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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룻기 3장 룻과 보아스가 서로에게 베푼 인애 2022-5-14, 토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5.13|조회수105 목록 댓글 0

룻기 3

룻과 보아스가 서로에게 베푼 인애

(찬송 222장)

2022-5-14,

맥락과 의미

2장에서는 우상 숭배에서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을 보아스가 돌봐 주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보아스와 룻을 만나게 하셔서 이 불쌍한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은 보아스와 룻이 서로에게 인애를 베풂으로 서로의 관계가 더욱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오미와 룻은 율법에 순종하여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것을 제안 (1-5절)

2. 보아스는 룻의 인애를 귀하게 여기고 기업 무를 것을 다짐 (6-15절)

3.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 빈손으로 돌아온 두 여인을 채우심 (16-18절)

 

1. 나오미와 룻은 율법에 순종하여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것을 제안한다 (1-5절)

추수가 다 끝나갈 무렵에 나오미가 룻에게 안식할 곳을 구해 주겠다고 합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편히 살도록 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1장 9절에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되길 원한다고 하는데, 이 평안함과 3장 1절의 안식이 같은 말입니다. 룻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입니다. 룻이 일하러 간 사이에 어디서 중매 자리를 알아가지고 온 것일까요?

2절에서 “보아스가 우리의 친족이다.”고 합니다. 2장 20절에서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라고 말했던 것을 넌지시 일깨우는 것 같습니다.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탈곡하는 일 때문에 밤을 새울 것이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연륜이 있어서 이스라엘의 농사 방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보아스의 동선을 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잘 갖추어 입으라고 합니다. 오늘 밤 은밀하게 보아스를 찾아가 청혼을 할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으로 조용히 가서 보아스가 잠들기 전까지는 정체를 숨기고 있으라고 합니다. 밤이 늦어서 잠이 들면 몰래 들어가서 발 쪽에 가서 이불을 들고 속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룻기의 내용에 비추어 어렴풋하게 짐작해볼 따름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룻에게 지시한 이런 행동은 한 여성으로서 감당하기에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잠든 보아스가 룻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또는 남의 숙소에 함부로 들어온 룻을 꾸짖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게 되면 장차 베들레헴 땅에 안 좋은 소문이 퍼져서 정상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룻에게 이런 일을 지시한 것은 아마도 보아스에게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물러 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비밀스럽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는 데에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었습니다. 룻은 모압 출신의 이방 여인이었고, 보아스와 나이 차이도 상당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보아스보다 앞서서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상의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절박한 심정을 전달하기 위해 젊은 여성으로서 한밤중에 남자의 잠자리로 찾아가는 파격적인 방법을 취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4절 마지막에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하는 말은 나오미가 앞으로의 일을 보아스의 호의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간절한 심정을 잘 나타냅니다.

룻의 입장에서도 보아스에게 구애를 하는 것이 인간적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룻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작은 이방 여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로서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우연히 밭에서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눈 것으로 인연을 맺기에는 터무니없는 상대입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아버지뻘 되는 사람입니다. 장차 먹고 살 길이 대단히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기업 무르는 율법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현실적인 사람을 만나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의도를 잘 헤아리고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다 하고 순종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굳게 믿고 기업 무르는 율법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전수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용기 있게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2. 보아스는 룻의 인애를 귀하게 여기고 기업 무를 것을 다짐한다 (6-15절)

