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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사무엘상 4장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군대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김을 통한 심판 2022-5-20, 금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5.19|조회수198 목록 댓글 0

사무엘상 4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군대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김을 통한 심판

(찬송 585장)

2022-5-20,

맥락과 의미

1-3장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성막에서 기도하며 감사하는 엘가나-한나-사무엘 가정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 성막을 멸시하는 대제사장 엘리-홉비-비느아스 가정을 대조시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하는 가정에는 말씀을 풍요롭게 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성막의 예배를 멸시하는 가정에는 말씀을 주시지 않고, 심판이 올 것을 예고했습니다.

4-6장에서 성막 예배를 멸시하던 백성은 성막의 핵심인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려받습니다. 4장에서는 언약궤를 빼앗깁니다. 제사장과 하나님 나라 군인들이 블레셋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5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언약궤와 함께 있으면서 블레셋의 신과 블레셋을 심판하십니다. 6장은 여호와의 능력으로 언약궤가 다시 하나님의 나라의 땅 안으로 돌아옵니다.

 

1.  사무엘의 인정과, 블레셋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1-11절)

2. 엘리 대제사장과, 비스하스의 아내의 죽음 (12-21절)

 

1.  사무엘의 인정과, 블레셋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1-11절)

1절은 3장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사무엘에 선지자로서 백성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2절부터, 여호와를 멸시하던 대제사장 가문과 백성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1) 첫 번째 전투에서 4천 명이 죽고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 옴 (1-4절)

여호와께 성막 예배를 멸시하며 언약을 어긴 제사장과 그 백성을 마침내 심판하십니다. 블레셋이 에브라임이 있던 아벡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아벡은 해안 욥바에서 동쪽으로 19km 안쪽에 있는 곳입니다.  성막이 있던 실로에서 해안 쪽으로 대략 30km 서쪽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이 진을 친 에벤에셀은 7:12의 에벤에셀과는 다른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군인 4천 명이 죽었습니다.

장로들은 결정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로부터 가져오자. 그것으로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3절). 영적으로 어두운 결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은 이미 신명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신명기에서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신 28:15,25). 언약의 복을 받는 것이 언약궤를 가져온다고 되지 않습니다. 성막에서 바른 예배를 회복하고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회개를 해야 했습니다.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의 저자인 예언자와 성령님은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 (4절)라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와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그룹이라는 천사들을 거느리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나가야 했습니다.  언약궤라는 물질 그 자체에 힘이 있기나 하듯이 미신 믿듯이 믿지 말아야 했습니다. 언약궤와 함께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 홉니와 비스아스도 전쟁터로 왔습니다.

 

2) 언약궤를 앞세운 전쟁에서 3만 명이 죽고 언약궤는 빼앗김 (5-11절)

이스라엘 군대는 언약궤가 오자 크게 함성을 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와 함께, 이집트를 심판하신 그 강한 신들 (그들은 여호와를 여러 신들로 이해했습니다, 9절) 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격려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9절).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는 파괴되지 않고 이동됩니다. 이스라엘의 진 안으로, 다시 블레셋 사람에게 옮겨 집니다.  언약궤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는 제사장과 그 백성을 구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심판하십니다.

 

2. 엘리 대제사장과, 비스하스의 아내의 죽음  (12-21절)

1) 엘리 제사장의 죽음 (12-18절)

엘리제사장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마음이 떨리면서”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대리하는 대제사장으로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13절).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백성의 죽음과 그 아들들의 죽음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자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18절).  제사장인 그에게는 자기 아들들의 죽음보다 언약궤를 지키지 않은 그 죄가 더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약궤을 대제사장으로부터 빼앗으시면서 엘리를 심판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고 비만했습니다. “비만”은 “영광, 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의 비만은 자기를 영광스럽게 존중하는 그의 영적 상태와도 같습니다.  여호와 보다 아들을 “중하게 여기고” (2:29),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은 (2:30) 그의 영성을 상징합니다.  눈이 어두웠던 (3:2) 그는 아예 “실명”이 되어서 볼 수 없는 정도까지 나갔습니다 (15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는 나타나 보였지만 (3:21), 엘리는 자기와 가족의 영광을 위하는 죄 때문에 그 영광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사사로서 다스린지 40년 만에 죽었습니다.

