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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강해

여호수아 7장 아이성 정복의 실패 : 여호와께 불태워 바치지 않은 아간을 불태움 2020-5-26, 화

작성자축제|작성시간20.05.25|조회수1,178 목록 댓글 0

여호수아 7

아이성 정복의 실패 : 여호와께 불태워 바치지 않은 아간을 불태움

(찬송 186, 구찬송가 176)

2020-5-26, 

맥락과 의미

여호수아 7장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백성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2장에 기생 라합과 맹세를 할 때에 진실한 표를 내라, “인자하고 진실하게라고 합니다. “인자와 진실이 원래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입니다. 3장과 4장에서는 언약궤가 요단강을 갈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6장에서도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에 언약궤가 앞서 움직이면서 무너뜨렸습니다.

7장은 여호와의 언약을 어긴”(10, 15) 백성을 벌하시는 내용입니다. 7장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말로 시작하여 진노를 그쳤다는 말로 끝납니다(1,26). 여호와께서 온전히 바친 물건을 아간이 감추었기 때문에 온 백성에게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전에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모든 것들을 불태워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감추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바쳐진다고 경고했습니다(6:18).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1.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입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함(1-5)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바친 물건은 하나님께서 다 멸망시키라고 하신 가나안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것도 자기 것을 취하지 말고 불사르는 것을 여호와께 바친다고 표현합니다. 죄악을 불사르는 것은 하나님께 속죄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다음에 아이라는 성으로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은 말했습니다.  작은 성이니까 2-3천 명 보내면 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2-3천 명만 보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패전했습니다. 36명이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서 물같이 되었습니다(5). 여리고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말을 듣고 마음이 녹았었습니다(여호수아 2:9-1). 이제 거꾸로 되었습니다. 전에는 손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으로부터 정복을 당하고 조롱을 당합니다. 언약을 어긴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언하심(6-12)

여호수아는 언약궤 앞에 엎드렸습니다. 옷을 찢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할 일입니다. 직분자들은 교회에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겼을 때 과연 무엇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엎드려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또 여호수아와 함께 장로들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목사 뿐만 아니라 집사, 장로의 직분자를 주셔서 함께 교회를 위해 엎드려 기도하게 하십니다. 함께 엎드려 섬기게 하십니다.

여호수아의 관심은 9절에 우리의 이름이 끊기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으로 바른 태도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불행이 생겼을 때, 자신의 명예보다 교회 공동체의 명예를 먼저 걱정합시다.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개인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도,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간구합시다.

9절에 여호수아는 세상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이름을 세상에서 끊을것을 두려워 합니다. 전에 하나님께서는 요단강 강물을 끊으셨습니다 (3:13,16).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끊기는 위기에 던져 두셨다고 여호수아는 고백합니다. 언약궤 앞에서 부르짖던 여호수아와 장로들에게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11절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언약을 어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심판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언약을 어겼을 때는 아이성과 같은 조그만 도시가 하나님의 백성을 끊어버립니다. 언약에는 언약을 지킬 때 복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 언약을 어길 때 저주를 받는다는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 2:16에도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한 언약을 어길 때 정녕 죽으리라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어겼다.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했다”(11). 한 사람의 불순종이지만 구약 교회 전체가 죄를 지었다고 하십니다. 여리고를 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6:18),

우리는 신앙과 구원을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이 깨닫아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맺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구원하여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되게 하십니다. 공동체의 지체로서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공동체 전체가 복을 받습니다. 한 지체가 범죄하면 공동체 전체가 심판을 받습니다.

 

