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3장
하나님이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워서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 선언
(찬송 10장)
2022-5-19, 목
맥락과 의미
1-3장은 사무엘 가정과 엘리 가정의 개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막과 예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막에서 경건한 가정 엘가나-한나와 같은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들의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1장-2:10). 사무엘은 나실인으로서 성막의 제사장 사역자로 참여합니다. 그러나 2장의 후반부는 원래의 사사이며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너무다 다릅니다. 물질과 쾌락의 탐욕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집과 제물을 더럽힌 제사장 가문은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심판을 내리겠다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1. 말씀이 희귀해진 어두운 시대에 소년 사무엘을 부르심 (1-9절)
2. 여호와께서는, 사무엘통해 엘리의 집에 언약의 저주 선언 (10-14절)
3. 사무엘이 엘리에게 말씀전달: 백성에게 선지자로 인정받음 (15-21절)
1. 말씀이 희귀해진 어두운 시대에 소년 사무엘을 부르심 (1-9절)
소년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1절). 그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환상을 터져 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대표하는 대제사장 엘리의 책임이 컸습니다. 눈이 점점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웠음을 상징합니다 (2절). 그는 자기의 장소,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성막의 등대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년 사무엘은 여호와의 전 (궁궐) 안에서 그 빛을 받으며 누워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 여호와께 사무엘에 나타나셨습니다. 세 번이나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달려갔습니다. 엘리는 그냥 다시 누우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7절). 물론 사무엘은 하나님의 성막 제사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을 알고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에게 나타나는 (계시되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서 “알지 못했습니다”고 말합니다. “안다”는 것은 부부가 침실을 같이 하는 친밀함을 말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궁궐에서 잠자던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계시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달하는 직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 자신은 여호와의 부르심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이미 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영적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처음 두 번째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에 가셔야,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았습니다.” (8절). 다시 부르면 “말씀하옵소서.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9절) 대답하라고 합니다. 예배 때, 개인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이렇게 응답합시다. “네 하나님, 지금 듣고 있고, 앞으로도 듣고 순종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는, 사무엘통해 엘리의 집에 언약의 저주 선언 (10-14절)
10절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오셔서 서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무엘 앞에 서신 하나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와서 서시는 이유는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은 각자의 집에서 성경 말씀을 읽고, 혹은 가족이 함께 읽습니다. 주일에는 말씀을 듣습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말씀이 있는 곳에는 여호와께서 서서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고 있고, 순종하겠습니다.” (10절). 순종하며 들으려는 백성에게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합시다.
여호와께서는 이미 선지자를 통해 엘리의 집에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이것을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12-14절). 엘리가 자기 아들의 죄악과 그 때문에 올 하나님의 저주를 알고도 막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맹세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을 더럽힌 그 죄는 어떤 제물로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몰라서, 약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도, 그것도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는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순종합시다.
3. 사무엘이 엘리에게 말씀전달: 백성에게 선지자로 인정받음 (15-21절)
다음 날 아침 사무엘은 자기가 본 것을 엘리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에게 요청합니다. “어젯밤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다 말하고 숨기지 말라.” 사무엘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도 전해야 합니다. 불행에 관한 말도, 하나님이 주신 말이라면 신실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엘리는 “여호와의 선하신 대로 하실 것입니다” (18절).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는 자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소견 즉 “여호와의 눈”의 판단을 인정하지만, 엘리 자신의 “눈”이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밝아져야 했습니다. 과감히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가문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 정당하다고 고백하면서도 회개하고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죄 가운데서 심판을 받으며 나갑니다. 말로는 “여호와의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18절)고 합니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습니다”(사사기 21:25).
하나님은 계속 사무엘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시고,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한 말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심을 깨달았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에서 선지자 역할을 더해서 합니다. 그는 다스리는 사사로서 역할 (8:15)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제사장 대신에 미약하고 어린 사무엘을 세워서 참 예배와 말씀과 다스림을 회복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스라엘이 사사기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다윗와 같은 왕정으로 넘어가는 데에서 한나의 기도 그리고 사무엘의 신실한 봉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죄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태도로 듣고 그대로 전하는 직분자가 있으면 당면한 문제릎 풀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직분자가 없으면 이상이 희귀하게 될 것이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성막을 이제 신약의 교회로 완성해 주셨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우리 교회에도 말씀이 풍성하기를 기도합시다. 목사들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합시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정직하고 용기 있게 다 전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성도로서 예배 가운데, 일상의 삶 가운데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서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시대의 어두움을 탓하지 말고 예배에서 말씀을 귀하게 받고 항상 순종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0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임하여 서서” 말씀하심:
시내산(출 19장), 사도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임하여” 는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있던 성막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시내산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오셔서 언약을 맺으신 것과 비슷합니다. 시내산에 오셨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성막 (성도 사무엘)에 오셨습니다. 시내산에는 내려오셨지만 성막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꼭대기에 “서셨습니다” (출애굽기 19:17). 그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출 19:3,20). 모세는 백성들을 장로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출 19:7).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내산에서처럼 불과 나팔 소리로 오셨습니다. 사무엘에게처럼 밤에 조용한 목소리로 오십니다. 그가 평소에 듣는 대제사장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오셨습니다.
계시록에서는 부활하신 주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상 가운데서 성전의 촛대 가운데 서셨습니다(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것은 서 있음을 의미합니다, 계1:12). 시내산 나팔같이 번개같이 환한 모습으로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계1:8-15).
시내산, 사무엘, 사도 요한에게 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세 경우 다 성막/성전 안으로 오셨습니다. 서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시내산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성전/성막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오시는 시내산 앞에서 백성들은 “성결케 했습니다” (출 19:14). 성막에 올 때 백성들은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시내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 안에 들어오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 19:12). 제사장과 레위인들만 올 수 있는 성막의 안뜰에 들어오거나 만지는 자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막/성전은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그 모임을 말합니다. 또 성도들의 모든 삶의 전체를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속 그분의 백성의 예배에, 그들의 삶에 찾아오십니다. 서십니다. 말씀하십니다. 시대마다 경우마다 방법은 다릅니다. 그러나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너와 은혜로 언약을 맺었다. 언약 말씀에 순종하며 관계에 신실하면 복을 주겠다. 그러나 언약을 어기면 심판을 내릴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신구약 성경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 말씀에 관한 설교를 듣고 읽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서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이렇게 말씀이 풍요로운 시대에 시내산을 그리워하지 맙시다. 모세와 사무엘도 부러워하지 맙시다. 그들은 우리들이 지금 누리는 영적 풍요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보다 우리가 더 낫습니다. 모세와 사무엘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11:39,40). 그들이 약속받은 메시야/그리스도가 신약 시대에 나타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성도들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가 더 온전케 되었습니다. 이것을 믿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보다 더 온전합니다. 우리 개인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정도에서는 그들 믿음의 조상들을 따라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구원의 시대가 더 좋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그들의 믿음 보다 더 좋습니다. 신약시대에 오신 그리스도를 더 정확히 하는 믿음의 지식과 이 믿음을 굳게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들 보다 우리의 믿음이 더 좋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땅에서 낮아지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서 다스리시며 높아지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신약성경이 하나로 완성되지 않은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만큼 그리스도를 풍성히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요한 보다 더 풍성한 계시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믿음이 사도 요한의 믿음 보다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