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9장 바벨론에서 경제생활과 가족생활하며 하나님 찾으라는 예레미야의 예언, 그것에 반대하는 거짓 선지자 2023-6-2, 금
작성자축제작성시간23.06.01조회수383 목록 댓글 0예레미야 29장
바벨론에서 경제생활과 가족생활하며
하나님 찾으라는 예레미야의 예언,
그것에 반대하는 거짓 선지자
(찬송 505장)
2023-6-2, 금
맥락과 의미
26-29장은 예레미야와 다르게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에 대항하여 예레미야가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부분의 마지막 장입니다.
29장은 예레미야서 전체의 중간에 있는 장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서의 중심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벌을 달게 받으면서 생육하여 번성하며,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28장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반대하며 “2년 안에 포로들이 돌아온다”라고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2달 만에 죽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29장에서는 바벨론에서 스마야라는 사람이 예레미야를 반대하여 거짓 예언을 하며 예레미야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도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으로 29장이 끝납니다.
1. 바벨론 포로된 백성들에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면 70년 후 회복(1-15절)
2.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레미야를 비난하였으나 죽임을 당함(24-32절)
1. 바벨론 포로된 백성들에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면 70년 후 회복(1-15절)
1) 바벨론에서 평화롭게 생활하라 (1-9절)
1-3절: 예루살렘에 있던 예레미야는 BC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고냐(여호야긴 왕), 왕의 어머니, 장로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보낸(BC 594년) 사신 편으로 편지를 보냅니다(참고 51:59). 당시에 예루살렘에서도, 바벨론에서도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2년 안에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4-9절: 그러나 예레미야는 편지에서 말합니다.
첫째(5-6절),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농사일을 하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거기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또 자녀들을 결혼시켜 자손이 번성하게 하라고 합니다. 인구가 줄어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둘째(7절), 그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바벨론의 평화, 즉 모든 번창함을 위해 힘쓰라고 합니다. 힘쓰는 것(다랴셔)은 기도한다는 뜻도 있고, 추구하고 힘써 노력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의 평화와 번창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바벨론도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그 노예-포로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고귀한 아들, 딸임을 증거합니다.
바벨론이 평화롭고 번창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도 평안을 누립니다. 평화, 평화, 평화를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평화를 약속합니다.
셋째(8-9절), 곧 포로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예언은 우상을 믿으며 점치는 것(복술)과 같이 하나님 앞에 가증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도 해를 주시는 분이기에, 그분의 아들 딸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마 5:43-45).
성령님은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황제와 관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면서, “우리(성도, 교회)가 경건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습니다(딤전 2:1-2).
2) 70년 후에 돌아오게 할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하라(10-15절)
10-11, 14절: 바벨론 포로 기간이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방문, 심방하고)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한두 해가 아니라 70년 동안 징계할 것입니다. 이것은 재앙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12-13절: 다시 예루살렘, 유다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말의 중간에 기도하라는 명령이 끼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와서 기도하면 들을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만나 주실 것입니다.
“와서”(12절)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그 안에서 “행한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포로에서 회복된다는 약속이 확실하기 때문에 기도도 하지 않고 게으를 수 있는 핑계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약속을 확신하는 성도는 그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며, 더 경건하게 변하면서, 그 약속을 복으로 받습니다.
예수님도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약속했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 축복보다도,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15절: 바벨론에 선지자들을 일으켰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3)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은 자들에게는 더 심한 징계가 있을 것(16-19절)
16-17절: BC 597년에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 바벨론 포로들에게 말해 줍니다.
그 남아 있는 자들은 심판을 면했다고 자랑하고 교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앞으로 바벨론이 다시 침공하게 하여 그들에게 더 큰 재앙을 오게 하실 것입니다(25장의 무화과 두 광주리 비유).
18-19절: “그들이 당할 저주, 경악, 조소, 모욕”은 24:9절에서 이미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벌을 받습니다(25:4).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이런 벌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신명기 28, 29장에서 경고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말씀하신 대로, 선지자들을 보내서 계속 가르치시고, 그대로 복도 주시고, 심판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예루살렘, 약속의 땅과 그곳에 있는 백성을 징계하시는 것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일관성 있음을 봅니다.
4) 바벨론의 거짓 선지자들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20-23절)
20-22절: 15절에서 말한 바벨론의 거짓 선지자들에 관하여, 바벨론 포로로 가 있던 백성들에게 씁니다. 아합과 시드기야(이스라엘의 왕들과 동명이인인 거짓 선지자들)는 느부갓네살 왕의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저주할 일이 있을 때,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이 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23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어리석게 행하였습니다.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여 사람을 향해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른다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증인이 되십니다. 예레미야가 쓴 편지로 바벨론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가 공개적으로 알려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거짓 예배와 이웃을 향한 불의 때문에 큰 벌을 받는 중에도, 그들은 계속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냥 악을 행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자처하면서 거짓말을 통해 자기의 죄악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 두 거짓 선지자의 악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자신들의 뿌리깊은 죄악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2.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레미야를 비난하였으나 죽임을 당함(24-32절)
1) 예레미야의 예언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편지 요약(24-29절)
예레미야의 편지에 대해 바벨론 포로로 가 있던 사람 중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반항했습니다.
24절: 스마야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은 소개하지 않고 스마야의 편지 요약(예레미야 선지자의 요약)만 소개됩니다.