3. 아간을 속죄제물로 바치게 하여 이스라엘을 성결하게 하심(13-26)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먼저 백성을 성결케 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습니다. 이 과정이 속죄제를 드릴 때의 과정과 똑같습니다. 먼저 제사장이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그 다음에 속죄제를 드립니다. 16절에 언약을 어긴 사람을 뽑습니다.12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합니다.  뽑았습니다. 유다 지파가 뽑혔습니다. 다시 유다 지파에 속한  한 족속이 뽑혔습니다. 그 뽑힌 족속 중 가족을 뽑았습니다. 그 뽑힌 가족 중 남자들을 제비 뽑았습니다. 아간이 걸렸습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아간을 뽑았다”(14,15,16,17,18)고 강조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성들을 함락하여 취한다는 것에 쓰는 말입니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점령했습니다(7:20).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태워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에 대한 명령을 순종하지 않은 아간 그 사람을 여호와께서 점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라”(19).  자복은 구약 성경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시편 147:7)에 나옵니다. 그래서19절을 보통 대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드려라. 그 분께 감사하라. 드려라”.  죄를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간은 사실대로 고백했습니다.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간은 속죄제로 바쳐진 후에 천국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세라의 아들을  잡아 아골 골짜기로 갔다는 말이 본래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대속죄일에 염소 두 마리를 고릅니다. 하나님께 속죄제물로 바칠 것과 광야로 보낼 것을 가리려고 제비를 뽑습니다”(레위기 16:9,10). 아간은 그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물로 제비 뽑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속죄제물로 선택되었습니다. 아간과 그 모든 가족을 돌로 쳐 죽이고, 그들을 불살랐습니다. 불사르는 것은 제사 중에서 오직 속죄제물에만 불태운다는 말을 씁니다(4:12, 21). 속죄제물은 진 밖에서 완전히 불살라 버립니다. 아간은 속죄제물로 완전히 불살라졌습니다.

비록 거기 하나님의 성막과 제단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야외 제단을 만드시고 야외 제단에서 아간을 속죄제물로 불살라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잡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물건을 직접 취하십니다. 그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십니다. 그 위에 돌로 무더기를 크게 쌓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제단을 쌓아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 돌 무더기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속죄제단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자들은 저렇게 죄를 지어서 죽는구나하는 것을 기억하고 경고가 되었습니다.

 

3. 신약 교회의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

1) 아나니아 삽비라의 범죄와 심판(사도행전 5)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다는 단어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아나니아는 자기가 밭을 판 돈의 일부를감추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듣고 성령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가난한 형제 자매를 구제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 헌금했습니다. 그 때 아나니아도 자기 밭을 팔아 헌금했습니다. 그 한 부분을 바치면서 모두를 바쳤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사도행전 5:3). 그 때 성도들이 땅을 팔지 않아도 되고, 땅을 판 돈을 다 헌금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나니아는 땅 값의 한 부분만 헌금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말하고 헌금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는 명예욕 때문에 전부라고 거짓말 했습니다. “이깃이 전부입니다하면서 남겨 둔 부분은 감춘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바쳤다고 한 것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감춘 것입니다. 아간이 하나님께 바친 것을 감춘 것과 같습니다.

구약 시대에 모세가 떠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서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일을 할 때 이런 거짓이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이제 제자들이 땅을 정복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때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도둑질하고 거짓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를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백성들의   공동체 밖으로 내어 보냅니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는 것은 속죄제를 나타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일은 초대 교회에도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 우리 교회에도 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어긴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2) 개인의 죄는 공동체의 죄(고린도전서 11)

아간 개인의 죄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간을 권징했습니다. 신약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성찬에 대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11:29, 30). 자기를 분별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를 분별하지 않고 성찬을 허용할 때에, 교회 안에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죽는 자와 병든 자가 많았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바로 분별하여서 성찬을 바로 세우는 일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인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악의 누룩이 온 교회에 번집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너희 중에 쫓아내라”(고린도전서 5:2)고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갈라디아서 6:1)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브리서 3:12, 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4,25).  그래서 성도가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것과 교회 공동체와 성도의 교제가 중요합니다.

 

믿고 복종할

오늘도 이 말씀으로 경고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작은 말씀이라도 그대로 순종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특별히 우리 믿는 자들이 위선적인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듯하면서 지키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께 다 바친 것을 가장하면서 다 바치지 않는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자기가 바칠 만큼만 바치면 되는데 실제 이상으로 바친 것을 가장하고 거짓말하다가 멸망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가 없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심판 받는 속죄제물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의지합시다. 번제로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화목제물로서 우리의 온 삶을 기쁘게 하나님께 바치면서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참고> 1,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함(리카흐, 헬라어로는 노스티조)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다는 말(마카흐, 헬라어 노스티조)는 말이 신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구절에 똑같이 쓰입니다(사도행전 5:3).

