치스럽게 하겠다고 합니다. 고운 얼굴에 칼 자국을 낼 것입니다.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남자들도 전쟁에서 망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이런 재앙이 일어날 때 성문까지도 슬퍼하며 통곡할 것입니다. 남자들이 없으니까 7명의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호소할 것입니다. 재산은 있어도 남자들이 없는 비참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4. 짓밟히는 자와 함께 상하시며 상처를 싸매시는 그리스도
이사야 53장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백성의 짓밟힘(‘다카아’, 15절)을 짊어지신다고 합니다. “그가 상함은(‘다카아’)는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53:5).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다카아’)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53:10).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상처를 준 죄와, 가난한 자들이 당한 상처와 비참함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짊어 지셨습니다. 사람들이 싸매어 주(‘하바셔’, 7절, 1:6)지 않은 상처를 그리스도께서 싸매어 치료해 주셨습니다(30:26).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싸매어, ‘하바서’)” (61:1). 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말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상처를 싸매시고 교회에 이 일을 계속 하라고 명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우상숭배가 강해지면, 정치가들이 자기 중심적이 되고 가난한 사람을 억압합니다. 구약 시대에 그런 사회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모범적인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참 믿음에서 떠나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뺏는 것으로 부패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국가이면서 교회였습니다. 구약 교회도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심판하시겠다며 경고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계에 거룩한 하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비록 우리의 정치와 경제가 불의하게 되어가지만,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며 참 신앙을 회복합시다. 우리 가정을 바로 세우고, 우리 교회 안에서 주님께서 주신 은사로 말씀을 나누고 물질을 나눕시다. 의와 평화의 사회를 만듭시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성도는 나눔을 실천한 교회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치료해 주시고, 그 치유가 우리의 물질생활과 나눔에 나타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정치가가 유치한 것은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이 심판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주님은 우리 정치가들을 현명하고 따뜻하게 만들 것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지금 우리 교회나 주위에 소외된 사람을 생각해 보며 내가 섬길 일을 실천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2절 인도자(먀살)
인도자 (‘마샬’)은 다스리는자라는 뜻입니다.
<참고> 12절, 어지럽힌다(발라아)
“다닐 길을 어지럽히느니라”(‘발라아’)는 길을 갈라지게 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참고> 짓밟다(다카아 15), 고쳐주지 (하바셔) 않다(7절)
백성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짓밟았습니다(다카아’, 15절).이사야 53장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고통에 참여합니다. “그가 상함은(‘다카아’)는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53:5).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다카아’)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53:10).
사람들이 싸매어 주지(‘하바셔’, 7절, 1:6)지 않은 상처를 그리스도께서 싸매어 치료해 주셨습니다(30:26,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