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장
사울과 요나단에 대해 다윗이 슬퍼함,
조가를 지어 유다 지파 백성을 가르침
(찬송 208장)
2022-6-22, 수
맥락과 의미
사무엘하 1장은 사무엘상 31장에 나왔던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사무엘하 1장은 사무엘상, 하를 연결합니다. 다윗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나아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악한 왕을 용서하면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존중합니다. 또 왕자 요나단과의 깊은 사랑을 표현합니다. 개인들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분인 왕권이 언약적 사랑과 용서 가운데, 사울에서 다윗으로 아름답게 계승되고 발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14, 16, 21절)는 무엇이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기름부음 받은 분,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 된 우리도 우리 자신과 가족의 일로 개인적인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주의 나라 백성으로서 공적인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기도하고 생각합시다.
1.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다윗은 금식하며 애도(1-16절)
2. 다윗,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한 시를 지어 백성에게 부르게 함(18-27절)
1.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다윗은 금식하며 애도(1-16절)
1) 한 아말렉 사람이 자기가 사울과 요나단을 죽였다고 보고(1-10절)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의 시대가 열렸음을 말합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치고, 삼상 30:17) 자신의 가족이 거주하던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1절). 돌아온 지 사흘째, 한 청소년이 사울의 죽음 소식을 전했습니다. 블레셋과 사울이 싸운 길보아 산에서 시글락으로 오는데 사흘이 걸렸습니다(30:1). 길보아 산은 갈릴리 호수 북쪽으로 가까이 있고 시글락은 이스라엘 아주 남쪽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긴 바로 그때, 사울은 블레셋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 청소년은 머리에 먼지를 쓰고 옷이 찢긴 채 다윗에게 달려왔습니다. 자기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다가 사울을 죽였다고 합니다. 크게 부상한 사울의 요청으로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합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죽었고, 백성, 군인도 많이 죽고 일부는 도망하였음을 전합니다. 사울의 머리의 관과 팔을 감싼 사슬로 된 보호대를 가져왔습니다.
2) 다윗의 애도와 금식(11,12절)
다윗과 그의 군인들은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11절). “사울과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의 집”이 죽임을 당한 것 때문에 저녁 때까지 울며 금식했습니다(12절). 다윗에게 사울은 적이 아닙니다. 사울의 군대는 적이 아니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의 집”이었습니다.
3)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인 아말렉 사람을 죽임(13-16절)
다윗은 두 번이나 그 청소년에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는 자를 죽였다.”는 죄목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말렉 소년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 아말렉 소년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습니다.”(6절)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이스라엘의 군대와 함께 싸웠다고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이스라엘 땅의 외국인의 아들이라고 합니다(옛날 개역 성경에는 “우거하는 자”. 남의 땅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 13절). 그는 아말렉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단순한 이야기를 길게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사울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직분자와 하나님의 백성을 개인적 감정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서로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와 그 직분을 소중히 여깁시다.
2. 다윗,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한 시를 지어 백성에게 부르게 함(18-27절)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의 아픔을 노래하는 애도시를 지었습니다. 이 노래는 “활의 노래”라고 합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유대 백성이 부르게 합니다. “두 용사”(19,21,25,26)의 용감함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격찬합니다(19절).
이 죽음의 소식이 블레셋 땅에 전파되어 블레셋의 딸들이 즐거워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이 죽은 길보아 산은 비도 내리지 않고, 제물(십일조와 같은 수확의 감사의 제물, 21절)도 나오지 않는 땅이 되도록 저주합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능숙한 전투력을 노래하고, 그들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한 것을 칭찬합니다(22, 23).
그리고 그들의 수고로 보호를 받은 이스라엘 여인들에게 이들을 위해 슬퍼할 것을 권유합니다(24절).
마지막은 두 용사에 대한 슬픔을 정리하며(25, 27절), 요나단과 다윗 자신의 우정 어린 사랑을 노래합니다(26절).
이 애도와 용서와 사랑의 노래는 다윗 자신에게 있을 수 있었던 개인적 감정을 치유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분자로서, 공인으로서 성숙하게 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사울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 다윗의 백성(유대 사람들)과 사울의 백성(북쪽의 11개 지파)이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가도록 했을 것입니다.
이 시의 많은 단어는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단어를 반복합니다. 이렇게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무엘하1장을 율법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 가는 한 과정으로 읽으라는 표시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과 용서를 따르던 다윗에게 배웁시다. 피와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가는 섭리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로 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 감사 때문에 서로를 용서합시다. 지금 이 시대 우리 교회, 가정에서 참된 용서의 언약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기도합시다. 그렇게 행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고 그를 대해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다윗의 애도시는 율법(모세 5경)을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언약 백성의 신앙의 연속성을 보여줌
이 시의 많은 단어는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단어를 반복합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제물, 왕의 관, 금(성막, 제사장의 옷의 도구), 붉은색(출 25:4제사장의 에봇의 붉은 실), 고통(9절, 같은 어원의 단어가 출 28:11,13,14,25에는 제사장의 옷의 보석 금테, 출 28:4에는 반포 속옷에서 반포, 즉 직조했다는 뜻) 등의 단어입니다. 율법서의 단어 중,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에 쓰이지 않았다가 다윗의 이야기에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이렇게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무엘하1장을 율법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 가는 한 과정으로 읽으라는 표시입니다.
다윗은 단순히 자기 감정의 표현으로서 애가를 지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말씀에 따라 애가를 지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다윗이 그것(조가)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도록 책에 기록했다.”(18절)는 신명기 31:19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쓰고 가르친 그 노래는 신명기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이 훗날 반역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과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고 회복할 것에 대한 노래입니다.
다윗은 이 노래로써 자신이 사울에 대한 용서의 마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 시는 신명기의 주제, 즉 하나님의 백성의 배반과 하나님의 용서를 왕국 시대 이후의 백성에게 가르칩니다. 다윗의 출신 지파요 그를 왕으로 먼저 인정하는 유다 백성이 이 용서와 화해의 노래를 먼저 부릅니다. 그래서 사울의 출신 지파 베나민 지파와 그를 따르던 온 이스라엘 지파가 하나님의 언약적 용서와 사랑의 품 안으로 달려오게 합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직장, 삶 가운데 개인적 갈등과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힘으로 사용합시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마음으로 용서할 뿐 아니라, 우리의 입으로 용서와 화해를 말하고 노래하여, 적극적으로 용서의 하나님 나라로 사람들을 초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