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3장. 시편 54편 다윗의 도망, 유다지파의 그일라와 십 주민의 배반, 요나단은 다윗에게 언약적 충성 맹세 2022-6-11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6.10조회수372 목록 댓글 0사무엘상 23장. 시편 54편
다윗의 도망, 유다 지파의 그일라와 십 주민이 다윗을 배반,
요나단은 다윗에게 언약적 충성 맹세
(찬송 16장)
2022-6-11, 토
맥락과 의미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합니다. 다윗은 오히려 쫓기면서도 유대 지파의 그일라 거주민을 블레셋에서 구원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출신지인 유대 지파에 속한 그일라와 십의 주민은 다윗을 배반하여 다윗이 그 곳에 있음을 사울에게 알립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의 왕권에 대한 충성과 언약을 맹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섭리 가운데 보호하십니다.
1.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하였으나 그들의 배반으로 도피 (1-13절)
2. 십광야: 요나단이 다윗을 격려, 여호와 앞에서 언약(13-18절)
3. 마온 엔게디로: 십 사람이 다윗의 도피처를 사울에게 알려 줌 (19-29절)
4. 시편 54편: 십 사람들이 다윗의 은신처를 사울에게 알려 줄 때의 기도 시
1.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하였으나 그들의 배반으로 도피 (1-13절)
1) 다윗이 유다지파 그일라 사람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1-5절)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블레셋 지역에 있던 아둘람 굴로부터 떠났습니다. 유다 지역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유대 지파에 속한 그일라가 블레셋이 공격하여 곡식을 약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일라는 블레셋의 접경 지역에 있었습니다. 아둘람 남쪽으로 5km 정도 됩니다. 이스라엘과 유대 지역의 남쪽 주요 도시인 헤브론으로부터는 북쪽으로 15km 정도 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싸우러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말렸습니다. 유대의 중심지역으로부터 벗어나 그 국경지역으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가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다윗이 그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5절). 그는 사사들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2) 그일라 사람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려 함(6-13절)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일라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이 거기 있다고 고자질 합니다. 사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내 손에 넘기셨다”(7절). 자기의 악한 생각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말하는 사울은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승리 후, 다윗은 제사장이 가져온 에봇을 앞에 두고 여호와께 두 번 묻습니다. 제사장의 옷으로 거기에 판결흉패가 붙어 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주어서, 포위당하게 할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렇다.”하고 응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 600명은 갈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전후에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답하면서 그와 함께 했습니다.
다윗은 황무지의 요새와 산들에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사울은 그를 종일, 혹은 평생 찾아다녔지만,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그의 손에 주지 않으셨습니다.” (14절). 다윗이 구원해 준 다윗의 지파 유다 사람의 배반, 사울 왕의 악한 추격, 다윗의 도망. 위험과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서는 그를 보호하는 산성이 되셨습니다.
2. 십광야: 요나단이 다윗을 격려, 여호와 앞에서 언약(13-18절)
다윗이 십 광야에 있을 때입니다. 헤브론 남쪽 지역입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의 아들이 다윗을 심방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다윗을 강하고 담대하게 격려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너를 발견하지 못하리라. 너는 왕이 될 것이고 나는 너의 다음이 될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이것을 안다.” 두 사람은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18:3, 20:8,16,42에서 한 언약을 세 번째로 다시 반복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 다윗을 이렇게 위로합니다. 다윗의 왕의 직분을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 사명을 위해 연단을 받을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십니다.
매일 죽음의 위험 가운데 있는 그 도피 생활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은 제사장의 에봇과 함께 다윗과 함께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을 이 언약으로 굳게 하십니다.
3. 마온 엔게디로: 십 사람이 다윗의 도피처를 사울에게 알려 줌 (19-29절)
다윗의 지파인 유다 지파의 십 사람들이 그의 도피처를 사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사울은 “너희가 나를 긍휼이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받기 원한다.” (21절)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합니다. 다윗의 작은 군대와 요나단에 비해 사울의 군대는 훨씬 큽니다. 그러나 사울의 공동체에는 여호와께는 계시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 사이에 다시 십 남쪽으로 8km쯤 되는 마온 황무지 아라바로 도망갑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는 마침내 다윗을 눈앞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사울에게 소식이 왔습니다. 블레셋이 그 땅을 침략해 왔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셀라하마느곳’ 곧 ‘도주의 바위’ 혹은 ‘분리의 바위’로 불렸습니다.
다윗은 사해 근처 엔게디로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들을 사용하여 다윗을 위험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4. 시편 54편: 십 사람들이 다윗의 은신처를 사울에게 알려 줄 때의 기도 시
십 사람들이 다윗의 은신처를 사울에게 알려 주었을 때, 다윗은 시편 45편을 지어서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1 하나님이여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이니이다.”
그러나 탄식은 응답의 확신과 감사로 끝납니다. “6 내가 낙헌제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믿고 복종할 일
사울과 그에게 협력하는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작은 군대의 생명을 계속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십니다. 섭리 가운데 블레셋의 침공을 사용하여 다윗에게는 승리를 주시고,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는 일에서 방해를 받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제사장의 에봇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물으면서 인도를 받았습니다. 경건한 요나단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격려합니다. 또 두 사람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는 것을 언약의 신실함 가운데 이룰 것을 확신시킵니다.
사울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내 손에 넘기셨다” (7절) 고 고백합니다. 또 그에게 협력하는 다른 유다 지파 주민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도망다니던 다윗은 시편 54편과 같이 기도하며 힘을 얻고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괴로움이나 다른 사람의 비난 앞에서 우리도 하나님께 고통을 쏟아 놓읍시다. 위로를 받읍시다. 그렇게 위로를 받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찬양으로 이끄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우리도 하나님의 큰 언약적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의 순간은 여호와께서 더 강하게 우리를 도우시는 순간입니다. 여호와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초라한 순간에 요나단과 같은 믿음의 가족과 형제 자매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격려하고, 우리의 마음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하게 하십니다. 어려운 문제들,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우리 마음을 채우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인생의 해결자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선하신 인도를 받읍시다.
사울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탐욕과 질투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히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오히려 요나단처럼, 나의 욕심을 여호와의 뜻에 굴복시킵시다. 궁지에 몰려 있는 가족과 성도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격려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가 도움을 준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여야 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