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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신명기 25장 약한 자들도 자손의 번성과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법적 정의 2018-1-29, 월

작성자축제|작성시간18.01.28|조회수225 목록 댓글 0

신명기 25

약한 자들도 자손의 번성과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법적 정의 (찬송 1장, 옛찬송가 1장)

2018-1-29,

 

맥락과 의미

25장은 1절과 15절에서 의로움’(짜디크)을 반복하면서 수미 쌍관을 이룹니다. 의로운 재판과 의로운 경제활동에 대해 말합니다. 그 사이에 가정의 자손 번성, 특히 가난하고 약한 자들도 가정을 통해 풍성한 생명을 보장하는 방법들에 대한 법을 주십니다. 17-19절의 아말렉을 도말하라는 것 또한 하나님의 생명 사랑을 나타냅니다. 아말렉은 과거에 하나님의 백성의 자손 번성과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중 약한 자들의 존엄성과 생명의 풍성함을 위협하는 자들을 개인이든 민족이든 심판하십니다.

 

1. 정의로운 법 집행과 신체형에서의 언약 백성의 존엄성 (1-3)

언약 공동체 안에 분쟁이 있으면, 사적으로 형벌을 가하지 말고, 1, ‘재판을 향해 가까이 나가야합니다. (‘청하거든’(나가쉬)9절에 ‘장로들 앞에 나아가다’와 같은 말입니다. 공식 재판정에 나가서 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재판장은 의인(짜디크)을 의롭다 합니다(짜디크).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재판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는 의롭다 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의롭지 않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의 나라에서는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고, 악한 자를 악하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태형은 큰 막대기로 때리는 형벌을 말합니다. 이에 대한 규정을 통해 형 집행에서 가져야 할 일반원칙을 가르칩니다. 첫째, 반드시 공적인 재판을 통해 정당하게 재판한 후 처벌합니다. 둘째, 재판장이 감독하에 형을 정의롭게 집행하도록 합니다. 죽도록 때리거나, 너무 가볍게 때리지 않도록 합니다. 셋째, 죄의 심각성에 비례하여 (“경중대로”) 정의롭게 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넷째, 형집행의 한계가 있습니다. 40대 이상을 때리지 않습니다. 작은 일도 가혹하게 심판하는 일을 배제합니다.

처벌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데서도 정의와 의로움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한계 내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두 가지 사실이 한계가 됩니다. 첫째, 죄인들도 네 형제입니다.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 번영하기 위해 형을 집행합니다.

둘째, 범죄자들에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합니다. “가볍게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3)27:16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에 반복됩니다. 죄를 범한 언약 백성을 처벌할 때도 부모를 존중하듯이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 줍니다. 벌이 목적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서 언약 공동체로서 품위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입니다.

 

2. 곡식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4)

생명이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땅에서는 짐승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땀흘려 곡식 낱알들을 터는 일을 하는 소들을 굶기면서 일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동물에 대해 착한 마음을 훈련하여서, 근로자를 학대하지 않고 임금을 제 때에 주는 인간적인 백성으로 성장하게 합니다(24:15,16).

나아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훈련을 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 근거하여 복음 전도자들과 목사들의 생활을 정당하게 보장하라고 가르칩니다(고전 9:9, 딤전 5:18).

 

3.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가문을 이어가는 인간성,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지 않을 자유 (5-10)

같이 사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목적은 물론 자녀가 없는 여성들이 자녀를 통해 그 생계를 계속 잇게 하는 인권보장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그 형제의 이름을 세우는 것입니다(6,7절에서 잇는다는 직역하면 세운다입니다). 모든 가문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이 제도를 주십니다. 형의 아내를 책임지는 동생은 형에게 주어진 땅을 상속받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모든 가정들이 번성하도록 하십니다.

여성이 공식 재판을 통해 이 권리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이 이것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동생이 형수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면, 형수는 성문 위로 올라가 장로들에게 정식 재판을 요청합니다. 그래도 그 동생이 거절하면, 형수가 그 동생의 신발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거절한 자에게 이같이 할 것이니라.(9) 신발은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합니다. 이런 공개적 모욕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두어서 각 가정의 동생들이 형의 이름으로 가문이 번성하고 생명이 넘치는 일에 헌신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앞으로 동생이 그 형수와 사는 것보다 이런 모욕을 당하는 것을 선택할 정도로 형수를 싫어한다면, 그것을 거절할 자유도 허용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공동체적 생명의 번성을 위해 이런 좋은 제도를 주셨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십니다. 동시에 사람의 타락함을 아시고, 동생들이 그 형수를 사랑하도록 그들의 의지를 끝까지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적절한 선에서 그들이 악함 가운데서도 생존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4. 남편과 싸우는 다른 남자의 생식기를 때린 여성의 손을 잘라라 (11-12)

