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153
그리스도의 피(히 9:11-22)
2023-11-5(일)
그리스도는 그 분의 피로 참된 대제사장이요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직업을 가지고 삽니다. 또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를 고민합니다.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 세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흘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피라는 단어가 10번 나옵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말하기 때문에 많이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말씀이니 정신을 집중하여 말씀을 잘 들읍시다.
그리스도는 그 분의 피로 참된 대제사장이요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1. 그리스도는 그분의 피로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는 대제사장이시다 (11-14)
2. 그리스도는 그분의 피로서 새언약의 중보자이다(15-22절)
성령님께서 이 시간 그리스도의 피로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인도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그리스도는 그분의 피로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는 대제사장이시다 (11-14)
1) 자기의 피를 통하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심(11,12절)
1)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로 오셨습니다. 11절에 “장래 좋은 일”은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좋은 일을 이루셨습니다. 좋은 일은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장막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왔습니다. “천막을 통하여”왔습니다. 이 장막은 창조세계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전에 구약 성도들을 위해 이 세상에 하나님을 만나는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이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있었던 성막보다 보다 더 크고 더 온전한 장막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2) 12절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 단번에 들어갔습니다. 염소들이나 송아지들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단번에 성소로 들어갔습니다. 이 성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을 말합니다. 그곳에 가시면서 하시는 일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속죄는 “구속”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노예, 죽음의 노예, 두려움의 노예였습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두려움에서 해방하셨습니다. 한번 하나님 앞에 들어가시면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영단번”이라고 합니다. “한 번 인데 영원한 효과”가 있습니다. 속죄하신 것에 대해 조금 후에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2) 대속죄일과 대비되는 그리스도의 일(12절)
1) 12절에 말하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는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뿌려 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 단번에 속죄를 이루신 것을 구약의 대속죄일과 비교하여 말합니다.
레위기 16:11-17(구약 170)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대속죄일 제도가 나옵니다. 해마다 7월 10일에는 구약 백성에게 대속죄일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은 성전의 안쪽 부분, 지성소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뿌리며 들어 갑니다. 송아지의 피는 대제사장을 위해 뿌립니다. 염소의 피는 백성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뿌립니다. 그 피를 지성소 안의 속죄소에 뿌립니다.
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를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뿌리면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 가셨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제사장이면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신 그것이 하늘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 영적 세계에서는 하나님 앞으로 대제사장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 났습니다. 우리를 대표하여, 대신하여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며 아버지 하나님을 만납니다.
3)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드는 암송아지의 재(13절)
1) 13절은 민수기 19장(구약)에 나오는 정결례를 말합니다. 시체를 만진 사람은 7일동안 부정하다고 정했습니다. 백성들이 있는 곳 바깥에서 살아야 합니다. 제3일과 7일째에 에 물과 재를 섞어 잿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합니다.
정결례에 쓰는 재는 이렇게 만듭니다. 먼저 암송아지를 죽여고 그 피를 성막 앞으로 7번뿌립니다. 송아지의 몸은 불사릅니다. 그 불 속으로 백향목, 우슬초, 빨간색실을 던져 넣습니다. 타고 남은 재를 백성이 사는 진 바깥에 항아리에 넣어 둡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이 있을 때는 그 항아리의 재를 물에 섞어서 그 사람에게 뿌립니다. 이 정결의식을 한 뒤에, 부정하게 된 사람이 정결하게 됩니다. 성막에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13절은 말합니다. 피를 뿌리고 재를 뿌리는 것이 부정한 사람의 육체를 정결케 했다고 합니다.
2) 구약성도를 위해 육체를 정결케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상징이요 혹은 성례입니다.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동물들의 피가 정결케 함에 대한 상징이어서 피가 뿌려진 사람을 정결케 합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은 정결하게 됩니다.
이 상징 자체가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징이 나타내는 실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 성도는 그 구약의 제사 그것 때문에 죄를 용서받고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가 그 실상입니다. 그 정결의식, 속죄의식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믿을 때,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피가 그들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4) 그리스도의 피가 양심을 깨끗하게 함(14절)
0) 14절이 오늘 가르침의 중심입니다. 다함께 읽읍시다.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자신을 희생하셔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속죄하십니다. 그 좋은 것의 핵심은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양심을 정결케 합니까?
