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1장
하나님의 뜻과 계시로 그리스도를 받아 사도들과 친해짐
(찬송 16장)
2023-9-4, 월
맥락과 의미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의 교회가 갈라디아 지역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46-48년)때 이 지역을 방문하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후에 자신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시리아의 안디옥 교회, 갈라디아 지역의 안디옥과는 다름)에 있으면서 이 편지를 썼던 것 같습니다. 48-49년에 썼을 것입니다. 그 후 예루살렘 공의회(49-50년)가 열립니다.
편지를 쓴 목적은 갈라디아 교회를 구약 율법의 의식법(할례, 절기 등 구약 백성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인 ceremony, 의식)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단적 가르침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갈라디아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할례도 반드시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온전성을 부인했습니다. 반쪽-행위 구원론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할례나 구약 율법 중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의롭게 된 후에 성도가 그런 의식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한 점이라도 더하려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강력히 선언합니다. 나중에 공의회도 같은 결정을 했습니다.
의식법이 아닌 십계명에 나타난 도덕법은 경우가 다릅니다. 그것을 지킴으로써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인정받은 후에 성령님의 인도로 지키는 것입니다.
1. 복의 선언: 발신자, 수신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너희에게!(1-4절)
2.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5-10절)
3.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바울의 사역 과정(11-24절)
1. 복의 선언: 발신자, 수신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너희에게!(1-4절)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구합니다. 다른 서신들에서는 바울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사도”라는 것을 강조합니다(1절). 그의 권위가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주어졌다고 강조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사도 직분은 사람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하셔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갈라디아 서신에 있는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또 다른 예언을 구하거나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지 말고 성경의 계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절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요약하여 강조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 것은 사람의 뜻을 따라서 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으로 인도하십니다. 11절에서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 미리 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와 목사는 이 인사말에 나와 있듯이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역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복음 사역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목사가 그리스도를 흐리지 않고, 핵심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분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영원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복음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신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반복해 듣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복음을 듣는 일에 싫증을 내는 불경건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매순간 복음을 달게 받고, 그리스도를 즐거워합시다.
2.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5-10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로 의롭게 된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복음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인들이 갈라디아에 와서 이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에 교인 중에는 그들의 말의 한 면만 보고 현혹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갔습니다. 이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 저주받을 일을 이토록 빨리 행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고 놀랍습니다(6절).
우리는 순수하게 복음만을 말해야 합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하면 다른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전에 갈라디아 교회에 순수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 자신이나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노니”(9절)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 대한 저주가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8,9절), 곧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다른 복음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 사람의 생각을 신뢰하고 높이는 것이 그 중요한 원인입니다. 그때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잘못된 교리를 전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순수한 복음을 가르치십니다.
중세 교회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더하여 사람의 행위도 구원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때 루터나 칼빈 같은 선생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복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령님을 의지하여서 사도가 전한 복음을 굳게 지킵시다.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는 분명히 판단하여 저주하고 멀리합시다.
바울은, 만일 자신이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쁘게 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10절). 지금도 목사나 말씀 전파자가 사람의 종교 감정을 자극하거나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데서 십자가의 복음이 흐릿해집니다.
우리 모든 성도도 무슨 일에서든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인정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일이 있다면 오히려 자랑합시다.
3. 하나님의 계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바울의 사역 과정(11-24절)
1)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순종: 다메섹➞ 아라비아 ➞다메섹(11-17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 교회가 그가 전한 복음으로 다시 돌아와 믿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전에 전했던 복음의 권위를 주장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2절)를 통해 받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닙니다.
16절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사도 안에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도 바울에게 계시하셨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계시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이 은혜의 복음 전파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전에 유대인의 율법을 실행하는 데 열심이 남달랐습니다(15절). 그때 유대교에 있을 때 교회를 핍박하고 파괴했습니다(13, 23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15,16절) 그리스도를 계시하셨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에도, 그를 태중에서 짓기도 전에 그를 아셨습니다. 선지자의 직무를 위해 태에서부터 이미 거룩하게 구별해 두셨습니다(렘 1:5). 바울에게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택정”(15절)의 원래 의미는 ‘따로 구분해 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에 쓰일 사람을 영원 전부터 구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사람을 부르십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의 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인으로 영원 전부터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때에 우리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때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의 지체로 불러 주셨습니다. 복음으로 교회 안으로 불러 주시고, 가정과 직장의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 전부터 구별해주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별하셨다는 것 때문에 안정감을 가지고 우리의 직분을 다합시다.
사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가족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선배 사도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성령님을 통해 복음을 더 배웠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루살렘 사도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요, 그들에게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루살렘 사도들이 인정해주어야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성령님께 직접 배웠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하는 말이 교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 의도는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서 갈라디아로 온 거짓된 교사들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권위를 빙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예루살렘에서 사도 만남: 아라비아(3년) ➞다메섹 ➞예루살렘(18-20)
그는 다메섹에서 있다가 18절에 “그 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 후 3년”은 다메섹에 3년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가 아라비아로 갔던 3년의 기간을 말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지 3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15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만났습니다 높은 사람을 ‘알현’하듯이 한 것이 아닙니다. 동료로서 방문했습니다. 서로 받은 복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외에 다른 사도들”은 만나지 않았습니다(19절).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닙니다”(20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계시를 받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합니다.
사도들은 머리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공동체이기에 서로 존중하며 교류하고 사역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고, 또한 바른 복음이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독립성을 여기서 강조합니다.
오늘날 복음 전파자는 이처럼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자긍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품위 있는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성도도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가진 자로서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3) 바울의 회심을 들은 교인들 하나님께 영광돌림: 시리아와 길리기아(21)
22절부터는 바울이 그를 직접 만난 적 없는 성도들에게도 인정받았음을 말합니다.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지금의 터키 동부)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23절)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자존심은 바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높였습니다.
“나를 부르신 이(성부 하나님)가 ... 그(예수 그리스도)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15,16절).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22절). 두 말은 비슷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회는 사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교회 모두에게 도구처럼 쓰임 받고 있습니다.
사도는 계시의 수단이었습니다. 사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도와 다릅니다. 성경에서, 이전 교회의 선생들로부터, 목사로부터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사도들도 서로 복음을 인정하고 배우면서 사역을 했습니다(베드로후서 3:15,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하면서 서로 배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시리아 지역과 길리기아 지역(바울의 고향 다소가 있는 지역)에서 4-5년간 사역을 합니다(38-43년). 그리고 이어서 시리아 지역의 안디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바나바와 함께 목회합니다(44년).
믿고 복종할 일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가볍게 생각하는 교인이 많습니다. 뭔가 선행을 해야 구원받는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습니다. 이 순수한 복음을 우리 교회가 계속 선포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계시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더 풍성히 배우고 성장합시다. 배운 복음을 굳게 확신합시다. 복음에 반대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굽히지 맙시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온전한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우리를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인정받는 데 힘써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며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합시다. 오늘도 하나님께 입술로 찬양하고 손으로 순종하며 영광 돌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