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092
다시 시작하기-삼손의 경우
(사사기 16:15-31)
2022-5-8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다시 힘 주시고 시작하게 하십니다.
어느 순간 힘을 잃어 버렸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 계신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끌려 다닙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오늘 삼손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그는 날 때부터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나실인”이었습니다. 사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인들로부터 구원했습니다. 우리와 다르지만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떠나고 그래서 불행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회개하며 돌아오게 하십니다.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다시 힘 주시고 시작하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을 떠나 탐욕으로 감(15-17)
2. 하나님과 그 분의 힘이 떠남(18-21)
3. 하나님께 회개할 때 힘을 회복(22-31)
우리의 믿음의 선배인 삼손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에서 탐욕으로 떠나는 것, 하나님께서 징벌하여서 떠나시며 힘이 떠나는 것, 그러나 회개할 때 다시 힘을 회복해 주십니다. 오늘도 이 은혜를 성령님께서 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을 떠나 탐욕으로 감(15-17)
1) 믿음의 갈등(15-16절)
1) 원래 삼손은 날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고 사사인 삼손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블레셋을 멸망시키기 위해 “여호와의 신”이 삼손 안에서 강하게 움직였기 시작했습니다(13:25).
삼손은 처음에 블레셋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두번째로는 블레셋의 창녀의 집에 들어가 잤습니다. 이방 여인이 예쁘게 화장하고 달콤한 말을 하는 것에 빠졌습니다.
2) 삼손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신이 계속 삼손에게 성령님이 강하게 움직여 큰 힘을 주셨습니다(14:19, 15:14). 삼손을 다시 사명으로 오도록 해 주십니다.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3) 삼손은 지금까지 쾌락을 위해 이방인 여성과 만났지만, 이 세번째 여자 들릴라는 이제는 정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삼손의 순정과는 달리 여자는 삼손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삼손을 팔아 넘겨서 돈을 얻을 것을 더 사랑했습니다.
--->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것이 세상적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여성과 남성이라야 참된 사랑을 줍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져서 탐욕의 함정에 빠지지 맙시다.
4) 들릴라는 블레셋의 지도자들을 몰래 집 근처에 숨어 있게 합니다. 그 여자가 삼손에게 묻습니다. “어디에 당신의 큰 힘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당신을 묶을 수 있습니까?” 삼손은 세 번이나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5) 그 여자는 날마다 재촉했습니다(16절).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 당하는 곤란이요 고통입니다.(신 28:53,55,57). 삼손의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17절).
5-1) 그는 한쪽에는 하나님이 주신 나실인의 사명과 구별됨, 다른 한편 여인의 사랑과 쾌락 이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둘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적인 쾌락과 사랑이 하나님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물질, 사람의 진정, 직장의 승진, 그것과 하나님 사이에 괴로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괴로운 것도 복입니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괴로와 하면서도 점점 더 하나님을 향해 가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대신 여성의 사랑=탐욕에 모든 마음을 줌(17절)
1) 그런데 삼손은 이 고통과 괴로움을 잘못 해결합니가. “그녀에게 진정을 토했습니다” 하나님깨서 그에게 말해 주신 비밀을 다 말해 줍니다. 17절은 이렇습니다.
“이발칼이 나의 머리에 올라가지 않았소.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나실인이 내 어머니의 태중으로부터 되었기 때문이오. 내가 벗어지면 나로부터 내 힘이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게 되오.”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나실인”인 삼손의 머리에 이발칼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적들도 삼손과 싸우러 올라와서 그의 머리에 칼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의 온 몸을 덮은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은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덮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옷 입혀 주신 것을 표시하는 약속의 도장이었습니다. 오직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3) 삭도, 이발칼, 머리를 민다는 것은 머리가 벗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를 덮은 은혜의 표시인 머리카락이 없어지면 그냥 죄인이요 약한 사람입니다. 그대로가 나타납니다. “나의 힘이 떠나고 나는 약하여 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되오.” 삼손은 나실인의 거룩한 신분, 그의 사명을 한 여자를 향한 달콤한 쾌락에 팔아 버렸습니다.
