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본문: 디모데후서 3:13-17
어린이 말씀
여러분 집이 다 있지요? 잠도 자고 편히 쉬며 생활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도둑이나 처음 보는 사람이 철컥철컥 문을 열고 갑자기 들어오면 기분이 어떨까요? 깜짝 놀라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가 식탁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러는 거에요. 이 집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이 어디 있니? 다 가져와 봐. 그런다고 아빠 엄마 결혼 반지나 목걸이, 집에 있는 돈들, 신용카드, 이런 거 다 갖다 주는 사람은 없겠죠?
우리가 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이런 나쁜 사람, 도둑들이 못 들어오도록 막아주기 때문이에요. 튼튼한 자물쇠가 있고 경비원이 있어서 집을 안전하게 지켜줘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마음에 나쁜 생각들, 잘못된 생각들이 들어오지 않게 우리 믿음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게 두 가지가 있어요.
바로 직분자와 성경이에요.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을 주시고, 또 가정에서 부모님을 주셔서 우리 믿음을 지켜 주세요. 그리고 성경을 주셔서 우리 믿음을 지켜 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안전한 가정과 안전한 교회 가운데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요. 참 고맙죠?
요즘에 하나님 없어, 성경 다 거짓말이야,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면 정말 그런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요?
우리 어린이들은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말씀 잘 들으세요. 또 부모님 말씀 잘 들으세요. 그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지켜 주시고 계속해서 믿음에서 자라게 해 주실 거에요.
모두 자리로 들어갑시다!
머리말: 직분자와 성경, 흔들리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
어떻게 하면 말세의 때에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세상의 유혹과 거짓된 가르침 앞에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모두가 믿음을 굳게 지키고 예수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경건한 삶을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말씀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말세에 에베소 교회가 어렵고, 교인들이 믿음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목사와 교회의 믿음을 지키도록 주신 두 가지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직분자와 성경입니다. 이 두 가지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교회를 이루는 본질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추구하고 굳게 붙잡아야 할 은혜의 수단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자와 성경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더욱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직분자의 도움으로 성경을 계속해서 배우면서 이 세상의 유혹 가운데 믿음을 굳게 지키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1. 말세의 고통: 복음의 변질과 신자들의 도덕적 타락 (13절)
먼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 13절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이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준 것이 4장 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4장 1절에 말세에 고통스러운 때가 이르렀습니다. 믿음의 시험이 계속될 것입니다. 악한 사람과 속이는 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말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말세는 보통 오해하기 쉬운데요. 성경에서 말세는 예수님 승천 이후에 재림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성경의 에베소 교회도 말세이고, 우리도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말세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는 종말이라고 해서 말세의 끝이라고 구별해서 부릅니다.
4장 2절부터 5절까지는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입니다. 언뜻 보면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에 대한 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신자들 중에 이단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말입니다.
2절 끝부분에 “거룩하지 아니하며,” 4절에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절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교회 안에 신자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거짓 교사들과 그 추종자들입니다.
에베소의 이단들은 구원을 얻으려면 혼인하지 말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 금욕적인 율법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율법을 몇 가지 종교적 계율로 축소시켰습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몇 가지 규칙은 잘 지켜지만 나머지 부분은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가식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신앙생활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에베소 이단들은 이미 부활은 성도들의 삶 가운데 임하였다, 육체의 부활은 없다는 거짓 종말론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온전한 육체를 지니신 참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온전히 부활시키실 것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육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육체를 함부로 여기고, 몸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가치를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가운데 육체로 짓는 죄에 대해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영지주의 이단이 3-4세기 경에 출현하는데, 그 초기 형태가 바로 이 에베소 이단들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뒤 문맥에서는, 이 이단에 대해 아주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단에 빠지는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어쩌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또는 어떤 잘못된 가르침에 잠시 착각해서 이단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와 욕심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이단적 가르침으로 이끌어 갑니다.
디모데후서 3장 6절을 보면 거짓 교사들이 집으로 가만히 찾아와 어리석은 여인들을 유인합니다. 그러면 그 여인들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서,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자신의 욕심이 이들을 이단으로 끌고 갑니다.
4장 3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이르리니,” 3장 1절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자기 사욕을 채워주고, 자기 귀를 시원하게 긁어주고 자기 입맛에 맞는 얘기를 들려주는 이단들을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단에 흔들리는 것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십니까. 우리 교회는 바른 말씀을 가르쳐주는 바른 교회니까 이단이 틈탈 수 없다 생각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단은 교회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교회와 목사님이 아무리 바른 말씀을 가르쳐 주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탐심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 말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내 귀에 시원하고, 내 입맛에 맞고, 내 욕망을 인정해주는 이단들을 따라갈 것입니다. 이단 교회와 이단 교사가 있기 전에, 이단적 경향이 우리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기독교 인구 10명 중에 한 명 정도가 이단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단들은 사람들의 정서적인 결핍을 채워주고, 기적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하면서 점점 교주를 의존하게 만듭니다.
