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무엘하 강해

사무엘하 18장 요압이 잔인하게 압살롬을 죽임, 다윗의 슬픔 2022-7-12, 화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7.11|조회수138 목록 댓글 0

사무엘하 18

요압이 잔인하게 압살롬을 죽임, 다윗의 슬픔

(찬송211장)

2022-7-12,

맥락과 의미

성문에서 반란을 일으키던 압살롬 (15장)의 이야기는 다윗이 성문에서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끝납니다 (18장). 압살롬의 영광이었던 머리털(14:25)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일하셔서 아버지와 왕에게 반역한 그의 죄를 벌하십니다.

오늘 본문도 인간이 죄와 비참함에 대해 가르칩니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거스르고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다윗은 반역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동시에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살려주고 싶어하는 그 두 마음 사이에서 고통했습니다.  다윗의 약한 모습을 봅니다.

신약 시대의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에게도 죄와 갈등, 난처함,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나라를 세워 가심을 가르쳐 줍니다.

 

1. 압살롬의 죽음 (1-18절)

2. 압살롬의 죽음과 다윗의 통곡 (19-33절)

 

1. 압살롬의 죽음 (1-18절)

1)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다윗의 명령, 다윗 군대의 승리 (1-8절)

다윗은 마하나임에서 부대를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대와 싸우도록 보냈습니다. 다윗도 전쟁에 나가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군사들이 다윗을 공격의 목표가 될 것이라면서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의 출전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다윗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군대 장관들에게 압살롬을 살려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전쟁에서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군대를 이겼습니다. 이날  전쟁에서 칼이 사람들을 삼킨 것보다 수풀이 사람을 삼킨 것이 더 많았습니다. 아마도, 나무 수풀에 찔려서 많은 사람이 죽은 듯합니다.

 

2) 요압이 압살롬을 쳐 죽임 (9-14절)

압살롬은 나귀를 타고 도망하다가 그의 머리가 도토리나무에 걸렸습니다. 나귀는 그냥 도망갔고 그는 공중에 달려 있었습니다. 다윗의 군대 군인 중 한 명이 요압에게 보고했습니다. “왜 당장 죽이지 않았느냐?” 요압의 말에 그 군인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12절) 또 압살롬을 죽이는 것은 다윗 왕에 대한 거역 (반역이라는 뜻, 13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자기의 호위병 10명을 데리고 가서 압살롬을 마구 찔러서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3)  압살롬 군대의 패배와 압살롬의 이름으로 세운 돌무덤 (16-18절)

압살롬의 죽음으로 그의 반역은 끝이 났습니다. 요압은 압살롬을 구덩이에 묻고 그 위에 돌들을 쌓았습니다/세웠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를 기록한 선지자는 그 돌을 쌓은 것을, 전에 압살롬이 살아있을 때 자기 이름으로 돌비를 세운 것과 연결하여 말합니다. 그의 이름을 이어갈 아들이 없는 것을 슬퍼하며 돌을 ‘세워’ 자기 이름을 남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남긴 더 큰 것은 그의 시체위에 ‘세워진’ 돌무덤이였습니다.  자기 이름을 남기려는 노력이 헛됨을 보여줍니다.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왕이 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허무하게 인생을 끝냈습니다.

오래전에 사울 왕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삼상 15:12)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과 전쟁하면서 사람도, 짐승도 모두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축들 중에 가장 좋은 것들과,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아말렉 왕은 살려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며 탐심을 따라간 사울 왕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인생도 허무하게 전쟁에서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려는 명예욕과 탐심 때문에 인생을 망치지 맙시다. 주신 직분에 겸손이 머물러 사명을 다합시다.

 

2.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과 다윗의 통곡 (19-33절)

압살롬의 군대의 패배와 그의 죽음을 제사장 사독의 아들인 아히마스가 전하려 합니다. 하지만 요압은 만류합니다. 그래도 아히마스는 죽음의 소식을 들고 달려 갑니다. 그러나 요압은 구스 사람에게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전하게 합니다. 아히마스는 반란군 전체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28절). 압살롬의 소식을 묻자, 아히마스는 침묵합니다. 이어서 구스 사람이 와서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습니다.  왕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이 그 소년 (압살롬을 말함)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31,32).

다윗의 왕권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반란군과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로 축하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과 아버지의 직분 사이에서 크게 통곡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33절).

파수꾼은 ‘성문루’ (24절)에 올라가서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문루”는 “지붕”을 말합니다. 다윗은 전에 왕궁의 지붕 위에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음행했습니다(11:2). 이제는 도망한 성의 성문에서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 전해 받습니다.  30절에서 문 위에서의 통곡은 바로 그 지붕위에서 시작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눈물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에 대해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으로서는 자신의 죄악과 아들의 죄악 사이에서 통곡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사랑)과 왕으로서의 역할 (반역자에 대한 징벌)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통곡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범죄와 압살롬의 범죄 두 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압살롬은 죽었습니다. 아들이자 반란군의 왕인 압살롬의 죽음 앞에 다윗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윗도 아니고 압살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언약 백성을 사랑하여서 징계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이 주제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은 죄인들입니다. 다윗도 압살롬도, 또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 요압도 하나같이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 가운데 다윗과 그의 왕권을 굳게 하시면서 당신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 안에서 다윗은 고통하고, 울고 회개하며 살아갔습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주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모두가 죄인들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언약의 사랑 안에 계속 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 불행들만 보지 말고, 그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고 신뢰합시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거룩하게 삽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는 삶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