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133
언약의 복과 저주 (렘 11:1-17)
2023-5-14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여 복을 누립시다.
오늘 본문에 언약이라는 말이 5번 나옵니다. “언약의 말씀”으로 말씀과 연결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지금부터 대략 2,6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있던 구약 성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먼 나라, 오랜 과거에 주신 말씀이지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똑 같은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나의 교회에 속한 교인입니다. 그분들이나 우리나 본바탕은 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언약을 맺어 주신 것이 그들이나 우리나 같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여 복을 누립시다.
1. 언약의 기초: 시내산 언약을 예레미야를 대표로 하여 새롭게 했다(1-5절).
2. 언약을 어김: 언약을 어겨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6-17절)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을 맺고 복을 누린다.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삼위 하나님과 언약관계에서 더 가까이 가게 해 주시기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언약의 기초: 시내산 언약을 예레미야를 대표로 하여 새롭게 했다(1-5절).
1절 보십시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왔던) 말씀이라” 같은 말씀이 오늘 관악교회에 왔습니다.
2절은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들으라” 지금부터 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말씀이니 잘 들으십시오. 누구가 잘 들어야 합니까?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 남 유다로 분단되어 있었지요. 10개 지파가 북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721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남은 것은 남쪽 유다에 속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입니다. 두 지파를 합쳐서 그냥 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관계에 있습니다. 예레미야 때보다 800년 전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맺은 것을 다시 일깨웁니다.
3-5절에, 언약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하셔서 언약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던지 쇠로된 풀무불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의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독립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둘째로, 언약의 조건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순종하고 그분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계명을 주었습니다. 그 율법의 조항들을 잘 지키는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 조항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과, 이웃을 향해 십계명을 따라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먼저 은혜로 구원하신 다음에 이런 의무를 주셨습니다.
셋째로, 이 언약의 의무를 다하면 언약의 복을 받습니다.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수호신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백성과 항상 함께 계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을 받습니다.
넷째로, 물질적인 복도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복을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섯째, 언약의 말씀들을 듣지 않으면 언약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해방, 언약의 말씀의 순종, 하나님의 백성이 됨, 땅의 선물, 언약의 저주. 이 다섯가지를 백성들에게 다시 말하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먼저 백성을 대표하여 “아멘 여호와여”라고 다시 언약을 새롭게 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출애굽기 19:5, 6
신명기 27:26)(구약 303)
여호수아 8:30-35(구약 331) 이 언약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때에서 800년이 지난 때, 예레미야를 통해서 언약관계를 새롭게 맺으십니다.
시내산 언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산 언약에서 완성되었습니다.
2. 언약을 어김: 언약을 어겨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6-17절)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1) 예레미야의 조상의 배반(6-8절)
6절, 여호와께서는 유다성들과 예루살렘성에 말하라고 합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듣고 행해라!”
여호와께서는 그들 조상 때,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한 때부터 지금까지 “내 말을 들으라”고 경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령하였어도 그들이 행하지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규정대로 그들에게 이루게 하였느니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 언약의 모든 말씀들이 오게 했다.” 언약의 모든 말씀 중 언약의 저주가 오게 했습니다.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그 벌을 받았고 이제 곧 남쪽 유다에도 언약의 저주가 오게 할 것입니다. 바벨론이 침략해 와서 성전도 예루살렘 성도 파괴할 것입니다. 사람들을 사로잡아 끌고 갈 것입니다.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걸어갔다” 고 하십니다. 분위기를 따라서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발적으로 마음으로 악한 일을 했습니다.
---> 요즘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가는 사람은 대개 그 사람 마음 속에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2) 예레미야 시대: 언약을 어김과 하나님의 심판(9-13절)
1) 9절부터는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을 향해 반역했습니다. 10절은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 갔다”고 하십니다.
주전 621년 요시야 왕때 우상을 없애고 개혁이 일어 났습니다.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고 나서는 그들의 조상들이 하던 대로 우상을 섬겼습니다.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서 계속 가르쳤지만 백성은 우상 숭배에 몰두했습니다.
2) 왜 참된 신이신 여호와를 섬기면서 우상도 섬길까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의 친교를 하게 하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삼위 일체 하나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어 섬길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바알은 우상은 눈에 보이고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 집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깁니다.
---> 우리도 우상 숭배하듯이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대로 바른 지식으로 경배합시다. 사람의 오감에 호소하지 않지만 초월적인 영이신 하나님을 지식을 가지고 믿음으로 섬깁시다.
유다 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우상도 섬겼습니다. 하나 보다 둘이 더 안전할 것 같지요? 실은 둘 다 안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영적 간음입니다.