아주 지성적인 이단도 있습니다.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성경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고 하면서 성경이 인간이 만들어낸 문서라고 얘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말세에 교회와 신자들 가운데 점점 이단적인 가르침이 퍼져갈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도덕적 타락이 있을 것입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성적인 욕망, 정서적인 욕망, 안정에 대한 욕망,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언제든지 바른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지키도록 직분자를 주셨다 (12-14절)
바울 사도는 말세에 고통당하고 있는 디모데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많은 사람들이 이단적 가르침에 현혹될 것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직분자를 주셨습니다. 14절 하반절에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내게 성경을 가르쳐준 그 사람이 아주 믿을 만하고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믿고서 진리 가운데 거합니다.
디모데가 지금 목사로 서게 된 데에는 사도 바울과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에게 복음을 가르쳐 준 사도 바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잘 가르쳐 줬습니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누구에게서 배웠습니까? 오늘 본문 바로 앞에 10-12절에 나옵니다. 지금까지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행적을 계속해서 지켜봐 왔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고난을 감당하면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했는지 그 모든 삶의 모습을 지켜봐 왔습니다. 또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고난에서 건지신 것을 보았습니다.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바울의 사도적 권위는 큰 능력이나 인간적인 성취나 매력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는 실패하고 초라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교회에서 많은 반대를 받았고, 세상적으로도 가난했습니다. 결국은 반역죄인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의 모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박해와 고난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납니다.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힘을 얻게 됩니다.
직분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본을 보임으로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말씀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말씀과 괴리된 삶을 산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은 설득력을 잃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단지 활자에 담긴 정보를 배우는 게 아닙니다. 말씀의 능력이 삶에서 드러나는 신자의 본을 보면서 말씀의 의미를 생생하게 깨닫고, 자기도 그 삶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인격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감화가 이루어집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직분자로서, 부모로서 믿음의 본을 보인다는 게 모든 일에 신앙인으로서 완벽하고 철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신앙의 모범이 되는 게 아닙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신자의 삶에 고난과 박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삶 가운데/ 흔들리고 넘어지고 실패하는 모습이 따라 옵니다. 하지만 이런 때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 붙들고 몸부림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본보기입니다.
내가 먼저 고난 가운데 주님 의지하여 나아가면서, 너도 함께 나아가자고 손 내미는 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요 양육입니다. 세상에서 큰 성공 거두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존경받는 직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본이 되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을 이끌어주는 영적인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과 실패가 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말씀에 충성된 목사님과 장로님과 집사님을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합시다. 또 부모들을 말씀으로 세워 주셔서 다음세대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게 하심에 감사합시다.
우리 모든 직분자들이 주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 계속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좋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격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직분자의 가르침과 권면에 순종함으로 진리 가운데 굳게 머무릅시다. 또 성도가 서로를 말씀으로 격려하면서 함께 교회를 세워 나갑시다. 또 우리 각자가 부모로서, 신앙의 선배로서 삶으로 순종하는 모범을 보이도록 힘씁시다.
3.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지키도록 성경을 주셨다 (15-17절)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도록 직분자를 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더욱 중요한 말씀을 듣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도록 성경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성경입니다. 직분자들도 결국은 성경을 배우도록 돕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알아야 합니까?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게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게 하려면,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적인 설득이나 삶의 간증이나 잘 대해 주고 도와 주는 것, 이런 것이 신앙에 대해 잠깐의 관심을 일으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아직 믿음이 약한 우리 자녀들, 교회에 처음 온 새가족, 또 전도하고 싶은 우리 친척과 친구들, 복음을 듣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 데리고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 말씀을 듣는 게 가장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주 중의 여러 기도회나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들려줘야 합니다.
16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경의 신적 영감과 권위에 대해서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본문입니다.
성경을 1차적으로 쓴 사람 저자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여러 선지자들이 썼습니다. 신약 성경은 사도들이 썼습니다. 오늘 디모데후서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하지만 사람 저자의 배후에서 성령님께서 선지자와 사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성경이 기록되게 그 저자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1차적으로는 구약 성경입니다. 당시에 구약 성경은 책으로 묶여서 교인들에게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분권된 각각의 책들과 편지들의 형태로 돌아다녔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무엇이 거짓된 글들인지 주의깊게 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공인된 성경 모두가 한 권의 책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은 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칙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성경의 어떤 부분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꾸며낸 신화적 이야기다, 또는 당시 문화에서 쓰여진 종교적인 주장으로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만일 성경 중에서 일부에 사람의 말이 개입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부분은 사람의 말인지를 누가 판단합니까? 결국은 자기 자신이 판단합니다. 그러면 내 판단과 내 기준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점점 더 나아가면 처음 시작은 성경의 일부만 받아들이지 않지만, 결국은 모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 1970년대부터 페미니즘 사상이 유행하면서 여러 전통적인 교회들에서 여성 목사 안수를 차츰 허용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우리 네덜란드 자매교회에서도 그런 결정을 내려서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핵심 논리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말은 당시의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을 “새로운 성경 해석학”이라고 부르면서 남녀가 동등하게 섬기는 교회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식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으니까, 최근에 네덜란드 교회에서는 동성애 결혼이나 동성애 직분자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 것도 문화의 산물이라는 논리입니다.
