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4장 바벨론이 예루살렘 포위 중,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 백성들은 노예해방의 언약을... 2023-6-8 목
작성자축제작성시간23.06.07조회수136 목록 댓글 0예레미야 34장
바벨론이 예루살렘 포위 중,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
백성들은 노예해방의 언약을 철회, 하나님의 심판
(찬송 2장)
2023-6-8, 목
맥락과 의미
예레미야 30-33장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바벨론 포로됨을 통해서 징벌한 후,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을 말했습니다. 이제 34-35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에 신실하지 않은 것을 폭로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실 새 언약의 배경이 바로 34장입니다. 유대 백성들이 스스로 세운 언약을 파기합니다. 백성이 동족 중 노예된 사람들을 해방하겠다는 언약을 하나님 앞에서 하고, 언약대로 노예를 해방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번복해서 다시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여 징벌하실 것을 경고합니다.
39-45장은 예루살렘이 무너진 후에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34-38장은 예루살렘이 포위당한 뒤 멸망 이전까지의 상황 가운데 그들이 멸망당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34장, 37장, 38장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BC 588/7년에 일어난 일들을 말합니다.
34-35장: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에 신실하지 않음 (35장은 20여 년 전 여호야김 왕 때의 일)
36-38장: 예레미야의 예언 책을 불태우고, 예레미야를 수감하고 핍박함 (36장은 20여 년 전 여호야김 왕 때의 일)
1.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을 때 시드기야 왕에게 멸망을 예언(1-7절)
2. 동족 노예를 해방하는 언약을 파기한 유다를 심판하실 것(8-22절)
1.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을 때 시드기야 왕에게 멸망을 예언(1-7절)
1,6-7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똑같은 표현이 8, 12절에도 반복됩니다. 이어서 그때 상황을 설명합니다. 바벨론 왕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나라의 군대들과 함께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입니다. 유다의 성 중에서 예루살렘과 두 개의 성만 남았을 때입니다(7절). 그때의 설명을 수미쌍관으로 틀을 짭니다.
2-5절: 그리고 그 포위를 당한 기간 동안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시드기야 왕에게 한 말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성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에게 주어 불사르게 할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칼에 죽지는 않고 정상적으로 여생을 마치고 왕의 의전에 맞는 장례식이 치러질 것입니다.
2. 동족 노예를 해방하는 언약을 파기한 유다를 심판하실 것(8-22절)
8-11절: 예루살렘 포위가 길어지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지도자들(쌰라: 방백)과 백성들이 동족 중 노예로 삼고 있던 사람을 자유롭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잡아서 노예로 삼았습니다.
12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고 8절과 12절에서 말했지만, 8절에서는 그 내용은 소개하지 않다가 12절에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분명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3-16절: 유다의 죄를 서술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나오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맺었을 때, 노예 해방 제도도 언약의 조항 안에 포함시켰습니다.
형제자매 중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노예로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은 6년만 일하고 7년 째에는 해방하여 주도록 했습니다. 7년마다의 노예 해방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언약 관계에 들어 있는 언약의 약속-명령의 중요한 부분입니다(출 21:2-11; 레 25:10, 39-55; 신 15:12-18).
과거에도 그들의 조상들은 동족 노예를 정해진 때에 해방하지 않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형제 자매인 노예들을 해방시켰다가 다시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노예 해방의 언약을 맺었다가 파기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17-22절: 언약을 세우기만 하고 실행치 않았습니다.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언했지만,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예 주인들을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떠나게 하는 자유를 주겠다고 경고합니다. 칼, 전염병, 기근을 향하여 자유케 해 주겠다고 합니다.
