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4장
예루살렘의 포위, 멸망을 행동으로 예언
(찬송 1장)
2023-7-10, 월
맥락과 의미
1-3장에서 에스겔은 선지자=제사장으로 부르시고 임직받았습니다. 이제 4장부터 예언을 시작합니다.
에스겔서의 구조 1-3장: 에스겔이 선지자=제사장으로 부름받아 임직됨 4-24장: 하나님의 도시, 땅, 성전 백성에 대한 메시지 4-7장 예루살렘 성과 땅이 멸망할 것에 대한 메시지 8-11장: 성전에 대한 메시지 12-24장: 여러 예언들과 실제 멸망 25-39장: 이방 나라들에 대한 예언 40-48장: 하나님이 새롭게 할 새 성전에 대한 예언 |
4-5장은 행동으로 예언합니다.
1. 예루살렘 성의 포위에 대해 모형을 만들며 행동으로 메시지(1-3절)
2. 430일 동안 매여 누워 있으면서 행동으로 메시지(4-8절)
3. 양식이 부족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될 것을 행동으로 예언(9-17절)
1. 예루살렘 성의 포위에 대해 모형을 만들며 행동으로 메시지(1-3절)
다음과 같이 하나님이 지시하십니다. 에스겔이 그의 얼굴 앞에 토판을 두라고 합니다. 아직 마르지 않은 토판 위에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성이 함락될 때 이루어질 공격 방식을 모형으로 만듭니다.
성 주위로 돌아가며 진흙을 쌓아 올려 에워쌉니다. 전쟁 때 실제 성 주위에 둘러싸는 진흙 언덕을 표시합니다. 사다리를 세웁니다. 흙으로 산처럼 언덕을 비스듬하게 쌓아 올려서, 성안으로 군사들이 들어가게 합니다. 성을 공격하는 큰 통나무(공성퇴)를 둘러 세웁니다. 철판을 성과 에스겔 사이에 세웁니다.
3절 마지막도 2절 시작 부분, 진흙으로 포위하는 말이 반복됩니다. 또 3절에는, “너의 얼굴을 그곳(성으로)을 향해 굳게 세우라(쿤, 7절에도 반복)”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1절의 “너의 앞”도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에스겔은 하나님의 성을 대항하여 얼굴을 듭니다. 이 모형을 만드는 행위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오트: 표적, 표, 표시)가 될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이 성을 완전히 포위하고 불사를 것입니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주전 593년에서 5년 후인 586년에 실제 그대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철판”(마하바트)은 원래 성전에서 번제를 굽는 데 사용한 “철판”을 말합니다(레 2:5, 6:21, 7:9; 대상 23:29). 하나님이 번제를 드리듯이 성 전체를 불태울 것입니다. 그 멸망을 예언하면서, 에스겔은 성전에서 번제 드리는 제사장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며 죄용서와 함께 거룩에 헌신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 숭배로 나갈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 성전이 있는 도시 전체를 이방인의 통해 불태우실 것입니다. 그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도시 안에 있는 죄를 불태우며, 하나님께 헌신된 남은 자를 번제처럼 받으실 것입니다.
2. 430일 동안 매여 누워 있으면서 행동으로 메시지(4-8절)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고통당하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왼쪽, 즉 북쪽으로 390일, 오른쪽, 즉 남쪽으로 40일 누워 있으라고 하십니다. 줄로 맨 것과 같습니다.
그 날들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은 한 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부터 400여년 동안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를 담당한다”(나사아 아본, 4,5,6절)는 것은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섬기는 데 쓴 표현입니다(출 28:38; 레 10:17; 민 18:1,1; 이사야 53:12-나사아 하타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특히 출애굽기 28:38에서는 대제사장이 죄를 담당하는 것의 표시로서 제사장의 이마(메차흐)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금패를 달게 했습니다.
3:8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의 이마(메차흐)를 강하게 하는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담대하게 감당하도록 능력주심과 연결된 것입니다. 그는 성전이 없는 유배된 지역에서 선지자이자 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의 고통을 짊어 집니다. 앞으로 백성이 당할 심판과 고통을 그의 행위를 통해 보여 줍니다.