 

<참고> 끊는다(9). 언약(11)

9절에 끊는다”(카라트)11,15절에 언약”(버리트)을 합치면 언약을 맺는다”(카라트 버리트)가 됩니다. 언약을 어긴 자(11, 15 )를 여호와께서 끊는 것이 언약을 맺는다는 이미지와 연결 됩니다.

 

<참고> 가까이 오다

하나님께서 지파별, 족속, 가족을 뽑는 과정에서 가까이 오라”(카라브)고 했습니다(14,14,14,14,16,17,17,18). 너희 가운데(카라브, 12,13)라는 비슷한  뜻의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제물을 가까이 가져와 바치는 것을 나타냅니다(9:15,16,17, 한글 성경에서는 그냥 드리다로 번역됨). 하나님께서 그 범죄한 자를 찾아서 하나님께 속죄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참고> 뽑다 (14,14,14,15,16,17,17,18)

뽑다”(라카, 14,14,14,15,16,17,17,18)는 여호수아의 여러 장 중에서, 7장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10장에서 중부 지역을 정복할 때 7번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성읍을 점령하고”(라카드) 그 점령한 성읍을 태워 없애도록(=진멸) 명령하셨습니다(신명기 2:34,35).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첫 성 여리고를 점령하여(라카드, 6:20), 불살랐습니다(6:24).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은 아간을 점령하여 불태우십니다. 아간을 불태운 후,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아이를 점령합니다(8:19,21).

 

<참고> 24, 아간을 잡다.

24절에 보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습니다. “잡다”(라카흐)는 레위기에서 제사에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라카흐) 하나님의 성소, 회막 앞에 피를 뿌립니다(4:5,25,30,34). 아간을 잡은 것은 이제 속죄제의 피를 잡은 것과 똑같습니다. 속죄제의 피는 원래 하나님의 성막 앞에 뿌렸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아간을 잡아서 아골 골짜기로 갑니다. 바깥 땅이고 하나님의 성막도 없지만 하나님이 영적으로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의 임시 성막과 임시 제단이 차려진 셈입니다.

 

<참고> 아골골짜기로 갔다

아골 골짜기로 갔다는 말이 본래 올라갔다”(알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도 레위기 2:11에서 첫 제물을 바칠 때 꿀과 누룩이 있는 것은 제단에는 올리지 말라는 데 쓴 말입니다. 또 레위기 16:9,10에서는 대속죄일에 염소 두 마리를 고릅니다. 하나님께 속죄제물로 바칠 것과 광야로 보낼 것을 가리려고 제비를 뽑는다”(알라)고 할 때도 같은 단어를 씁니다. 아골 골짜기로 아간을 데려가는 것은 속죄제 제물을 가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아간을 불태웠습니다(사라프). 제사 중에서 오직 속죄제물에만 불태운다는 말을 씁니다(4:12, 21). 속죄제물은 진 밖에서 완전히 불살라 버립니다. 아간은 속죄제물로 완전히 불살라졌습니다.

 

<참고> 6, 언약궤 앞에 엎드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여호수아 3-4장에서도 언약궤를 앞세우고 갈 때 요단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언약궤라는 물건 자체에 어떤 미신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와 함께 계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위에서 백성과 말씀하시고, 언약궤를 통해 그 분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는 사실을 표시해 주셨습니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와 함께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 계시는 것과 비슷합니다.  빵과 포도주에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지로 거기에 함께 하셔서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생명이 있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언약궤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언약궤(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은 환유법입니다.  환유법의 예는 이것입니다. “영국의 왕관은 흔들렸다.” 영국의 왕관과 영국의 왕과의 관계는 환유법입니다. 왕관이라는 물질이 있으면서 동시에 영국의 왕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내 아내, 당신은 나의 태양은 상징법입니다. 내 아내가 있는 곳에 태양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있는 바로 거기에 내 아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와 성찬의 빵과 포도주와 함께 하나님이 실제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거기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사랑하며 대합니다. 그러나 언약궤와 빵/포도주를 단순한 상징으로 보는 교회는 그것들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사랑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찬을 그냥 상징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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