룻은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외투를 갖춰 입고 타작마당으로 조용히 내려갔습니다. 보아스는 추수가 잘 된 기쁨에 먹고 마시고 즐거워져서 노곤하게 곡식 더미 곁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룻이 몰래 잠자리에 들어가 발 쪽의 이불을 살며시 들고 이불 속으로 몸을 누였습니다. 밤중에 보아스가 놀라서 잠을 깨어서 돌아보니 여인이 발치에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 묘사된 모습을 가만히 보면 룻이 보아스에게 신체 접촉을 과도하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8절에 보아스가 깨서 몸을 돌이켰다고 하는 말을 보면 두 사람이 약간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혼인하지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보아스는 깜짝 놀라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룻이 자기를 여종이라고 소개합니다. 당신이 기업 무를 자이니 당신의 날개로 자신을 덮어달라고 합니다. 기업 무르는 제도에 따라 자신을 아내로 삼아서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이어 달라고 합니다. 지금 룻이 보아스에게 호의를 구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계승하는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라고 한 말은 앞에서 보아스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서 하는 말입니다. 룻기 2장 12절을 같이 한 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여기서 날개와 3장 9절의 옷자락이 같은 말입니다. 지금 룻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는 복을 빌어주지 않았느냐. 당신이 진정 내가 복받길 원한다면 당신이 직접 나를 보호해줘서 하나님의 복을 전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하되, 옷자락으로 한밤의 추위를 덮어 달라는 말 속에 운치 있게 마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보고 “내 딸아” 하고 친근하게 부릅니다. 아마도 이 짧은 순간에 룻의 어려운 처지를 전부 헤아린 듯합니다. 여호와께서 룻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룻이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인애보다 지금 자신에게 기업을 물러달라고 찾아온 인애가 더욱 훌륭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인애라는 말을 쓴 것은 지금 룻의 행동이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하는 믿음의 행동이라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유하다지만 젊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젊은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서 혼인하길 원할 텐데 말씀에 순종해서 자신을 찾아온 것이 참 장한 일이라고 합니다.

룻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며 룻의 부탁대로 기업 물러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룻을 보고 현숙한 여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2장 1절에 유력한 자와 똑같은 말입니다. 같은 말을 남자에게 쓰면 유력한 자이고 여자에게 쓰면 현숙한 여자입니다. 보아스도 룻이 자기와 잘 어울린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백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문화적 차이도 있었을 것이고 신앙에서 부족도 컸을 것입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보아스가 혼처를 찾으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훨씬 조건 좋은 사람을 못 찾았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룻의 믿음을 보고, 또 하나님께서 룻과 자신을 섭리 가운데 맺어주신 사실을 보고 이 모든 어려움을 다 극복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앞서서 기업 무를 권한이 있는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그 사람이 기업 무르기를 원한다면 참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보아스가 단순히 룻을 자신의 아내로 얻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이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하면서 조심스럽게 일을 추진합니다.

룻을 새벽까지 재우다가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 조용히 돌려보냅니다. 아직 일이 확실해질 때까지 여인의 명예를 존중해주려는 지혜로운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식량을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말을 꺼내기 전에 어려운 상황을 앞서 헤아리고 보살펴주는 배려심을 우리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섯 번 퍼주었다고 합니다. 완성을 나타내는 일곱에 한 번 모자란 숫자를 퍼주면서 곧 마지막 한 번을 퍼주어서 사랑을 이룰 것이라는 여운을 남깁니다. 인애에 기초한 사랑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낭만이 있습니다.

우리도 보아스와 같은 신실함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되 특히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을 더욱 사랑합시다. 자신의 돕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은혜의 통로로 살아가시 바랍니다. 또한 오늘 말씀은 부부간의 관계에 대해서 통찰을 가져다줍니다. 부부 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따르는 인애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섭리 가운데 만나게 해 주십니다. 혼인을 앞둔 우리 모든 청년 성도들께서 유력한 사람과 현숙한 여인이 되시고 자신과 꼭 닮은 배우자를 만나시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해 빈손으로 돌아온 두 여인을 채우신다 (16-18절)

나오미는 저녁에 며느리를 떠나보내고 혹시 무슨 변이라도 당하지 않았을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일이 어그러지게 되면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소망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룻이 도착하자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룻이 자초지종을 다 말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을 것입니다.

룻이 특히 보리를 여섯 번 퍼준 일을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빈손으로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는 말을 전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1장 21절에서 나오미가 한 말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남편과 자손을 다 잃고 대를 잇지 못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말입니다. 보아스도 이 말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룻에게 곡식을 보내서 나오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또 이제 자기가 기업을 물러서 가문의 대를 잇게 해 주겠다는 속마음을 넌지시 표현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의 말과 행동들을 통해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말이 새어나가서 일이 어그러지지 않도록 룻을 단속합니다. 보아스가 인애를 다해서 이 일을 반드시 조속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고난은 우리의 죄를 돌이키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오미가 자신의 비어있음을 슬퍼하며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빈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룁시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다시 채워 주시기를 구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룻기는 원래 잠언과 아가서의 중간에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롭게 사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는 책입니다. 시편처럼 아름다운 시로 된 부분이 많다. 우리도 그들처럼 언약의 하나님의 축복에 있음을 선언합니다. 그 언약에 헌신하도록 초대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룻과 보아스의 삶을 율법과 섭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룻기에 등장인물로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그리고 믿음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믿음 가운데서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혼자된 여성들은 가까운 친척인 인생을 책임지는 제도는 율법이 명령한 바입니다 (신명기 25:5-10). 이 율법에 순종하는 보아스와 나오미, 룻 그들은 말씀을 통해 인도받습니다. 또, 보아스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하고 맹세하는 그 믿음의 행동 가운데, 하나님은 영으로 임재하십니다. 그의 축복의 말대로 축복하십니다. 그의 맹세를 지킬 수 있도록 섭리하고 힘주십니다. 지금도 우리 인생의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를 누립시다.

