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사기

사사기 16장 삼손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승리, 죄로 인해 눈이 빠져 비참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 2022-5-5, 목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5.04|조회수203 목록 댓글 0

사사기 16

삼손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승리,

죄로 인해 눈이 빠져 비참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

(찬송 548장)

2022-5-5,

맥락과 의미

16장은 삼손이20년 동안 사사로 다스리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싸웁니다. 그러나 삼손은 나실인의 성결함과 거룩함을 지키는 일에서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여 거룩함을 어기면서 블레셋과 싸워 이긴 이야기를 14-15장에서 들었습니다.

16장에서 삼손은 블레셋 창녀와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에게 적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계속해서 그는 나실인의 서약에 신실하지 못했고 그 결과 적의 포로가 됩니다. 눈이 빠지고, 조롱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큰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를 은혜로 받아들여 주십니다.

 

1. 가사의 창녀와 자다가 가사의 성문을 빼서 가지고 옴 (1-3절)

이번에는 삼손이 블레셋의 가사로 내려갔습니다. 유다 지파가 하나님께 받은 땅이지만 블레셋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창녀의 집에 들어가 잤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나실인의 거룩함을 어깁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밤중에 일어나, 성문과 성문 기둥을 뽑아서 동쪽으로 62Km 떨어진 헤브론까지 가지고 갔습니다.  그의 범죄 가운데서도 적의 성문을 무너뜨리는 큰일을 하나님은 이루셨습니다.

 

2. 삼손이 소렉 여인과 관계하며 나실인의 언약 배반, 심판, 회복 (4-31절)

다음에는 삼손이 소렉의 한 여인 들릴라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세 번째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이방 여인과 관계하지 않아야 하고 특히 나실인은 더 그래야 합니다.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은 성전에서 일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계명을 어기며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던 삼손은, 마침내 벗어나기 힘든 함정에 빠집니다. 삼손의 순정과 달리 그 여인은 삼손을 자기 나라 지도자들에게 팔고 돈을 벌기로 했습니다. 블레셋은 다섯 개의 부족과 지도자들이 있는데 각각 은 1천1백 개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5절). 이것은 275명의 노예를 살 수 있는 큰돈입니다. 상업적으로 몸을 팔고 삼손의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려는 여인에게 삼손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 여자가 삼손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힘의 근원이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결박하여 괴롭게 할 수 있습니까?” 삼손은 세 번 거짓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베틀에 함께 짜면 힘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결과 능력의 상징인 머리카락에 대해 점점 더 진실을 말해 주려는 유혹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다섯 지도자들은 세 번이나 삼손을 공격하기 위해 왔지만 삼손은 다시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 여자는 날마다 불평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내게 있지 않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15절). 삼손에게 “재촉했습니다”(16절). 전에 삼손이 결혼한 블레셋 여인이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 달라고 “강박”했던 것과 같은 말입니다(14:17). 그는 똑 같은 방법으로 유혹에 빠지고 있습니다.

삼손의 마음이 “번뇌”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 적들에게 의해 “곤란”을 당하리라고 경고한 것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신 28:53,55,57). 창녀에 의해 재촉당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언약의 저주입니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합니다(17절).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삼손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겁니까? 그의 마음이 쾌락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쾌락과 하나님이 주신 나실인의 사명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즐거움의 추구가 고통을 낳고 있습니다.

그는 마침내 말해 줍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실인,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난다”(17절). “진심을 드러냈습니다 (17, 18). 그동안 그 여인에게 마음을 주었습니다(15절). 하나님께 드릴 마음을 사람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만 우리의 힘이 나옵니다.

그러고도 미련하게 그 여인의 무릎에서 잠이 듭니다. 그 창녀는 블레셋 지도자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악속한 돈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깨웠습니다. 그는 전처럼 힘을 쓰려 했지만 힘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20절).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은 삼손에게 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떠났습니다.  머리카락에 마술의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카락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는 표와 인이었습니다. 표와 인을 가볍게 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실인”은 하나님이 덮어주심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능력이 계속됩니다. 성령님이 떠나실 때 그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됩니다”(7, 11, 17).

그들은 삼손의 눈을 빼고 가사로 데려갔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을 위해, 소처럼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은 그들이 섬기는 신, 다곤의 신전에 모여서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의 우상이 삼손을 자기들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다곤에게 제사를 드리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넘어질 때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우상숭배에 이용당하는 재료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넘어질 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습니다. 우리도 경고를 받읍시다. 그들은 삼손을 데려와서 그들을 즐겁게 하는 활동을 강제로 시켰습니다.

