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장
땀흘려 일해서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참된 경건
(찬송 6장)
2023-10-5, 목
맥락과 의미
1,2장에서는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날에는 분명한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이미 재림이 왔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재림은 “선한 소망”이 있는 영광의 날입니다(2:15,16). 지금 여기서 우리가 모든 선한 일과 말을 하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 육체적으로 다시 오시는 것이 재림입니다. 그분과 함께 육체와 영으로 온전하게 거하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시대입니다.
3장은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잘못 행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고 하면서 이 땅에서 노동을 게을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불신앙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교회의 지체 자격이 없습니다.
1. 기도의 요청, 권면, 성도를 위한 사도의 기도(1-5절)
2. 게으른 교인은 권징하고 출교하여 바로잡으라(6-15절)
3. 마지막 축복 인사(16-18절)
1. 기도의 요청, 권면, 성도를 위한 사도의 기도(1-5절)
기도를 요청하는 것(1-2절)과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것(5절) 사이에, 하나님의 가르침과(2절 후반), 하나님이 성도를 도울 것에 대한 확신(3,4절)을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가르침과 확신은 사람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1절).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던 고린도 교회에서 유대인은 복음에 심하게 저항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서는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고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진 것과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서도 데살로니가 지역처럼 교회가 번성하기를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복음이 번성하기 위해서, 악한 자들로부터 사도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 기도는 온 세상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2절).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끝까지 거부할 사람들이 있음을 압니다. 우리도 복음을 먼저 교회와 가정 안에서 힘껏 전합시다. 세상 가운데서도 증거합시다.
그러나 모두가 우리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은 아니라고 성령님이 증거하십니다. 우리가 수고한 열매가 없을 때도, 목사는 힘껏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합시다. 성도들이 자기 삶에서 자기 직분을 성실히 하는 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거부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3절). 신실하신 하나님은 성도가 굳게 서게 하시고 지키실 것입니다. 교인들은 사도가 “명한 것”(4절), 곧 사도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에게 전달하여 명령한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여 행동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통해 성도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중에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5절,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로 그들의 마음이 나아가게 해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는 것으로 행복해하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인내하도록 기도합시다.
2. 게으른 교인은 권징하고 출교하여 바로잡으라(6-15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명령입니다(6절). “게으르게 행하고”의 말 그대로의 뜻은 생활의 질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육체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8절).
“전통”(6절), 즉 전해진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기서 전통은 장로의 전통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것을 사도가 “전해준” 것입니다(2:15).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 또 성령님이 사도들에게 새롭게 계시해주신 말씀을 교회에 전해주었습니다. 지금 데살로니가서에 쓰인 성경 말씀이 바로 “전통”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 노동을 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 전할 권한 (9절, “권리”)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플라톤 이론의 영향으로, 철학과 종교 활동은 고귀하고 육체 노동은 천하다고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있었습니다. 교인들도 그런 사고 방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노동의 고귀함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모범을 보였습니다(7,9,9절). 자기 손으로 일하였습니다.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았습니다.”(8절)
그가 1년여 전, 처음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도 같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10절). 그런데 지금 바울은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교회에)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11절)는 소문이었습니다. 자기 가족을 부양하며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교인들은 남의 일이나 교회의 일에 간섭하면서 일거리만 만듭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면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됩니다. 게으른 것도 하나님과 성령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령하고 권면합니다. “조용히 일하여”, 곧 남의 일에 시끄럽게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가족을 부양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12절) 합니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텐데 이 세상의 일을 열심히 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지금 명령하시는 것에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지금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자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순종할 리가 만무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바른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참 성도는 게으른 자들로 인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13절). 여기서 선은 구제나 예배와 같은 특별한 행동이 아닙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8이 잘 말합니다. “도적질하는 자들은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자기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 선행입니다. 자기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선행입니다.