 

2) 비느하스의 아내가 출산 중 죽음: “여호와의 영광이 떠났다”(19-21절)

비느하스의 아내는 “궤 빼앗긴 것”과 남편과 시아버지의 죽음을 들으면서, 출산하다가 죽어갔습니다. “아들을 낳고 있습니다”라는 말에도 “궤념치 않았습니다” (20절).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이-카바드)라 지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 (카바드)이 이스라엘로부터 떠났다.”는 고백을 남기며 죽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렇게 사사이면서 제사장인 엘리는 죽었습니다. 7장부터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로서 구원의 수단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엘리 사사의 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심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성막과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로부터 하나님은 떠나셨습니다.  언약궤와 제사장은 언약의 수단이지만 언약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백성으로부터 그것들을 빼앗았습니다. 언약의 심판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은 오히려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집행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줍니다. 과거 에덴동산의 언약의 축복을 어긴 아담도 심판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을 배반할 때 심판하실 것을 가르칩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을 지었고 성전을 자랑하였지만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파괴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성전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겔 10:18).

신약교회에 대해서도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는 경고하십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들어와서—이스라엘의 진 안으로 언약궤가 들어왔듯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그러나,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하시는 경고와 심판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성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우리로부터 가리신다면, 회개하고 돌아갑시다.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에 의해 3만 4천 명이나 죽었듯이, 우리에게도 여러 비참한 일들, 질병, 고통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죄를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언약궤만 있으면 된다는 그 생각처럼,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맙시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두려워합시다. 바른 예배를 회복합시다. 자기 자랑과 존중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복종하는 삶으로 나갑시다. 

성막에서 물질과 쾌락의 탐욕을 채운 홉니와 비스하스와 같은 죄가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물질과 이 땅의 좋은 것을 목적으로 살지 맙시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시다. 회개하며 작은 것 하나에서 순종하기를 다시 시작합시다.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는 오늘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의 죄를 위해 저주받았던 나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하라. 성령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듣고, 찬송하며, 복종의 삶으로 나오너라.”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하나님의 제사장이 죽고 언약궤가  빼앗긴 것은 오늘날 우리가 종교적 행동을 하더라도 신앙의 참된 내용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봅시다. 나와 교회가 신앙의 실제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섬기는 잘못과 해결책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4,000명이 넘어지자 이스라엘 장로들은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가지고 오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강조하면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4:3). 그리고 그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에 도착하였을 때에 이스라엘은 땅이 흔들릴 정도로 함성을 질렀습니다. 아마 언약궤를 앞세우고 행진하여서 여리고를 함락시킨 것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소리를 높였을 것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민 10:35) 하는 성경 구절도 인용하면서 서로 격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함성은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을 자극하여 그들이 힘을 내어 공격하게 하였을 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나라를 원수의 손에 넘기신 것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대신에 언약궤가 있으니까 블레셋으로부터 승리를 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분명한 우상 숭배입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언약궤를 우상처럼 섬긴 나라를 블레셋에게 패배케 하심으로써 주님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를 숭배하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지만 그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언약궤를 신뢰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뿐 아니라 그 백성이 모두 매우 둔감하고 어두운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행복을 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셔서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기셨고 엘리의 두 아들과 엘리, 그리고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게 하셨습니다.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을 시행하신 것입니다.

시편 78편에서는 이 사건을 조금 더 자세히 묘사합니다.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여기에서 실로의 성막만 훼손된 것이 아니라 성막이 있고 제사장과 레위인이 살던 실로 성읍이 포로로 잡혀간 것을 봅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약궤를 우상처럼 섬긴 그 백성도 함께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언약궤에 대한 미신적인 생각은 후에 성전에 대한 미신적인 생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는 대신에 성전이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행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도 행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렘 7:12, 14; 26:6). 실로의 성막뿐 아니라 그 성읍을 훼파하신 것처럼, 성전을 의지하는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성전뿐 아니라 예루살렘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언약궤나 성전을 숭배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교회에 말씀을 잘 전하는 직분자가 있으니까 우리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직분자도 주님께서 쓰시는 ‘종’이고 말씀도 ‘은혜의 수단’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수단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방도를 목적으로 삼으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가 됩니다. 로마교회가 자기들의 전통과 조직, 혹은 성인을 의지함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졌는데 개혁주의 교회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여기에서 면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교회의 좋은 전통을 자랑하거나 사람을 높이는 자는 이미 우상 숭배에 빠져 있고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우상처럼 되어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으로써만 이러한 암매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의 아들들과 대비되는 또 다른 사람을 사무엘서의 기록에서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얻은 사람인 사무엘은 그러한 폐허 가운데서도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언약궤가 블레셋에서 돌아온 후에도 언약궤를 중심으로 어떠한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백성의 마음에 있는 우상 숭배적인 요소를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삼상 7:2-4)(김헌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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