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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사사기 19장 음란한 사사 시대: 제사장, 제사장의 첩, 이스라엘 사람들의 음행들 2022-5-9, 월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5.08|조회수187 목록 댓글 0

사사기 19

음란한 사사 시대: 제사장, 제사장의 첩, 이스라엘 사람들의 음행들

(찬송 3장)

2022-5-9,

맥락과 의미

17-21장은 사사기의 결론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사건입니다. 17,18장은 우상 숭배라는 영적 음란과 폭력에 대해 말합니다. 

19-21장은 실제적인 음란과 폭력, 처벌을 다룹니다. 이 두 부분의 영적 실제적 음란의 중심에는 레위인과 레위인이 있습니다. 부분 곳에 다, 에브라임과 베들레헴이 나옵니다. 부분 곳 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17:6, 18:1, 19:1, 21:25)가 반복되어 나옵니다. 베들레헴 출신의 다윗 왕이 나올 것이며, 그가 성전 건축을 준비하며 영적 도덕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가정 국가를 회복할 것을 기다립니다.

두 부분 다 사사시대 초기의 일입니다.

 

1. 에브라임의 레위인이 음행한 자기 첩을 찾아 베들레헴에 감 (1-9절)

2. 레위인이 기브바에 도착하였고 비참한 일이 일어남 (10-30절)

 

1. 에브라임의 레위인이 음행한 자기 첩을 찾아 베들레헴에 감 (1-9절)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레위인이 “우거”하고 있었습니다(1절). 자기의 원래 거주지를 떠나 나그네 생활하고 있습니다. 원래 레위인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곳에 살아야 합니다. 레위인은 제사드리는 일을 성실히 하고, 백성들은 이 정상적으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그를 정상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든지, 그의 탐욕 때문인지 그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의 “집” (9절)은 건물이 아닌 “천막”입니다. 임시 거주지입니다.

그런데 레위인이 첩을 두었습니다. 일반인도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인데, 레위인이 음행을 했습니다. 더구나 그의 첩이 음행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고향 베들레헴에 도망갔습니다. 레위인은 장인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환영을 받았습니다.  3일이 지난 후 떠나려고 했지만 장인이 계속 잡아서, 결국 5일째 되는 날까지 머물렀습니다.

레위인의 “마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첩에게 “그의 마음을 말했습니다” (다정하게 말하고, 3절). 삼손이 돈을 버려는 창녀인 들릴라에게 “모든 마음을 말한 것” (16:17,18)을 이 레위인이 반복합니다. “마음을 도왔고” (기력을 돋우고, 5, 8절), 그리고 “마음을 즐겁게” (6,9절). 레위인의 마음이 쾌락과 먹고 마시는 일에 빼앗겼습니다. 자기가 가야 한다고 생각한 시간에 자기 길을 가지 못하는 레위인입니다. 그런 레위인이 어떻게 백성을 율법으로 가르치고 길을 인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들은 “성령님으로 육신의 정욕을 죽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살려 주십니다.” (롬 8:13)

 

2. 레위인이 기브바에 도착하였고 비참한 일이 일어남 (10-30절)

1) 베냐민 땅 기브아에에서 에브라임 출신의 집에서 유숙 (10-21절)

그 레위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도 했지만” (5,8절), 그러나 오후 늦은 시간 길을 떠났습니다. 안장을 지운 나귀 두 마리와, 남자 하인과 첩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여부스, 즉 예루살렘 가까이 왔습니다. 날이 저물어 갑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는 아직 이방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을 향해 계속 걸었습니다.  북으로 4km를 더 가서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는 기브아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집에 재워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리에 앉아 있습니다.

마침 한 노인이 집으로 그들을 받아들여 줍니다. 그도 역시 그 레위인과같은 지파인 에브라임 출신으로 기브아에 “우거” 즉 나그네 생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인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18절)라고 말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성막은 에브라임 지역의 실로에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고, 에브라임 출신의 두 사람이 남의 지파의 땅에서 그날 저녁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2) 기브아의 사람들의 성적인 폭행으로 첩이 죽음 (22-30절)

그날 밤 기브아의 사람들 중 불량배들이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그 사람을 끌어내어 우리와 관계하리라.” (22절). “관계한다”라는 “안다, 혹은 성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입니다. 동성애 행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노인은 만류하면서 말했습니다. 자기 딸이나 레위인의 첩을 내어 줄 터이니 “임의로 하라.” (24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하라.” 사사 시대의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잘 표현합니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붙들어 내었습니다” (25절). 강제로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첩에게 성폭행을 했습니다. 아침에 레위인이 길을 떠나기 위해 나가 보니 그 첩은 문지방에 손을 대고 죽어 있었습니다. 집안으로 기어 들어오다가 임종한 것입니다.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체를 칼로 각을 떠서 12개로 토막을 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에 보냈습니다. 그것을 보는 12 지파들을 대책을 세우려고 합니다.