언약을 행할 때는 송아지를 둘로 잘라서 그 사이로 지나 가는 언약 체결식을 했습니다. 언약을 어기면 이 송아지처럼 몸이 잘라져도 좋다고 스스로 저주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제 언약을 어긴 예루살렘의 지도자, 제사장, 모든 백성을 그 쪼개진 송아지처럼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고 짐승처럼 취급될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할 것입니다. 짐승들이 고기를 먹을 것입니다. 땅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34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언약을 어김으로 그 언약 안에 들어 있던 저주를 스스로 받게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형제자매들도 함께 자유를 누리도록 도우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겠다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참 자유는 각자의 가정에서 누리는 인격적 자유와, 각자의 땅을 가지는 경제적 자유로 이루어집니다. 경제적 자유가 없어서 인격적 자유까지 잃은 노예 형제자매들을 7년마다 해방하여 자유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언약 조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가, 곧 멸망할 듯하니까 다급하게 언약을 지켰습니다. BC 588년 늦은 봄이나 이른 여름에 이집트 군대가 진격해 오자 그들을 포위하던 바벨론이 잠시 물러갔습니다.
백성들은 일이 잘될 것 같으니까 다시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해방해 주었던 노예를 다시 노예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한 징벌로 사람들이 그곳에 살지 못할 곳이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노예 해방 율법은 창세기 1:28의 축복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고 짐승들을 정복하는” 그 복을 누리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땅을 정복하라”(카바셔)는 명령을 “사람을 정복”(카바셔: 복종, 34:11, 16)하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정복한 그 노예 주인들의 성을 하나님께서 불살라 버리실 것입니다. 그들의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놀랍게도 과학과 기술과 경제적 효율성이 높아진 우리 시대에 지구 전체의 사람들이 오히려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서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결혼하여 자녀를 낳기보다 혼자서 안락하게 살기를 선호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기에 힘든 환경을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이 자기의 집과 직장을 가지고 자기의 가정을 가지는 참된 인격적, 경제적 자유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경고한 칼, 전염병, 기근이 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위험을 미리 경고하는 보초들입니다. 예방하는 공동체입니다. 자유의 공동체를 세상보다 먼저 이루고 다르게 이루는 곳입니다.
우리 공동의 적인 죄와 마귀 그리고 탐욕의 노예 성향에서 계속 벗어납시다. 하나님께 예배(에베드) 할 때 우리는 종 됨(에베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될 때 죄와 사단의 종에서 벗어납니다.
교회 안에 누구도 인격적으로 무시 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받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시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된 우리 모든 성도가 자신의 소명에 따라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며 인격적 자유를 누리도록 서로 도웁시다.
품위 있게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 가진 것을 기쁘게 나눕시다. 이 자유의 공동체를 우리의 수고와 희생으로 만들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스도를 위한 이 고난 받음과 수고 가운데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가 실제로 나타납니다(빌 1:29,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분과 함께 고난받는 은혜).
그러나 자유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교회가 게으르다면, 과거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바벨론 포로와 같은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벧전 4:17)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우리 성도 중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정서적인 어려움 때문에, 혹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성도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언약”(버리트)
언약(버리트)이라는 말은 예레미야서에 25번 나옵니다.
3:16에 처음 나오고, 11장에 5번(11:2, 3, 6, 8, 10절), 14장과 22장에 한 번씩(14:21; 22:9), 새 언약에서 10번(31:31, 32, 32, 33; 32:40; 33:20, 20, 21, 21, 25절)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3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해방 언약에 반역한 것과 관련하여 6번(8, 10, 13, 15, 18, 18절)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50:5절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이 언약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할 것을 예언합니다.
<참고> 참 자유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면서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 자유의 선언이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34장에서 말한 그 “자유인으로 보냄”은 이사야 61장에 예언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은 고향 베들레헴에서 이사야 61:1, 2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오늘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눅 4:21).
예레미야 34장의 “자유”(아페시스, 9절)와 “놓음/보냄”(엑크-아포스텔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심”(아포스텔로)을 통해 눌린 자들에게 “자유”(아페시스)를 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눅 4:18).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질병을 “떠나게 하심”(아피에미: 아페시스의 동사, 눅4:39)에서 나타났지만, 그 핵심은 “죄 용서”(눅 5:4, 10-13절)에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가난과 사회적 눌림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공동체입니다. 죄 용서받고 제자 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아피에미, 눅 5:11) 희생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죄 용서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