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5장
예레미야 선지자의 비서로서 고난 당하던 바룩에게
하나님이 축복 약속
(찬송 16장)
2023-6-21, 수
맥락과 의미
45장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비서로서 예레미야서를 기록한 바룩이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하시는 예언입니다. 이것은 바룩 개인에 대한 말씀만이 아니라, 언약 백성을 위한 약속으로 들어야 합니다.
36장에서 바룩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했던 두루마리 책을 여호야김 왕이 불태웠습니다(여호야김 왕 4년, BC 605년). 그때 왕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와 함께 숨었고, 하나님이 숨겨 주셔서 살았습니다. 45장은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축복과 격려의 말씀인데, 예레미야서 뒷부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BC 605년에 이집트 군대가 바벨론에 진격했지만, 완전히 패배하고 돌아갔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지역의 국제정치에서 독점적인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해 BC 605년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에 들어와 왕에게 수모를 주었습니다. 성전 기구 얼마를 가져가고 다니엘 등 청년 엘리트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단 1:1-6). 하나님의 백성의 1차 바벨론 포로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미 여호야김 왕의 아버지, 경건한 왕 요시야 왕 때부터 BC 605년까지 23년 동안 예언해 왔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고 예언했습니다(25:1-3). 그 23년 동안의 예언을 바룩에게 다시 구술하여 정리한 것이 BC 605년의 일이고, 36장에 기록되었습니다.
20년 전에 있었던 36장의 사건의 한 부분을 45장에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미쌍관으로 만들어 그 안에 36-45장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시드기야 왕 때, 588-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왕의 눈을 빼고 많은 귀족과 부유한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3차 바벨론 포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멸망의 시작은 37-38장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계속 예언하자,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납니다.
39-44장에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남은 자들이 혼란에 빠져서 암몬과 이집트로 도망갑니다. 그 마지막 멸망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것이 20년 전에 멸망을 예언한 책입니다.
“보아라!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대로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이 예언의 말씀이 여전히 적용됩니다. 그 말씀대로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벌하신다고 경고합니다. 섬김을 위해 고난당한 종들은 계속 살아남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1. 바룩이 말씀 사역의 고난을 탄식하며 말함을 하나님이 아심(1-3절)
2. 하나님의 축복과 격려(4-5절)
1. 바룩이 말씀 사역의 고난을 탄식하며 말함을 하나님이 아심(1-3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 BC 605년에 바룩은 예레미야가 구술하는 대로 그때까지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왕의 핍박을 피해서 도망갈 때였습니다(36:19, 26).
하나님은 바룩의 고난과 탄식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가 말한 것을 내가 안다.” 그의 탄식을 들으셨다고 여호와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담대히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처음에 그 일이 잘될 때는 힘이 납니다. 그러나 계속 반대에 부딪치고 열매가 없을 때 좌절감이 일어납니다. 더구나 반대와 핍박 속에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순종하는 일을 끝없이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바룩은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불평하며 탄식했습니다. “아이고(오이: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고통 위에 슬픔을 더 많게 하셨습니다. 나는 탄식으로 피곤하고 평안치 못합니다.”(3절) 바룩은 평안을 찾지 못하고, 안식이 없다고 부르짖습니다.
“슬프다. 나여!” 이 말은 예레미야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한 말입니다.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10:19)
독백처럼 들리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는 탄식입니다. 성전에서 예레미야의 초기 예언(7-10장) 마지막에 이 탄식을 합니다. 그때는 예레미야는 탄식하지만 인내하며 굳게 나갔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한 예언(18-2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큰 좌절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20:7-18은 길게 탄식합니다. “나는 종일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20:7) “여호와의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 찬양하라.”(20:12,13) 다시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다면.”(20:14)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탄식과 찬양을 반복합니다. 그토록 예언의 사역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아 분명히 멸망당하는데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와 그의 비서를 핍박하고 말문을 막으려 합니다.
예레미야와 바룩은 하나님의 영광과,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괴로워합니다.
2. 하나님의 축복과 격려(4-5절)
하나님은 바룩을 격려하십니다. “나는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4절)
1:10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주신 예레미야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하나님은 세우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 말에 담아 주셨습니다(2:21, 31:4-5, 28, 40, 32:41, 33:7).
