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빌레몬 형제, 함께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형제가 된
당신의 노예 오네시모를 해방해주십시오
(찬송 262장)
2024-2-28, 수
맥락과 의미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 시저의 재판을 기다리는 중에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황제 근위병들의 군부대 바로 앞에 있는 개인 집을 임대했습니다. 사도는 그곳에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항상 로마 군인이 함께 있으면서 죄수인 바울을 지켰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다 그때 쓴 편지라서 “옥중 서신”이라고 합니다(에빌골몬).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부자 교인이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교회가 모였습니다. 노예도 여러 명 있었던 듯합니다. 그의 노예 중 한 명인 오네시모가 도망을 쳤습니다. 오네시모는 로마에 와 있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와 함께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그것을 두기고 편에 골로새로 보냈습니다. 노예 오네시모도 함께 보냈습니다 (골 4:7-9).
빌레몬서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빌레몬 형제, 도망친 당신의 노예 오네시모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나를 크게 섬겨서 유익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형제 성도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여 그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이 간단한 말을 길게 합니다. 오네시모의 이름도 10절에 가서야 나옵니다. 빌레몬이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참 믿음과 사랑 가운데 이 결정을 내리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빌레몬서에서 다른 성도에게 선한 행동을 권면하는 지혜를 배웁니다. 또 우리 자신이 서로를 향해 선한 행동을 할 때도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과 사랑 가운데 선을 행해야 합니다.
1. 은혜와 평화를 축복(1-3절)
2. 하나님께 감사(4-7절)
3. 이제 형제가 된 오네시모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간청(8-22절)
4. 형제 공동체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23-25절)
1. 은혜와 평화를 축복(1-3절)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리스도를 주시고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누립니다. 은혜와 평화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축복의 선언은 사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특히 빌레몬과 그의 아내 압비야, 그리고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에게 씁니다. 아킵보는 골로새에서 목사 또는 장로의 일을 하는 중요한 직분자였던 것 같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일차적으로는 빌레몬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와 교회의 목사/장로가 증인처럼 함께 읽도록 했습니다. 아마도 교회 전체가 함께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감사(4-7절)
사도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항상 빌레몬을 말합니다(4절). 하지만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8절 이후에 빌레몬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편지의 주를 이룹니다.
사도는 빌레몬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5절). 빌레몬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6절). 믿음에 참여하는 교제는 삼위 하나님의 교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레몬과 교제하시며 빌레몬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빌레몬 안에서 일하십니다.
빌레몬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아는 것”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의 삶 가운데 지식이 실제로 행동으로 역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선행이 형제 자매를 향해 나타납니다.
빌레몬 때문에, 많은 성도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즉 안식을 체험했습니다 (7절). 사도 바울도 역시 빌레몬 때문에 많은 기쁨과 위로(하나님이 주시는 안식)를 경험했습니다. 빌레몬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이제 형제가 된 오네시모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간청(8-22절)
사도는 빌레몬에게 노예 오네시모를 해방시켜 줄 것을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8절). 빌레몬이 이제 형제가 된 노예를 해방시켜 형제로 받아들이고 사도 바울을 섬기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령하지 않습니다. 빌레몬에 대한 “사랑” 가운데서 “권면”합니다(9절). 위로하며 권면합니다. 빌레몬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또 사도 바울을 향한 사랑 가운에서 자원하여 결정하도록 권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이 권합니다
바울 자신을 표현한 “나이가 많은”(9절)은 “장로”라는 뜻도 됩니다. 복음 전하는 자를 그때에는 “장로”라고도 했습니다. 고후 5:20에서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신”은 “장로”와 같은 말입니다. 복음을 맡은 자로서 늙은 나이에 감옥에 갇힌 사도가 권면합니다.
오네시모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사도가 구금 중에 복음을 전하여 오네시모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는 빌레몬에게서 도망칠 당시에는 “무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 자체가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에게도,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주인인 빌레몬에게 유익하게 된 노예 오네시모를 돌려보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심복이 되었습니다. “심복”(마음 또는 배라는 뜻)은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노예 오네시모는 지금까지 옥중에 있는 사도를 섬겼습니다. 주인인 빌레몬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습니다. 사도는 오네시모를 계속 로마에 남겨두고 싶어합니다. 계속 사도 자신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13절).
그러나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빌레몬의 승낙없이 그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빌레몬이 하는 일이 “억지 같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의로” 하기를 원했습니다(14절).
사도는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성도가 사랑의 일을 결정할 때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양심으로 구체적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주체적 인간으로 대해 주십니다. 노예처럼 억지로 순종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을 사도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오네시모가 도망쳐서 주인을 떠난 것에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주인인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형제로서 영원히 소유하도록 하셨습니다(15절).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이제는 종으로 대하지 말라고 합니다(16절).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라고 합니다.
빌레몬은 사도를 동역자로 압니다(17절). 동역자는 믿음의 “교제”(코이노니아, 6절)의 결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성도들 안에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로마서 14:1에서 사도 바울이 “약한 형제를 서로 받으라”고 권할 때도 이 말을 씁니다. 성도의 약한 것을 대신 감당해주는 일을 이제 노예인 성도에게도 하라고 합니다.
노예 주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사도와 함께 성도의 교제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같은 복음을 믿은 자신의 노예와도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자유인의 신분을 주어 함께 교제해야 합니다.