1) 첫째, 그리스도의 피로서 정결케 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효과가 있습니다.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2) 둘째, 성령님을 통하여 자신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성령님을 통해 자신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중보자로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 오셨습니다. 메시아의 직분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 요단에서 돌아왔습니다. 성령에 인도되어 사막으로가서 마귀의 시험을 받았습니다(눅 4:1-2).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시면서,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위에 있다고 증거했습니다(눅 4:18, 사 61: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된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는 한 번의 제사이지만 성령님이 영원하시므로 영원히 효과를 내도록 하십니다. 참된 신으로서 예수님도 영원하므로 한 번의 십자가의 제사가 영원한 효과를 냅니다.
3) 셋째,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목적은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에 우리는 죽어 있었습니다. 열심히 활동해도 죽음이 만들어 내는 행동이었습니다.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예수님은 그분의 피를 통해 우리 양심을 죽음에서 해방하셨습니다. 우리의 양심을 치료했습니다. 양심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기능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더러운 것으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회복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예배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광스럽게 합니다.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 죽음을 사는 삶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으로 삶을 살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의무감에서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에 대한 감사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주셨다는 증거가 바로 오늘 주일에 다른 곳에 가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배하는 여러 성도님들은 복받았습니다. 성령께서 6일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십니다.
디모데전서 1:5는 말합니다. 복음을 교훈하는 목적은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양심으로 섬기는 사람은 믿음으로 서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받으려 하기 보다 주는 사랑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인정받기 보다 인정해 줍시다.
2. 그리스도는 그분의 피로서 새언약의 중보자이다(15-22절)
1) 그리스도의 피로서 새언약의 중보자(15-17절)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는 대제사장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15절이 말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성령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흠없이 드림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이 때문에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8:6에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직분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했습니다. “더 좋은 언약”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새언약은 예레미야 31:31이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2) 새언약과 대비되는 것이 첫 언약입니다. 첫 언약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맺으신 언약입니다. 율법을 주시고 맺은 언약입니다. 옛 언약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죄에서 속량할 수는 없습니다. 죄로부터 해방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3) 새 언약은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의 마음에 두어 율법을 기쁘게 지키게 합니다. 또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지키게 하는 이 새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서 세웠습니다.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보증으로 자신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래서 그 죄에서 우리를 속량하려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죄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듣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기업이 무엇일까요? 영생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사람에게는 이 복이 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우리 성도님들이 이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셔서 이 복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살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수고가 끝난 후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갑니다.
4) 16,17절에 유언은 “언약”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히브리어의 언약(버리트)라는 말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디아테케”입니다. 디아테케는 ‘언약’도 되고 ‘유언’도 됩니다. 유언을 한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유언은 효력이 없습니다. 유언한 사람이 죽은 다음에 효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언약도 죽음과 피흘림에 의해 확정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언약의 복을 주시기 위해 피를 흘려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2) 피로서 확정하는 시내산 언약(18-22절)
1) 옛 언약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중보자로 세운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맺은 언약입니다. 18-22절은 옛 언약을 통해 새 언약의 탁월성을 말해 줍니다.
출애굽기 24장에는 옛 언약 체결식이 이렇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과 율법을 백성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백성은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3절). 모세는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소를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피를 제단에 뿌렸습니다.
모세가 언약서를 백성에게 낭독하여 주었습니다. 백성은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7절)
다음으로 모세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8절).
2) 이 옛언약 체결식을 오늘 본문18-22절에서 말합니다. 18절에서, 이 첫번째 언약도 피와 함께 세웠습니다. 제단에 피를 뿌렸습니다. 제단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피를 뿌렸습니다. 이 언약의 말씀인 율법을 읽은 다음에 피를 뿌렸습니다. 이 말씀을 어기면 나는 죽어도 좋다는 표시로서, 헌신의 표시로서 피를 뿌렸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완성한 후에 성막과 성막의 그릇에도 피를 뿌렸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 외에도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는 데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리면서 죄용서를 받게 했습니다. 22절,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도 없느니라.”
3) 제사의식에 마술적 힘이 있어서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3) 구약 제사에서 피흘림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리는 제사
1) 구약의 피를 흘리는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시기 하루 전날 제자들과 성찬을 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27, 28 예수님께서 잔을 가지사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피흘림이 없으면 용서도 없습니다. 우리가 피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어떠한 죄용서도 소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달려갈 때 죄용서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들의 마음들을 정결하게 합니다. 정죄로부터 해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씻음을 가져왔고 그분을 새 언약의 중보자로 세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새언약의 중보가 되셨습니다. 그분의 신실함으로 그 요구들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위해 짐승의 피가 아니라 그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합의를 깬 것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가 여기에 있습니다.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쁘게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나는 용서받았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피로서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영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일을 믿음으로써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영생을 선물로 받는 축복이 계속되기 소원합니다. 성찬에서도 이 복을 주시기 소원합니다.