이 땅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종과 백성은 “큰일을 경영하지 말라(바카셔)”, 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룩은 서기관이었고 그의 형 스라야는 시드기야 왕 때 요직을 차지했습니다(32:12, 51:59).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바룩은 그런 세상 적으로 높은 지위를 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땅을 다스리십니다(4절). 나라들을 세우기도 하고 파괴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5절). 46-51장은 이집트, 바벨론 등에 내리실 재앙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바룩은 자기의 지위나 안락에 대한 생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생명이 위협을 받더라도 하나님과 그분의 종 예레미야의 나팔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성전 예배를 거룩하게 보존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온 세계를 다스리는 주권적 하나님을 선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전쟁에서 이긴 왕은 적의 나라를 파괴하는 가운데서 귀중품을 약탈물로 건져 냅니다. 그처럼 하늘의 왕 여호와께서는 바룩의 생명을 보호하시겠다 약속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생명을 너에게 약탈물로 주리라(나탄).”(5절)
바룩의 생명을 그를 핍박한 하나님의 백성이나 세계의 강대국이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바룩에게 생명을 계속 공급하십니다.
그에게 이 땅에서 안락과 명예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39-44장에서 보여 주듯이, 그는 고난 가운데 살아남아 계속 말씀의 나팔수가 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바벨론의 3차 포로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은 바룩을 비방했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를 유혹해서 우리를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주어 죽이려 한다.”(43:3) 민족의 배신자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이 땅의 사명이 끝나지 않은 한 바룩의 생명은 고난 가운데서도 계속 붙어 있을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탄식으로 지친 그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고통을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혼란과 고통 가운데서 탈취물처럼 살아남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 안에서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당하면서도 담대히 말씀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 20년 전에 하나님은 바룩에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시는 이야기(37-44장)를 계시의 말씀(36, 45장)이 감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과 신실함을 보여 줍니다.
예레미야 말씀과 성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 교회와 온 인류 역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고 삼위 하나님을 경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나 바룩처럼, “고통, 슬픔, 탄식, 피곤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데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안락이 복이 아니라 열매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 일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분과 교회를 위한 고통과 슬픔도 즐거워집니다. 고난을 계속 당하면서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말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룩의 탄식은 개인적 체험이 아니라 신구약 교회, 온 세계 보편 교회의 언약 백성의 탄식과 축복의 한 부분입니다. “탄식으로 피곤하다”(야가아 하나하)는 시편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그 말씀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탄식으로 부르짖으면서 확신의 찬양으로 나갔습니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 6:8-9). 다윗의 탄식과 피곤함을 호소하는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한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 기도 시를 교회를 위한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바룩도 그 시편으로 기도하며, 그 시편을 통한 응답을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 이렇게 쌓여온 계시의 말씀의 유산은 예레미야서에 저장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씀을 읽으며 70년 포로 생활을 견뎠습니다.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1-3).
다윗, 예레미야, 다니엘 등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시면서 구약의 율법의 참 의미와 그리스도의 일하심에 의해 진전된 의미를 산상 수훈을 통해 잘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분 자신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 모든 삶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는 행동을 통해서 구약의 모든 약속과 위로를 이루셨습니다. 그분의 구원의 행동이 바로 계시의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승천과 다시 오심 그 구원의 이야기는 구약 성도들의 고난의 참 의미를 새롭게 비추며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승천하여 몸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교회에 성령을 보내셔서 바룩과 예레미야의 예언이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심판의 말씀이며 동시에 살리는 말씀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을 그 고난을 통해 몸으로 충만히 이루었기에(골 1:19, 2:9) 우리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충만케 하노라)”(골 1:24).
사도들, 이 시대 말씀 사역자들, 모든 성도들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의 육체 안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충만케 하면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며 성령님으로 충만케 됩니다(엡 5:18-1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천국 영광의)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지금 나는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동시에 고난 중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수미쌍관법 (인클루지오, 라틴어 inclusio, 영어 inclusion)
36장에 나온 예루살렘의 구술을 바룩이 기록한 사건 때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과 격려를 45장에 소개합니다. 36장부터 45장까지를 바룩이 기록한 예언서의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맨 앞과 맨 뒤에 바룩에 관한 이야기를 넣어서 이 부분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줍니다.
한 단락의 가장 앞과 뒤에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을 수미쌍관법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이므로, 듣는 성도들에게 반복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기법을 자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