22절에 삼손의 머리털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머리털이 아니라, 삼손이 회개하며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삼손은 다곤 신전에서 그를 부축하는 자에게 부탁하여 신전의 중앙의 두 기둥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소서. 하나님 나에게 이번만 강하게 해 주소서. 원수 갚게 해 주소서”(28절) 그의 두 손으로 신전 기둥을 밀쳤습니다. 구경하던 블레셋 지도자와 사람들 3,000명을 죽였습니다.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블레셋 사람의 수가 1,000명인데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삼손은 사사로서 직분자로 부름을 받아서 적과 싸우는 사명은 잘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나실인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나실인”은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뜻입니다.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창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마침내 비참하게 포로가 되어 수치스럽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은 삼손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며” (히브리서 11:32-34). 그는 타고난 죄악 본성에 넘어졌지만, 그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죄와의 싸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거룩함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우십니다.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사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삼손을 비판하지만 우리 자신이 삼손만큼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와 좋은 것을 주셔서 일이 잘 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와 거룩한 삶을 가볍게 하지 맙시다. 대학이나 직장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것을 얻은 다음에는 핑계를 대면서 예배를 게을리하는 마음이 들 때 삼손의 불행을 생각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성도가 되었으므로, 삼손보다 더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갈 3:27, 롬 13:14). 그리스도적 사람, 새사람을 입읍시다(엡 4:24, 골 3:10).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남을 긍휼히 여기고,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읍시다(골 3:12).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령님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나실인의 머리카락”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기로 옷 입읍시다. 의롭게 해 주신 은혜의 갑주로 옷 입읍시다(엡 6:11, 13). 말씀과 기도로 우리 믿음을 굳게 하고, 사단의 공격을 말씀으로 막아냅시다. 

우리를 위하듯이 가장하는 들릴라의 죽음의 미소에 현혹되지 맙시다. 직장과 물질의 성공, 마음의 평화, 친구들의 인정 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을 사단은 악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 안에 머뭅시다. 거룩을 위해 악을 버리고 절제하는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길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삼손처럼 하나님께서 귀한 은사와 좋은 것들을 주셨는데, 우리의 삶은 예배와 거룩한 삶에서 떠나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떻게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절, 빼어(나사아)=14절, 빼어 냄=광야길을 떠남(민 33:3)

3절에 문빗장을 “빼어”(나사아), 14절에 "바디(가로 세로로 베를 짠 것)를 빼어 내니라(나사아)”는 같은 말입니다. 손으로 문빗장을 빼어낸 삼손의 힘이 머리카락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머리카락은 베에 짜였다가 바디까지 당겨 내는 괴력이 있었습니다.

이 "나사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여행"한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발행", 민 33:3-48). 또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행진하는 것에 사용합니다("떠남" "행함"-수 3:1, 3, 14, 9:17). 이 단어는 사사기에서 이 곳에만 나옵니다. 삼손의 시대는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정복을 향한 여행이 다 끝나지 않은 것을 암시해 줍니다. 삼손의 실패를 통한 승리 가운데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여행을 계속하게 하고 있습니다.

 

<참고> 14절, “바디(야타드)= 말뚝(사사기 4:21)

바디는 베를 짜는 기계에 사용하는 작은 막대기를 말합니다. 사사기 4장에서도 나왔습니다. 드보라 사사와 싸우던 이방인 군대의 사령관 야빈이 야엘이라는 여자의 천막에 들어와 잠이 들었습니다.  야엘은 그의 이마에 “천막의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사사기 4:21). 바디는 말뚝과 같은 단어입니다. 야빈의 머리를 박았던 그 말뚝과 같은 바디에 삼손이 묶였습니다.

한 여인의 손에 죽었던 남자 장군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던 삼손은 여기서 경고를 받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어리석게도 계속 창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듭니다(19절).

 

<참고> 15, 17, 18, 18절, “고함”(나가드)

삼손은 우상숭배자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도록 이방 여인에게 “마음을 고했습니다”(15, 17, 18, 18). 마음을 우상 숭배자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그의 영혼의 충성심을 이방인과 그들의 우상에게도 열어 주었습니다. 그의 죄와 비참이 그대로 노출되고 죽음으로 나갔습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나실인으로 참된 경건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 후에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 증거도 받을 필요가 없음이라”(요 2:23-25). “몸을 의탁한다”는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믿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의롭다 인정해 주는 증거만을 의지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은 사랑해야 하고 사람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을 믿어야 합니다. 마음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고 드러내야 합니다. 중심을 남에게 가볍게 드러내는 언어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흔들림 표시일 수 있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그리스도로 우리를 지킵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참고> 16절, 재촉(추크)=“고난”(신 28:53,55,57)

들릴라가 삼손을 날마다 말로 “재촉” (추크, 16절, 14:17 “강박”)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적들에게 의해 “고난”을 당하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신 28:53, 55, 57). 삼손은 단순히 한 여인에게 그냥 감정적으로 재촉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지 않은 백성에게 내리시는 심판을 당하고 있습니다.