음낭을 잡는다’(하자크)강하고(하자크) 담대하라에 쓰인 말인데 꽉 쥐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기능에 장애를 줄 정도로 손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은 여성이 남자에게 침을 뱉는 형벌 집행을 집행하도록 해서 자손의 번성을 보장하셨습니다. 또한 여성이 다른 남자의 생식기를 때려서 자손 번성을 막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남편을 도와서 다른 남자와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번성하는 것을 막는 정도까지 나가서는 안 됩니다.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5. 하나님은 진실하고 정의로운 상거래를 축복하시고, 불의한 상거래를 혐오하신다 (13-16)

하나님 나라에서는 공정한 도량형을 사용하여 의롭게 경제활동을 해야 합니다. 온전하고 공정해야(샬렘, 차디크, 15)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물질적으로 축복하시고, ‘네 날이 장구하게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풍요롭게 살고, 오래 살면서 자손이 번성할 것입니다.

불의한 경제행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합니다. ‘가증하다’(16)는 우상 숭배, 간음 등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 활동이 하나님의 좋으심과 미워하심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경제활동을 우상숭배와 같이 미워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속이거나, 혹은 사업에서 속이는 일이 없이 정직하게 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6. 지친 이스라엘 백성의 약한 자를 공격한 아말렉 민족은 이 세상에서 진멸하라 (17-19)

출애굽기 17장에서, 이스라엘이 힘들 때, 아말렉 민족은 행진의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습니다. 아말렉 민족은 이 땅에서 완전히 멸망시켜야 합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약속의 땅 안에 있는 이방인만 진멸시키도록 하셨습니다. 다만 아말렉은 약속의 땅 바깥에 있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약한 사람에게 잔인하게 대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안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그 중에서도 특히 약한 자들을 불의하게 괴롭힌 자는 설령 그 자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소멸시키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 개인의 삶과 교회에서 먼저 하나님의 정의와 공정함을 이룹시다. 상대방의 잘못을 벌할 때도, 그들의 존엄성을 존중합시다. 교회 안의 가정들이 함께 번성하고, 생명이 넘치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의 행동이 다른 형제들과 가정의 풍성한 생명을 해치지 않도록 항상 분명한 경계선을 잘 설정하도록 합시다.

의롭게 경제활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 복주신다는 이 약속을 굳게 믿읍시다. 노동자에게 정당하게 임금을 지불하고, 정직하게 경제활동을 해 나갑시다. 하나님의 교회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이러한 정의를 계속 이루어 갈 때, 우리 사회에도 정직한 경제와, 함께 생명을 누리는 관행들을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는 삶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참고> 신명기의 율법이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을 창세기 1:27-28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의 형상들이 땅에서 자손이 번성하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도록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또 생명을 풍성을 누릴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땅을 개간하고 정복하여 생명이 풍성한 공동체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사단과, 사단에 마음을 빼앗긴 인류는 이 풍성한 생명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한 민족을 택해서 그들 가운데 풍성한 생명 공동체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신명기는 노예 민족을 해방하여 생명의 언약 공동체를 세우는 법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가운데서도 도적이 오고, 도둑질하고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그 악을 제어하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이 법을 주셨습니다.

이 법을 주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말씀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6:2,3) 축복의 땅에서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자손이 번성하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도록 하는 지혜가 있는 큰 나라 사람’( 4:6)이 되도록 이 신명기의 언약 말씀을 주셨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신 아들 하나님께서 오셔서 인류를 향해 선언하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10:10).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 나라에 선포하신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 성취하고, 더 풍성한 뜻을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성령님의 능력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5:17). 그리스도께서는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신명기 언약 말씀에서 우리에 명령한 것을 지킬 의무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의 정신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럴 때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의 축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언약의 약속에 헌신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십니다. 이 축복은 그때도 지금도 항상 가정 단위로 자손이 번성하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참고> 경건한 백성을 이어가고, 악한 자들을 지워버리셔서, 생명이 풍성한 우주를 만드시는 의로우신 하나님 (6,19)

6, 19절은 끊어지다’(마하)라는 같은 단어가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이름을 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한 가문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의 번성을 위협한 아말렉을 기억에서 지워버리십니다.

끊어지다, 또는 지워버리다는 창세가 6:7, 7:4,23에 노아 시대 홍수를 통해 악하고 부패한 세상을 쓸어버린것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한 백성을 하나님이 멸망시키려 할 때 나의 이름을 도말해 주소서”라 간구하며 이스라엘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그 사람의 이름을 도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2:32). ‘지워버린다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 가운데서 생존할 가치가 전혀 없는 저주받은 존재를 이 세상에서 청소하듯이 쓸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이름이 결코 지워지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가문이 끊기면서 마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듯한 상황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의 가정들이 지워지지 않고 함께 번영하도록 서로를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형의 이름을 동생이 이어갔듯이, 믿음의 형제된 우리 성도들이 서로가 믿음 안에서 굳게 서도록 격려하고 위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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