오늘은 이 여성 직분자나 동성애에 대한 것이 주제는 아닙니다. 이 문제를 다음에 더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논리가 어떻게 전체 성경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 나갈 수 있는지 그 예를 보여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을 상대화하는 논리 자체가 오늘날 우리 가운데 크게 유행하는 이단 사상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모든 말씀에 전적으로 굴복해서 성경 말씀에 자기 생각을 복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성경에 투영시켜서 해석하려는 탐심을 가지고 이런 주장에 동조합니다.
모든 성경이 일점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에만 영적인 유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모든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성경을 들을 때 말씀과 함께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해 주시고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십니다.
또 우리를 계속해서 경건에서 자라도록 성장시켜 주십니다. 여기 16절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교훈은 일반적인 가르침을 말합니다. 책망은 잘못된 행동을 꾸짖는 것입니다. 바르게 함은 삐뚤어진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의로 교육하는 것은 어린 아이를 가르치듯이 우리를 의롭게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왜 이렇게 말씀이 중요하다, 말씀을 배우자, 항상 말씀을 강조합니까? 오직 말씀을 듣고 배울 때만이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능력이 말씀 가운데 역사합니다.
사람의 인격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하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마음에 역사하셔서 특별한 감동을 주십니다. 깨우쳐 주시고,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가르쳐 주십니다. 점점 영적으로 성숙시켜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셔야지만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성경은 단지 서양 고대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에 불과합니다. 말씀을 읽으며 성령님께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시다. 스스로의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겸손합시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성경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17절에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은 구약에서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믿음의 영웅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일으킨 큰 일꾼들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어져 갑니다. 말씀으로 우리 자녀들과 새신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이런 믿음의 영웅들로 지어져갑니다.
요즘 “나에게 주는 선물”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라도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자고 하면서, 날을 잡아서 비싼 물건을 사기도 하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나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 바로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또 우리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바로 성경 말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배우기에 힘씁시다. 이것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힘들고 어려워서 말씀을 듣기가 힘듭니까? 지금이 여러분에게 가장 말씀이 필요한 때입니다. 말씀으로 영적인 생명을 공급받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적으로 중요한 권면을 두 가지 드립니다. 먼저 첫째로, 매일 오늘의 한장 성경읽기에 힘씁시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정해진 계획표에 따라서 모든 성경을 한 장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일에 오시면 다음주 성경 해설집을 나누어 드립니다. 또 매일 새벽마다 목사님과 저희 강도사들이 그날의 성경 한 장을 간략하게 해설하는 설교를 찍어서 보냅니다. 혹시 아직까지 오늘의 한장 성경읽기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부터 새로 결심하시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해설집과 유튜브 영상에도 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꼭 활용해서 많은 유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주일 오후 교리 공부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왜 오전에 설교를 듣는데 오후에 공부를 한 번 더 하냐, 의문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오전 설교는 성경의 한 본문을 깊이있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오전 설교만 듣다 보면 성경 전체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후에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경 전체의 핵심 가르침을 52주로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일종의 성경 핵심 요약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문답 설교를 꾸준히 들어야 성경 전체 가르침을 골고루 배울 수 있습니다.
최근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신앙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당이 문을 닫고 술집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서구 교회 몰락의 중요한 계기로 주일 오후예배가 약해지고 교리교육이 약해진 것을 꼽습니다. 오전예배만 드리고 다 집으로, 세상으로 흩어져 버리니까 교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세속화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교회에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열심히 오후 공부까지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는 데 오후 교리공부가 매우 소중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성도들의 마음이 모여서 지금 격주로 하는 공부를 매주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맺음말: 직분자와 성경의 도움을 받아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말세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로 직분자와 성경입니다. 직분자들은 말씀을 잘 배우도록 도우며, 삶으로 믿음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어 갑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직분자와 성경은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첫째,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일으킵니다. 둘째,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울 때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셋째,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를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 관악교회와 직분자들은 앞으로도 모든 성경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삼위일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께서는 직분자와 성경을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며 이 말세의 고통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