 

<참고> 17절, 번뇌(알라츠)=광야에서 백성의 마음이 “상함”(민 21:4)

 삼손의 마음이 번뇌(17절)한 것은 민수기 21:4에서 백성들이 광야의 긴 여행길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것”(민 21:4)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면서도 그렇게 불평했습니다. 삼손도 번뇌했습니다. 삼손도 괴로워하며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수 있습니다.

삼손이 왜 이 고통을 당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 때문입니까? 그의 마음이 쾌락에 대한 탐욕에 기울어서, 하나님이 주신 나실인의 신분을 지키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탐욕에 재촉당하듯이 빠지게 되면 이런 고통을 당합니다.

 

<참고> 17절 삭도(몰라)  ß 드러냄(아라), 머리가 밀린다(갈라)=드러냄

17, 19, 22절: 삭도와 밀다 두 말은 “드러낸다”라는 뜻입니다.  “삭도” (모아르)는 드러낸다 (아라)에서 왔습니다. 머리를 “밀리 운다(갈라)”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생명의 근원과 수치를 하나님이 덮으시므로, 사람이 드러내는 것은 생명을 내어 던져 멸망으로 이끈다고 가르칩니다.

레위기 20:18은 “월경하는(생리하는)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에르밧-드러내진 것)를 범하면(갈라) 남자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내었고(아라),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음인즉(갈라) 둘 다 백성 중에서 끊어 지리라”라고 합니다.

여인에게 한 달에 한 번 피가 흘러나올 때 피의 근원이 열렸다고 합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이 열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의 물의 근원(렘 2:13)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잠 14:27), 지혜의 법(잠 13:14), 지혜(잠 16:22)도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입도 생명의 근원입니다(잠 10:11).

여인이 생명의 근원인 부분을 덮어야 하듯이,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덮어 두어서 생명의 근원인 여호와께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인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는 것, 또 구약 성도들이 절제함으로써 여인의 피의 근원을 가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의 죄의 수치를 가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실인’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자입니다.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은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덮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옷 입혀 주신 영적 실재를 나타내는 표시와 인이었습니다. 성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항상, 그들의 죄와 비참을 덮어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 때문에 그들은 거룩한 삶에서 순종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사람에게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오직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건물이나 도시의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의미로 사용합니다(아라-시 137:7, 하박국 3:13, 갈라-미가 1:6). 삼손이 ‘삭도’(‘아라’ 하는 것, 드러내는 것으로) 머리를 밀리운 것(갈라)은 스스로 심판 당하도록 끌고 간 것입니다.

 

 

<참고> 삼손의 마지막 기도가 가르치는 것

그가 다곤에서 블레셋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손의 마지막 기도에서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 삼손이 자기의 힘의 원천은 자기에게 있지 않고 여호와께 있음을 인정합니다. 머리카락이 잘린 후에도 여호와께서 떠나신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고 나섰던 예전의 모습이 없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하면서 주님께서 힘을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둘째, 삼손의 기도는 그의 믿음과 연결됩니다. 히브리서 11:32에서 삼손은 믿음의 용사로 언급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3-34) 하고 말하는데 삼손의 믿음은 그가 연약한 중에서 회개의 기도를 하며 강하게 발휘된 데에서 나타납니다.

셋째, 삼손이 태어나기 전부터 평생 나실인으로 삼으신 여호와께서는 삼손의 연약함과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를 회복하여 사사로 사용하셨습니다. 3,000명이나 되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을 지켜 줄 자인 삼손을 잡으러 나올 정도로 백성들의 수준이 낮았을 때에 그 백성의 지도자 역시 연약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나실인임에도 혼인 잔치에서 술도 마시고 사자의 사체도 만지고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자기 머리에 담긴 비밀을 알려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나실인의 서약을 어긴 삼손이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다시 회복시켜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연약한 가운데서 기도하게 하심으로써 그를 사용하여 블레셋 사람을 뒤로 물러서게 하신 것입니다.

사사기에서는 삼손의 다스림을 두 번 기록합니다(15:20; 16:31). 삼손이 들릴라에게 빠져서 잘못한 것은 15:20 이후의 일로 기록되었는데, 삼손과 들릴라에 대한 16장의 내용은 삼손의 잘못으로 평가하면서 쓴 내용일 것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한 자입니다(12:5). 블레셋에서 구원하는 것을 완수한 왕은 다윗이고, 우리를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신 분은 다윗의 주님이시며 동시에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삼손은 자기의 부족과 결점과 죄 때문에 스스로 어려움에 떨어진 경우들이 있으나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순종을 하셔서 구원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참고> 삼손의 업적 (출처: ESV 성경 지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