3) 우상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윤리적 기준을 강조하지 않고 그냥 이 땅의 축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물질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 원칙을 어기면 축복 대신 저주를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잘못은 징벌하면서 사람을 하나님 형상으로 다듬어 가십니다.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로서 삼위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가게 합니다.
4) 하나님은 언약을 어긴 언약 파트너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11절, “그러므로 내가 재앙을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재앙, 12절의 고난은 8,9절에 나온 “악”과 같은 단어입니다. 백성이 악한 행동을 계속할 때 하나님께서 재앙이 오게 하십니다.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후에,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그들을 듣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던 유다 백성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우상들에게 가서 분향하며 도움을 청해 봤자, 그것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유다의 성읍의 수만큼, 예루살렘 거리의 수만큼이나 많은 우상들을 섬기지만, 헛된 일입니다.
----> 정말 우리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혹시라도 자기도 모르게 우상들을 하나님 처럼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 직장, 인정, 자존감, 학벌, 외모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지는 않습니까? 그것들을 믿고 안정감을 두지는 않습니까? 그것들이 적으니까 믿을 곳이 없어 불안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지만,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모두 우리가 사용해야 할 대상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유일하신 참 신이신 삼위 일체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100% 하나님만 의지 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사용합니다. 그것 자체로 즐길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존재는 삼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 중에는 아침마다 기도하며 우리 영혼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점검받읍시다.
3) 예레미야 시대: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14-17절)
1) 14-17 절은 이스라엘의 악 때문애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악과 재앙은 같은 단어(라아)입니다. 15절에도 “악한 음모”, 17절의 악, 14절의 고난, 15절의 재난, 17절의 재앙 다 같은 단어입니다. 16절의 “꺽였다”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라아아).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할 때 하나님깨서 언약의 재앙을 오게 하신다” 어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혹시 우상 숭배하듯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 옵시다.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을 맺고 복을 누린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한 우리 모든 성도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언약파트너입니다.
구약 백성에게는 시내산 언약을 맺으신 삼위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 보다 더 좋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산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갈보리산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하나님관 언약 파트너가 되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아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몸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성찬 때 포도주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 포도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죄인 중의 한 사람이 되셨고 죄인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아야 했던 죄에 대한 무한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제 이 아들을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내리시는 죄의 벌을 다 면제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믿으시지요? 벌을 면제해 주고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하십니다. 자애로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으로서 완전히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 아들을 주님으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공덕이 우리를 다 덮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 요구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과 참된 회개입니다. 우리 지은 죄를 고백하고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우리의 중보자로 그리스도로 받아들입시다.
예수님의 언약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해방해 주시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해 주셨습니다. 죄의 유혹을 이기고 나가게 해 주셨습니다.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자, 우리 대신 우리 죄의 짐을 삼위 하나님 앞에 다 내려 놓읍시다.
둘째로, 성령님을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행할 수 있게 힘을 주십니다. 시내산 언약은 언약 말씀을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했지만, 예수님이 맺은 갈보리 언약은 오직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으로 언약관계에 들어오게 하신 다음,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로마서 8:1,2,4절은 말합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 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3:20-21은 말합니다.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언약의 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죄와 죄에 대한 형벌, 마귀의 세력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 새 삶을 얻었습니다.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좋은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언약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스런 아들 딸로 받아 들여 주셨습니다.
넷째로, 우리에게 물질적 복도 주십니다.
마태복음 6:33(신약 9)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물질, 건강 등)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다섯째, 언약의 저주와 징벌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2:5-6 (신약 387)은 잠언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2) 자족하기
이 큰 은혜의 언약백성이 되었으니, 구약 백성이 여호와를 섬기면서도 우상들을 섬긴 그 잘못을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자족하지 못하고 종교적인 탐욕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바알들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4:11-12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풍요로우면 풍요로운 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족하기를 배우기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힘든대로 감사하며 자족하기를 배웁시다.
왜냐? 풍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은 나의 직분과 사명을 말합니다. 경제적 능력이나 건강의 능력이나 주 예수님이 주시는 만큼 그 자원을 활용하여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을 바울은 체험했습니다. 우리도 없는 것 탓하지 말고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며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다합시다. 하나님과 언약관계 속에 사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 주신 만큼만 하면 됩니다. 한편으로는 주신 상황에 자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직분을 다합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 교회에서 형제 자매 섬기는 일에서, 모든 일에서 직분을 다합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여 복을 누립시다.
1. 언약의 기초: 시내산 언약을 예레미야를 대표로 하여 새롭게 했다(1-5절).
2. 언약을 어김: 언약을 어겨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6-17절)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을 맺고 복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