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장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예언하여 죽도록 맞고, 이로 인해 하나님 앞에 탄식하기 시작하여 찬양 2023-5-23, 화
작성자축제작성시간23.05.22조회수125 목록 댓글 0예레미야 20장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예언하여 죽도록 맞고,
이로 인해 하나님 앞에 탄식하기 시작하여 찬양
(찬송 시편 25편 1-4절 – 악보는 맨 뒷장에)
2023-5-23, 화
맥락과 의미
18-20장은 여호와를 토기장이에 비유합니다. 토기장이는 좋지 않은 토기를 깨뜨리고 다시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깨뜨리며 멸망시키겠다고 경고합니다.
19장은 선자자가 질그릇을 힌놈 골짜기에 가서 깨뜨리며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탐욕 때문에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자기 복을 받기 위해 자녀를 불태워 우상에게 바치는 일을 힌놈의 골짜기에서 행했습니다.
그 도벳이 죽임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뜰로 들어와 예언했습니다.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19:14-15)
20장은 그 예언의 결과 선지자가 당한 일입니다. 성전의 직무를 맡은 제사장들의 책임자가 선지자를 때리고 목에 굴레를 씌웠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계속 죄와 심판에 대해 예언을 합니다.
후반부(7-18절)에서는 선지자가 그의 직분을 다할 때 당한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찬양합니다.
1.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핍박했으나 계속 진리를 증거함(1-6절)
2. 핍박 가운데 직분을 다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찬양함(7-18절)
1.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핍박했으나 계속 진리를 증거함(1-6절)
1-2절: 제사장들은 일 년에 24개 조로 나누어 성전에서 섬깁니다. 그때의 총감독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예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죽도록 때리고(나카: 죽인다), 성전의 북쪽 문(베냐민의 문) 쪽에 있는 성전의 2층 방에 가두었습니다. 나무 고랑(착고)을 목에 채웠다가 풀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도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동료 제사장에게 이런 큰 핍박을 당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파해야 할 제사장이 이렇게 예언을 하지 못하도록 핍박합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3-6절: 선지자는 풀려난 다음에도 굴하지 않고 예언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마골: 두려움; 밋사빕: 둘러싼)
바스훌과 그의 가족, 친구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입니다. 거기서 칼에 죽어 거기 묻힐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밖에서 죽고 묻히는 비참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바스훌 제사장이 거짓으로 예언한 것의 비참한 결과를 볼 것입니다. 백성들이 죄를 짓고 있는데도 그 죄를 치유하지 않고 “평안하다, 평안하다”(6:14, 8:11)라고 말한 그 거짓 선지자 제사장은 참으로 무서운 악을 행한 것입니다.
참 선지자와 참 목사는 성도들과 사람들이 하는 죄악과 그 결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정직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 결과 많은 고난도 당합니다. 참 성도도 말씀대로 순종할 때 죄악에 빠진 사람들과 교인들로부터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선포하는 목사, 정직하게 순종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성도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백성을 구원할 것입니다.
2. 핍박 가운데 직분을 다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찬양함(7-18절)
1) 탄식: 여호와의 강권으로 예언하면서 사람들에게 미움 당함(7-10절)
7-8절: “여호와께서 나를 권유하여 선지자 직분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권유”(파타하, 7절)는 여성을 유혹한다는 뜻이 있습니다(참고 출 22:16). 여호와께서 “강하여(하자크) 나를 이겼으므로(야칼)” 이 부르심에 나섰습니다. “강하다”는 말은 성폭행에 쓰인 말이기도 합니다(신 22:25; 삼하 13:11).
예레미야는 1장에서 여호와의 부르심에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심하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사명을 다하다가 너무 많은 조롱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욕먹고 부끄러운 일들을 당했기 때문입니다(치욕과 모욕, 8절). 몸이 발가벗겨져 성폭행 당하듯이,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 당한 것을 하나님 앞에 탄식합니다.
이러한 고난의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선지자의 입에 담아 둔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다고(강포)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고 신실하게 외쳤기에 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9절: 너무 힘들어서 말씀을 그만 전하려고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과, 백성의 악과 그 심판의 사이에서 그의 마음은 불붙는 것 같아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했습니다.
10절: 그 결과 사람들이, 심지어 ‘친한 벗’(평화의 사람)까지도 예레미야가 넘어질 것을 기다립니다. “그(예레미야)가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의 원수를 갚자”고 하면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 “유혹”과 “이기어” 두 단어는 7절에서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자신에게 행한 일을 표현할 때 쓴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유혹하여 이겨서”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게 한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예레미야를 유혹해 이길 수 있는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함정에 빠뜨리신 것으로 곡해하고 있으니, 신실한 선지자로서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2) 찬양: 하나님이 강한 능력으로 보호할 것을 확신하며 찬양 (11-12절)
11-12절: 그러나 이 탄식 가운데 성령님이 위로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선지자를 핍박당하도록 이끄신 여호와께서 그들 박헤하는 자와 대항하여 싸워 이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 예레미야의 마음을 아십니다. 이 모든 고난을 통해 의인을 연단하고 있습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이 확신 가운데 선지자는 찬양합니다. 자신이 찬양할 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의인들이 정의로운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해 찬양하라고 권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탄식기도했지만(시 22:1), 부활 후에는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교회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22:22; 히 2:12)하고 찬송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서도 그 찬양을 읊조리며 이겨 내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직분을 다할 때 당하는 고난으로 괴로울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찬양과 기쁨으로 나갑시다.
3) 탄식: 살아있음을 후회할 정도로 큰 고생과 슬픔으로 탄식 (13-18절)
놀랍게도 찬양 후에 다시 탄식합니다. 얼마나 고통이 컸으면 그랬을까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부모님을 저주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에(레 20:9, 24:10-16) 절제합니다. 다만 “내 생일”과 “내가 태어난 소식을 부모님께 전해 준 사람”(14, 15절)을 원망합니다.
선지자 사명으로 부름을 받을 때 여호와께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동료 제사장-선지자로부터 모욕과 구타를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탄식합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18절)
물론 그는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도를 넘지 않으면서 고통과 한을 토해 놓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런 탄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술이 범죄하지 않도록 절제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 때문에 예레미야는 고난당하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탄식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백성의 죄를 용서하고 비참에서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인생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의로운 백성들이 당하는 억울함도 그리스도께서 먼저 짊어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극치를 맛보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먼저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이 시대의 목사와 모든 성도도 가볍고 헛된 평화를 구하는 세상 가운데서 은혜의 수단으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사는 것은, 사도 바울처럼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받기도 합니다(행 26:24).
그 조롱 가운데서도 우리는 말하고 살아갑시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참 평화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회, 국가, 교회, 교인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다.”
사람들에게 핍박당할 때 보복하려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며 위로를 받고 기쁨으로 나갑시다. 기도 가운데 슬픔이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살아갈 이 땅에서 당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이 슬픔, 이 고생을 꼭 당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를 보호하여 사명을 다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용사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강하고 용감하게 이 고난의 길 가운데 기쁨으로 싸우며 나갑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감당해야 했던 예레미야의 고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시다. 나 또한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힘 주시길 기도합시다. |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25편”을 검색해서 들으며 연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