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7장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위로
(찬송 479장)
2023-6-23, 금
맥락과 의미
1-45장에서 유다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에 대한 말씀이 끝납니다. 다시 52장에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회복의 빛이 있습니다.
그 사이 46-51장은 이방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그 심판의 예언의 중심에는 “여호와 하나님”, 주권자 하나님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분명하게 기록된 경우도 있습니다(50:33-34). 그러나 오늘 블레셋의 멸망의 이야기에는 암시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멸망할 때까지 쉬지 않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쉼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예언에 나오는 블레셋을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다 죄인들입니다. 어느 나라도 선택되어 구원받지 않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들만이 평안에 참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기독교의 이름으로 전쟁과 살해를 정당화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듯이(히 6:6) 두려운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발 앞에 모든 민족의 사람들이 굴복하라는 초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팔레스타인 사람, 미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러시아 사람, 한국 사람 등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의로움을 주장하며 싸우지 말고, 자기 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 앞에 나와 하나님과 평화 누리고, 서로가 평화를 누리라는 초대입니다.
1.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심판하실 것(1-4절)
2. 하나님의 칼이 블레셋에 대하여 쉬지 않고 멸망시킬 것(5-7절)
1.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심판하실 것(1-4절)
파라오(46:2의 바로 느고, 혹은 37:5의 바로 흐브라)는 누구를 말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블레셋에 여러 시기에 걸쳐서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예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을 통해서 원칙만 말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구체적 역사 상황에서 적용하여 계시의 말씀이 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교회에 관한 말씀만 주시지 않습니다. 이방 나라들, 즉 우리가 사는 국가와 지구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분별하게 하기 위해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가사, 두로, 시돈, 아스글론 등은 블레셋 민족이 사는 지역의 이름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블레셋을 친 것은 아마도 BC 609년의 침공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때 이집트는 바벨론에 의해 망해 가는 앗시리아를 돕기 위해 가나안 지역을 통과했습니다. 선한 유대의 왕 요아스는 친 바벨론 정책을 썼기 때문에 그때 이집트 군대를 므깃도에서 만나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때 진군하던 이집트는 블레셋 지역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BC 604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다시 이집트를 치러 가면서 블레셋을 정복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예언했고,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북방, 즉 바벨론이 밀려오는 홍수처럼 블레셋을 덮을 것입니다.
갑돌은 지중해의 크레테 섬을 말합니다. 원래 블레셋 민족은 지중해의 여러 섬 중 특히 크레테 섬에 근거를 두고 살았습니다. 주전 12세기에 이집트로 민족 이동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가나안의 해변지대에 거주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 민족의 발상지에 사는 자들까지 멸망시킬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칼이 블레셋에 대하여 쉬지 않고 멸망시킬 것(5-7절)
아주 풍자하면서 그들의 멸망을 비웃습니다. “그들의 멸망 때문에 삭발하고 몸을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그들의 멸망을 선지자는 조롱합니다.
바벨론을 “여호와의 칼”로 사용합니다. “언제까지 쉬지(샤카트: 평안하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다맘) 쉴지어다(라가아).” 칼이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를(블레셋을 치라고)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샤카트)?”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회복시켜 주실 평안(샤카트, 30:10)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칼이 블레셋에 대하여 쉬지(샤크트, 47:6, 7) 않고 멸망시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가올 평안은 그 백성을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여 오는 평안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은 블레셋과 같은 세상을 통해 교회가 조롱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교회가 죄악을 지으면서 세상에서 큰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비난과 비판을 매로 사용해서 교회를 징계하십니다. 그 백성을 정결케 하십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교회를 조롱한 세상을 다시 치십니다.
심판은 항상 먼저 하나님의 백성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벧전 4:17) 하나님을 모르면서 교회를 비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들이 받을 심판은 더 클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둘러싸고 바로 곁에는 블레셋, 동쪽으로는 강대국 바빌론, 서남쪽으로는 다른 강대국 이집트가 있었습니다. 구약 교회는 강대국들의 세력다툼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국제 정치와 군사적 충돌의 중심에는 여호와가 계십니다. 블레셋에 관한 7개의 구절에서 네 번이나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2, 4, 6, 7절). 여호와의 칼이 모든 국제정치의 중심에 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닌 것을 압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나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양을 친다는 뜻)”(계 19:15). 그분은 피 흘리는 칼을 들고 그분 자신을 십자가에서 찔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 말씀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얻게 합니다.
이제 교회는 구원받은 공동체로서 복음으로 사람들의 양심을 찔러 회개케 합니다. 영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그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게 하십니다(롬 12:1). 교회와 목사와 말씀을 아는 모든 성도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명은 목사의 복음 전파에서 나타나지만, 성도의 삶과 말에서도 나타납니다.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복음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또 서로가 평화를 누리는 일이 교회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방 나라(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이 평화의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복음으로 이 평화를 경험한 성도들은 칼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힘으로 평화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더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회와 가정에서 화목합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정치 지도자들이 높이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히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씻기는’ 정치를 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들 중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평화를 위해 일어서는 용기가 있기를 기도합시다.
특히 북한 정권의 인권과 신앙 탄압, 비참한 경제 상황으로 억압당하는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죄와 부족함을 아는 불신자들은 교회를 조롱합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나는 어떻게 평화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갈등이 있는 곳에서 평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6절, “쉬지 않겠느냐?”(샤카트) “쉴지어다”(라가아)
30-31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치신 다음에 다시 새 언약을 맺고 회복할 것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1) 쉬지 (샤카트: 평안하지)
30:8-10,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샤카트: 쉼, 평안)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평안은 블레셋을 심판하는 칼입니다. 모압과 다메섹에도 ‘평안’(샤카트)이 없을 것입니다(48:11, 49:23).
2) 쉴지어다 (라가아)
31:1-3,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라가아)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헤세드: 언약적 사랑)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바벨론의 심판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쉼과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이스라엘과 유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반드시 그들 때문에 싸우시리니, 그 땅에 평안함(라가아)을 주고, 바벨론 주민은 불안(라가즈)하게 하리라.”(50:34)
예레미야서 전체를 계속 반복하여 들은 구약교회 성도들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에서 나오는 이 두 단어 ‘샤카트’(평안)와 ‘라가아’(안식)라는 말을 들으면서 금방 알 것입니다.
비록 자신들이 바벨론 포로로 가면서 이방 나라의 조롱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는 평화가 없을 것을 조롱하시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블레셋에 대한 심판의 표현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언약적 사랑으로 반드시 회복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