노예인 오네시모가 주인에게 불의한 일을 행했거나 “빚을 진” 일이 있을 것입니다(18절). 노예를 풀어주면 당연히 주인에게 손해가 생깁니다. 그것을 사도에게 청구하라고 합니다. 사도는 친필로 각서를 쓰면서 말합니다(19절). “내가 대신 갚겠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빌레몬이 사도에게 “빚졌음”을 밝힙니다. 빌레몬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의 자유와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 대가로 하나도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 빚은 노예 한 명의 몸값에 비교할 수 없이 큰 사랑의 빚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에게 빚진 것 때문에 자신의 노예를 형제로 받아야 합니다.
“오 형제여!” 이제 더 부드러운 말로 간곡히 호소합니다(20절). “당신의 노예를 해방하여 나에게 다시 보내주시오. 그는 나를 돕는 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쁨을 얻게 해주시오. 당신의 사랑의 행동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시오.” 7절에서 이미 “당신은 나에게 평안함을 얻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더 평안을 얻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사도는 빌레몬이 그리스도께 순종할 것을 확신합니다(21절). 자신이 간청한 것보다 더 후하게 오네시모를 대할 것을 압니다. 사도는 곧 빌레몬을 방문하기 원합니다(22절). 있을 곳을 준비해달라고 합니다. 자신이 어서 방문하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이 가기 전에 노예 형제를 해방시켜야 함을 간접적으로 독려합니다.
4. 형제 공동체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23-25절)
사도는 형제들의 문안을 공식적으로 전합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의 구금과 고난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마가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는 복음사역에 함께 수고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건한 복음 전파자들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한 권면에 대한 증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빌레몬이 사도를 통한 성령님의 권면에 복종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영)과 함께!” 성령님이 선포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 빌레몬과 그의 아내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이에 순종하면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부부의 순종의 결과로 평화가 하늘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께서 큰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삼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교제(코이노니아)에 참여한 성도들과 좋은 것들을 나누는 교제(코이노니아)를 합니다. 우리가 힘 닿는 대로 좋은 것을 나눕시다. 특히 자신보다 약한 성도, 믿음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건강이 약한 성도들과 우리의 것을 나눕시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께 큰 빚을 졌습니다.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빚”(롬 13:8)을 갚읍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빚진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빚)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고 기도합시다. 기도한 대로 순종합시다. 우리에게 빚진 자의 빚을 없애주듯이 용서합시다. 나아가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찾읍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짐승처럼, 노예처럼, 강제로 사랑을 실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자원하여 순종하여 기쁨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셨습니다(빌 2:5-13). 사랑과 희생을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르는 자입니다. 사랑의 의무를 자유로 행하는 자가 참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존귀한 자입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6절, 역사함 (엔-에르게오)
“역사하신다”(엔-에르게오, 여기서 ‘에너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사도와 성도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 엡 1:19, 3:7, 4:16).
<참고> 12절, 심복(스플랑크나)
“심복”(스플랑크나, 마음 또는 배라는 뜻)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신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막 6:34).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서로를 마음에 두는 깊은 사랑을 말합니다(빌 1:8).
<참고> 14절, 억지로 함(아낭케)과 자발적으로(에쿠시온), 승락(그노메)
바울은 빌레몬이 자기 노예인 오네시모에게 자유를 주는 일을 “억지같이”(아낭케, 필연적이라는 뜻)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의로”(에쿠시온) 하기를 원했습니다(14절). 자의는 억지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자원하는 것입니다.
한편 억지로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도의 직분은 “부득불”(아낭케) 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9:16).
빌레몬이 “승낙”(그노메)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원칙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여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7:6,25,40에는 “나의 허락”, “나의 의견”, “나의 뜻”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분방, 약혼 파기, 재혼에 대해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사도가 결정합니다. 듣는 성도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상황을 잘 판단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참고> 17절, 동역자와 믿음의 교제
빌레몬은 사도를 “동역자”(17절)라 합니다. “동역자”(코이노노스)는 믿음의 “교제”(코이노니아, 6절)의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성도들 안에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참고> 17절, 영접하라(프로스-람바노)
오네시모를 “영접하라”(프로스-람바노)고 합니다. 로마서 14:1에서 사도 바울이 약한 형제를 서로 받으라(프로스-람바노)고 권할 때도 이 말을 씁니다.
성도의 약한 것을 대신 감당해주는 일을 이제 노예인 성도에게도 행하라고 합니다. 노예 주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사도와 함께 성도의 교제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같은 복음을 믿은 자신의 노예와도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자유인의 신분이 된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참고> 18, 19절, 빚진 것(오펠레이, 오펠리오스)
노예인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에게 불의한 일을 행했거나, “빚을 진”(오펠레오) 일이 있을 것입니다(18절). 노예를 풀어주면 당연히 주인에게 손해가 생깁니다. 그것을 사도 앞으로 계산하라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빌레몬이 사도에게 “빚졌음”(프로스-오펠레오)을 밝힙니다. 빌레몬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의 자유와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 대가로 하나도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 빚은 노예 한 명의 몸값에 비교할 수 없이 큰 사랑의 빚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에게 빚진 것 때문에 그의 노예를 형제로 받아야 합니다.
<참고> 19절, 갚으려니와(아포티노)
사도는 친필로 각서를 쓰면서 말합니다(19절). “내가 대신 갚겠다” (아포티노).
룻기 2:12에서, 유대인 가정으로 시집왔다가 과부가 된 이방 여인 룻에 대해 부자 보아스는 이렇게 축복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셜레마)하시기를 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
여기서 “보응”(셜레마)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대신 갚겠다” (아포티노)입니다. 보아스 자신이 여호와의 보응을 대신 행했습니다. 룻의 시댁(시아버지는 죽고 시어머니 나오미만 생존해 있었음) 가문이 잃은 재산을 회복했습니다. 또 이방 여인 룻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노예 오네시모를 위해 빚을 갚으면서 보아스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 회복하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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