레위인의 음행과 폭행을 보십시오. 그는 첩을 두었고, 또 자기 첩이 음행했는데도 그녀에게 그대로 마음을 주었습니다. 첩인 아내를 성폭행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기브아의 백성들이 동성 행위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해서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시체를 토막을 내어 12 지파에 보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음란하듯이 섬긴 것이 이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22-24절에서 동성연애를 하려고 우기는 장면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과 동성애 행위를 요구할 때의 장면과 표현까지도 일치합니다(창세기 19:4-7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로 심판받을 정도의 죄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3) 예배를 회복할 성전을 세우는 날을 소망하며

레위인의 첩을 칼로 자른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순종한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가족을 죽이려 했고 하나는 가족을 죽였습니다. 레위인은 쾌락에 빠져 있고, 첩을 칼로 잘랐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들의 생명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준비한 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의 아들을 실제로는 죽이지 않았고 칼로 자르지도 않았습니다.

사사기의 이 불행한 이야기는 앞으로 사사 시대가 끝난 후, 아브라함의 번제와 같이 바른 제사를 드리며 예배하러  올 것을 기다리게 합니다. 다윗 왕과 솔로몬은 율법에 정한 대로 바른 제사로 예배를 회복할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스라엘의 도덕적 타락도 회복될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사사기의 처참한 장면은 교회 안에도 이런 타락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우리 시대 혼인과 성의 순결이 이렇게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들과 성도들의 자녀들도 이 유혹에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레위인과 레위인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성적인 타락도 일어났습니다. 우리 시대도 목사들을 성령께서 지켜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제사를 통한 예배가 약해지니까 실제적 여러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성적 혼란으로부터 가정을 순결하게 지키려면 먼저, 예배와 영적 순결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신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시다. 주일 예배와 가정의 경건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무장합시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죄 용서의 기쁨을 누립시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감사의 번제와 화목제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예배가 타락하면서 음행과 살인이 생기는 사사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볼 때 나와 우리는 무엇을 주의하며 변화되어야 할까요?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시체를 각뜬 것-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려 한 일(창 22장)

오늘 이야기는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장면과  유사합니다.

1) 레위인은 자기 하인 한 명, 나귀 둘을 데리고 나귀를 안장에 지우고 먼저 예루살렘으로 떠났습니다 (10절).  이 장면은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할 때, 하인 두 명, 나귀, 그리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일찍 떠난 것과 비슷합니다.

2) 레위인은 예루살렘을 통과했는데,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 드리려한 모리아 산이 바로 예루살렘이 있는 성전 터입니다.

3) 또 레위인이 첩의 시체를 자를 때의 “칼” (마아칼라, 29절)은 잠언30:14와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려 한 칼 (창 22:6,10)에만 나옵니다.

4) 레위인이 첩의 시체를 “찍었다”라는 것 (29절)은 원래 번제를 드릴 때 각을 뜨는 것에 사용하는 표현을 정확히 그대로 사용합니다 (출 29:17, 레 1:6,12 8:20). 아브라함은 이삭을 실제 번제로 각을 뜨지 않고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막았지만, 이 타락한 레위인은 자기 아내의 몸을 번제의 양처럼 각을 떴으니, 번제를 드리려 준비한 것입니다.

레위인의 행동은 자녀를 우상에게 불태워 드리는 이방의 습성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사건 때는, 하나님이 이삭 대신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을 번제로 드린 거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다윗 왕이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번제를 드릴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제사 예배를 세울 그날을 바라보게 합니다.  타락한 레위인이 우상 숭배하듯이 한 번제를 드리는 시대를 마감하고 하나님이 예배를 회복할 그날을 바라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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