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장
언약의 갱신: 7월의 말씀 집회
(찬송 186장)
2024-6-8, 토
맥락과 의미
성벽 건축을 완성했습니다. 각 구역별로 수비하는 일도 정했습니다. 8-10장은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8장에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회개하고 기뻐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1. 대제사장 에스라의 인도로 말씀집회로 회개하고 기뻐함(1-12절)
2. 기쁨의 초막절 집회(13-18절)
1. 대제사장 에스라의 인도로 말씀집회로 회개하고 기뻐함(1-12절)
1) 말씀을 배움(1-8절)
1-4절: 7월 1일에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에스라에게 율법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이지만 9장에서는 “학사”라고 합니다. “책”에서 나온 말입니다. 율법책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에스라는 특별히 만든 강단에서 섰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읽고 가르쳤습니다. 5-6시간 동안 서서 말씀 집회를 했습니다. 에스라 좌우에 여러 사람이 섰습니다(4-5절). 그들에게 특별히 “레위인”이라고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평신도로서 율법을 낭독한 사람인 듯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여러 사람이 중간 중간에서 율법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5-6절: 이렇게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에스라는 백성들 앞에서 책을 폈습니다. 모든 백성은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 에스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백성들은 기뻐서 “아멘, 아멘”했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7-8절: 읽고 해석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앞서 나온 평신도 낭독자들이 율법을 먼저 읽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했습니다. 에스라가 가르친 것을 마이크처럼 전달해 주었을 수도 있고, 그들이 직접 해석했을 수도 있습니다.
2) 백성의 반응: 회개하여 슬퍼함, 기뻐하며 함께 먹을 것을 나눔(9-12절)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들은 울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대제사장 에스라, 레위인들은 백성을 위로했습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다.”(9,10,11절)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10절) 가서 좋은 것을 먹고 마시라고 격려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서로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았기 때문입니다(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고 있는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성도들이 다 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2. 기쁨의 초막절 집회(13-18절)
13절: 7월 1일 집회 후 대부분의 백성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추수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성의 지도자들과 제사장 레위인들이 다시 에스라에게 율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14-15절: 초막절에 대한 율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이 일 주일 동안 풀로 임시 집을 짓고 그 안에 사는 절기입니다. 과거 이집트에서 나와서 광야를 여행하던 것과, 그때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매년 7월 15일-21일에 지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6-18절: 그들은 즉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백성들이 다 초막을 지었다.” 바벨론 유배에서 돌아온 것이 제2의 출애굽과 같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조상처럼 이제 바벨론/ 페르시아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백성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때로부터 이같이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단순한 민족의 명절처럼 형식적으로 지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회복해 주심을 감사하며 참된 기쁨과 즐거움으로 지켰습니다.
초막절의 첫날과 8일째 되는 날(7월 15일, 21일)은 “규례를 따라” 성회로 모였습니다(18절, 레위기 23:36, 39). 중요한 것은 그 중간에도 매일 에스라가 율법을 읽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성벽으로 공동체를 둘러싼 다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동체를 세우고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느헤미야는 성벽을 건축하고 수비하는 체제를 갖추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이제 뒤로 물러섭니다. 말씀의 사역자인 에스라가 사역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말씀으로 교회가 세워지도록 뒷바라지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백성을 모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에스라에게 말씀을 읽고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5-6시간 동안 계속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를 힘씁시다.
에스라와 백성은 말씀을 받기 전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시다. 말씀을 읽기 전에,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송합시다.
그들은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주시는 것을 인해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일조차 즐거워졌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먹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님께서 교회에 오셨을 때, 말씀을 들은 교회는 기쁨에 가득 찼습니다. 함께 떡을 떼고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사도행전 2:43-47).
우리도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합시다. 잘 듣고 회개하며 웁시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즐거워합시다. 그래서 매일 말씀으로 인해 기쁘게 삽시다. 모여서 함께 기쁘게 식사합시다. 개인적으로도 서로 만나며 먹고, 전화하고 문자하며 즐거움을 함께 합시다.