4) “진심을 드러냈습니다 (17, 18). 세 번이나 말합니다. “마음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6:5,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유혹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마음이 나와 있어야 해요”(15절). 삼손은 “마음을 다하여 그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쾌락과 여자의 사랑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마음을 사람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5) 여인은 블레셋 지도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돈에 손을 들고 올라 왔습니다.
5-1) 여자는 삼손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서 잠들게 합니다. 바보 삼손, 하나님의 영원한 품이 아니라 돈을 위해 자기를 팔아 넘기려는 여자의 무릎 위에 아기처럼 편히 잠들었습니다.
---> 우리가 찾은 마음의 평안이 하나님의 품 속인지 아니면 해를 끼치는 사람의 무릎인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참된 보호자 되십니다.
5-2) 여자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습니다. 20절. 지난 주 “오 한장” 성경 해설에는 블레셋 지도자들이 머리를 잘랐다고 잘못 썼습니다. 그 여자는 “삼손을 괴롭게 하여 보았습니다.” “괴롭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삼손에게 하나님의 성령님이 임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괴롭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이집트에서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출애굽기 1:11,12). 삼손이 생각한 이방 여인의 사랑과 즐거움은 환상이었습니다.
--->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다 바치면 그것이 행복을 줄 것 같지만 환상입니다. 우리의 참된 힘을 뺏아 갑니다.
2. 하나님과 그 분의 힘이 떠남(18-22)
1) 하나님과 힘이 떠남(18-21)
19절, 20절은 말합니다.” “그의 힘이 그의 위로부터 떠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위로부터 떠났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의 힘은 여호와였습니다. 들릴라 그 여자는 “당신의 큰 힘”(15절), 삼손은 “내 힘”이라고 했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떠나셨습니다.”
여자는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 당신 위에 올라왔어요” 그의 머리에 이발 칼이 올라가면서 하나님을 버린 그 결과 블레셋 사람이 삼손 위에 올라 왔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잡아 눈을 뺐습니다. 가사로 데려갔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을 위해, 소처럼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실인”은 하나님이 덮어주심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구별됨을 잃어버릴 때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자존감도 잃어 버렸습니다.
--->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덮어주신 그 죄용서의 은혜를 가볍게 하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와 인, 성례와 말씀과 기도,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계속 빠진다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늦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2) 말씀과 성령님께 순종할 때 참된 자유와 능력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이 삼손에게 짐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구별됨이 기에 자유가 없어 보입니다.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술에 취하는 자유, 원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며 마음껏 즐기는 자유, 주일에도 편히 누워 쉬거나 공부하거나 놀러 가는 자유, 직장에서 게으르게 일할 자유, 내가 가진 시간과 돈을 교회나 다른 사람에게 쓰지 않고 나 만을 위해 쓰는 자유. 하나님께 구별된 성도에게는 이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13,14(신약 10).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다” 자유가 많습니다.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정한 대로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좁은 길입니다.
참 자유는 우리 마음대로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신약 307)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첫째,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선행을 해야 한다는 율법주의로부터 계속 자유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선을 행해야 구원받는 다는 이 부담에서 자유합시다.
둘째,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심자 말라” 쾌락과 죄악의 기회로 삼지 말라.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갈 5:13).
들릴라의 아름다운 미소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성령을 따라 유혹을 이깁시다. 쾌락과 우상 숭배, 분쟁, 술취함과 방탕함을 버립시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사랑, 기쁨, 평화, 인대 등의 열매를 맺읍시다. “우리의 본성과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갈 5:24) 우리의 새로운 존재대로 삽시다.
3) 계속 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회개(22절)
22절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표시인 “삼손의 머리털이 벗어진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은혜와 능력을 다시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삼손이 이제는 마음을 하나님께 주면서 회개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3. 하나님께 회개할 때 힘을 회복(23-31절)
1) 우상 신전의 괴로움(23-25절)
하나님의 은혜와 삼손의 회개가 있었지만 삼손은 더 큰 시련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를 연단합니다.