땀 흘려 일하여 돈을 벌 때, 자기만 먹고 사는 정도로 목표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또 절약하여 저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전임 사역자의 생활을 지원하고, 가난한 사람, 장애인, 노인, 가난한 나라를 도울 수 있는 돈을 모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일입니다. “사람이 사는 날 동안에 기뻐하면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전 3:12). “선”은 일상의 모든 삶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 전체를 말합니다.
반복된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게으르고 일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목하여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14절). 고린도전서 5:9에서 간음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고”, 즉 성찬에 참여시키지 말고 출교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게으른 자는 출교하라! 그래서 공개적으로 “부끄럽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수처럼 대하지 말고 형제로 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게 권면해야 합니다(15절).
3. 마지막 축복 인사(16-18절)
우리 주변에는 불순종과 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 평화와 번성을 주실 것을 확신하며 축복합니다. 이 평화는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옵니다.
사도는 다른 사람을 통해 이 편지를 대필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직접 자필로 “표시”(표적, 사인)를 해서 자기 편지임을 확인합니다(17절).
믿고 복종할 일
게으르지 맙시다. 땀 흘려 수고하는 것, 정신 노동뿐 아니라 육체 노동을 하는 것도 귀한 것입니다. 사도가 모범을 보여준 “그리스도의 인내”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거룩한 형상으로 자라가는 방법입니다.
노동 속에 경건이 있습니다. 공부나, 직장일이나, 집안일을 하는 가운데 주님을 섬깁시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 3:5)가 되지 맙시다.
자녀들이 작은 일도 스스로 하도록 양육합시다. 자기 일을 부모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훈련시킵시다. 사춘기 자녀들이 좋은 배우자와 부모, 일하는 자로 자라도록 책임감을 길러줍시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성령님을 통해 일상의 수고를 담당할 은혜와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구약의 가르침과 데살로니가 후서의 연관성
오늘 본문은 구약 성도에게 주신 교훈을 신약 성도에게도 새롭게 줍니다.
1절, “말씀이 퍼져 나간다”(로고스 트레코). 시편 147:15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찬송하는 내용의 한 부분입니다.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지역)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그의 명령(로고스)을 땅에 보내시니(아포스텔로)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로고스 트레코)”(시편147:12-15).
하나님은 구약 교회 안에 말씀을 보내셨듯이 신약 교회에도 사도(아포스톨로스)를 보내셨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달리게 하여 성도가 영적으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을 주시고, 자녀를 번성하게 하시고, 그 지역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사도는 지금 그 동일한 하나님을 향해 찬양합니다. 확신 가운데서, 말씀이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평화가 넘칠 것을 확신하며 축복합니다(살후 3:16,16).
2절, “악한 사람들(아토포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욥기 11:11에서 “하나님은 악한 일(아토포스)을 다 보신다”고 합니다. 보시는 하나님이 고난받는 성도를 구해주실 것입니다.
같은 말이 욥기 4:8, 27:6, 34:12, 35:13, 36:21, 잠언 30:20에도 나옵니다.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이사야 25:4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구절이 없습니다. 헬라어 번역 성경에 나옵니다.)
구약 시대에도, 신약 시대에도 세상은 악합니다. 악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말씀의 칼이 달리게 하십니다. 사도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이 신령한 전쟁을 하도록 입대한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주 예수님은 자신의 군인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주십니다.
인내하며 말씀을 들고 달립시다. 말씀을 말하고, 우리 영혼에 간직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지킵시다. 악한 사람들 가운데 성령님을 의지하여 계속 말씀을 말하고, 말씀대로 삽시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승리를 확신합시다. 수고와 인내 가운데서도 기뻐합시다.
<참고> 사람들은 “믿음”(피스티스, 2절)을 거부해도, 하나님은 “미쁘시다”(피스토스, 3절).
믿음과 미쁨(신실함)은 어원이 같습니다.
<참고> 6절, “게으르게 행하고”(아-탁토스)
생활의 질서(탁시스)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육체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7절).
<참고> 14절,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신-아나-미그니미)
고전 5:9에서 간음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고”, 곧 성찬에 참여시키지 말고 출교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권징하는 목적은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도록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