우리 교회 목사가 에스라처럼 항상 말씀을 풍요롭게 잘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의 장로와 집사 직분자들이 말씀 사역을 잘 지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말씀으로 기뻐하고 순종하며 삶에 기쁨이 넘치도록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느헤미야 8:8과 성경해석
제사장 겸 서기관 에스라의 인도하에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기록된 말씀에서 교회와 성도가 인도를 받는 방법을 네 단계로 나눕니다.
배우는 과정 | 개역개정 | 히브리어 | 헬라어 | 의미 |
1. 읽음 | 낭독하고 | 카라아 | 아나-기노스코 | 성경을 읽음 |
2.말씀의 뜻을 가르침 | 낭독 | 파라셔 | 디다스코 | 본문의 의미/의도, 일반적 가르침 |
3.삶의 적용과 실천을 가르침 | 해석 | 숨 샤칼 | 디아-스텔로 | 지금 구체적 삶에 적용하여 |
4.성도가 깨닫고 받아들임 | 깨닫게 | 빈 | 순-이에미 | 믿음으로 받아들임 |
성경을 읽고 번역하듯이 문장의 뜻을 가르침
첫째로, 말씀의 직분자(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백성들은 듣습니다. “카라아”는 성경을 “읽는 것”뿐 아니라, 공동체의 모임으로 “부르심”이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성령님을 통해 이름을 “불러주심”을 뜻합니다.
둘째로, 성경을 읽은 후 말씀의 직분자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성경의 글자의 의미들을 해석합니다. 개역 성경의 “낭독”은 “읽는다”(카라아)와 “뜻을 통역하듯이 가르친다”(파라셔)는 두 단어가 들어있습니다(에스라 4:18의 낭독도 마찬가지임).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히브리어가 능통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의 여러 부분은 마치 통역하듯이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포로 생활 동안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과 같은 명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을 것입니다(느 8:13-9장).
“파라셔”는 헬라어로 “디다스코” 즉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을 가르칠 때 제일 먼저는 본문의 의미, 그 시대에서의 의미를 번역하듯이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 주고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가르치는 일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체험이 시작됩니다. “본문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어떤 감동을 주는가?”는 그 다음에 가르칠 일입니다.
말씀 사역자가 성령님의 인도로 구체적 적용을 가르치고, 성도들은 깨달음
세 번째로, 그 본문 말씀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가르칩니다. “해석”을 나타내는 “심 샤칼”은 문자적으로는 “지혜를 준다. 맡겨 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듣는 사람의 삶에서 구체적인 “지혜”로 스며 들게 합니다.
이 말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디아스텔로”입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거나 보여 주신 다음, 그것에 기초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명령하신 것”(막 5:43, 7:36, 9:9)을 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로 사도들이 “명령한 것”(행 15:24)에도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 성도가 혼자서 해석학의 규칙을 적용하여 자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을 적용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깨달음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명령하심이 우리의 적용과 실천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인도를 말씀의 사역자는 교회 공동체에 선언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성경 읽으며 말씀을 배운 다음에도, 그 배운 말씀을 구체적 순종과 실천으로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를 기도 가운데 성령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네 번째로, 그 배운 내용을 성도들은 깨닫고 받아들입니다.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를 직역하면 “그 읽은 것에 대해 그들이 깨달았다”입니다. 말씀의 사역자가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 안에 담긴 것을 가르칠 때, 백성들은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헬라어로 “순-이에미”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여러 번 쓰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마 13:23)는 구원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귀에 읽어 들린 말씀이 마음 안에서 깨달아지는 것,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받는 것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의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깨닫는 것”은 성도의 마음 속으로부터 떠오르는 주관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말씀의 객관적인 것, 실질적인 그 내용이 그대로, 더 풍요롭게, 교회와 성도의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말씀의 직분자의 가르치는 행동 속에서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을 성도 안에 집어넣어 주십니다. 말씀에서 구원의 은혜를 얻는 것은 개인의 해석과정이 아니라, 성령님이 객관적인 말씀을 교회와 직분자를 통해 전달해 주시는 성령님의 생생한 활동입니다.
<참고> 포로 귀환 시대의 예루살렘 (출처: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