1) 블레셋 사람은 그들의 신전에 모여서 다곤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찬송합니다. 우상을 찬송합니다. “우리의 신이 우리의 원수 삼손을 우리의 손에 주셨다.” 삼손은 우상을 섬기는 여인을 우상 처럼 사랑하며 마음을 주다가, 결국 우상 숭배를 돕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람이 넘어질 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습니다. 우리도 경고를 받읍시다.
2) 그들은 삼손을 끌고 와서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만들었습니다. 삼손은 그들이 웃고 즐겁게 하는 행동을 강제로 시켰습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하여 (26-30절)
) 삼손은 다곤 신전에서 그를 부축하는 자에게 부탁하여 신전의 중앙의 두 기둥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 우리도 어느 순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주 여호와여 나를 생각하소서. 하나님 나에게 이번만 강하게 해 주소서. 그들이 뺀 내 두개의 눈 중 한 개 만큼이라도 원수갚게 하소서”(28절).
3) “나를 기억하소서”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과거 출애급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기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출 2:24). 삼손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나실인”으로 관계를 맺어주신 관계를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나는 신실하지 않아서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항상 언약에 신실한 분이니, 우리의 관계를 기억하소서. 그래서 구원해 주소서.”
--->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한 행동 때문에 우리를 떠나셨을 때, 우리가 행한 악한 행동만 생각하면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갑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죄악을 볼 때 물러서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님께 달려 갑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위해 사명을 다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3) 다시 기도합니다. “내 영혼이 블레셋 사람과 죽게 되기를!”(30절). 전에는 들릴라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제는 그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목숨을 바치기로 기도합니다.
---> 우리도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지 맙시다. 죽기를 다하여 남은 날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기도합시다.
4) “나를 이번만 강하게 해 주소서” 로 신전 기둥을 밀쳤습니다. 3,000명을 죽였습니다. 살았을 때 죽인 블레셋 사람도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다했습니다.
---> 우리도 기도하며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힘을 다시 주십니다. 아무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 하면 잃습니다. 목숨을 잃기로 각오하고 주님을 따를 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위해 먹고 입고 즐기는 것에 우리 마음을 다 주면 우리는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함의 복을 잃기 때문입니다. 가장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입니다.
3) 믿음의 길: 하나님의 은혜
1) 삼손의 연약함에도 히브리서는 삼손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며” (히브리서 11:32-34). 그 정도의 거룩함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우십니다.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사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의 연약함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은혜 주시고 계속 연단했습니다. 그는 다시 회개하면서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믿음의 본입니다.
---> 믿음은 죄가 없거나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탐욕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있구나. 그래서 이런 채찍을 맞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들 때에 다시 기도합시다. 더 늦기 전에 기도합시다. “과거에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을 둔 것을 회개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때문에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이 일을 이루소서. 과거 죄악된 날이 억울하니 남은 날에 충성하게 하소서”
2) 히브리서 12:1(신약 366)은 말합니다.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회개하며 벗어 버립시다. 우리의 소명의 길을 달려 갑시다.
2절,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시작/기초와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자이시면서 우리의 음에 대한 모범이기도 합니다. 2절, “예수를 바라 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도 예수님이 먼저 얻으신 그 기쁨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참고 부끄러움을 너무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성도가 되었으므로, 삼손보다 더 “하나님의 나실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갈 3:27).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령님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나실인의 머리카락”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듯이 가장하는 들릴라의 죽음의 미소에 현혹되지 맙시다. 직장과 물질의 성공, 마음의 평화, 친구들의 인정 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을 사단은 악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3-5에서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은 것을 내가 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게 가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가 삼손처럼 큰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데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계속 그렇게 하면 곧 오셔서 심판하십니다. 삼손처럼 힘을 잃고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방향을 다시 그리스도로 향합시다.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리스도를 높입시다. 그러면 약속하십니다.
계2:7은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죽음의 날이 오기 전에 한 해라도 젊을 때,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 우리의 이김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