25-28절: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백성과 제사장(스바냐)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스마야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내서 따졌습니다. “왜 예레미야를 고랑에 채우고 감옥에 넣지 않았는가?”
예레미야를 “미친 자”(26절),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자”(27절)라고 비난합니다. 즉,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오랫동안 있을 것이므로 거기서 집 짓고 살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29절: 제사장 스바냐는 그 거짓 선지자의 편지를 예레미야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2)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죽이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 (30-32절)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왔습니다.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내라.”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거짓을 믿게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와 그의 자손을 벌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하나님의 복된 일(32절, 10절 선한 말을 성취)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28장에서 예루살렘에 거짓을 예언한 하나냐에게 한 심판의 말씀과 거의 비슷한 말씀을, 바벨론에서 거짓을 예언한 스마야에게 하십니다. 두 사람 다 여호와께 “패역한”(반역하는, ‘마라’)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28:16, 29:32).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편지를 써 보냈다는 말은 없지만,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스마야가 죽었는지도 말하지 않지만, 그는 분명히 죽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알아야 합니다. 각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당장 심판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을 내리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대로, 70년이 지난 다음 바벨론에 포로로 간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다시 성전을 수리하고 제사를 드리면서, 율법을 배우면서 구약 교회를 세우게 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의 후손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세웠습니다.
신약 백성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때와 같이 여러 어려움을 통해서 벌을 내리십니다. 또 특별한 죄 때문이 아니라도 하나님은 고난을 주셔서 성도를 단련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울 때까지 교회와 모든 성도의 삶은 “바벨론 포로” 기간과 같은 고난의 때를 경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터 선생은 16세기에, 로마교의 악한 가르침에 의해 그동안 교회가 “바벨론 포로”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의 성도의 삶은 큰 벌과 훈련을 받는 “극심한 포로 기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가벼운 포로 기간”에 있을 따름입니다.
바벨론은 모든 시대의 성도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세상(정부, 기업, 이웃, 믿지 않는 친구와 친척)을 말합니다. 바벨론은 성도를 핍박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예레미야 50-51장, 요한계시록 17-18장).
하나님은 심판받을 세상에도 해와 비를 주십니다. 휴머니즘에 입각해서 인간성을 지키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축복하고 사랑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은 자신을 핍박하는 바벨론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가정, 직장)를 세우고 누리고 있습니다.
죄악 가운데 빠져 있고 또 우리를 핍박하기까지 하는 이 세상(조국 대한민국, 온 세계)이 평화롭게 경제도 발전하고, 정의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또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정의와 경제 발전과 문화적 풍요를 위해 기도합시다.
악한 탐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만든 이 사회경제 체제에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을 전합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찾읍시다.
세계와 대한민국이 잘 되어야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직장을 얻고 결혼하기에 너무나 힘든 환경으로 대한민국도, 온 세계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 힘써서 우리의 집을 짓고, 회사를 세우고, 직장을 얻읍시다.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어도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소박하게 혼인하고, 자녀를 낳읍시다. 이 일을 위해 집사를 중심으로 온 교회가 협력합시다.
우리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되고 헛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지 맙시다. 교인들도 악한 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죄를 짓고, 또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이 그냥 복을 주신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말해주는 일은 세상의 미디어나 인기 강사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서 전하는 거짓된 선지자들은 초대 교회부터 있었고, 주님이 재림할 날까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물질과 육체적 쾌락이 전부라고 말하는 세상의 가치관과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맙시다. 세상에서의 삶을 가볍게 여기고 경제와 가족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는 이단들, 또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그런 가르침을 경계합시다. 계시된 말씀을 따라서, 한편으로는 이 세상 가운데서 세상과 함께 힘써 번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지금 질서가 영원하지 않음을 압시다.
구약 성도들이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이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갔듯이, 우리도 70년 인생, 100년 인생을 살고서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이 세상의 경제와 과학기술이 성장하고, 사회적 평등이 확장되어도 완전한 행복은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때 완전한 행복이 임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면서, 삼위 하나님을 만나기를 즐거워합시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더 풍성히 주셔서 이 고난의 땅에서 기뻐하고 평화를 만들게 하십니다. 물질적 풍요를 주실 때도 그 풍요보다는 하나님을 즐거워합시다. 우리의 노력으로 많은 성취를 주실 때도 그 모든 것을 주신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가 속한 세상(대한민국, 나의 직장, 지역사회, 믿지 않는 가족)이 평화롭고 번성하도록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24, 25장과 29장이 수미쌍관을 이룸
예레미야서의 전반부는 25장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24, 25장이 29장에 연결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 바벨론의 포로들보다 더 심하게 징벌을 받는다는 것이 24장과 29:16-19에 반복됩니다. 24:9=부끄러움(헤르파)과 저주(칼랄), 29:18=저주(알라)와 수모(헤르파)
그리고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냈으나 백성들이 듣지 않았다는 것도 25:4과 29:19에 반복됩니다.
그래서 24, 25장은 29장과 수미쌍관을 이루면서 25장까지 예레미야의 전반부와 26장에서 시작되는 후반부를 연결합니다.
이렇게 한 단원의 끝 (25장)과 다음 단원을 연결키시는 ‘사슬 구조’는 성경이 자주 쓰는 표현법입니다. 성경은 원래 글로 읽은 것이 아니라, 말로 들었기 때문에 이런 사슬구조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생각이 끊기지 않고 계속 연결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