둘째, 보아스의 성숙한 신앙인격과 지혜를 배웁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맹세하는 그 믿음을 배웁시다. 룻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지만, 율법이 정한 절차대로 따르는 순종을 배웁시다. 또 오해 때문에 자신과 룻의 명예, 또 하나님의 공동체의 질서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지혜롭게 행하는 그의 지혜를 배웁시다.

셋째, 룻의 순종을 배웁시다.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여 행하는 룻. 그리고, 그녀는 이삭줍는 수고를 성실히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교회이며 공동체에서 자기 직분에 유능한 여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 자신이 기업무를 자이기 때문에.” 이 고백 속에 룻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부부관계를 잘 이해하는 여성임을 알 수 있다. 룻 처럼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그 길을 인도하고 복주십니다.

넷째, 나오미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배웁시다. 기업무르는 그 율법을 잘 이해하고, 그 말씀에 따라 지혜롭게 룻을 지도하는 그 성숙함을 배웁시다.

룻의 이야기는 과거의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백성들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고, 우리가 고백하며 찬양하고 순종하는 믿음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참된 번영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지혜롭게 하나님의 섭리의 선하심을 기다리자.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신뢰하며 참고 나갑시다.

나오미와 룻, 보아스는 모두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씀의 가르침을 다 지켜 행할 때 그러한 행동이 은혜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복을 서로에게 흘려보내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유력한 자, 현숙한 여인이 되어 여러 어려움을 다 이기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분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신비하게 역사하셔서 믿음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 도움을 주고 교제 나누게 하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대대로 이어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애에 기초해서 세워지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지금 나는 어떤 일에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나와 교회 가정 공동체에서 서로 유익을 주는 일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참고> 룻은 어머니의 명령대로 행함(4,5,6)

고하는 대로, 말씀대로, 명령대로 행한다는 말이 4,5,6절에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보아스는 룻에게 고할 것이고 룻은 행할 것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행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표시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그 약속대로, 순종하는 롯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참고> 9절, 옷자락으로 덮음

옷자락으로 덮는다.”는 것은 룻기 2:12에서 보아스가 룻에 대해 축복한 것,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를 반복한다. 날개와 옷자락은 같은 단어 (카나프)입니다. 여호와는 그 이름을 신뢰하는 우리 백성들을 그 분의 날개 그늘로 덮으시며 보호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온 삶과 생명을 다해 아내를 덮어서 보호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눈에 보이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에배소서 5:23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으니” 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 “오직 보양하며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29)

 

<참고> 11절, 현숙한 여인

개역 성경에, “현숙한 여인”은 동양적 유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2:1에서 보아스가 “유력한”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말도 조용조용히 하고, 고상하게 미소짓는 정적이고 비활동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능력있는 여성”이라는 뜻입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 직분을 탁월하게 하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 “현숙한 여인”이 잠언 31:10절에 나옵니다. 원래 구약 히브리 성경은 잠언 다음에 룻기, 이어서 아가서가 옵니다. 원래 히브리 성경에서 룻기에서 두 페이지만 넘기면 나오는 말입니다. 여기서 현숙한 여인은 “앙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는” (잠 31:14)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5절). 가사 일에서 탁월하고, 경제적으로 집안을 일으킵니다.  남편을 잘 내조하여 교회와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웁니다.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 (23절) 그래서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나다 (28,29절)”고 말합니다. 덕행도 추상적인 덕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능력있는 여성은 손톱을 매니큐어 잘 칠해진 하얀 손으로 커피숍에서 커피하고, 영화보고 레저를 즐기는 그런 모습은 아닙니다. 주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느라 손바닥이 꺼칠해진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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