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고후 5:11-21)
2023-4-16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삼아주셨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아니 희망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뭔가 새롭고 신나는 것이 없을까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새롭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날로 날로 새롭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먼저 은혜를 주시고 같은 은혜를 성도들에게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삼아주셨습니다.
1. 새로운 목적: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 (11-15절).
2. 새로운 존재-피조물 그리스도 안에서(16-17)
3. 새로운 관계-하나님과 화목됨(18-21절)
오늘 이 시간 성령님께서 이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1. 새로운 목적: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 (11-15절).
1)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11절)
1) 사도는 “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 간증하면서, 성도들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두려워 합니다. 사랑을 베푸신 주님을 존경하고 경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세로 주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에게 권면하고 설득하는 일을 합니다.
2)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12, 13절)
13절,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바울은 어떤 비난하는 말을 들어도 오직 하나님을 위해, 성도를 위해 필요한 일에 온 몸을 던집니다. 예수님도 가족에게서, 또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막 3:21,22). 바울도 “네가 미쳤다”는 소리를 실제 들었습니다(행 26:24,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 베스도 총독).
지난 번 바울이 눈물로 쓴 편지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바울이 정신 나갔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예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합니다. 성도를 위해 복음을 전합니다.
➞ 목사는 하나님을 위해, 성도를 위해 굳세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비난받고 모욕을 당할 것을 각오하면 웬만한 비난도 참고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사람을 돕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하나님 나라의 복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위하여: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우리도 그리스도 위해(14,15절)
1) 하나님을 위해, 성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꽉 붙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르게 행할 수 없습니다.
14절, “우리가 생각하건대.” 다음과 같은 판단합니다.
14절,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2)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왜 죽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 영원한 지옥에 가야 하는데,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바울도 죽었습니다. 죄악 된 고린도 교인도 죽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죽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우리를 대신하여 살아나셨습니다. 나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1) 나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다른 성도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사도 바울은 온갖 비난을 받아도 순결한 복음을 전합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 때는 살아 있지만 죽어 있었습니다. 죄의 노예였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일을 당하면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목적을 이룹시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갑시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 감사합니다.” 많이 감사합시다. 둘째, 내게 주신 직분에 충성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직분에 충성합니다.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실하게 직분을 감당합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도 가정을 가졌으면 가정에 헌신하고, 미혼이거나 혼자 살고 있으면 혼자 사는 대로 삶 전체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2. 새로운 존재-피조물 그리스도 안에서(16-17)
1) 이제부터는: 성도도, 그리스도도 세상적 관점으로 보지 않음(16절)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성도를 위해 새로운 목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17절).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으로 믿은 자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육체를 따라 알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가진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가문, 재산, 외모, 지식과 같은 이 세상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더 이상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전에 예수님도 그냥 이상한 청년으로 알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약한 자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메시아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자기 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분명히 사람은 사람인데 영광을 가진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시며 사람인 이 분이 사람을 위해 죽고 부활하시는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새 사건은 영원히 효력이 있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보라, 새로운 피조물(17절)
그리스도안-믿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요 나의 구원주”라고 고백하고 믿고 있습니다.
“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새로운 피조물
“새것” 은 원래 사람보다 큰 것에 대해 씁니다(롬 1:2,25, 8:19-22). 선지자들이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새로운 사람이 삽니다. 새 시대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 65:17(구약 104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스도인 개인을 포함해서 우주 전체가 새롭게 되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족과 차이를 넘는 새로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살아갑니다. 성도는 교회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믿는 자들이 사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새로운 세계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 우리가 일하는 곳, 그곳은 하늘도 땅도 나무도 새로운 세계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이나 학교나 들판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니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믿음으로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3)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사람에 대한 관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은 여전히 바울을 세상적 관점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 눈에 바울은 목마르고 헐벗고 집이 없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삶 속의 비참함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보라 우리는 살았다.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기준으로 봅니다. 죽을 듯이 고생하고 있는 가운데, 그 죽음이 생명에 의해 삼켜지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봅니다(5:4). 성령 안에서 주님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봅니다(3:16-18).
➞ 세상 기준으로 보기에 초라한 성도님도 예수님의 영께서 영광스러운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존재로 봅시다.
➞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취한 것이 많고 착해 보이는 사람도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죄인 평등주의! 그리스도가 위하여 죽고 부활한 사람 모두 한 형제자매임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주의!
➞ 주일마다 만나는 성도는 가까이 보기 때문에 결점들을 알게 됩니다. 그런 결점을 알았다고 해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의롭다고 인정하신 존재로 봅니다. 남편과 아내의 미숙함을 볼 때도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봅니다. 그 미숙함 보다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봅니다. 그래서 귀하게 여깁니다.
3. 새로운 관계-하나님과 화목됨(18-21절)
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를 통해서(18,19절)
1)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화목이란 서로 친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성도 그들을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화목하게 되라고 합니까? 화목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제대로 화목하게 됐으면 바울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 그리고 성도와도 화목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다시 화목하게 되기 위하여 다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화목 시켰기 때문입니다.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가 나왔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먼저 12 사도와 바울 사도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어서 보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목사가 계속 담당합니다.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화목하게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말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믿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교회로 인도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신성의 충만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독생자를 주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2) 19절, 이 세상 사람 가운데에서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곧 그들의 죄를 죄라고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죄가 있지만, 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돌려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돌렸습니다. 그렇게 판단해주셨습니다.
2) 사도(말씀 전파자)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20절)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 중에 하나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있게 하기 위해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사도들의 입에 말씀을 두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로서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를 통해 권면합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권하고 싶은 말, 예수님이 간청하고 싶은 말을 사도가 전합니다.
---> 사도가 하던 그리스도의 대사의 일을 이제 목회자가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의 일을 합니다.
3) 성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화목하라”(20절)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 증상으로 사람들끼리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화목을 만드시며 오십니다.
➞ 우리가 매일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듭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지 않은 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시 하나님과 화해시키십니다. 어떻게 화해시키는지 자세히 봅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기 위해(21절)
4)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대신에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하는 속죄 제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받게 만드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19절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간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의인으로 간주하셨습니다.
➞ 죄인인 여러분, 서로 다툼과 갈등 속에 있는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라고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초라한 모습, 죄인 된 모습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고, 나 대신 죄인이 되셔서 이제 나에게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고백하면서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시다.
6:1,2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보라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신속히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삼아 주셨습니다.
1. 우리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삽니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참되고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목표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삼으셨습니다.
3.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드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십시오.” 내 죄를 덮어주고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믿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아갑시다.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십시오.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시다. “헛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