8절, “내가 너를 줄로 동이리니”(나탄 아보트)는 3:25 “그들이 너를 동여매리니”(나탄 아보트)와 같은 말입니다. “사슬을 너에게 주리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대제사장의 위임식 때 흉배를 어깨 견대에 연결하는 정금으로 만든 “사슬을 두는 것”(나탄 아보트)에 쓰는 전문용어입니다(출 28:14,14,22,24,25; 39:15,17,18).
“이마,” “죄를 담당하는 것,” “사슬을 두는 것” 모두 다 대제사장의 임직식 (출애굽기 28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제 성전도 없는 곳에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제사장으로서 말과 행동을 통해 백성들을 먹입니다.
제사장의 흉배와 견대를 연결하는 그 금으로 된 영광의 사슬 대신, 그는 자유를 구속하는 죄수의 사슬을 몸에 둡니다. 그 사슬은 그들 누군가(죄인들인 하나님의 백성)가 주는 것이지만(3:25),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4:8).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제사장은 그 자신이 사슬에 매이는 고난을 당합니다.
에스겔의 뒤를 이어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로마서 15:16)인 자신은 “사슬에 매인 사신” (엡 6:20)으로 고난 가운데 복음을 전합니다.
3. 양식이 부족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될 것을 행동으로 예언(9-17절)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양식이 얼마나 없었으면, 저울에 곡식가루를 측량하고 물도 측량하여 요리하라고 합니다. 사람의 똥으로 요리해 먹으라고 합니다.
사람의 똥은 구약 의식법에서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변을 보는 사람은 백성이 있던 진 바깥에서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불결한 음식을 먹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에스겔이 부정한 것으로 먹는 것을 어려워하자 하나님은 소똥으로 요리해 먹으라 합니다. 여전히 수치스럽습니다.
16,17절, 예루살렘 성의 주민들은 바벨론이 포위할 때 양식이 없어 저울에 달아서 요리하다가 결국은 굶게 될 것이고 항복할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온 사람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워 떨며”(16절-3:15), “패망”(17절)은 “샴맘”입니다. 땅이 황폐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사막처럼 말라 가는 고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공격하는 공성퇴를 두셨기에(숨, 2절), 그 백성들은 죄를 당해야 하기에(심, 4절) 이런 황폐(샴맘)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황폐함은 여호와의 무능이 아니라 능력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권능(야드: 손)으로 바벨론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임했습니다”(심, 3:22). 바빌론의 들판 거기서(샴, 3:22,23절) 여호와의 영광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 (셈)을 거기 (샴) 두시려고 (심)” (신명기 12:11)세우신 것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그 성전이 없이도 경건한 선지자=제사장에게는 나타났습니다.
그 성전에 나타내시던 영광스런 하나님은, 앞으로 성전을 파괴하시고, 언약을 배반한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일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 시대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거룩한 일상의 삶이 부패할 때 여전히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제사장=선지자 에스겔은 그 직분 때문에 백성을 대표하여, 백성보다 먼저 부자유와 불결한 음식과 굶주림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백성의 죄를 당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일을 (사 53:11) 미리 보여 주는 사명을 했습니다.
에스겔의 고난 안에서 백성의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는 봅니다. 동시에 그 죄를 하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에게 넘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봅니다. 심판 안에 은혜의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교회로부터, 예배로부터 도망치지 맙시다. 죄의 부끄러움을 안고 그대로 주님께 나와 고백하며 새롭게 됩시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 십자가 복음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는 에스겔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담당하고, 지고 가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의 증거가 우리 안에서 있으니,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줍시다. 성도의 죄, 가족의 죄, 나아가 불신자의 죄로 인해 내가 당하는 고통을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영광으로 알고 감사합니다.
에스겔의 고난의 행위 예언의 뒤를 우리도 따라 갑니다. 에스겔의 메시지가 포로기의 백성과, 신구약의 모든 백성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의 삶도 이 시대를 위한 그리스도부터 오는 소망의 빛을 비춥니다.
로마 황제의 죄수로서 재판을 기다리며 고난 받던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한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또 성도들에게 말해 줍시다.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우리의 고난 가운데 주님은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참 성도는 교회와 성도의 초라함 가운데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런 성도를 귀히 여깁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가족이나 성도 주위 사람의 죄 때문에 내가 고통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에스겔이 동족의 죄 때문에 고통당하였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한 것에 비추어 볼 때, 내게 고통을 주는 사람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로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